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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87화 (68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87화>

허공도의 제사장은 푸른 화염을 꼬리처럼 끌고 주위를 샅샅이 뒤졌다!

파아아앙-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촤아아아-

강물이 폭발하듯 치솟았다.

그러나 물속, 하늘, 강. 그 어디에도 경계석 반지를 가지고 도망친 여우 요괴는 없었다!

하필이면 이곳은 허공도의 경계를 벗어난 곳!

마치 꿈꾸듯 인지가 깜빡깜빡 끊겨 여우 요괴의 위치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인연이 닿지 않으면 볼 수조차 없는 경계석을 이렇게 잃는다고!?’

마음에서 치솟은 분노, 고통, 후회가 뒤엉켜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쿵, 쿵, 쿵-

심장이 뛰는 매 순간 거대한 몽둥이로 내리치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고 의식이 흐릿해졌다.

이 순간 마음속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더는 안 돼! 이대로라면 꿈은 악몽이 된다!’

‘적염성을 봐! 이미 적예와의 약속은 이뤄졌어!’

“……!”

고개를 돌리는 순간 종이 가면에 그려진 소용돌이가 회전하고 바로 앞에서 보듯 적염성의 모습이 보였다.

차분히 성 밖으로 대피하는 사람들.

이들을 인도하는 인간과 수인족 무사들.

그 사이사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리는 이종족 꼬맹이들.

어느새 전투는 끝났고 적염성은 원래 모습.

인간, 수인족, 도깨비, 요마, 괴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살아가는 도시로 돌아왔다!

적예와의 맹약은 어느새 이뤄졌다.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가짜 경계석 목걸이를 대가로 내밀며 황당한 맹약을 요구했던 적염 성주, 적예.

적예의 뜻에 마음이 움직였기에 경계석 목걸이가 가짜란 걸 알았음에도 맹약에 응했다.

이 순간 마음속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그랬지.’

‘그리고 지금 맹약대로 적염성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졌어.’

‘아주 훌륭하게 외부의 적 역할을 했어. 이제 적염성과의 인연은 사라졌으니 허공도로 돌아올 시간이야.’

“하지만 경계석은!? 여우 요괴가 낚아챈 그 경계석은!?”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자조 섞인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나는 이렇게 어리석었구나…… 대가는 이미 받았단다. 하늘의 천기를…….’

이때 하늘에서 내력이 담긴 외침이 울려 퍼졌다!

[허공도의 제사장! 여기다! 여기에 먹튀한 여우 요괴가 있다! 얼른 쫓아와라!]

“……!”

[카캬카카카카-]

외침을 듣는 순간 이성은 단숨에 날아가고.

제사장의 몸은 푸른 화염을 휘감고 쏘아졌다!

파아아아아-

적염성을 뒤로하고 강 하류로 나아가자, 곧 질주하는 작은 배가 보였다!

이 작은 배 위에 한 인간과 여우 요괴가 있었다!

마치 꿈속에서 사람을 보듯 정확한 모습은 인지되지 않지만 감이 왔다.

‘저 여우 요괴가 경계석 반지를 먹튀한 그 여우 요괴다!’

순간 분노가 폭발해 몸과 마음을 집어삼켰다.

허공도의 제사장의 본질은 아마르가 꾸는 꿈!

분노에 삼켜진 꿈은 통제할 수 없는 악몽이 되었고, 허공도의 제사장은 강 위로 질주했다.

경계석을 가지고 도망친 여우 요괴를 잡기 위해서!

* * *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

작은 배 한 척이 몰아치는 바람을 타고 강을 질주하고 있었다.

촤아, 촤아아-

선수에서 부서진 물이 갑판에 쏟아질 때.

타륜을 잡은 천문석은 힐끗 뒤를 돌아봤다.

파아아아앙-

이글거리는 푸른 화염 덩어리, 뒤를 쫓는 허공도의 제사장이 보였다!

여명이 밝을 때까지 밤새 추격전을 벌인 결과, 제사장과의 거리는 200여 미터까지 좁혀졌다!

하지만 동료들이 탄 고속선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이건 좋은 소식이자, 나쁜 소식이었다.

좋은 소식은 아카린의 고속선이 생각보다 더 빠르다는 것.

나쁜 소식은 제사장의 속도도 마찬가지로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

바람을 주술이 담긴 곡옥을 이용하면 충분히 거리를 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사장과의 거리가 점차 좁혀지고 있다.

‘이대로면 한 시간이면 잡힌다!’

이때 섬뜩한 감각이 느껴졌다!

“……!”

