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63화>
천문석은 다시 한 번 외쳤다.
[야, 해적들! 너희들 빨리 안 오면 나 항복한다?]
장난스러운 말투에 담긴 협박!
“설마?”
“너 지금……!?”
기사들과 중장 보병들이 상황을 깨닫는 순간.
으아아아아악-
해적들은 악을 쓰며 전력 질주했다.
“해적 놈들이!?”
“뭐 하는 거야! 우리 아군이다!”
“멈춰! 당장 멈춰! 미친놈들아!”
기사들과 중장 보병이 다급히 외쳤지만, 인장 반지에 눈이 돌아간 해적들은 멈추지 않았다!
수백 명의 해적은 돌진력에 체중을 실어 중장 보병 등 뒤로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으아악-
콰앙, 콰아앙-
“커억- 미친 해적 놈들!”
“밀어! 단숨에 밀고 들어가!”
“인장 반지는 우리가 찜했다!”
굉음과 비명이 터지고 순식간에 해적과 중장 보병이 뒤엉켜 쓰러지는 순간.
골목을 달리던 천문석은 뛰었다.
탁탁, 탁, 타타탁-
폭 2미터의 골목 좌우 벽을 박차고 건물 꼭대기를 향해서!
히이익-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구경하던 아줌마가 기겁해서 몸을 숨기고.
우와아아-
수인족 꼬맹이가 번쩍 손을 들고 환호성을 지르다가 몸을 돌려 뛰었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건물 옥상 난간에 올라섰다.
이 순간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
“이세기가 보인다!”
“남쪽 건물 옥상에 이세기다!”
“태웅님! 이세기가 나타났습니다!”
“사방에서 들이친다! 모두 달려라!”
“그물 가진 놈들 준비해!”
……
목소리를 담은 내력에 뺑뺑이를 돌던 추적자들이 이세기를 봤다.
그리고 생각하기도 전에 움직였다!
광장에서 격전을 펼치던 웅인족, 낭인, 해적, 기사 할 것 없이 모두가 자신을 향해 달려 오고 있다!
인장 반지에 홀려서!
휘이익-
천문석은 크게 휘파람을 불고 돌 반지를 낀 손을 흔들며 외쳤다.
[야, 모두 좀 더 힘을 내라! 인장 반지는 하나뿐이야!]
으아악-
악을 쓰는 소리와 함께 더욱 열심히 달리는 추적자들!
의욕을 불어넣은 천문석은 재빨리 주위를 확인했다.
“이세기! 이야기를……!”
건물 아래 골목에선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와 중갑 보병이 수백 명의 해적들과 뒤엉켜 싸우고 있다.
북동서 삼면은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
남쪽은 넓은 대로를 사이에 두고 상업 건물들이 이어진다.
사냥감을 노리는 피라냐 떼처럼 사방에서 추격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빠져나갈 길은 넓은 대로 너머 상업 건물뿐!
‘거리가 좀 멀지만, 뚫고 달린다!’
마음의 결정을 하고 달리려는 순간 옥상 문이 벌컥 열렸다.
“뭐가 이렇게 빨라!?”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허리에도 안 닿는 꼬맹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 형이 이세기야!”
벽을 탈 때 본 수인족 꼬맹이가 외치는 순간.
우와아아아아-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온 인간, 도깨비, 수인족, 요마괴이 꼬맹이들이 폭풍 같은 질문을 쏟아 냈다.
“아저씨! 그게 인장 반지예요!?”
“형! 광장에 태양 떨어졌다는데 맞아요!?”
“으앗! 저기 태웅 곰곰곰 아저씨가 달려와요!”
“곰곰곰 아저씨! 엄청 무서워요! 잡히면 막 하늘로 던져요!”
“형! 저 그 반지 한 번만 만져 봐도 돼요!?”
“그 인장 반지 먹으면 진짜 성주 되는 거예요?”
“성주 되면 맨날맨날 축제 열 수 있어요!?”
“우리도 형 잡으면 성주 되는 거예요!?”
……
‘뭐야, 이 꼬맹이들은?’
신난 얼굴로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 내는 꼬맹이들!
피식 웃은 천문석은 꼬맹이들과 마찬가지로 폭풍같이 대답했다.
“맞아. 이 돌 반지가 인장 반지야!”
“그렇지. 바로 내가 태양을 터트렸다!”
“곰곰곰? 뭐야 그 귀여운 별명은?”
“그래 이 인장 반지 얻으면 성주 된다.”
“새로운 성주님께 사후 허락받을 거야.”
“매일매일 축제 여는 거 가능!”
“야, 위험해서 안 돼!”
긴 대답이 끝나는 순간.
천문석은 주먹을 내밀었다.
“대신 ‘돌 반지’ 만지게는 해 줄게. 모두 주먹 내밀어라.”
“내가 1등!”
“난 2등!”
“3등!”
……
순식간에 긴 줄을 만든 꼬맹이들.
콩콩, 콩콩콩-
작은 손들과 돌 반지를 낀 손을 부딪칠 때 꼬맹이들의 다급한 외침이 쏟아졌다.
