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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49화 (65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49화>

성주를 지키겠다는 결의에 가득 찬 류호와 태웅.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충성스러운 모습이다.

그 성주가 자신 뒤에 있는 특급 헌터만 아니었다면!

그렇다고 장민 대표 아들, 장철 헌터 조카 특급 헌터를 여기에 두고 갈 수도 없었다.

‘하, 시바! 이거 싸워야 하나?’

생각과 동시에 두 사람을 훑으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여우 일족의 가주, 류호는 주술사.

곰 일족의 가주, 태웅은 탱커 형 전사.

피지컬은 태웅이 압도적이나, 류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머리와 가슴, 이성과 감성 모두가 경고한다.

초인경에 달한 주술사가 분명하다고!

태웅이 발목을 잡는 사이 류호가 주술력을 펼치면, 얼마나 오래 싸워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게다가 이 둘은 적이 아니다.

이 둘이 적이라면 오히려 상대하기 편했을 거다.

그러나 이 둘은 특급 헌터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진교은은 전투에는 도움이 안 되고, 특급 헌터를 전투에 끌어들일 수도 없다.

충성은 상호 적인 것.

아직 어린 특급 헌터가 딜레마에 빠지게 할 수는 없었다.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류호의 주장대로 하늘 고래를 불러서 대피하는 거다.

그러나 지금 호수에서는 동료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숨어 있었다.

여기서 류호의 주장대로 하늘 고래를 부르면, 동료 모두와 함께 적염성을 떠나는 건 불가능하다!

‘하- 상황 더럽게 꼬였네!’

힐끗 류호와 태웅을 살피니 앞을 막은채 기다리고만 있다.

다행히 특급 헌터를 힘으로 데려가려는 생각은 없어 보였다.

논리와 명분으로 설득하며 생겨날 기회를 노린다!

‘특급 헌터의 안전과 자유의지를 내세워 둘을 흔들면…….’

재빨리 머릿속으로 대응 논리와 명분을 세우고 입을 열려는 순간.

특급 헌터가 한발 먼저 외쳤다.

“퐁퐁이가 그러는데! 이제 어른들 못 부른다는데!?”

“어!?”

“네!?”

천문석과 류호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

특급 헌터는 손을 번쩍 들고 설명하려 했다.

“퐁퐁이가 하늘을…….”

이때 엄청난 함성이 아득한 지상에서 들려왔다!

우와아아아아-

성주 장원이 있는 언덕 앞!

도로, 인도, 건물 사이, 수로!

사방에서 쏟아지듯 몰려나온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뭉치고 있다!

순식간에 진형을 갖춘 수천 병력에서 솟아오르는 깃발들!

류호와 태웅의 얼굴이 환해졌다.

호랑이 일족의 깃발!

그리고 12 가문과 유력 단체의 깃발이 세워졌다!

호랑이 일족의 가주 탄이 모아온 병력이다!

이때 수천의 병사 위에서 생겨나는 이글거리는 화염구!

수십 개의 화염구가 일제히 날아오는 순간.

호수에서 솟구친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충돌했다.

콰앙, 콰앙, 콰아앙-

사방에서 수증기 폭발이 일어나고, 엄청난 증기가 전장 전체에 쏟아졌다.

이 증기 속에서 터져 나오는 격렬한 함성!

우와아아아-

살기와 투지가 충돌하고 격전이 시작됐다!

“탄이 왔다! 지금 앞뒤에서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다!”

“여기 성주님이 있다는 걸 알려야 해!”

태웅이 탑 가장자리로 달리고, 류호가 주술력을 모을 때.

천문석은 깨달았다.

지금 나타난 병력은 이 두 사람의 동료다!

적보다 더 껄끄러운 아군이 적의 뒤를 쳤다!

저 아군이 성벽을 공격하는 적을 물리치면, 성주가 된 특급 헌터를 데리고 적염성을 떠나는 게 불가능하다!

태웅은 탑 가장자리로 달리고 류호는 동료에게 신호하려 주술력을 모으는 상황!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향해 외쳤다.

“특급 헌터! 돌머리 돌진!

“돌머리 돌진!”

이야압-!

특급 헌터가 머리를 앞세워 돌진하는 순간 흠칫 놀라 물러서는 류호.

이 순간 천문석은 진교은을 낚아채고 땅을 짓밟았다!

쿵-

순간 내력을 터트려 미끄러지듯 가속한다!

파아아아-

단숨에 특급 헌터를 지나치며 낚아채고 탑 가장자리로 가속한다!

쿵, 쿵, 쿵-

“성주님!”

“성주님!”

다급한 외침이 터지고, 류호와 태웅이 뒤를 쫓았다!

그러나 내력을 폭발시킨 천문석은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며 진교은과 특급 헌터와 몸을 연결했다.

