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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57화 (65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57화>

“……거기에 계시지!!”

‘뭐야, 이 녀석 왜 이래?’

옷깃을 잡은 손과 목소리에 담긴 절박함!

천문석은 의아해 하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성주님 지금쯤 갑문 통과해서 수로로 빠져나가고 있을걸?”

“으아아- 안 돼!”

부르르 전신을 떨며 절규하다가 픽- 고개를 떨구고 주저앉는 미호!

“야, 미호 정신 차려! 너 갑자기 왜 이래?! 야, 야!”

미호의 어깨를 흔드는 순간 느껴졌다.

갑자기 공기가 희박해지는 듯한 느낌!

재빨리 고개를 드는 순간.

전각의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인형이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부러진 장죽을 들고 등 뒤로 바람이 머무는 아홉 개의 꼬리가 펼쳐졌다!

분명 봤던 얼굴이지만 처음 만난 것처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사람.

요괴선 류호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천문석에게는 시선조차 두지 않은 채.

고개를 떨구고 주저앉은 미호를 향해서!

* * *

“비켜라.”

류호의 베일 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오는 순간.

등 뒤에서 날아오는 절박한 목소리!

“비키면 안 돼! 절대 안 돼!

‘……!?’

주저앉았던 미호는 자신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순간 스파크가 튀듯 류호와 미호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재구성됐다.

-류호의 부러진 장죽!

-미호의 어기적거리던 발걸음!

-눈물 콧물로 엉망인 미호!

-극도로 분노한 류호!

순식간에 결론이 났다.

미호가 엄마인 류호에게 장죽이 부러질 때까지 엉덩이를 맞았다!

천문석이 결론을 내는 순간.

류호의 손에 들린 부러진 장죽이 공간을 넘어 움직였다!

파아앙-

순간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가는 손.

관음천수장!

휘이이-

봄바람에 수만 개의 꽃잎이 흩날리듯 관음천수장이 어지럽게 펼쳐졌다.

짚고. 누르고. 때리고. 당긴다!

파바바바밧-

관음천수장과 장죽이 허공에서 얽히는 순간.

부드러운 봄바람과 날카로운 칼바람이 충돌했다.

콰아아아-

충돌한 바람은 광풍이 되어 몰아치고.

류호의 전신에서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요력(妖力)이 끓어 올랐다!

말 한마디 꺼낼 틈도 없이 손과 장죽, 내력과 요력, 기세와 기세가 충돌했다!

‘아니, 갑자기 왜 싸우게 된 거야?!’

반사적으로 관음천수장을 펼친 천문석은 황당했다.

당장 광장까지 길을 뚫고 모루의 뒤통수를 때려 모조리 난장판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요력과 주술력, 힘과 기술을 모두 갖춘 류호와 제대로 붙었다!

류호의 근접전 실력은 절정급!

이대로라면 50초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이기면 류호의 힘으로 난장판을 만들려는 자신의 계획이 엉망이 돼버린다!

아니, 그전에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귀한 자원이 사라지고 있다.

시간!

모루를 깨트리기 전.

해적 놈들이 옆구리를 찌르거나, 마법사들이 광역 마법을 뿌리면 끝장이다!

대세가 기울고 난장판을 만들면 인명 피해가 크게 생길 거다!

천문석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때 외침과 함께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인형!

“류호! 멈춰라!”

까아아아앙-

날카로운 칼바람을 강철 갑옷으로 뚫은 태웅이 류호를 끌어안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기회다!’

탓, 탓-

천문석이 재빨리 뛰어 거리를 벌리는 순간 옷깃을 당기는 손길!

“당장 도망쳐야 해! 엄마 지금 장난 아니게 빡쳤어!”

“무슨 말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폭음이 터지고 류호를 붙잡은 태웅이 조약돌처럼 튕겨 나갔다.

파아앙-

바닥을 구른 태웅은 그대로 땅을 박차고 달렸다.

천문석과 미호를 향해서!

그리고 두 팔을 활짝 펼쳐 두 사람 앞을 가렸다.

“류호 멈춰! 이 분 성주님을 대리해서 오셨다!”

“멍청한 녀석! 속았구나!”

류호가 광풍이 되어 몰아치려는 순간.

태웅은 내력을 실어 외쳤다.

“이 분 인장 반지를 가져오셨다! 오래전 네가 성주님께 증표를 받은 것처럼! ‘경계석 반지’를!”

“……경계석 반지? 지금 무슨 말을……!”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류호는 일순간에 굳어 버렸다.

이 모습을 본 천문석의 촉이 움직였다!