“앗! 사람들 사방에 있어!”
“으앗! 형 포위됐어요!”
“아저씨! 얼른 도망쳐요!”
“우리 때문에 잡히면 어떡해!?”
“빨리빨리! 도망치라니까요!”
……
천문석이 마지막 꼬맹이와 주먹을 부딪치는 순간.
수인족 꼬맹이가 기다란 대나무 장대를 들고 달려 오며 외쳤다.
“형! 이 장대로 도망쳐요! 내가 엄마 몰래 지붕 넘을 때 쓰는 거예요!”
“고맙다!”
콩-
대나무 장대를 건네받는 순간 터지는 탄식!
“으아아! 늦었어!”
“으악! 저기 갑옷 입은 아저씨들 기어 올라와요!”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옥상 난간을 잡고 몸을 끌어올리고 있다!
휘이이익-
천문석은 휘파람을 불어 시선을 모으고 외쳤다.
“모두 잘 봐라! 이제부터 나 이세기가! 남쪽 대로를 뛰어넘는다!”
“……!”
“……!”
20미터가 훌쩍 넘는 대로를 뛰어넘는다는 말에 깜짝 놀란 시선이 모이고.
우와아아아아아-
꼬맹이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헉, 허억- 잠시…….”
“이세기…… 잠시만!”
기사들이 숨을 몰아쉬며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관중들에게 외치고 달렸다!
“출발한다!”
타다다다닥-
전력으로 난간을 달려 옥상 가장자리에 대나무 장대를 박아 넣는다!
콰드드드득-
부러질 듯 휘어진 장대가 단숨에 펴지는 순간.
파아아아앙-
그 탄성으로 화살처럼 대로를 넘어 맞은편 건물로 넘어가는 천문석!
“어, 어어어!?”
“하늘! 하늘을 날고 있다!”
“미친 새끼!”
“대로를 뛰어넘었다!”
다급히 지붕을 달려온 낭인과 웅인족 골목에서 뒤엉켜 있던 해적과 기사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야, 빨리빨리! 쫓아와야지! 카캬카카카카카-]
천문석은 약 올리듯 외치고 옥상 꼬맹이들에게 손을 크게 흔들었다.
“대나무 장대 고맙다!”
그리고 몸을 돌려 사라지는 순간 외침을 들은 꼬맹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짧은 만남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형!
성주!
난장판!
인장 반지!
하나같이 너무나 두근거리는 단어 들!
게다가 대나무 장대를 들고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고 인장 반지와 주먹을 맞대기도 했다!
심장이 터질 듯 빨리 뛰고, 얼굴에 어린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엄청나게 재밌는 일이 일어날 거라는 감이 왔다!
“형이 위험해서 안 된다고 했지?”
한 꼬맹이가 말하는 순간.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하지만 인장 반지 얻으면 성주 된다고도 했어!”
“맞아! 그리고 축제! 매일매일 축제 열 수 있다고도 했어!”
번뜩이는 눈으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그리고 따라오면 안 된다고도 안 했고!”
“……!”
“……!”
“……!”
충격으로 커진 눈으로 서로를 보다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꼬맹이들은 단숨에 난간을 달려 빗물관을 잡고 주르륵- 미끄러졌다!
“엇! 뭐야 이 꼬맹이들은!?”
“뭐 하는 거야! 얼른 집에 들어가!”
“앗! 너희 어디 가는 거야?”
창밖으로 몸을 내민 어른들과 친구들이 외치는 순간.
빗물관을 타고 미끄러지는 꼬맹이들은 잇달아 대답했다.
“저 형 잡으면 성주! 그러니까 이 도시 대빵 되는 거야!”
“뭐!? 그게 진짜야!?”
“그렇다니까! 직접 들었어!”
“매일 매일 축제도 열 수 있데!”
“인장 반지도 만져 봤어!”
“우리 모두 잡으러 가는 중이야!”
“너도 빨리 나와!”
순간 번개같이 창문틀을 밟고 뛰어 빗물관을 잡고 미끄러지는 꼬맹이들!
“엄마! 나 성주 돼서 돌아올게!”
“끼요옷-! 내가 성주 된다!”
단숨에 지상에 내려선 꼬맹이들은 번개같이 달렸다.
“멈춰!”
“야, 위험해! 돌아와!”
“이 생각 없는 녀석이 어딜 가!”
그 뒤를 사색이 된 엄마, 아빠가 쫓았다.
광장에서 일어난 전투는 남의 일이다.
그러나 이웃집, 동네 꼬맹이가 위험한 도로를 달리는 건 자기 일이었다.
당연히 구경만 하던 사람들도 재빨리 도로로 뛰어나가 꼬맹이들을 쫓아 달렸다.
“야! 거기서!”
“떡집 꼬맹이! 어딜 가는 거야!”
그리고 여기에 전투에 끼어 한몫 잡을 기회를 노리고 있던 낭인, 용병들이 끼어들었다.
“인장 반지라고!?”
“이세기를 잡으면 인장 반지를 먹는다는 말이지!?”
