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60화>
쿠르, 쿠르르릉-
하늘에서 우렛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오두막에서 누워 세계의 나무를 꿈꾸던 대사형은 번쩍 눈을 떴다.
“……!”
번개같이 일어나 절벽 아래 적염성과 서쪽 허공도 방향을 살폈다.
적염성의 하늘에선 우렛소리가 울려 퍼지고, 서쪽 허공도 방향 숲에는 자욱한 안개가 깔리고 있다!
또 다른 인과가 이어지려 한다!
“시작됐구나! 사제! 바로 복면과 가면을 꺼내라!”
“네. 사형!”
무사인 카이류는 재빨리 지게에 놓인 궤짝에 손을 넣어 복면과 가면을 꺼냈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복면을 쓰고 그 위에 나무 가면까지 쓰는 대사형과 무사인 카이류.
꼼꼼히 얼굴을 확인하는 데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막내 사제, 데이몽 발도!
“데이몽 이 뺀질이 녀석! 야, 막내! 어디야!? 얼른 튀어나와서 복면 써! 걸리면 아작난다니까! 하, 이 새끼 또 어디에 짱 박힌거야! 야! 데이몽 발도!”
“…….”
무사인은 사형의 말이 끝나길 기다려 대답했다.
“……사형. 데이몽 사제는 저기 기절해 있습니다.”
“응?”
문득 고개를 돌리니 오두막 구석에 가죽을 덮고 잠든 막내 사제, 데이몽 발도가 보였다.
“어, 얘 왜 이래!? 야, 야! 정신 차려! 제사장 유인해야지!”
재빨리 달려가 흔들었으나 데이몽 발도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야? 우리 막내 사제를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
대사형이 절규하는 순간.
무사인 카이류는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하아- 아까 사형께서 사제 뒤로 숨는 순간 쓰러지지 않았습니까?”
“뭐, 내가……!?”
순간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생사팔문진 설치를 감독하며 개파조사님을 몰래 엿볼 때.
개파조사께서 공간을 넘어 날린 딱밤!
반사적으로 막내 사제 뒤로 피했고, 막내 사제가 인간 방패가 되어 자신 대신 그 딱밤을 맞았다!
‘대사형! 갑자기…… 커억-!’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픽- 쓰러진 데이몽 발도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뭐야, 딱밤 맞았다고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야!?’
처음 딱밤이 아 올 때 느꼈던 위기감은 진짜였다!
자신이 공들여 가르친 막내 사제, 미래의 검성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니!
“휴- 다행이네!”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
슬쩍 무사인 사제의 눈치를 살피니.
언제나 신뢰로 굳건하던 무사인의 눈에 어린 의혹이 보였다!
“사형, 설마…… 막내를 방패……?”
버럭 소리쳐 의혹을 끊었다.
“사제 바로 준비해라! 막내 사제가 없으니 제사장을 끌고 달릴 미끼 역할은 내가 하겠다!”
“제사장이요? 미끼라면……?”
“우리가 생사팔문진에 가둘 상대가 제사장이다!”
서쪽 숲을 가리키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제사장은 서쪽 숲에서 나타날 거다!”
“내가 제사장을 생사팔문진으로 유인하는 동안.”
“사제는 제사장이 다른 곳으로 새지 못하게 견제해야 한다!”
“그 제사장 아주아주아주! 위험한 놈이다!”
“그렇게 위험하면 제가 미끼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각자 잘하는 걸 해야지. 도망치는 건 내가. 견제하는 건 사제가. 사제 바로 출발하자!”
“사형! 검 가져가셔야죠!”
“앗! 그렇지! 어, 내 검이 어디 갔더라!?”
무사인은 모닥불에 부지깽이처럼 꽂혀 있는 검을 뽑아 말없이 대사형에게 건넸다.
“…….”
“흠, 흠- 아, 이게 왜 저기 꽂혀 있냐? 하하하-.”
겸연쩍게 웃으며 검을 검집에 꽂으려는 순간 검신이 눈에 띄었다.
일곱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검신!
아차!
막내 사제에게 검신에 피어난 녹을 제거하라고 맡겼더니, 폭풍 숫돌 질로 구멍을 뚫어 놨었다.
지금 자신이 유인할 사람은 허공도의 제사장.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구멍 난 검으로 싸우다가 아차 하면?
“하, 시바- 이거 아무래도 부러질 거 같은데?”
