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89화 (69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89화>

‘엄마!?’

대답을 듣는 순간 전신에 전율이 흘렀다!

섬초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답, 가불기가 튀어나왔다!

‘야, 이건 반칙이잖아!’

천문석은 튀어나오려던 말을 간신히 삼키고 재빨리 섬초의 모습부터 살폈다.

‘아직 모른다! 섬초, 이 악마 같은 꼬맹이라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사기꾼! 거짓말쟁이! 날 속였어! 으앙, 으아앙-.”

아이처럼 바지에 달라붙어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엉엉 우는 섬초.

보는 순간 감이 왔다!

‘이건 진짜다!’

‘섬초는 진짜 엄마의 기억을 찾고 있다!’

섬초의 말대로 기억은 감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자신도 그랬다.

시원한 여름 소나기를 맞으면, 동생들과 산속 개울에서 비를 맞으며 헤엄치던 기억이.

마른 장작 타는 냄새를 맡으면, 꼬맹이 류세연과 옥상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던 기억이 떠오른다.

천문석은 말없이 섬초를 바라봤다.

두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몸, 눈처럼 새하얀 털과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

새끼 여우 섬초.

아직 어린 섬초의 기억 속 초콜릿의 달콤씁쓸한 맛과 함께 담긴 엄마.

여우에게는 독인 초콜릿에 담긴 엄마와의 추억.

이 역설에서 헤아릴 수 없이 깊고 무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봤다.

여명에 별빛이 사라지는 하늘에서 그 무언가. 천기(天氣), 업(業), 카르마, 하늘의 인과가 느껴졌다.

하늘의 인과가 어디에 이어질지는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법.

그 말 그대로 얄밉고 고집불통인, 딱밤을 날려 주고 싶던 새끼 여우 섬초가 어째선지 이해됐다.

누군가를 이해하면 미워할 수 없는 법.

천문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섬초에게 사과했다.

“섬초. 가짜 경계석 반지는 미안해.”

“그렇지! 미안하지!? 그럼 그 하얀 돌멩이! 경계석 나 줘! 나 힘 찾아야 한단 말야!”

“…….”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선수에서 나는 퐁퐁이, 사슴이, 반짝이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천문석은 바로 마음의 결정을 하고 섬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건 안 돼.”

“우와- 어, 뭐!?”

환호성을 터트리려던 섬초가 당황하는 순간.

천문석은 퐁퐁이의 목에 걸린 주머니에 6점짜리 하얀 돌멩이를 재빨리 넣어 줬다.

“으아악! 뭐 하는 거야! 고개 끄덕였잖아! 왜 안 주는 거야!”

“아까 너도 그랬잖아?”

“뭐……!?”

반문하던 섬초는 폭발했다.

“이야압! 분노한다! 으아아! 대대대요괴 섬초님의 분노를 받아라! 으아아아-!”

그그그그그극-

분노한 새끼 여우는 발톱을 세워 바지 밑단을 미친 듯이 긁었다!

그러나 섬초가 아무리 분노해도 6점짜리 하얀 돌멩이를 줄 수는 없었다.

하얀 돌멩이가 경계석이란 것도 구라였으니까!

이 순간 문득 궁금증이 생겨났다.

한호석 교수, 미호, 류호, 섬초까지 많은 사람이 경계석을 엄청난 보물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아니, 도대체 경계석이 뭐야?”

자신도 모르게 묻는 순간 번쩍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최초의 게이트가 열린 세기말 대한민국, 광화문 광장!

서리 늑대에게서 서리혼을 뽑아내다가 끊겼을 때. 초대형 뱁새를 탄 마법사가 돌을 던져 주며 외쳤다.

‘그 경계석을 먹이면! 서리혼이 다시 나올 겁니다!’

“……!”

그렇다! 자신은 경계석을 직접 손으로 잡았었다!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그 촉감, 무게, 질감이 생생히 기억났다!

경계석은…….