“바로 로프 타고 내려갈게! 하네스 고정했으니까! 내려갈 때 놀라지 마!”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진교은과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특급 헌터!

탑 가장자리에 도착하는 순간.

천문석은 뽑아 든 강철 고리를 화강암 바닥에 세우고 강철봉을 내리쳤다.

꽈아앙-

강철 고리는 단숨에 화강암에 파고들어 고정됐다!

바로 로프를 걸어 매듭짓고 완강기를 연결하고 뛰기 직전.

류호, 태웅과 눈이 마주쳤다.

“성주……!”

“잠시만……!”

“모두 안녕! 가끔 놀러 올게!”

특급 헌터의 작별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천문석은 탑 아래로 몸을 던졌다!

“안 돼!”

다급히 몸을 던진 류호가 탑 아래를 살폈다.

그러나 전장에서 솟구친 수증기에 이미 탑 전체가 삼켜진 상태!

그으으으윽-

짙은 수증기 속에서 밧줄을 타고 미끄러지는 소리만 들려왔다!

“성주님!”

뒤늦게 도착한 태웅이 밧줄을 잡고 따라 내려가려 했다!

“멈춰! 끊어진다!”

류호는 재빨리 손을 뻗어 태웅을 막았다!

어엇!

깜짝 놀란 태웅이 손을 놓는 순간.

류호는 탑 정상 출입구로 달리며 외쳤다.

“태웅 따라와라! 탑 안에서는 주술력이 먹힌다! 지상에 먼저 도착할 수 있다!”

류호는 바로 탑 정상 출입구를 열고 그 안으로 몸을 던지며 곡옥을 던졌다.

파아앙-

폭발하는 바람에 휩싸인 류호와 태웅은 탑 1층 출입구를 향해 추락하듯 떨어져 내렸다.

* * *

그으으으으윽-

천문석은 완강기를 잡고 자욱한 수증기 속 로프를 미끄러졌다.

동료 모두를 구했고, 헌터용 로프의 인장강도도 충분하다.

게다가 연이어 터지는 수증기 폭발로 장원과 탑의 시야가 가려진 상황!

은폐, 엄폐할 필요도 없다.

이대로 탑을 내려가 장원을 가로질러 배로 돌아가면 된다!

이때 완강기를 잡은 손에 느껴지는 팽팽한 감각.

탑을 오르며 중간중간 설치한 캠에 가까워졌다.

크르르르륵-

천문석은 안전 군화로 벽을 긁으며 감속!

몸이 멈춘 순간 능숙하게 완강기를 풀어 캠 너머 로프에 걸었다!

그으으으으으윽-

다시 한 번 미끄러지며, 동료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진교은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자신을 붙잡았고.

특급 헌터와 하늘 고래는 무서워하기는커녕.

우와아아아-

구으으으으-

신나게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천문석은 고개를 들어 위를 확인했다.

자욱한 수증기로 가려진 탑 정상.

류호와 태웅 두 사람이 쫓아오는 기척은 없다.

당연했다.

태웅 그 거대한 덩치가 로프에 매달리면 특급 헌터, 성주님도 위험해지니까.

빈틈이 보이는 순간 급조한 계획이 완벽하게 먹혔다!

카캬카카카-

뿌듯함에 웃음을 터트릴 때.

깜짝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앗! 알바! 아래! 아래 봐! 사람 있어!”

“어!?”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리는 순간.

“야, 멈춰! 정지! 여기 사람 있어!”

탑 아래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고, 증기 속에서 낯익은 모습이 나타났다!

커다란 보따리를 등에 짊어지고 로프에 매달린 사람.

탑에 올라갈 때 데리고 올라간, 류호라는 주술사가 미호라고 부른 소녀다!

언젠가부터 탑 위에서 보이지 않던 미호가 손에 천을 감고 로프를 잡고 내려가고 있었다!

순간 천문석과 미호의 눈이 마주치고, 미호의 눈에 놀람과 당혹, 경악이 서렸다.

“충돌해! 속도 줄여! 으아, 으아악!”

비명을 지른 미호는 다급히 로프를 잡고 미끄러지려 했지만, 급히 움직이는 순간 손에 감은 천이 날아가고 맨손으로 로프를 잡았다!

“움직이지 마! 맨손으로 미끄러지면 손 작살난다!”

깜짝 놀란 미호가 얼어붙는 순간.

크르르르륵-

천문석은 안전 군화로 벽을 긁어 감속, 미호에 닿기 직전 멈추고 재빨리 움직였다.

완강기를 떼어 내 팔 힘만으로 미호를 지나쳐 다시 완강기를 설치했다.

“…….”

미호가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볼 때.

연속해서 들려오는 목소리.

