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41화>
“……의뢰비 주고 가야지!”
아카린은 깜짝 놀라 외쳤다.
“뭐야!? 남궁 가주랑 붙었다며!? 어떻게 벌써 온 거야!?”
“새끼야! 혹시나 해서 와봤다!”
징을 든 하누만이 버럭 소리치더니, 성벽을 따라 달리며 연신 외쳤다.
“너 어디 가는 거야!”
“의뢰비! 대가! 주기로 한 술 주고 가야지.”
챵, 챵, 챠아아앙-
“야, 모두 빨리 성벽으로 달려! 붉은 털! 아카린이 먹튀하고 있다!”
하누만이 연신 징을 때리며 외치는 순간.
아카린은 고삐를 천문석에게 넘기고 벌떡 일어나 마주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먹튀라니!”
“먹튀 아니면! 당장 주기로 한 술 내놔!”
“의뢰 끝나려면 멀었는데, 무슨 술이야! 당연히 끝나고 주는 거지!”
“의뢰가 안 끝났다고?”
고개를 갸웃한 하누만이 마차에 탄 천문석을 가리켰다.
“걔, 네가 찾으라던 친구 아냐?”
“내 친구 찾았다고, 의뢰가 끝나는 건 아니지! 계약서 잊었냐!”
아카린은 품에서 종이를 꺼내 펼친 후 읽었다.
“의뢰는 아카린과 친구, 친구의 동료들이 무사히 적염성을 떠났을 때 끝난다!”
“어, 어어어!? 계약서!? 아니 어떤 미친놈이 그런 계약서를 썼어!?”
징을 잡은 하누만이 충격으로 굳어 있을 때.
고삐를 잡은 천문석은 황당함으로 굳어 버렸다.
아카린이 품에서 꺼낸 종이는 하누만 농악대와의 계약서가 아니다!
방금 자신에게 보여 준 호랑이 일족에게 술을 납품한 ‘인수증’이다!
지금 아카린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사기를 치고 있었다.
“야, 어쩌려고 그래? 쟤들 실력 장난 아냐. 무공으로 치면 절정 급! 거의 초절정 급이야!”
천문석이 한껏 낮춘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크크크크크크큭-
아카린은 웃음을 터트렸다.
“쟤들 요력만 세지 허당이다. 제사장 가지고 사기 치는 거야.”
“……제사장?”
“어, 힘세고 귀찮은 잔소리꾼 있는데. 제사장은 걱정할 거 없어.”
아카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충격으로 굳어 있는 하누만을 가리켰다.
“제사장 부르면, 하누만 농악대 쟤들부터 아작난다. 재들 금(禁) 밟았거든!”
크하하하하하하-
아카린은 미친 듯이 웃다가 돌연 성벽을 향해 외쳤다.
“야, 네 동료가 수결한 여기 계약서 보이지! 사기 칠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무사히 빠져나갈 때까지 최선을 다해라!”
“…….”
말문이 막힌 하누만이 멍하니 마차를 바라볼 때.
파아아앙-
거센 열풍과 함께 성벽 위에 남궁휘와 하누만 농악대가 나타났다!
“이세기!”
남궁휘가 다급히 외치며 성벽을 달리는 순간.
아카린은 벼락같이 소리쳤다.
“너희 제대로 일 안 하지!”
깜짝 놀란 하누만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야, 막아! 모두 남궁 가주 붙잡아!”
“어, 대장. 벌써 돈 받았는데!?”
“맞아. 남궁 가주가 이거 줬어!”
“난장판 돼서 결혼식도 파투난 거 같은데 놀러 가자!”
찰랑-
하누만이 묵직한 엽전 꾸러미를 흔드는 순간.
아카린은 종이를 흔들며 버럭 외쳤다.
“이중 계약! 허공도 제사장, 아니지! 칭지드 제사장한테 계약 위반으로 송장 낸다!”
계약 위반!?
칭지드 제사장!
하누만 농악대 전원이 하얗게 질릴 때.
농악대 대장은 외침과 동시에 징을 때렸다.
“믿음과 정직! 하누만 농악대는 계약을 따른다!”
차아아아앙-
순간 농악대 전원이 성벽을 달리는 남궁휘에게 달려들었다.
남궁휘가 반사적으로 백보신권을 날리자, 재빨리 징으로 막는 하누만!
콰아앙-
징이 움푹 패는 순간 하누만이 성벽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내 허리! 내 허리 나갔어! 의원 불러!”
이 모습을 본 순간 남궁휘는 하누만들의 목적을 깨달았다.
‘시간을 끌고 있다!’
남궁휘는 뒤따라 달리는 하누만을 무시한 채 마차를 쫓아 성벽을 달리며 외쳤다.
“이세기!”
“잠시만, 잠시만 멈춰라!”