아무 특징 없는 작은 돌멩이었다!

“……아니, 경계석을 도대체 어떻게 구분하는 거야?”

천문석이 고심에 빠져 있을 때.

처음 듣는 섬초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하얀 돌멩이 내 보물이랑 바꾸지 않을래!? 이거 엄청엄청 맛있어! 내가 아껴먹는 최고급 쇠고기 육포야!”

섬초는 선수에서 날고 있는 퐁퐁이에게 반쯤 먹은 육포를 내밀고 하얀 돌멩이와 바꾸자고 강요하고 있었다!

구으, 구으으-!

퐁퐁이가 고개를 가로젓는 순간.

섬초는 재빨리 외쳤다.

“앗! 좋다고! 그럴 줄 알았어! 그럼 내가 알아서 꺼내 갈게!”

섬초는 누가 봐도 싫어하는 퐁퐁이를 향해 펄쩍 뛰었다.

띠디디딛-

이 순간 기계음이 터지고 퐁퐁이의 몸을 빛의 막이 감쌌다.

펄쩍 뛴 섬초가 빛의 막에 닿는 순간 마치 터널을 통과하듯 반전, 갑판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악- 야, 방해하지 마! 쟤도 바꾸는 거 좋다잖아!”

섬초가 억지를 쓰자.

퐁퐁이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구으, 구으으-!

“야, 그만해. 하늘 고래가 육포 먹을 리가 없잖아?”

“방해하지 마! 난 꼭 경계석 얻을 거란 말야!”

“…….”

“착하지, 착하지…… 그 돌 주면 내가 부하로 삼아줄게! 우와- 대대대요괴 섬초님 부하라니! 엄청 좋겠다! 구체적으로 뭐가 좋은지 이제부터 차근차근 알아보자! 우선…….”

섬초는 퐁퐁이, 사슴이, 반짝이 앞에서 온갖 감언이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퐁퐁이, 사슴이, 반짝이의 혼란스러운 눈빛이 느껴졌다.

‘이 여우 뭐야!?’

‘무서워! 이상해! 도와줘!’

단 한마디 말이면 섬초는 설득을 포기할 것이다.

‘하얀 돌멩이 경계석 아냐!’

그러나 천문석은 차마 이 말을 할 수 없었다.

섬초가 경계석을 찾는 건 잃어버린 엄마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니까.

하아-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리는데 축 늘어진 돛과 그 뒤에 떨어진 곡옥이 보였다.

다시 돛에 곡옥을 던지려는 순간.

저 멀리 강 위에 떠 있는 갤리선이 보였다.

용역 헌터들이 타고 떠난 갤리선!

그 갤리선이 강 한가운데 멈춰 있었다.

갤리선이 강에 멈춰 있을 이유는 하나뿐이다.

동료들이 탄 고속선으로 옮겨 타기 위해서!

S자로 구부러진 강을 지나자, 예상대로 갤리선에 바짝 붙어 있는 고속선이 보였다!

아카린의 고속선이다!

드디어 동료들과 합류한다!

자 고속선을 타고 열사의 사막으로 빠져나가면 적염성도 안녕이다!

“이제 난장판도 끝이다!”

카캬카카카-

천문석은 가슴이 뻥 뚫릴 듯 웃음을 터트리고 멀리 보이는 고속선을 향해 외쳤다!

[마침내! 내가 돌아왔다!]

* * *

강 중앙, 대형 갤리선과 고속선이 나란히 정박해 있었다.

갤리선의 높은 갑판과 고속선의 낮은 갑판이 비스듬히 놓인 널빤지 다리로 연결됐다.

이 널빤지 다리를 용역 헌터들이 미끄러지듯이 내려왔다.

용역 헌터들은 고속선 갑판에 도착하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이세기님에게 잘 좀 말해 주십시오!”

“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최설과 허준, 진교은은 굽실거리는 용역 헌터들의 모습에 서로를 바라봤다.

