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66화>
천문석은 옷을 덧입고, 머플러로 얼굴을 가리는 정도의 간단한 변장만 했다.
그러나 수많은 인파가 쏟아져 나와 난장판이 된 적염성에서는 이걸로 충분했다.
“이세기!”
“도대체 이세기는 어디에 있는 거야!?”
“누구 이세기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 없냐!?”
하늘에서 들려오는 외침을 따라 달린 사람이 대부분. 이세기의 모습을 가까이서 직접 본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래서 바로 옆에서 이세기 사칭범이 걷고 있는데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완벽하게 계획이 맞아떨어졌다! 카캬카-’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삼키며 태연하게 걸었다.
이대로 강으로 이동해서 빠져나가면 적염성은 안녕이다.
이때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을 하나 있었다.
이곳 적염성에서 이원을 만났다.
그 이야기는 이곳이 무림 던전과 같은 세계라는 뜻!
그리고 무림 던전에는 전생과 현생에 걸친 친구 그가 있었다.
지금 거리의 모든 사람이 외치는 이름!
이세기!
‘천검 이세기의 명성을 드높일 기회다!’
천문석은 태연하게 걸으며 목소리를 담은 내력을 던져 인파 곳곳에서 울려 퍼지게 했다.
[이세기! 내가 직접 봤다!]
“지금 누구냐!?”
“야, 자세히 좀 말해 봐!”
[이세기는 얼굴을 보는 순간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얼굴에 특징이 있구나!”
“모두 조용히 해라!”
순간 정적이 흐르고 거리의 사람들 모두가 목소리에 집중할 때 이야기가 이어졌다.
[으앗! 이 인간 뭐 이렇게 잘생겼어! 이 말이 저절로 나오면 그게 바로 이세기다!]
‘카캬카카카-!’
천문석이 내심 웃음을 삼키며 두근두근 반응을 기다렸다.
“그렇구나! 잘생긴 인간!”
“더럽게 잘생긴 인간이 이세기구나!”
“아니, 인간이 잘생겼는지를 어떻게 알아!?”
“어?”
뭔가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돌아오고.
이세기를 찾는 사람들의 외침에 수식어가 추가됐다.
“잘생긴! 이세기 나와라!
“더럽게 잘생긴 이세기 얼굴 좀 보자!”
“야, 이세기! 잘생긴 새끼 어디에 있냐!”
‘뭐야, 이 녀석들 뭐가 이렇게 진지해!? 당연히 구라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천문석이 멍하니 이런 모습을 바라볼 때.
툭-
다리를 건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
문득 고개를 내리니 허리에 닿을 듯 작은 수인족 아이가 보였다.
머리카락 사이에 하얀 귀가 쫑긋 솟은 꼬마 여우 아가씨가 발간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할 말 있어?”
부끄러운 듯하얀 꼬리로 얼굴을 가리고 속삭이듯 말한다.
“멋진 오빠. 얼굴 좀 보여 주세요. 헤에-.”
‘뭐지, 이 미친 듯한 귀여움은!?’
천문석은 홀린 듯이 머플러로 가린 얼굴을 드러냈다.
순간 반짝이는 눈으로 얼굴을 살핀 꼬마 여우 아가씨가 외쳤다.
“얘들아! 이 오빠는 아냐!”
꼬마 여우 아가씨는 빙글 몸을 돌려 다다닥- 달려갔다.
“……지금 뭐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할 때 보였다.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찬 도로!
꼬맹이들이 도로 곳곳에 흩어져 외치고 있었다.
“키 큰 형! 이거 흘리셨어요!”
“잘생긴 오빠! 이거 드릴게요!”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는 찰나의 순간.
번개같이 얼굴을 살피는 꼬맹이들!
“……!”
방금 일어난 일의 진실을 깨달았다!
천문석은 한달음에 꼬마 여우 아가씨를 쫓아가 외쳤다.
“야, 자세히 봐봐! 나 정도면 상위 1%야!”
꼬맹이들의 시선이 얼굴로 모이고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와아. 이 형 엄청 생겼어.”
“그러게 우와우와. 남자다워.
“오빠. 아주 정감 가는 외모예요.”
……
‘뭐지, 이 영혼 없는 대답은!?’
“힘을 내요. 오빠.”
그리고 꼬마 여우 아가씨가 손에 꼭 쥐여 준.
엿.
“…….”
세연과 특급 헌터가 지금 당장 보고 싶었다.
