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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76화 (67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76화>

천문석은 망루에서 한숨 돌리며 탑을 바라봤다.

갑자기 나타난 퐁퐁이가 척- 가슴지느러미로 경례하고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탑!

“갑자기 탑에는 왜 가는 거야?”

수많은 의문이 쏟아졌으나 퐁퐁이는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였다.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들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

“뭐, 알아서 돌아오겠지.”

느리게 날던 예전과 달리 로켓 비행하는 퐁퐁이는 걱정할 게 없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별다른 신호를 보내지 않은 것을 보니 하류를 내려가는 특급 헌터와 동료들에게도 문제가 없을 거다.

지금 문제는 자신이다!

망루 위 천문석은 슬쩍 고개를 내밀어 갤리선 방향을 살폈다.

출발 준비가 끝나면 갤리선 깃발을 거꾸로 걸기로 했다.

그러나 멀리 뒤엉킨 배 사이로 보이는 갤리선 돛대에는 여전히 깃발이 제대로 걸려 있었다.

‘빨리빨리 좀 움직여라.’

내심 한숨 쉰 천문석은 밧줄을 잡고 망루에서 뛰었다.

위이이잉-

밧줄을 잡은 천문석이 포물선을 그리며 앞뒤로 그네처럼 움찔 일 때 사방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이세기다!”

“위! 하늘을 봐라!”

“이세기가 밧줄에 매달려 있다!”

이세기를 놓친 사람들이 밀려 와 순식간에 돛대를 포위했다!

휘이이잉-

천문석은 포물선을 그리는 밧줄을 놓고 뛰어 단숨에 뒤엉킨 배 3척을 뛰어넘었다!

깜짝 놀란 얼굴, 기울어진 갑판, 부러진 돛대를 지나 목표로 한 활짝 펼쳐진 돛이 나타났다.

천문석은 돛에 강철봉을 박아 넣었다!

콰지지직-

돛을 찢으며 속도를 줄여 갑판에 떨어지는 동시에 사방에서 그물이 날아왔다.

촤아아악-

갑판에 떨어진 천문석은 바로 고양이처럼 데굴데굴 굴렀다.

“계속 던져!”

“멈추지 마라!”

“그물만 씌우면 잡을 수 있다!”

쾅, 쾅, 콰득-

해적들은 쉴 새 없이 작살을 내리찍었다.

몰이 사냥하듯 막다른 벽으로 몰아넣는 해적들!

그리고 천문석이 벽에 닿는 순간.

“지금이다!”

외침과 함께 활짝 펼쳐진 그물 십여 개가 동시에 날아왔다!

촤아아아악-

천문석은 벽을 박차고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왼손을 휙 휘저었다.

휘이잉-

거센 강풍에 그물이 엉키는 순간.

회전하는 강철봉을 뒤엉킨 그물 중심으로 찔렀다!

챠르르륵-

강철봉에 그물이 단단히 고정되는 동시에.

으아아아악-

천문석은 악을 쓰며 달렸다!

십여 명의 해적들을 끌고 갑판을 달려 단숨에 난간을 뛰어넘었다!

뒤엉킨 해적들과 충돌한 난간이 박살 나고 해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후두둑 떨어지는 순간.

천문석은 떨어지는 해적을 밟고 뛰어올라 손을 뻗었다!

탁-

손에 잡히는 늘어진 밧줄!

바로 반동을 줘서 멀리 뛰어내리는 천문석.

쿵-

천문석은 우뚝 솟은 선수 끝에 멈춰 서 주위를 돌아봤다.

갑판, 돛대, 난간, 밧줄!

어디를 봐도 자신에게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추격전이 길어지며 뒤를 쫓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 이제는 천명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자신을 쫓고 있다.

하누만 농악대, 초절정 고수 남궁휘, 용역 헌터와 선원까지 동료들 없이 혼자서 도망치는 상황.

그러나 오히려 압박감이 줄어들고 도망치기가 더 수월해졌다.

주위를 훑자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드문드문 나타나던 강자들이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다!

‘이 녀석들 뭔가 꾸미는구나?’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갤리선에서 출발 준비를 하는 동료들에게 시선이 돌아가지 않도록 커다란 난장판을 만드는 것!

천문석은 바로 내력을 실어 외쳤다.

[모두 힘을 내!]

[조금만 더 하면 잡을 수 있다!]

[카캬카카카카카-]

그리고 스노우볼을 굴려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듯 사람들을 끌고 달렸다.

낙오하지 않도록 완급을 조절해, 잡힐락 말락 아슬아슬!