사실 부러진 검이라도 싸우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부러진 검을 보실 스승님이다.
입문검에 녹이 슬고 구멍이 뚫린 것까지는 칠성검, 칠공검이란 말로 얼렁뚱땅 넘어갔다.
그러나 입문검이 아예 부러지면 스승님이 극대노 할 것 같았다.
“……이거 어떡하지?”
갈등할 때 무사인 카이류가 선뜻 검을 뽑아 내밀었다.
“사형. 제 검을 빌려 드릴까요?”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자, 혼절한 데이몽 발도 옆에 세워진 검집이 보였다!
소리 없이 움직여 검집에서 검을 뽑는 순간.
완벽하게 관리된 데이몽 발도의 입문검이 보였다!
“사형!”
“어허. 빌리는 거야! 빌리는 거!”
무사인 카이류가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데이몽 발도의 흠하나 없는 입문검과 칠공검이 자리를 바꿨다!
“됐다! 이제 가자!”
그리고 서쪽 숲으로 달리는 대사형!
무사인 카이류는 대사형을 따라 달리며 마음으로 사과했다.
‘미안하네. 사제…….’
이때 앞서 달리는 대사형의 외침이 들려왔다.
“사제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유인할 제사장은 주술력만 아니라 체술에도 달인이다! 특히 엄청난 힘으로 펼치는 지법에 걸리는 순간 빠져나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가능한 한 멀리서 견제만 하고 혹시 붙게 되면 간격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네, 사형! 그런데 제사장이란 걸 알아볼 특징이 있습니까? 혹시 엉뚱한 사람이면…….”
“아니 몰라볼 수가 없어. 사제라면 보는 순간 바로 감이 올 거다. ‘와, 이 녀석 더럽게 위험한 녀석이구나!’하고!”
“…….”
“얼른 해치워 버리고! 다시 축제가 열릴 저 도시에 크게 한탕 하러 가자!”
카카카카카-
대사형은 웃음과 함께 절벽 아래 거대한 강 너머로 펼쳐진 도시를 가리켰다.
‘축제라고?’
무사인 카이류는 문득 고개 돌려 도시를 바라봤다.
이렇게 멀리 있어도 너무나 분명히 느껴진다.
의지와 의지가 충돌해 하늘로 솟구치고!
당장이라도 폭발할듯한 우렛소리가 울려 퍼진다!
쿠르르, 쿠르르르릉-
지금 저 도시에선 수천 명이 충돌하는 격전이 펼쳐지기 직전이고.
하늘조차 그 의지에 호응하는 엄청난 강자가 내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런데 다시 축제가 열린다고?’
당장이라도 피가 강처럼 흐르고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격전이 터질 것만 같은데!?
순간 자신도 모르게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속에선 투지와 내력이 폭발할 듯 끓어올랐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모든 것을 쏟아 내고 싶었다.
가슴이 터지도록, 단 한 점의 내력조차 남지 않을 때까지 검을 겨루고 싶었다!
하늘마저 호응하는 엄청난 강자와!
“아직 이다. 사제.”
앞서 달리는 대사형의 담담한 목소리.
흠칫 놀라 앞을 보는 순간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 엄청난 강자는 싸우려고 내력을 끌어모으는 게 아냐.”
“네?”
“설명하려면 복잡하고. 지금 사제가 알아야 할 건 하나야. 지금 저기 적염성에 내려가면 상상을 초월한 개고생! 난장판에서 구르게 된다는 것!”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는 대사형.
“사제가 생각하는 피 끓는 싸움, 초절정 고수 간의 생사결. 그런 건 1도 없어. 저기는 지금 마굴이야 마굴!”
“…….”
“초대박이 터질 것 같은 희망에 개같이 구르지만, 정신을 차리는 순간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무한 난장판!”
대사형은 언제나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사인 카이류는 바로 고개 숙이고 가슴속 끓어오르는 투지를 누그러트렸다.
다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믿지 못했을 거다.
그러나 지금 자신에게 말하는 이는 대사형이다.
자신에게 검과 무공, 일기일원문이라는 삶을 주신 분!
‘어찌 그런 대사형의 의심할 수 있을까!’
무사인 카이류는 검을 잡은 채 마음을 벼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숲 속 갈림길이 나타났다.