봉쇄선을 뚫고 탈출하기 전, 이세기에게 들은 계획에 용역 헌터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조폭, 용역 헌터들 일 좀 맡기고. 적당히 굴린 다음에 지구로 데려다주기로 했어.’

강릉에서 이곳까지 몇 번이나 싸운 조폭, 용역 헌터들에게 일을 맡긴다고?

그 거친 헌터들이 생각대로 움직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건 이세기의 생각대로 진행됐다.

조폭, 용역 헌터들은 당장이라도 픽 쓰러질 듯 힘겨운 모습으로 연신 굽실거리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일반 조직원, 헌터뿐만이 아니다!

최설은 널빤지 다리를 내려오는 육체 각성자를 봤다.

자신을 잡겠다고 상해에서 제주도를 거쳐 서울까지 온 사촌, 최림!

최림은 첫 만남부터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그랬던 최림이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 시선을 피하고, 재빨리 갑판 구석으로 걸어가 등을 보이고 쪼그려 앉았다.

그 축 처진 등에선 고뇌와 슬픔, 고통과 처연함이 느껴졌다.

“……아니, 뭘 어떻게 했길래……?”

최설이 멍하니 이 모습을 보고 있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이세기 걔 뭘 어떻게 한 거야!? 용역 헌터들이 전부 걸레짝이 됐는데?”

“그런데 이거 괜찮을까요? 인원이 너무 차이 나는데…….”

어이없어하는 허준, 불안해하는 진교은.

“괜찮을 것 같아. 아마도…….”

최설은 친구를 안심시켰다.

헌터들은 40명.

반면에 일행은 자신, 허준, 이원, 진교은, 한호석, 특급 헌터, 아카린. 그리고 여기 없는 천문석 부사장까지 8명뿐이다.

진교은, 한호석 교수, 특급 헌터 셋은 일반인이고 아카린은 기절해서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지금 이 배에서 싸울 수 있는 건 자신과 허준, 이원 셋뿐.

40명과 3명.

10배가 넘게 차이 나는 머릿수!

하지만 걱정되지는 않았다.

얼마나 굴렸는지 헌터들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연신 굽실거리다, 갑판 구석에 앉는 순간 기절하듯 고개를 떨구고 잠들었다.

체력이 거의 바닥났다!

헌터들은 이 이상한 던전에서 지구로 돌아갈 때까지는 충실히 명령에 따를 것이다.

지금 걱정할 건 따로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천문석 부사장.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는 아카린.

최설은 선미 갑판을 향해 외쳤다.

“아카린은 아직 인가요?”

“여전해! 호흡, 맥박 모두 정상인데 깨어나지를 않아!”

이원이 고개를 젓자 바로 옆에서 아카린을 살피던 특급 헌터가 외쳤다.

“내가 퐁퐁검으로 때려선가 봐!? 어떡하지!? 니케, 니케 있으면 깨울 수 있는데! 니케 불러볼까!?”

“아냐. 너 때문에 아냐. 걱정할 거 없어. 곧 일어날 거야.”

한달음에 달려간 진교은이 특급 헌터를 꼭 안고 고개를 저었다.

최설은 내심 한숨이 나왔다.

다음 목적지 ‘열사의 사막’으로 가기 위해서는 ‘안개 길잡이’를 만나야 했다.

하지만 안개 길잡이가 누구인지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는 아카린만 알고 있었다.

아카린이 깨어나지 않으면 열사의 사막으로 갈 수 없고, 열사의 사막으로 가지 못하면 지구로도 돌아갈 수도 없었다.

‘지구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걸 알게 되는 순간 지금 눈앞에서 굽실거리는 용역 헌터들의 분노가 폭발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아카린이 깨어나고, 천문석 부사장이 오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최설이 한숨을 삼킬 때.

갤리선 갑판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 * *

“갤리선은 여기서 넘기겠다!”

왕체가 외치는 순간 갑판에 모인 선원들과 노잡이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

엄청난 가치를 지닌 전투용 대형 갤리선!