반사적으로 타륜을 돌리고 선수가 비틀리는 순간 등 뒤에서 날아온 화염이 강으로 떨어졌다!

촤아아아-

강물이 비처럼 쏟아지고, 쾅, 콰아앙-

폭발한 수증기가 훅 밀려 왔다!

그리고 섬뜩한 직감이 연속해서 느껴졌다!

촤아, 촤아아-

천문석은 재빨리 타륜을 좌우로 돌려 ‘S’자를 그리며 질주했다.

쾅, 콰아앙

강 곳곳에 화염이 떨어져 폭발이 일어나고 수증기가 쏟아졌다!

그러나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공격이 천문석의 숨통을 열어 줬다.

제사장은 화염을 날리며 속도가 느려진 상태.

이 화염은 기만 없이 정직하게 날아왔기에 쉽게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화염에 폭발한 수증기가 바람을 타고 강 하류로 퍼져 나가 시야를 가렸다!

이렇게 시야가 가려지자 쏟아지던 화염이 뚝 멈추고 외침이 들려왔다.

[인간 멈춰라! 여우 요괴 경계석 반지를 내놔라!]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려 몸에 묶은 포대기를 봤다.

가슴 부위 포대기 밖으로 상체를 쏙 내민 새끼 여우가 앞발을 휘저으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얍, 야야얍-! 왜 힘이 안 돌아오는 거야!? 힘들어서 못해 먹겠네!”

섬초는 여명이 밝아오는 지금까지도 힘을 찾겠다고 기합을 지르고 있었다!

마치 특급 헌터를 보는 듯한 집념과 끈기였다!

“와, 너 진짜 특급 헌터를 닮았네! 야, 너 먹은 돌 반지 가짜라니까! 진짜 경계석 아냐!”

섬초는 순간적으로 고뇌하는 표정이 되어 천문석을 바라봤다.

“…….”

이 순간 섬초의 눈동자에 스쳐 지나가는 감정의 편린들.

의혹, 수치, 당황, 부끄러움…….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

“대대대요괴! 섬초님이 속았을 리가 없잖아! 얍, 야압-! 힘아, 돌아와라!”

“……!”

이 순간 천문석은 벼락 치듯 깨달았다.

‘이 녀석 경계석이 가짜라는 걸 벌써 알고 있었구나!’

“야, 가짜인 거 눈치챘으면 지금이라도 반지 토해 내고 집에 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닌데?”

“진짜 경계석인데?”

“나 눈치챈 거 아니거든!”

“앗! 나 조금 힘이 돌아오는 거 같아! 얍얍얍-!”

“고집불통 미운 네 살 새끼 여우 같으니라고! 너 각오해! 나중에 니케한테 물라고 할 거야!”

“니케?”

“엄청엄청 무시무시한 괴수 있어! 걔가 한번 물면 지옥의 고통을 겪는다!”

“풉- 대대대요괴 섬초님을 문다고? 크하하하-.”

섬초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 시바! 니케를 데려오는 건데!’

천문석이 분통을 터트리려는 순간.

파스스스-

돛 뒤에 떠 있는 곡옥 하나가 빛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곡옥에 담긴 주술력이 다 됐다!

천문석은 재빨리 류호에게 받은 곡옥을 돛으로 던졌다!

곡옥이 돛 뒤에 멈추는 동시에 거센 바람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돛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촤아, 촤아, 촤아아-

배는 수면 위를 날듯이 질주했다!

[경계석 반지만 내놔라!]

이때 제사장의 외침이 하늘이 아닌 수면에서 들려왔다!

천문석은 뒤를 향해 기감을 뻗었다.

파아아아앙-

어느새 제사장은 수증기 속으로 들어와 수면에 닿을 듯 고도를 낮춰 날았다!

시계가 확 줄어들어 궤적을 보기 위해 선택한 고육지책!

촤아아, 쾅, 콰앙-

그러나 제사장의 경로를 따라 파도가 치솟고 강이 폭발해 수증기가 더 자욱하게 깔렸다!

제사장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대로 계속 달리면 따돌릴 수 있다!

문제는 바람 주술이 담긴 곡옥이 3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있지만, 동료들이 탄 고속선이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지금으로서는 고속선이 나타나도 문제다.

열사의 사막으로 길을 열어 줄 안개 길잡이가 고속선에 탔는지 불확실하고.

고속선에 옮겨타고 제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은 곧 거리!

허공도의 제사장과의 거리를 좀 더 벌려야 했다!

그리고 지금 제사장과의 거리를 벌리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공간 도약!