조금만 노력하면 잡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면서!

이세계 쿠팡맨, 무림 던전 설산 비무, 몬스터 웨이브, 신동대문 폭동…….

수많은 난장판에서 구른 천문석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같은 공간에서 계속 뺑뺑이를 돌렸기에 낙오하는 사람은 적었고, 뒤를 쫓는 사람은 빠르게 늘어났다!

와아아아아-

함성이 파도치듯 울려 퍼지고!

쿠르르르릉-

발소리가 우레처럼 갑판을 뒤흔들었다!

어느새 수천 명의 사람이 천문석을 잡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해적을 인간 방패 삼아 포위망을 뚫는 순간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호가 보였다!

뻥 뚫린 선체 너머로 보이는 갤리선 돛대!

이 돛대에 거꾸로 뒤집힌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完]

천문석은 해적들의 머리와 어깨를 밟고 달려 홀로 우뚝 선 돛대 위로 올라갔다!

“이세기가 고립됐다!”

“모두 모여라!”

“독 안에 든 쥐다!”

……

밧줄과 돛이 모조리 끊겨 나갔고, 다른 곳으로 건너뛸 곳도 없는 고립된 돛대 위!

우와아아아아-

사방에서 달려오는 수천명의 함성과 발소리에 돛대가 부러질 듯 흔들렸다.

천문석은 사방에서 밀려 오는 인파를 바라보며 웃었다.

하하하하하-

스노우볼이 구르고 굴러 수천명의 인파라는 거대한 눈 뭉치가 됐다.

이제 이 거대한 눈 뭉치를 산산조각낼 차례다!

결정적 순간을 위해 아껴둔 광장 이후로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굉천수를 터트려!

천문석은 바로 내력을 끌어올렸다!

최대 출력 굉천수는 필요 없다.

준비를 끝낸 갤리선으로 빠져나갈 틈만 만들면 된다!

우르르르-

양손이 요동치는 순간 천문석은 주저하지 않고 굉천수를 터트렸다.

콰아아아아앙-

하늘이 내려앉는 듯한 거대한 굉음이 터지고.

미친 듯이 달려 오던 사람 중 반수 이상이 뒤엉켜 엉망진창이 됐다.

깜짝 놀란 천문석은 주위를 살폈다.

기대 이하의 결과!

하지만 당연했다. 섬광이 터지지 않고 굉음만 터졌으니까!

“……!”

내력은 제대로 움직였고.

굉천수의 폭발도 제대로 일어났다.

문제는 내부가 아닌 외부다.

굉천수의 섬광은 누군가 빨대로 쪽 빨아드린 것처럼 허공으로 사라졌다!

“섬광이 어디로 간 거야!?”

하늘을 훑을 때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

자신도 모르게 기감을 집중하는 순간 깨달았다.

대낮처럼 천지를 환하게 밝힌 이 빛은 자연적인 게 아니다.

허공에 있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뿜어내고 있었다!

‘그 존재가 굉천수의 빛을 삼켜 버렸다!’

반사적으로 지권인의 수인을 짚고 지혜의 빛을 밝혀 확인하려는 순간.

“……!”

천문석은 흠칫 놀라 멈췄다.

그리고 재빨리 주위를 확인했다.

사방에서 달려 오던 사람 반수 이상이 굉음에 뒤엉켜 쓰러진 상황!

시각은 살아 있지만, 굉음에 균형 감각을 잃고 무력화됐다.

어차피 목적은 튀는 것, 그냥 도망치면 된다.

천문석은 돛대를 잡고 거꾸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미끄러지는 힘과 내력을 모두 모아 강철봉을 내리찍었다.

콰아앙-

갑판이 뚫리는 동시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천문석!

“ㅁㅁㅁ!”

“ㅁㅁㅁㅁ ㅁㅁㅁ!”

들리지 않는 외침을 지른 선원과 해적들이 뒤엉킨 몸을 일으켜 다급히 구멍 안으로 뛰어내렸으나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리고 천문석은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달렸다.

모습을 드러내지도, 도발하듯 외치지도 않았다.

조용하고, 신속하게!

배에서 배로 선체를 뚫고 달렸다.

동료들이 출발 준비를 끝낸 갤리선을 향해서!

* * *

차아, 차아아-

허공도의 제사장이 물결이 밀려 오는 강가에 멈춰 서 있었다.

“…….”

한참을 말없이 강을 바라보던 제사장은 고개를 들어 소용돌이 가면으로 주위를 돌아봤다.