이 갤리선을 가까운 항구로 가져가 파는 순간 엄청난 황금이 쏟아진다!

갑판에 모인 선원들과 노잡이들은 대박이 터졌다!

환호성이 끝도 없이 이어질 때.

데이몽 발도도 부들부들 경련하는 몸으로 외쳤다.

우와아아아-

생각지도 못한 불운에 정신없이 구르며 도깨비 궤짝과 무도왕 조각상을 잃어버리고, 갑자기 오르게 된 갤리선에서 미친 듯이 노를 저었다!

하지만 불운은 행운과 함께 오는 법!

이제 불운은 끝나고 행운이 시작됐다!

데이몽 발도는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 대형 갤리선을 봤다.

수십 개의 대형 노.

층층이 갑판이 놓인 높은 선체.

우뚝 솟은 돛대와 거기에 걸린 커다란 돛까지!

이 대형 갤리선을 팔아서 나눠 갖게 됐다!

즉, 자신 앞에도 목돈이 떨어진다!

그 돈을 밑천으로 가지고 타대륙으로 튀면 된다.

“새옹지마! 모든 것이 좋게 끝났다!”

하하, 하하하 -

데이몽 발도는 하늘을 향해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대사형! 안녕입니다!”

이때 강 상류에서 거센 바람에 웃음소리가 실려 왔다.

카캬카카카-

너무나 익숙한 웃음소리!

“……!”

“……!”

갤리선과 고속선의 모두가 웃음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상류에서 물 위를 날아오는 작은 배가 보였다.

그리고 하늘을 쩌렁, 쩌렁 울리는 귀에 익은 외침이 들려왔다!

[마침내! 내가 돌아왔다!]

외침을 들은 모두의 머릿속에서 같은 이름이 떠올랐다.

이세기!

“너 드디어 왔구나!”

“바로 출발한다! 모두 준비해!”

“알바! 나 엄청 기다렸어 빨리빨리와!”

“이세기! 적염성과 강을 난장판으로 만든 놈!?”

“재앙신이 나타났다! 빨리 닻부터 올려!”

“야 빨리빨리 건너가! 당장 튀어야 해!”

“드디어, 드디어!”

“지구로 돌아가는구나!”

고속선과 갤리선의 사람들에게서 서로 다른 외침이 정신없이 터져 나왔다.

[카캬카카카- 뭐야, 내가 그렇게 반갑냐?]

천문석이 내력을 담아 외치는 순간.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강물이 솟구쳤다.

천문석이 타고 있는 하늘을 나는 배 바로 아래에서!

쿠아아아앙-

작은 배는 단숨에 하늘 높이 떠올라 거인이 던진 창처럼 날아갔다!

갤리선을 향해서!

“……!”

“……!”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에 모두가 얼어붙는 순간.

수백 미터를 치솟은 강물이 산산이 부서져 비와 수증기로 변해 쏟아졌다!

쏴아아아아-

이 순간 느껴지는 이글거리는 열기!

문득 고개를 든 모두는 봤다.

치솟은 강물을 박살 내고 튀어나온 푸른 화염의 뱀.

몸길이 수백 미터!

거대한 청염의 뱀이 하늘로 올라가 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 중앙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아득히 멀리 있었지만, 시선을 두는 순간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물에 젖은 소용돌이 가면, 진흙이 줄줄 흐르는 종이 옷.

수초가 뒤엉킨 갈라진 지팡이.

강바닥을 뒹군 것처럼 엉망인 모습!

그러나 이 자리의 모두는 보는 순간 이 사람의 정체를 알아챘다.

허공도의 제사장이다!

포아아아앙-!

이때 하늘에서 폭음이 터지고.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인간! 여우 요괴! 모조리 불태워 주마!]

청염의 뱀에서 불덩어리가 쏟아졌다.

갤리선으로 날아가는 이세기가 탄 배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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