“얍, 야얍-! 내가 삼킨 건 진짜 경계석이다! 대대대요괴 섬초님이 속았을 리 없다! 엄청난 힘아 어서 솟아랏!”

포대기 안에서 스스로를 세뇌하듯이 외치는 새끼 여우, 섬초.

섬초의 공간 도약 능력이 필요했다!

천문석은 섬초를 향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대대대요괴 섬초. 아까 밤에 했던 것 기억하지?”

“밤에 했던 거?”

“팟! 섬광 터지니까 제사장이 엉뚱한 장소로 날아갔잖아?”

“아, 공간 도약!?”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천문석은 온갖 알바 현장과 키즈 카페에서 갈고닦은 대인관계 스킬을 총동원해 입을 열었다.

“맞아. 그 공간 도약 엄청엄청 대단하더라고!”

“뭐,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괜히 내가 대대대요괴 섬초님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니까! 우흐흐흣-.”

“맞아! 엄청났어! 대단해! 와, 그런 건 본적도 없어!”

천문석은 기세등등한 섬초의 말에 연신 맞장구를 쳤다.

섬초의 꼬리가 살랑이고 얼굴 전체가 환하게 펴지는 순간.

천문석은 슬쩍 말을 던졌다.

“섬초. 그 공간 도약으로 이 배도 도약시킬 수 있어?”

“당연하지! 파바바밧-! 연속 도약도 할 수 있어!”

드디어 승부의 순간.

천문석은 조마조마한 내심을 감추고 한 톤 높은 목소리로 기대와 선망을 담아 물었다.

“우와! 그럼 제사장도 단숨에 따돌릴 수 있겠다! 한 번만 보여 주지 않을래!?”

섬초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나, 엄청 바빠!”

‘야, 이 바쁘긴 뭐가 바빠!’

천문석은 마음에 참을 인(忍)을 그리며 다시 말했다.

“와, 엄청 바쁘구나! 당연히 대대대요괴면 바쁠 거야! 그래도 한 번만 보여 주면 안 될까? 그러면 엄청 큰 도움 될 거 같아!”

“…….”

섬초는 심각한 얼굴로 고심하다가 마침내 고개를 움직였다!

끄덕-

‘됐다! 드디어 거리를 벌린다!’

천문석이 내심 환호성을 지를 때, 섬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안 돼. 경계석 힘 깨워야 하거든. 얍, 얍-!”

이 순간 천문석은 폭발했다.

“야, 안 되는 데 고개는 왜 끄덕이는데! 그리고 경계석 가짜라니까! 그만 좀 포기해!”

“대대대요괴한테 포기란 없어! 그리고 내가 가짜 경계석을 먹었을 리 없잖아!”

“너, 도대체 왜 우기는 거야!?”

“가짜 경계석이면! 내가 돌을 먹은 게……!”

반사적으로 대답하던 섬초는 흠칫 놀라 얼어붙었다.

“……!”

순간 천문석의 촉이 움직였다!

섬초가 밤새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섬초는 경계석 반지가 가짜란 걸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어째서?

문득 키즈 카페 모래 놀이터에서 꼬맹이들이 싸우던 장면이 떠올랐다.

‘엄마, 쟤 모래에 떨어진 거 먹어!’

‘아니거든! 안 떨어졌거든!

입가에 모래를 묻히고도 끝까지 우겼던 꼬맹이.

지금 섬초는 그 꼬맹이와 같았다!

경계석 반지가 가짜면 섬초는 돌을 삼킨 멍청한 여우가 되는 거니까!

“너, 설마…… 낚여서 돌 삼켰다는 게 부끄러워서 그래?”

“……!?”

순간 섬초의 눈동자가 요동치고 전신의 털이 뻣뻣하게 일어섰다!

그리고 한발 늦게 튀어나온 외침.

“……아냐! 절대 아냐! 절대절대 그런 거 아니라고!”

‘제대로 정곡을 찔렀구나!’

순간 입가에 미소가 걸리고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눈앞의 섬초가 요괴라고 생각한 게 실수다!

말 안 듣는 키즈 카페 악마 꼬맹이들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했어야 했다!

섬초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감이 왔다!

천문석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섬초를 낚을 도구를 손에 움켜쥐었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섬초. 이 손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

“……손 안?”

섬초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반문하는 순간.

활짝 펼쳐진 손!

손 위에 놓인 건 새하얀 돌멩이었다.

“돌멩이?”

섬초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천문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그냥 돌멩이가 아니야. 이게 바로 진짜…….”

낚시질을 시작하는 순간 너무나 익숙한 폭음이 들려왔다.

포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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