“싸우려는 게 아니다! 이세기!”
……
고삐를 잡은 천문석은 성벽 위를 바라봤다.
다급히 자신을 부르며 달리는 남궁휘.
그 뒤에서 발목을 잡으러 전력 질주하는 하누만 농악대.
아카린의 잔머리가 제대로 먹혔다!
“잘했다! 아카린!”
천문석은 연신 고삐를 내리치며 외쳤다.
히이이이잉-
말 울음소리와 함께 마차는 점점 가속했다.
남궁휘는 초절정 무인, 말도 아닌 마차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끝없이 달려드는 하누만 농악대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
“이야압! 잡았다!”
“모두 팔다리에 매달려!”
하누만 농악대는 징과 꽹과리, 북으로 몸을 가리고 돌진해, 남궁휘의 전신에 매달렸다!
“이세기! 이세기!”
하누만에게 파묻힌 남궁휘가 처절히 외칠 때.
아카린은 크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수고했다! 난 먼저 간다!”
“야, 대금! 술 어디로 받으러 가면 돼!?”
농악대 대장이 다급히 외치는 순간.
아카린은 웃음을 터트리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크킄크크킄- 허공도 정상 광장! 거기 깃발 나부끼는 집 알지!?”
순간 남궁휘의 전신에 매달린 하누만들은 경악했다.
“설마……!”
“붉은 털 너 설마!”
“야, 지금 너 그 말…….”
……
다급히 외치는 순간 아카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의뢰비. 대금. 술! ‘그 집’ 마당에 놓아둘게! 알아서 가져가라!”
하누만 농악대 전원은 얼어붙었다.
허공도 정상 광장, 깃발이 나부끼는 집.
모든 하누만이 이 ‘집’을 알았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이 집은 뭔 일만 터지면, 하누만을 무섭게 쥐어박는.
허공도 제사장의 집이었으니까!
특히 하누만 농악대는 허공도 제사장에게 완전히 찍힌 상황!
제사장의 집으로 대금, 술을 찾으러 갔다간, 술이 문제가 아니라 백 년 동안 정과 망치를 들고 계단을 깎아야 할 거다!
“미친놈아! 왜 하필 거기다가 술을 놔! 아무도 못 찾…….”
분통을 터트리던 하누만 농악대, 실패를 모르는 자해공갈단은 벼락 치듯 깨달았다.
‘당했다!’
제사장의 집에 대금, 술을 놓으면, 그 어떤 하누만도 찾으러 갈 수 없다.
아니, 진짜 술을 놨는지 안 놨는지 확인조차 불가능했다!
이 모든 걸 종합하면 결론은 하나다.
‘붉은 털의 하누만, 아카린이 먹튀를 했구나!’
“야, 이 미친!”
“아카린 미친놈아!”
“멈춰! 당장 마차 세워!”
“잡아! 뛰어 쫓아가!”
……
하누만 농악대는 남궁휘를 잡은 손을 놓고 성벽을 달리며 외쳤다.
그러나 마차는 이미 건물 사이로 사라졌고, 두 사람의 웃음소리만 멀리서 울려 퍼졌다.
카캬카카카카카-
크킄크크크크킄-
이 순간 성벽 위에선 절절한 외침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아카린!”
“이세기!”
“이세기 새끼야!”
먹튀를 당한 하누만 농악대.
이세기를 놓친 초절정 고수 남궁휘.
그리고 간신히 내원 심처를 뚫고 거지꼴이 되어 성벽에 오른 용역 헌터 40인.
이들의 피 끓는 외침이 하늘을 울렸다.
* * *
“세기 새끼야……!”
수십 명이 동시에 지르는 외침이 들려올 때.
마차 고삐를 잡은 천문석은 최설을 봤다.
“한호석 교수님. 남문 골목 맞지?”
“맞아. 이 길 쭉 따라 내려가면 돼.”
아카린이 손을 내밀었다.
“고삐 줘. 이곳 지리는 내가 빠삭하다.”
천문석이 바로 고삐를 넘기고 마부석에서 일어날 때 다급한 외침이 터졌다.
“이세기? 정말로 이름이 이세기입니까!?”
허준의 은인, 장주가 다급한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네 제가 이세기입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한 번 외치는 장주.
“얼굴 좀! 얼굴 좀 보여 주세요!”
의아했지만, 허준의 은인.
얼굴을 못 보여 줄 이유는 없다.
천문석은 얼굴을 가린 머플러를 풀었다.
“…….”
천문석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장주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해 갔다.
의혹, 의문, 황당, 경악, 환희……!
‘환희?’
“이세기! 손님! 손님 맞으시죠!”
“손님이요?”
뜬금없는 호칭에 반문하는 순간.