경계석 반지! 태웅이 그 이름을 외치는 순간 류호가 굳어 버렸다!

자신이 가진 건 경계석 반지가 아닌, 혼약 선물!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닌, 상대가 믿는 거니까!

천문석은 바로 앞으로 나서 손을 내밀었다.

“이 반지가 성주님이 내리신 신뢰의 증표다!”

금은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반지였다면 의심했을 거다.

그러나 인간의 손에 놓여 있는 건, 손가락이 들어갈 구멍이 뚫린 평범한 돌이었다.

오래전 적예님에게 받은 경계석 목걸이처럼!

순간 류호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바라봤다.

‘어떻게 이럴 수가!’

허공도의 제사장을 불렀는데 대가로 지급할 경계석 목걸이가 사라졌다!

그것도 미호, 딸의 실수로!

분노한 허공도의 제사장은 지금 반기를 든 적월 상단은 문제거리도 아닌 대재앙이다!

적월 상단의 후계자 당종은 이 적염성을 손아귀에 넣는 게 목적이지만, 분노한 허공도의 제사장은 이 거대한 도시를 통째로 불태울 힘과 의지, 이유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적염성 전체가 불바다가 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수백 년 전 적예님이 만드신 수많은 사람의 터전 적염성이 자신의 딸, 여우 일족의 잘못으로 사라지게 된 거다!

가슴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미호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리며 혼냈어도 그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런데 새로운 성주님이 보낸 ‘인장 반지’가 나타났다!

허공도의 제사장에게 대가로 건넬 수 있는 ‘경계석’ 반지가!

“……!”

이 순간 요괴선 류호, 수백 년을 살아온 여우 일족의 가주는 거대한 인과를 느꼈다.

오래전 떠나가신 적예님.

갑자기 나타나 탑을 울린 어린 성주님.

경계석 반지를 들고 눈앞에 서 있는 인간.

그리고 자신과 미호, 태웅, 적염성의 모두.

거대한 인과, 운명이 느껴졌다!

류호는 깊게 허리 숙이며 외쳤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어떤 명령이든 내려 주십시오!”

* * *

‘먹혔구나!’

내심 환호하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표정을 관리하고 머리를 굴렸다.

특급 헌터가 준 선물, 돌 반지를 ‘경계석’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자신이 얻은 경계석에 관한 정보는 많지 않다.

꼬리가 길면 밟히듯.

대화가 길어지면 어디서 걸릴지 모른다.

게다가 지금까지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했다!

“류호 나와 같이 달린다! 태웅 넌 웅인족 무사들과 함께 천천히 움직여라! 광장으로 내려가는 진입로가 뚫리면 돌진해야 한다!”

천문석은 명령을 내리는 즉시 성벽을 향해 달렸다.

류호와 태웅은 명령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

단단히 틀어막힌 광장까지 이어지는 진입로를 뚫고, 탄을 붙잡고 있는 낭인 무사들의 뒤를 찌르겠다는 뜻!

태웅이 다급히 외쳤다.

“류호. 우리 계획은? 그가 오는 걸 기다려야 하지 않나?!”

태웅의 외침에 류호는 바로 고개 저었다.

허공도의 제사장은 전세를 역전시킬 비장의 패였다.

그러나 맹약의 대가로 건네줄 경계석 목걸이가 사라진 지금, 허공도의 제사장은 오히려 모든 걸 불태울 대재앙이 됐다!

경계석 반지가 나타나 희망이 생겼지만, 저 반지는 자신의 물건이 아닌 새로운 성주님이 저 인간에게 내리신 신뢰의 증표다!

제사장이 도착하기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 짓고, 제사장을 돌려보내는 게 최선이다!

“지시대로 움직인다! 태웅 천천히 뒤를 따라 움직여라!”

류호의 시선이 엉거주춤 서 있는 미호에게 닿았다.

“미호! 지금 여기서 네 실수를 스스로 만회해라! 내 옆에 서서 싸워라!”

냉엄하게 외친 류호는 바로 몸을 돌려 성벽으로 달렸고 미호는 굳은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

허공도의 제사장에게 맹약의 대가로 건네줄, 경계석 목걸이를 잃었다.

허공도의 제사장은 애원과 설득, 협상이 먹히는 상대가 아니다.

오래국의 강대한 영주들, 수백 년을 살아가는 대요마조차 감히 어찌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허공도의 제사장이다!

‘경계석 반지가 스스로 나타나지 않았다면?’

결과는 하나뿐이다.

수백 년을 이어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적염성의 파멸!