강 너머에는 들썩이는 적염성.

강 위에는 난장판이 된 수백척의 배.

등 뒤에는 거대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맹약의 대상은 적염성이다.

그러나 머리는 강 위 난장판으로 마음은 숲으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문득 시선을 내려 손을 보자 검게 타들어 간 나무 조각이 보였다.

이 나무 조각은 자신이 갇혔던 진법.

매 걸음 생사가 반전되는 기이한 진법을 구성했던 나무 기둥이었다!

화염 폭풍으로 주위를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어도 빠져나올 수 없었던 기이한 진법.

결국, 긴 시간 모아온 경계석을 대가를 치르고 나가대정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금을 그어 구분하는 경계석은 반대로 인연을 이을 수도 있었다.

인연을 잇기 위해서 긴 시간 모은 경계석의 반을 날렸다!

콰드드득-

자신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고 타들어 간 나무 기둥에서 바스러진 숯가루가 흩날렸다!

허공도의 제사장은 바스러진 나무 기둥을 봤다.

[데이몽 발도]

순간 몸을 돌려 숲을 노려봤다.

휘이이잉-

때마침 바람이 불어와 경사진 언덕에 펼쳐진 숲이 흔들렸다.

숲 중앙 검게 타들어 간 공터, 기이한 진법이 펼쳐진 공간이 보였다.

자신을 진법에 가둔 ‘데이몽 발도’는 분명히 이 숲에 있었다!

그러나 몇 번이나 뒤지고, 강으로 움직이는 걸 연기하며 기감으로 훑었는데도 전혀 걸리지 않는다.

마치 빛 속에서 사라지는 그림자처럼.

분명 존재한다는 것은 알지만 인지할 수가 없었다!

이 타들어 간 나무 기둥에 적힌 이름처럼.

[데이몽 발도]

허공도의 제사장은 나무 기둥에 적힌 이름을 입으로 발음했다.

“데이몽 발도.”

읽을 수 있고, 소리 내 말 할 수도, 귀로 들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름의 의미가 인지되지 않는다.

“…….”

당연한 일이었다.

허공도를 나와 오래국 적염성의 강 앞에 선 자신은, 칭지드 봉우리 정상의 작은 집에서 잠든 아마르의 꿈이니까.

순간 텅 빈 가슴으로 찬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짧은 만남과 긴 이별.

너무나 그리워하는 사람을 꿈속에서라도 보기 위해 아마르가 펼친 주술.

세계의 나무가 가지를 드리운, 조금이라도 인과가 닿은 모든 세계에 허공도라는 꿈을 띄웠다.

그 결과 허공도가 있는 모든 세계에 갈 수 있게 됐지만.

꿈은 꿈!

꿈이 현실이 되는 허공도를 벗어나면, 그의 이름을 보고, 부르고, 듣는다고 해도 알아챌 수 없었다.

그가 먼저 나를 보고 불러 주기 전에는 자신은 바로 앞에 있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이 모든 건 자신에겐 몽롱한 꿈속의 일일 뿐이니까.

허공도의 제사장은 다시 한 번 타다남은 나무 기둥에 적힌 이름을 불렀다.

“데이몽 발도…….”

지금 부르는 이름이 누구인지 자신은 알 수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간 샤.

스카라베 왕국의 여왕.

케페니안의 황금 다람쥐.

어쩌면 아마르가 그토록 찾고 있는 주정뱅이거나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도.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세계의 나무를 키워 낸 그분의 이름일지도 몰랐다.

문득 고개를 들어 나가대정의 빛으로 밝혀진 하늘을 보았다.

“…….”

허공도의 제사장은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진법에 갇혀, 인연을 잇기 위해 모으던 경계석을 날리고 분노했다.

하지만 이 또한 허공도의 힘으로 꿈을 꾸며 각오했던 일!

허공도의 제사장은 손에 쥔 타다만 나무 기둥을 강물에 던져 버리고 고개를 들었다.

굉음이 터지고 수천 명이 뒤엉킨 난장판이 만들어진 인공섬.

인간, 수인, 요마괴이 수많은 사람이 함성을 지르고 환호하는 적염성.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눈앞에 보였다.

“맹약을 이행한다!”

그리워하는 사람을 찾아서 오랜 시간 세계의 나무를 방황했던.

언젠가 이 땅에 그 사람이 찾아올 거라고 황무지에 거대한 도시를 세운 아이.

자신과 너무나 비슷했던 아이, 적염 성주 적예와 한 맹약을 지키기 위해서.

허공도의 제사장은 강물 위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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