“하, 드디어 제대로 된 기회가 왔구나!”
“모두 달려라! 인장 반지를 얻어 한몫 챙긴다!”
적염성은 수십만의 인간, 수인족, 도깨비, 요마괴이가 함께 살아가는 거대한 도시였다.
수천의 전사들이라고 해도, 적염성에 사는 수십만 사람들에 비하면 한 줌에 불과했다.
그 수십만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7, 17, 31, 73, 127, 277명……!
강으로 지류가 합쳐지듯 사방에서 쏟아진 사람들이 하나로 모여들었다.
해적과 마법사.
낭인과 웅인족 무사.
정예병과 12 가문의 무인.
조금 전까지 무기를 겨누고 싸우던 수천 명 뒤로, 적염성의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다.
이 거대한 흐름을 만든 개개인은 생각했다.
술래를 잡아 인장 반지를 얻는 순간.
적염 성주의 정통성이라는 명분을 손에 넣는다!
뒤를 받칠 힘이 있다면 적염성을 통째로 먹고, 힘이 모자란다면 힘을 빌리면 된다.
아니면, 대가를 받고 인장 반지라는 명분을 넘겨도 된다.
인생에 다시 오기 힘든 기회가 왔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지만 원하는 것은 같았다!
‘이세기가 가진 인장 반지!’
그러나 집단이 커지면 그 움직임은 산만해지는 법.
원래대로라면 이 거대한 흐름은 사방으로 흩어져 사그라들어야 했다.
그러나 모두가 움직일 방향을 알려 주는 것 같은 웃음소리와 외침이 이 거대한 흐름에 방향성을 만들었다.
[카캬카카카카카- 여기다! 술래 여기 있다! 열심히 달려라!]
난장판을 만들겠다는 천문석의 계획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수많은 인파가 달리는 거대한 흐름은 비탈에서 구르는 수레바퀴처럼 방향성을 가지고 적염성의 시가지에서 원을 그리고 있었다.
단지, 그 규모와 범위가 예상을 벗어났다.
수천 명 단위가 아닌 수만 명 단위의 사람들이 달리고 있었다!
천문석이 계획한 비바람과 돌풍이 몰아치는 적당한 난장판이 아닌, 나무를 뿌리째 뽑아 던지고 집중호우를 뿌리는 거대한 폭풍이 생겨나고 있었다!
인장 반지에 홀린 모두는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력을 다해 달렸다!
적염성!
이 거대한 도시의 주인이 되는 것에는 위험을 감수할 충분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몇몇 사람은 이 폭풍이 끝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이 폭풍 뒤로 불의 재앙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허공도의 제사장에게 줄 대가가 사라졌다고!?”
경악한 탄이 외치는 순간.
태웅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하늘을 가리켰다.
“걱정할 거 없다! 이세기가 가진 인장 반지가 경계석 반지다.”
경계석 반지!
갑자기 나타난 인장 반지가 경계석 반지라고!?
탄은 류호와 태웅이 미친 듯이 달린 이유를 깨달았다.
허공도의 제사장에게 대가를 건네지 못하면, 앞서 달리는 미호가 외치는 대로 적염성이 불바다가 된다!
경계석 목걸이가 사라진 이상 남은 희망은 갑자기 튀어나온 인장 반지, 경계석 반지뿐이다!
탄은 자신을 뒤따라 달리는 12 가문의 무인들에게 명령했다.
“이세기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흩어져서 광역 포위망을 펼친다! 혹시 나타나면 싸우지 말고 신호탄부터 쏴라!”
이때 류호는 미호에게 추적술이 걸린 곡옥을 건네고 있었다.
“미호! 이 곡옥이 널 인도할 거다! 절대 놓치면 안 된다! 끝까지 따라붙어야 한다!”
“헉- 엄마! 뭐 하려고!?”
미호가 숨을 몰아쉬며 묻는 순간 류호는 손을 들어 주위를 죽 훑었다.
류호의 손끝에 사방에서 들려오는 이세기의 외침과 정신없이 달리는 수많은 사람이 걸렸다.
“이대로는 꼬리를 못 잡아! 경쟁자도 너무 많고! 혹시 엉뚱한 사람 손에 반지가 들어가면 끝장이야! 사람이 더 필요해! 이것도 받아!”
류호는 품에서 꺼낸 곡옥 몇 개를 건네고 바로 설명했다.
“녹색은 전성(傳聲) 주술이, 붉은 곡옥에는 불꽃 신호가 담겼어! 전성 주술이 먹통이 되면 불꽃 신호를 보내면 된다! 그럼 그 신호를 보고 쫓아갈게!”
류호는 바로 지붕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외쳤다.
“탄! 태웅! 장원에서 가문의 주술사를 데려오겠다!”
그리고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휩싸여 날 듯이 여우 일족의 장원으로 달렸다.
경계석 반지가 사라지는 순간 수많은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적염성이 잿더미가 된다!
지금은 가문의 모든 저력을 끌어내야 할 때!
적예님이 세우신 이 적염성을 지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
“그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