“……!”

상상만으로도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렇기에 미호는 실수를 만회하라는 엄마의 말에 오히려 감사했다.

그리고 경계석 반지를 가지고 나타난 알바가 너무나 고마웠다.

미호는 알바의 뒤를 따라 달리며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외쳤다.

‘고마워! 경계석 반지 가져와 줘서 정말 고마워!’

이때 성벽 위에 멈춰 선 천문석이 외쳤다.

“바로 움직인다! 내가 선두에서 길 뚫을게! 둘은 내 뒤를 따라 달리며 지시대로 움직이면 된다!”

“잠시만 드릴 말씀이…….”

류호가 입을 여는 순간.

천문석은 바로 성벽에서 뛰어내려 돌진했다!

‘대화를 나누면 무슨 허점이 드러날지 모른다!’

류호와 미호가 그 뒤로 따라붙을 때.

천문석은 한발 앞서 외쳤다.

“바로 길 뚫을게! 내가 뒤로 던져 주는 녀석들 제압해서 길 막지 않게 뒤로 빼내면 된다!”

천문석은 단숨에 성문 앞 공간을 지나 단단히 방어를 굳힌 좁은 진입로로 뛰어들었다!

“잠시만! 잠시만요! 반드시 알아 두셔야 할 게 있어요! 그 경계석…….”

류호가 다시 한번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나중에! 우선 광장까지 길 뚫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적을 향해 돌진했다!

뾰족한 나무가 줄줄이 솟은 간이 방벽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그 뒤로 두꺼운 방패로 몸을 가린 낭인 무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타다다다닥-

천문석은 단숨에 가속했다!

그리고 땅을 밟고 돌진, 간이 방벽을 밟고 높게 뛰어올랐다!

“거창!”

순간 명령이 떨어지고!

“거창!”

“거창!!”

“거창!!”

……

끝없이 이어지는 복창과 함께 좁은 진입로를 따라 수백 자루의 강철창이 줄줄이 솟아났다!

오른쪽은 거대한 암반으로 막혔고, 왼쪽은 깎아지른 낭떠러지.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피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

이 좁은 길에 몰려든 낭인 무사 수백 명 또한 피할 곳이 없었다!

공중에 뜬 천문석은 레이 실트의 강철봉을 빙글빙글 돌렸다.

파스스스-

텅 빈 강철봉 속에서 모래가 흐르고 무게가 급격히 올라갔다.

수백 자루의 강철창을 부러트리고, 단단히 방어를 굳힌 수백 명의 낭인 무사들을 단숨에 밀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콰아아아-

거대한 바위가 떨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천문석은 뚝 떨어져 내렸다.

날카로운 창날의 숲을 향해서!

깡, 깡, 까아앙-

강철이 부러지고 깨지는 소리와 함께 전투가 시작됐다!

그리고 팔,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진 낭인 무사들이 하늘을 날아 떨어졌다.

강아지가 모래밭을 파헤치는 것처럼 줄줄이 뒤로!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류호는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길이 열리는 순간 태웅과 웅인족 전사들이 폭포수처럼 몰아칠 수 있도록!

이 낭인 무사들을 제압해서 길을 막지 못하게 치우는 것!

“미호! 내가 제압한 낭인들을 성문 앞 가장자리로 날라라!”

외침과 동시에 널브러진 낭인 무사들을 부러진 장죽으로 내려쳤다.

딱, 따악-

장죽에 닿는 순간 스며드는 주술력이 낭인 무사들의 기혈을 뒤집어 놨다!

미호는 제압된 낭인 무사들을 몇 명씩 끌고 번개같이 움직였다.

단단히 방어를 굳힌 진입로의 적들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류호는 정신없이 적을 제압하며 생각했다.

허공도의 제사장이 도착할 때까지 반기를 든 적들을 모두 해결하지 못하고 도움을 받는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경계석 반지를 맹약의 대가로 제사장에게 넘기는 것!

그러나 지금 앞에서 길을 뚫고 있는 성주님의 대리인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게 분명하다.

길을 뚫는 즉시 이 사실을 전해야 한다!

류호의 짐작대로였다.

‘허공도의 제사장에게 맹약의 대가로 경계석 반지를 넘겨야 한다.’

천문석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특급 헌터에게 받은 혼약 선물, 구멍 뚫린 돌을 ‘경계석’ 반지로 오해하게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천문석의 계획대로 적염성의 전장은 점점 난장판이 되어 갔다.

그리고 계획과는 달리 경계석 반지라는 스노우볼이 구르고 나비의 날갯짓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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