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77화>
은밀하고, 신속하게!
갑판으로 나가지 않고 선체를 뚫고 달린 천문석은 마침내 도착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선체!
깡-
강철봉으로 두들기는 순간 들려오는 묵직한 쇳소리!
선체 표면을 덮은 동판 너머 다른 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두껍고 단단한 선체가 느껴졌다!
“이거 중간에 철판까지 넣었잖아!?”
곧 지금 자신이 두들기는 배의 정체가 짐작됐다.
적월 상단의 대형 범선이다!
즉, 이 대형 범선 옆에는 출발 준비를 끝낸 갤리선이 있다!
“하,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천문석은 동판이 깔린 선체에 찰싹 달라붙어 신중히 주먹을 휘둘렀다.
쿵, 쿵, 쿵-
내가중수법으로 동판 너머 두꺼운 선체에 경력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강철봉을 어깨에 걸고 거리를 벌린다.
7걸음!
천문석은 바로 움직였다.
타타, 타타타탓-
가벼운 보법으로 진기를 모으고.
쿵-
무거운 진각을 펼쳐 모인 진기를 터트린다!
후우웅-
천천히 나아가는 강철봉에 실리는 폭발하는 진기!
내가중수법으로 경력을 심어 둔 선체에 강철봉이 닿는 순간.
뽕-
병뚜껑 따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지름 1미터 남짓한 구멍이 뚫렸다!
‘카캬카카카-.’
천문석은 재빨리 구멍을 통과해 맞은편 선체로 달렸다.
그리고 구멍을 뚫으려다가 멈췄다.
여기서 구멍을 뚫고 지나가면 갤리선에도 구멍이 뚫린다!
‘배 높이가 있으니 괜찮을 거 같기는 한데……?’
어차피 다 왔다.
갑판으로 올라가서, 갤리선으로 넘어간다!
천문석은 소리 없이 선체를 달리고 계단을 걸어 위로위로 올라가 갑판 문을 슬쩍 열고 주위를 살폈다.
사방에 널브러진 돛과 밧줄, 통과 범포, 대나무 장대와 갖가지 도구들.
갑판은 급하게 자리를 비운 것처럼 온갖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텅 비어 있었다!
‘모두 낚였구나!’
천문석은 문틈으로 빠져나와 재빨리 대나무 장대를 하나 낚아챘다!
그리고 깃발이 거꾸로 달린 갤리선을 향해 달리며 외쳤다.
“야, 나 왔어! 지금 당장 출발해라! 뛰어넘을게!”
돛대 위 망루에서 얼굴을 쏙 내미는 하누만!
하누만은 천문석을 보는 순간 바로 북을 두들겼다.
둥, 두웅, 두우웅-
“야! 왔다! 바로 출발한다!”
쾅, 콰앙, 차르르르-
쇠사슬이 끊겨 강으로 떨어지고.
으악, 으아악-
악을 쓰며 장대로 선체를 밀어내는 선원들!
촤아, 촤아아아-
거리가 벌어지는 순간 선체에서 솟구친 수십 개의 노가 강물을 밀어냈다.
쿠르르르르릉-
갤리선은 용트림하는 소리와 함께 제자리에서 회전하더니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더 빨리! 내 걱정하지 말고! 전력으로 움직여!”
천문석은 외침과 함께 가속했다.
3, 6, 10, 15미터!
점점 빠르게 멀어지는 갤리선!
그러나 대나무 장대의 탄력이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다!
“더, 더 빨리!”
천문석은 악을 쓰듯 외치고 난간을 향해 대나무 장대를 겨눴다!
“이야아아압!”
그리고 기합을 지르며 대나무 장대를 찍고 단숨에 도약하려는 순간.
파바바바바밧-
수천 발의 광탄이 쏟아졌다!
* * *
광탄의 벽이 생겨나는 순간 깨달았다.
‘함정이다!’
생각과 동시에 대나무 장대로 갑판을 찍고 뒤로 몸을 날렸다!
순간 유도탄처럼 휘어져 따라오는 수천 발의 광탄!
천문석은 대나무 장대를 광탄을 향해 던졌다.
광탄은 대나무 장대로 빨려 들어가듯 쏟아졌다!
콰드드드득-
폭풍처럼 몰아치는 광탄에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하는 대나무 장대!
파아앙-
천문석은 갑판의 대나무 장대를 광탄을 향해 차올리고 뛰어나온 계단 입구로 달렸다!
‘장대가 모두 박살 나기 전에 튀어야 한다!’
순간 계단 입구가 닫히고 탕, 탕- 못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괴성!
으아아악-!
끄어어억-!
흐으으윽-!
시바아아-!
선수, 선미, 망루, 돛대, 나무통, 선장실!
온갖 장소에서 갑자기 기척이 느껴지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사, 마법사, 주술사, 해적, 무인!
수가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소 절정 이상의 강자들!
“드디어 잡았구나! 이세기!”
“이세기 이 새끼! 내가, 시바, 내가 어!”
“미친놈아! 함정에 걸린 기분이 어떠냐!”