“그럼 여기서 갈라지지! 명심하게 사제! 제사장이 생사팔문진으로 가는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설령 내가 위험해 보여도 사제는 절대 몸을 드러내면 안 되네!”
“알겠습니다. 사형.”
대사형과 무사인 카이류, 일기일원문의 두 사형제는 숲 속 갈림길 양쪽으로 달려갔다.
이때 일기일원문의 막내 사제, 혼절했던 데이몽 발도가 번쩍 눈을 떴다.
* * *
“……!”
데이몽 발도는 눈을 뜨자마자 혼절하기 직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급히 자신의 뒤로 피하며 외치던 대사형!
‘앗! 미안하다. 사제!’
그 순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머리를 때리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극통이 쏟아졌다!
그때 대사형의 외침과 표정이 생생히 기억났다.
‘자신을 인간 방패로 사용했다!’
지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에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으아악! 개시바! 대사형!”
자신도 모르게 분통을 터트리던 데이몽은 흠칫 놀랐다.
대사형의 충실한 부하 둘째 사형을 깜빡했다!
“……!”
재빨리 머리를 가리고 주위를 살피는 순간 데이몽은 깨달았다.
‘아무도 없다!’
이때 얼핏 보이는 게 있었다.
절벽 아래 펼쳐진 도시와 그 앞을 흐르는 넓은 강!
이 넓은 강에 돛대가 몇 개나 솟은 배 수십 척이 흩어져 있었다!
‘범선!’
데이몽은 범선을 보는 순간 바로 알아봤다!
말로만 듣던 원대륙과 타대륙을 잇는 원양 무역선이다!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고, 가슴속에서 환희가 끓어올랐다!
저 무역선을 타면 그동안 꿈만 꾸던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대사형의 마수가 미치지 않는 타대륙으로 튀어 대상인의 꿈을 이룰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밑천이 될 돈!
데이몽 발도는 바로 대사형의 짐꾸러미를 뒤졌다!
호박엿, 육포, 도토리, 참숯, 주사위, 구슬, 부싯돌, 인형…….
대사형의 꾸러미에서는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만 쏟아져 나왔다.
“대사형이라면 분명 노름 밑천을 가져 왔을 텐데!?”
이때 둘째 사형이 지고 온 지게에 실린 궤짝이 보였다!
대사형이 경계를 넘어가 따온 물건이 끝도 없이 들어가는 궤짝!
데이몽은 재빨리 궤짝을 열었다.
텅 빈 궤짝 안으로 손을 넣어 휘저으며 간절히 외쳤다!
“제발제발제발! 대박대박대박!”
툭-
묵직한 감촉이 느껴지는 순간 바로 손을 낚아챘다.
두 손에 담기는 묵직한 주머니!
재빨리 주머니를 푸는 순간 재질을 알 수 없는 금속 조각상이 튀어나왔다.
불꽃의 원 속에서 네 개의 팔을 뻗어 춤을 추는 조각상.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호흡이 가빠졌다.
못 박힌듯한 시선을 간신히 움직이자 양각된 이름이 보였다.
무도왕(舞蹈王).
조각상의 이름을 보는 순간 미래의 대상인의 감이 속삭였다.
‘이건 비싸게 팔린다!’
“됐어! 이거면 타대륙에서 대박을 칠 밑천으로 충분하다! 하하하-.”
데이몽 발도는 무도왕 조각상을 주머니에 넣고 달리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
데이몽 발도의 시선이 손에 쥔 주머니와 지게에 실린 궤짝을 오갔다.
비싸 보이는 금속 조각상 하나.
온갖 물건이 끝도 없이 들어가는 궤짝.
궤짝에서 물건을 꺼내는 방법을 정확히 모르는 게 문제인데…….
‘어차피 타대륙으로 튀는 마당이다!’
데이몽 발도는 궤짝이 실린 지게를 짊어지고 이동 경로를 머릿속에 그렸다.
언덕 아래 강가의 나루터에서 도시로 이동하고, 도시에서 강에 가득한 원양 무역선 중 하나를 타고 타대륙으로 튄다!
아무리 대사형이라도 타대륙까지 쫓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대사형! 이제 영원히 안녕입니다! 둘째 사형! 제가 초대박을 쳐서 돌아오겠습니다!”
크하하하하하-
데이몽 발도는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날 듯이 숲 속을 달렸다.
쿠르, 쿠르르릉-
대사형이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한 우렛소리가 울려 퍼지는 적염성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