그래서 천문석은 도시 남쪽 강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잘생긴 이세기! 어디 있냐!?”
“더럽게 잘생긴 이세기 새끼야! 나와라!”
자신이 퍼트린 외침을 뒤로하고!
* * *
갑자기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지고.
방향을 인도하던 외침이 사라지는 순간.
이세기를 쫓던 강자들은 깨달았다.
‘당했다.’
조직이 그 머릿수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것은 조직력 때문이다.
이세기를 쫓느라 부하들은 도시 전체에 흩어진 상태였다.
이때 쏟아져나온 꼬맹이들과 일반인, 용병, 청년들과 부하들이 뒤섞여 버렸다.
거의 일만에 가까운 병력이 싸우고 있었지만, 이들을 모두 합쳐도 쏟아진 시민들에 비하면 한 줌이었다.
수천의 해적, 일천의 정예병, 12 가문의 무사들, 낭인 무사 모두 인파에 휩쓸려 버렸다.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조직력은 흩어지고, 조직력이 흩어지자 명령을 내려도 제대로 먹히지 않게 됐다.
결국, 제대로 이세기의 뒤를 쫓는 건 소수의 강자뿐이었다.
남방 공국의 오러 기사.
남방 마탑의 전투 마법사.
사략 선단 제독, 에리히 우론.
적월 상단의 당종과 직속 부하.
적염성 12가문, 탄과 태웅, 미호, 류호.
그리고 이들 강자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이대로는 이세기를 찾을 수 없다!’
조직력은 사라지고, 전투는 흐지부지됐다.
게다가 인장 반지를 가지고 달리던 이세기는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단체를 이끄는 머리!
이세기가 어떻게 움직일지 쉽게 예측했다.
도시 안에 숨어 있을 리는 없다.
혼란이 가라앉고 조직력을 회복하면, 결국 독 안에 갇힌 쥐가 될 테니까.
어떻게든 혼란이 가라앉기 전에 도시에서 탈출하려 할 거다!
북쪽은 영산이 막고 있고, 동서는 드문드문 마을이 있는 광활한 황무지가 이어진다.
그렇다면 지금 이세기가 적염성에서 빠져나갈 길은 하나뿐이었다.
남쪽, 강!
이세기의 도주로를 깨닫는 순간 수뇌부들은 바로 움직였다.
“이세기는 강으로 빠져나갈 거다! 단 한 척의 배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강을 막는다!”
적월 상단의 당종.
“선장들에게 명령해라! 호수에 접안한 갤리선으로 강을 봉쇄한다! 거치적거리는 건 모조리 치워 버려라!”
사략 선단 제독 에리히 우론.
“항구로 달려라! 이세기가 배를 타고 빠져나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
남방 공국의 기사들.
“빠져나갈 길은 강뿐이다! 이세기를 잡을 대마법을 준비한다!”
남방 마탑의 마법사들.
“미호! 아직 추적되는 거 맞냐?”
“네! 점점 약해지지만, 추적 주술은 여전히 효과가 있어요! 남쪽, 강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강은 적월 상단이 이미 봉쇄했을 거다! 수로로 달리자! 단숨에 치고 나가! 강에서 반지를 회수해야 한다!”
“엄마! 강으로 바로 와요! 모두 강으로 가고 있어요!”
12 가문의 무사들과 태웅, 미호, 탄.
“알았어! 바로 강으로 달려갈게!”
포대기를 단단히 감고 시가지를 달리는 류호.
이세기를 쫓는 강자들 모두가 강을 향해 모이고 있었다!
이때 강에선 서로 신경전을 벌이던 사략 선단의 갤리선과 적월 상단의 대형 범선은 예상대로 강을 봉쇄하고 있었다.
강에 띄워진 배는 보이는 대로 박살 났고, 항구와 수로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배들이 점점 늘어나 수백 척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발이 묶인 배 중에는 천문석의 동료들이 탄 배도 있었다.
* * *
도시 수로와 강이 연결되는 물길.
길게 늘어서 서로 부딪힐 듯 정박한 선박 중 한 척.
아카린은 갑판에 납작 엎드린 채로 말했다.
“야, 걔네들 아직도 있냐?”
최설은 길게 늘어선 배 너머를 살폈다.
순간 반대쪽 수로에 정박한 배에서 징 소리와 분노한 외침이 들려왔다.
지이이잉-
“아카린! 좋은 말할 때 나와라!”