“카캬카? 시발놈아! 카카카카카카카캌이다!
……
사방에서 쏟아진 강자들이 환희에 찬 얼굴로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곧 대나무 장대를 아작낸 수천 발의 광탄이 쏟아질 텐데 주위는 강자들로 막혔다.
광장 이래 최대 위기의 순간.
천문석은 내력을 담아 외쳤다.
[야, 나 항복…….]
“뭐, 항복!”
“미친놈아! 항복 없어!”
“항복하기 전에 박살을 내주마!”
자신들을 미친 듯이 굴린 이세기의 항복한다는 말에 강자들은 눈이 돌아가 달려들었다!
순간 천문석은 말을 이었다.
[…… 할 리 없지! 카캬카카카- 멍청한 녀석들!]
그리고 천문석의 두 손이 번개같이 하늘로 움직였다!
광장에 떨어진 엄청난 섬광과 굉음!
“……!”
“……!”
뒤늦게 이세기가 뭘 하려는 지 깨닫고 눈을 가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콰아아아아앙-
천문석의 두 손이 충돌하고 굉천수가 터졌다.
“으아악! 또 낚였다고!?”
“이세기 미친놈아! 그만해!”
“시바, 시바! 제대로 좀 싸우라고!”
분노와 울분을 담아 외치던 모두는 곧 깨달았다.
‘눈이 보인다!’
“으앗! 뭐야! 이게 왜 이래! 왜 안 터져!”
콰앙, 콰아앙, 콰아앙-
이세기가 손을 마주칠 때마다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이 터지고 있지만, 그뿐!
시야를 새하얗게 물들이는 섬광은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스레 눈을 뜬 모두의 시선이 이세기에게 모였다!
“……?”
“……?”
이세기는 마주치던 손을 멈추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흠칫 놀란 모두가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이세기는 내력을 실어 외쳤다.
[다 내 계획대로다!]
[그러니까 너희 먼저 도망치고 있어라!]
그리고 대나무 장대를 완전히 작살낸 수천 발의 광탄이 쏟아졌다.
파바바바밧-
이세기는 쉬지 않고 외쳤다.
“다 내 계획대로다!”
“다 내 계획대로라고!”
“다 내 계획대로라니까!”
……
바닥을 미친 듯이 데굴데굴 굴러 광탄을 피하면서.
* * *
난장판이 된 광장에서 시작해 마침내 꼬리를 잡은 지금까지.
하루 종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온갖 방법으로 이세기에게 당했다!
그렇게 자신들을 악마같이 굴린 이세기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후두두두둑-
비 오듯 쏟아지는 광탄을 피해서.
“…….”
“…….”
“…….”
이 순간 이 자리의 모두는 알 수 없는 허탈함과 탈력감에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봤다.
“야, 이거 진짜로 다 내 계획대로라니까!”
이때 다시금 들려오는 이세기의 억울해하는 외침.
“하, 하하- 저런 놈한테 내가 당했다고……?”
“시바! 야, 피하지 말고 벌떡 일어나서 강철봉으로 때려!”
“그래! 어, 좀 제대로! 고수답게 싸워라!”
“미친놈아 데굴데굴 구르니까! 내가 더 비참하잖아!”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
……
사방에서 허탈한 웃음과 울분 어린 괴성이 쏟아질 때.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천문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과하지욕(跨下之辱)!
지금 자신은 시정잡배의 다리 사이를 기는 한신이다!
절대 방법이 없어서 구르는 게 아니었다
상대를 방심시키기 위해서 데굴데굴 구르는 거다!
‘멍청한 녀석들. 방심하다니!’
천문석은 데굴데굴 굴러 광탄을 피하며, 지기 싫어하는 꼬맹이처럼 다시 외쳤다!
“전부 다 내 계획대로다! 덤벼 새끼들아!”
그러나 주위의 적들은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만 있었다!
맞은편 난간을 향해 굴러 가는 자신을!
‘카캬카카카-’
천문석은 난간을 향해 데굴데굴 구르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굉천수의 섬광을 삼켜 버린 존재를 깜빡했던 건 뼈아프지만 괜찮다.
계획은 성공했으니까!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된 덕분에 갤리선은 출항했고.
특급 헌터와 동료들을 태운 배도 무사히 하류로 빠져나갔다.
이제 저 난간을 넘어 다시 한 번 도망쳐 동료들과 합류하기만 하면 된다!
천문석은 더욱 열심히 데굴데굴 굴렀다!
이때 후미 갑판에 선 전투 마법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어, 아까는 강철봉으로 단숨에 광탄을 막아 내더니…… 지금은 왜 구르고 있는 거야?”
“……!”
“……!”
‘마법사 이 트롤러 녀석!’
천문석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
마찬가지로 가슴이 철렁한 당종이 외쳤다!
“모두 이세기를 당장 막아라! 배 출항시켜!”
당종의 호위 무사가 반사적으로 달려드는 순간.
팡-
천문석은 손으로 갑판을 때려 일어서는 동시에 진각을 밟았다.