벼락 치듯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무림 던전의 난장판을 같이 헤쳐나온 청년, 그 청년의 얼굴이 장주와 겹쳤다!
나이가 완전히 다르지만, 쌍둥이처럼 똑같은 얼굴!
“장가장의 젊은 무사!?”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장주의 얼굴 전체가 환희로 빛났다.
“네! 접니다! 젊은 무사, 이원!”
젊은 무사, 이원!
무림 던전에서 만난 이원을 여기서 만난다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젊은 무사!? 이원!? 장가장의 이원이라고!”
“네 제가 맞습니다!”
이원은 재빨리 품에서 부러진 검을 꺼냈다.
“이거 기억하시죠!?”
극음도와의 결전이 끝나고, 떠나가는 이원에게 자신이 건네준 검신이다!
“극음도!?”
“네, 맞습니다! 그때 저에게 주신 그 단검입니다!”
순간 이원 뒤에 서 있는 대 공자라는 청년이 눈에 밟혔다.
“그럼 여기 대 공자는!?”
“제 아들입니다! 제 아들도 손님께 받은 비급을 익혔습니다!”
순간 천문석의 눈에 이채가 스치고, 대 공자가 움찔했다.
이때 이원의 품에서 나오는 두 권의 비급!
천문석은 한눈에 알아봤다.
무림 던전에서 자신이 만들어 준 비급이다.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다니!”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어, 그런데 비급이 왜 두 권이야? 그거 흑사회주 준 비급 아냐?”
“흑사회주요?”
대 공자, 이원의 아들이 반문하는 순간.
이원은 재빨리 끼어들어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여 신호했다.
척하면 척!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 그렇지! 흑사회주는 다른 비급이지……?”
바로 말을 받는 이원.
“그렇죠, 흑사회주 준건 그거! 그, 그, 그…….”
대 공자의 얼굴에 의혹이 서리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외쳤다.
“마종권!”
“앗! 맞습니다! 마종권! 흑사회주에게 주신 비급은 마종권입니다! 이 비급은 도시 최고의 부잣집 금지옥엽 여량위에게 준 비급입니다!.
“맞아. 여량위! 그렇지! 이건 금지옥엽 여량위한테 준 비급이었어!”
천문석은 연신 맞장구치며, 눈빛으로 물었다.
‘금지옥엽 여량위? 갑자기 무슨 말이야!?’
순간 이원은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헤헤헤- 부잣집 금지옥엽 여량위. 지금은 제 집사람입니다.”
“……뭐!? 여량위가 네 부인이라고!”
천문석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량위와 처음 만난 순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초호화 도박선 객실!
장포를 걸치고 호피 좌대에 비스듬히 누워, 탁, 탁- 장죽을 털며 나른하게 말하던!
흑사회주, 여량위!
여량위는 나긋나긋한 목소리, 부드러운 손을 뻗어 수많은 흑도 부하들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도시 전체의 도박장에 초호화 도박선까지 운영했던 여량위!
그 여량위가 이제 이원의 부인이라고!?
이원 뒤에 선 대 공자란 청년의 얼굴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젋은 이원과 젊은 여량위의 얼굴이!
“그럼 이 청년!”
“제 장남입니다.”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도 많은 일을 겪어 벌써 가물가물하지만, 무림 던전에서 이원과 여량위를 만난 건 1년도 안 된 일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만난 이원은 여량위와 결혼해 장성한 자식까지 두고 있다!
지구에선 1년도 안 되는 시간이 지났는데 던전 속에서는 이십 년이 흘렀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이성과 논리, 지식을 뛰어넘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게 있었다.
무한한 공간에 끝없이 가지를 뻗은 거대한 빛의 나무.
예전 신동대문 지하터널에서 본 거대한 빛의 나무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빛의 나무는 줄기 하나가 끊겨 있었다.
이때 누군가 휙 선을 긋는 것처럼 끊겨나간 굵은 줄기가 이어진다.
생기있는 빛이 하나로 이어진 줄기를 흐르고.
줄기에서 뻗어 나간 가지에서 생생한 잎이 자라난다.
그리고 마침내 꽃이 피어나는 순간.
태양에 가려진 별들, 천기가 그려내는 하늘의 인과가 손에 잡힐 듯이 느껴졌다!
쿵-
심장이 크게 뛰고 이성이 아닌 직관으로 느꼈다.
일기일원공.
가장 느린 걸음으로 대지와 하늘을 잇는 무공이 속삭인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미래에서 다시 과거로.
삼생을 이어 끝없이 이어질 인과.
그 인과의 시작이 될 약속을 지킬 때가 왔다.
두 권의 비급으로 약속한 두 가지 무공.
일기공과 일원공을 전할 때가 왔다.
지금 눈앞에 있는 두 사람.
이원과 그의 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