“나와라!”“나와라!”“나와라!”
지이이이잉-
“지금 나오면! 위약금 2배로 봐준다!”
“봐준다!”“봐준다!”“봐준다!”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하누만 농악대 미친놈들!”
아카린이 분통을 터트리자, 최설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 그냥 저 술통 넘겨줘!”
“뭐! 안 돼! 저거 사막에 납품할 술. 양조장 만들 밑천! 천하 명주! 이세기 뱀술 칠전팔기란 말야! 어차피 남궁휘도 같이 있어서 술 넘기는 거로 안 끝나!”
‘와, 이 황당한 녀석!’
최설이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할 때.
이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도시를 바라봤다.
“도시의 난장판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은데…….”
“네. 외침도 변했네요…….’더럽게 잘생긴 이세기 새끼야 나와라?’.”
허준이 대답하자, 한호석 교수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배도 묶였는데, 지금이라도 찾으러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이원, 허준, 한호석 교수의 눈에 찬성의 빛이 떠오를 때.
최설은 이번에도 입이 열리지 않았다.
강으로 빠져나가 하류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수상 봉쇄로 틀어진 상황.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천문석을 찾으러 가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최설은 직감했다.
수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와 하나로 뒤엉킨 거대한 난장판이 된 도시.
바라만 봐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정신이 어찔해질 정도로 불길하다!
이 불길함은 최설에게 익숙했다.
‘이세기’가 만들었던 신동대문의 난장판과 너무나 비슷하다!
최설은 확신했다.
이 난장판은 이세기가 만들었다!
그렇다면 난장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개같이 구르게 될 확률이 99%다!
하지만 이걸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천문석=이세기. 그 녀석 재앙의 화신입니다. 알아서 찾아올 테니 그냥 여기서 기다리죠!’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니, 전부 도시에서 굴렀으니까 먹힐 것도 같은데……?’
최설이 고심할 때.
특급 헌터의 신나는 외침이 들려왔다.
“으앗! 이 상자 엄청 훌륭하잖아! 잘했어! 퐁퐁이! 역시 넌 특급 로켓 고래야!”
구으, 구으으응-
갑자기 강으로 날아가더니 작은 상자를 가지고 돌아온 어린 하늘 고래.
특급 헌터는 상자를 살피며 어린 하늘 고래를 연신 칭찬하고 있었다.
호수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시무룩했던 특급 헌터는 강이 봉쇄되고, 도시가 난장판이 됐는데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최설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넌 걱정 안 되니?”
최설이 묻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모이고, 특급 헌터는 번쩍 손을 들고 크게 외쳤다.
“당연히 걱정 안 하지! 봐봐! 사람들 이제 안 싸우잖아! 역시 알바는 엄청 대단해! 특특특급 알바야! 카카카카캌-.”
웃음을 터트리던 특급 헌터는 반짝이는 눈으로 외쳤다.
“알바 올 때까지 잠깐 퐁퐁이랑 도시 갔다 오면 안 될까? 닭싸움한 친구들한테 작별 인사도 못했는데. 퐁퐁이 엄청 빨라! 금방 다녀올게!”
구으으, 구으으응-
하늘 고래 퐁퐁이가 머리를 끄덕이는 순간.
재빨리 달려온 진교은이 특급 헌터를 꼭 안아 들고 엄격하게 외쳤다.
“안 돼! 위험해서 절대 안 돼!”
“안 위험하다니까! 내가 잘 설명할 수……!”
“안 돼!”
“퐁퐁이는 로켓 하늘 고래라 엄청 빨라! 아무한테도 안 잡……!”
“위험해!”
“하나도 안 위험하다니까! 퐁퐁이는 안전 비행……!”
“절대 안 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호히 외치는 진교은.
한국 사람 그 자체 특급 헌터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터트렸다.
“으아악! 말을 끝까지 들으란 말야!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이때 모두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선수에서 들려왔다!
“맞아!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
“……!”
깜짝 놀란 모두의 시선이 선수에 모이는 순간.
한 사람이 갑판 위로 뛰어올라와 손을 흔들었다.
“손님!”
“이세기!”
“너 왔구나!”
“야, 새끼야!”
“알바아아아!”
구으, 구으응-!
……
목소리는 달랐지만, 모두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같았다.
반가움!
이렇게 천문석은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벌써 한참 전에 강을 타고 적염성을 떠났어야 했을 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