“야, 그렇게 손에 천 감고 로프 잡으면 손 작살나! 진교은. 뒤에 포켓에 안전 장갑 있어!”

“네, 네! 찾았어요!”

“앞에 특급 헌터 건네줘!”

“나한테 맡겨! 독고다이 누나 손!”

미호가 자신도 모르게 내민 손에 순식간에 씌워지는 단단한 장갑!

“하네스도 주고 싶은데 여분이 없다. 헌터용 안전 장갑이라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거야. 그럼 탈출 잘하고 잘 살아라!”

“누나 안녕, 나중에 또 봐!”

“조심해서 내려가요!”

구으으, 구으으으응-

미호가 멍하니 장갑을 보고 있을 때.

작별 인사가 끝나고 모두는 다시 내려가려 했다.

“……!”

이 순간 미호의 눈에 밟히는 물건이 있었다.

하늘 고래의 가슴지느러미에 걸린 주머니, 자신이 걸어 준 경계석 목걸이가 담긴 주머니!

이대로 보내면 대대로 이어진 여우 일족의 보물 경계석 목걸이가 영영 사라진다!

“잠깐만!”

다급한 외침에 바로 돌아오는 대답.

“뭔데? 급해. 빨리 말해.”

“…….”

그러나 미호는 뭐라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경계석 목걸이는 정당한 거래의 대가로 건넸다.

이제 와 무슨 이유로 경계석 목걸이를 돌려 달라고 말한단 말인가?

“…….”

미호의 침묵이 길어지고.

천문석이 입을 열려는 순간.

특급 헌터가 한발 앞서 외쳤다.

“누나 빨리빨리 말해! 우리 지금 도망치는 중이란 말야! 빨리빨리 배 타고 도망쳐야 해!”

도망친다고?

누구에게서?

“어!?”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탑 위로 움직이는 순간 불쑥 대답이 떠올랐다!

류호, 태웅!

그리고 눈앞의 꼬마 성주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순간 미호의 눈이 반짝였다.

자신과 성주의 목적은 적염성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같다!

그렇다면 경계석 목걸이를 되찾을 방법이 있다!

“제가 도움을 드릴게요!”

“우리는 알바 있어서 도움 필요 없어! 그럼 안녕! 알바 출발…….”

특급 헌터가 고개를 휙휙 젓고 출발 신호를 하는 순간.

미호는 다급히 말을 쏟아 냈다.

“탑 아래! 류호가 기다릴 거예요!”

“요괴선 류호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에요!”

“제 도움이 없다면, 지상에 내려가도! 이 장원, 호수, 적염성에서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해요!”

……

이때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요력이 자욱한 수증기를 뚫고 솟구쳤다!

전율에 흐르는 순간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류호는 예상대로 초인경에 달한 주술사였다!

“요괴선 류호?”

천문석이 지상을 가리키며 말하는 순간.

미호와 특급 헌터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앗! 진짜잖아! 알았어! 도와줘! 도와주면 엄청 좋은 돌 줄게!”

특급 헌터가 주머니를 뒤질 때.

미호는 하늘 고래의 가슴지느러미에 걸린 주머니를 가리켰다.

“아뇨! 쪼개진 경계석 목걸이! 제가 하늘 고래한테 준 저 목걸이를 돌려주세요!”

“뭐! 퐁퐁이 물건을 내가 어떻게 줘! 퐁퐁이 거는 퐁퐁이 거란 말야!”

특급 헌터가 깜짝 놀라 외쳤다.

척-

순간 주머니가 걸린 가슴지느러미를 내미는 퐁퐁이!

“앗! 퐁퐁이! 이거 나 준다고!?”

퐁, 퐁, 퐁-

어린 하늘 고래는 고개를 끄덕였고.

특급 헌터는 감격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신 내가 엄청엄청 좋은 돌 줄게! 그거 목에 걸면 퐁퐁이 3배로 반짝일 거야!”

특급 헌터는 가슴지느러미에서 벗긴 주머니를 미호의 손에 놓았다.

“어……?”

미호는 순간적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대가로 경계석 목걸이를 받겠다고 말했지만, 그걸 받아들일지도, 받아들여도 이렇게 쉽게 건네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 의심 없이 선뜻 건네준 경계석 목걸이를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을 울렸다.

“…….”

이때 특급 헌터는 천문석을 가리키며 다급하게 외쳤다.

“빨리빨리! 빠져나갈 방법. 빨리빨리 알바한테 말해 줘!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움직여야 한단 말야!”

“그래. 빨리빨리 말해라. 성격 급한 꼬맹이 숨넘어가겠다.”

천문석이 피식 웃으며 말하는 순간.

“방법은 간단해요.”

미호는 경계석 목걸이가 담긴 주머니를 목에 걸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요괴선 류호는 제 친엄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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