쿠우웅-
순간적으로 잔뜩 웅크린 몸이 단숨에 펼쳐지며 화살처럼 쏘아졌다!
만만한 기사들을 향해서!
기사가 롱소드를 뽑아 찔러 오는 순간 강철봉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쏘아졌다!
무거운 강철봉과 가벼운 롱소드!
기사들은 재빨리 반걸음 물러서며 기세를 흘리려 했다.
순간 천문석은 강철봉으로 갑판을 내려찍고 뱀처럼 기사 사이로 미끄러져 빠져나갔다.
경악한 기사들이 재빨리 뒤로 따라붙는 순간 수천 발의 광탄이 기사들의 등에 쏟아졌다!
파바바바바밧-
기사들이 광탄 폭격에 정신없이 두들겨 맞을 때.
천문석은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잘 있어라! 안녕이다!”
무인과 해적들이 미친 듯이 난간으로 달리는 순간.
천문석은 갑판을 박차고 반전 후갑판으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가장 까다로운 적 마법사부터 끝장내기 위해서!
“……!”
광점을 모으다 말고 다급히 몸을 돌리는 마법사들.
제대로 허를 찔렀다!
쿠우웅-
다시 한 번 진각을 밟고 화살처럼 나아갔다!
휘이이이-
마법사의 방어 마법조차 속이는 구인창의 경력을 강철창에 싣고!
3, 2, 1미터!
순식간에 마법 경계를 뚫고 강철봉이 마법사들의 뒤통수에 닿기 직전!
묵직한 벽돌이 날아와 강철봉을 때렸다!
쿠우웅-
엄청난 무게감에 강철봉이 밀려나려 했다!
‘단숨에 뚫는다!’
내력을 폭발시키며 밀고 들어가려는 순간 압축 공기가 먼저 터졌다!
파아앙-
폭발하는 바람에 몸이 밀려났다.
쿵, 쿵, 쿵-
그러나 세 걸음 만에 반전!
천문석은 강철봉에 예기를 담아 단숨에 바람을 뚫고 나아갔다!
순간 소검(小劍)이 불쑥 튀어나왔다.
“뚫는다! 으아아악-.”
악을 쓰며 밀고 나갈 때.
한자 남짓한 소검에서 빛이 생겨나더니 쑥 길어졌다.
유형화된 강기, 검강!
초절정 고수다!
재빨리 갑판을 박차고 거리를 벌리는 순간 등 뒤에서 다가오는 섬뜩한 기운!
반전해 강철봉을 후려치는데 다시 보였다.
커틀러스에 맺힌 유형화된 오러!
마스터급 오러 능력자!
재빨리 강철봉을 거두고 다시 한 번 몸을 뒤로 빼는 순간 마력장이 폭발할 듯 요동쳤다!
어느새 십여 명의 마법사들이 지팡이를 겨누고.
등 뒤에서 기세를 끌어올리는 무인과 기사들이 느껴졌다!
그러나 천문석의 눈은 소검과 커틀러스를 든 두 사람에게 고정됐다.
소검을 든 냉정해 보이는 문사 차림의 남자.
커틀러스를 든 성질 급해 보이는 해군 제복 차림의 여자.
남자와 여자 모두 20대로 보였다.
그런데 소검에는 검강이, 커틀러스에는 유형화된 오러 가 담겨 있었다!
‘아니, 이거 진짜야!?’
재빨리 다시 확인했지만, 검강, 유형화된 오러 가 맞았다!
갑자기 초절정 무인과 오러 마스터가 같이 튀어나왔다!
‘어쩐지 계획대로 잘 된다 했다! 그렇지. 고장 난 하늘이 이렇게 쉽게 보내 줄 리가 없지!’
최대 출력 굉천수는 막혔고, 레이 실트의 강철봉이라도 검강과 유형화된 오러를 동시에 맞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시바, 어떻게 빠져나가지!?’
위기의 순간 천문석의 머리가 미친 듯이 돌아갔다.
이때 문사 차림의 남자가 소검을 거두고 포권을 취했다.
“이세기 대협. 적월 상단의 당종이라고 합니다. 오해로 여기까지 왔지만,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뭐야, 이녀석?’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오히려 숙이고 들어오는 당종.
“대화로 오해를 풀고. 서로 원하는 걸 주고받는 게 어떨까요?”
말을 마친 당종의 시선이 이동했다.
천문석의 손가락에 끼워진 돌 반지, 인장 반지.
그리고 돌 반지 아래 갑판을 향해서.
문득 시선을 내리자 갑판 위를 구르는 벽돌이 보였다.
강철봉에 맞아 모서리가 움푹 들어간 황금색 벽돌이!
당종은 황금색 벽돌을 가리키며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제가 급한 마음에 대협께 실수를 했습니다. 지금 보시는 ‘5관 금괴!’는 제 실수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이세기 대협께 드리겠습니다.”
“…….”
짧은 침묵 후, 천문석은 강철봉을 거두고 정중히 포권했다.
“이세기라고 합니다. 당종 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