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37화>
쿠르르르르릉-
갑자기 전해 온 진동에 탑이 무너질 듯 요동쳤다.
곰 일족의 가주, 태웅은 계단 위에 쪼그려 앉아 벽에 바짝 달라붙었다.
한참 후 진동이 멈추는 순간 태웅의 등 뒤에서 씩씩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모두 기다려! 내가 괜찮은지 확인할게!”
광주리 뚜껑을 살짝 열고, 예리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는 특급 헌터.
지진은 어느새 멈췄고 탑 가장자리 계단도 멀쩡했다!
그러나 특급 헌터는 철저한 아이였다!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퐁퐁검을 휘둘렀다.
퐁퐁, 퐁퐁퐁-
방울이 날아가 계단에 닫는 순간 환하게 펴지는 얼굴!
“내 촉이 말하고 있어! 멀쩡해! 출발!”
특급 헌터가 외치는 즉시 광주리가 쑥 하늘로 올라가고 돌아오는 대답.
“최선을 다해서 빨리빨리! 움직이겠습니다! 성주님!”
커다란 광주리를 짊어진 태웅은 성큼성큼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특급 헌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광주리 뚜껑을 닫았다.
쿵, 쿵, 쿵-
랜턴으로 밝혀진 광주리 안에 들려오는 진동.
진교은은 애써 불안을 감추고 물었다.
“특급 헌터, 무섭지 않니?”
“나, 이런 거 꼭 한번 해 보고 싶었어!”
특급 헌터는 상기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이런 거?”
“막 사람들 쫓아오고! 몰래 도망치는 거 말야! 엄청 두근두근 재밌어! 사슴이 반짝이 너희도 그렇지!?”
구으응-
띠딛디-
“뭐!? 추격하는 게 더 재밌다고!? 진짜로!? 음…… 그런가?”
갑자기 고민에 빠진 특급 헌터.
진교은은 이런 특급 헌터를 바라보며 내심 웃으며 다짐했다.
‘아직 어린아이구나…… 내가 꼭 지켜 줄게.’
이때 거센 바람 소리와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파아아아아앙-
“태웅 성주님은!?”
“왔구나! 이 광주리 안에 계신다!”
“성주님! 제가 왔습니다!”
“앗! 드디어 다 내려왔구나! 누나 고생했어!”
외침과 함께 번쩍 광주리 뚜껑을 연 특급 헌터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 독고다이 누나 아니네?”
“네, 독고다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류호와 태웅이 의아해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나랑 퐁퐁이가 열심히 시범을 보였는데…… 이제 내려왔을 때가 됐는데?”
성주님의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눈빛을 교환하는 류호와 태웅.
‘이게 무슨 말이야?’
‘……모르겠는데?’
류호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허공도의 제사장이 도착할 때까지 성주님을 지키는 것!
“가벼운 발걸음의 주술을 걸겠습니다!”
류호는 장죽을 휙 내리그었다.
휘이이잉-
사방에서 몰려든 바람이 류호와 태웅의 전신에 머물렀다.
다음 순간.
류호와 태웅은 바람처럼 가볍게 계단을 올라갔다!
두 사람의 목적지는 탑 정상, 목적은 성주님을 안전한 하늘 고래에 태워 피신시키는 것이었다.
허공도의 제사장이 올 때까지!
“……이상해? 누나 어디 간 거지? 앗! 그러고 보니 알바가 아직 안 온 것도 이상한데……!?”
특급 헌터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순간 천문석은 난장판이 된 내원의 마당에서 내력을 담아 외치고 있었다.
* * *
“명치명치명치!”
으아악-
검은 늑대 인간 무사가 악을 쓰며 강철 방패로 명치를 가리는 순간.
파바바바밧-
잔상을 흘리며 얼굴로 날아가는 불꽃 싸다귀!
늑대 인간 무사는 뭘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코피를 쏟으며 무너졌다.
깡-
천문석은 떨어진 강철 방패를 차올려 손에 들고 번개같이 전진했다!
“그 궤짝 내놓고 가라!”
“강도 같은 놈! 직접 찾아라!”
“장주 집무실로 달리자! 분명 비급이 있을 거다!”
……
사방에서 쏟아진 무사들로 완전히 난장판이 된 내원 마당으로!
“내 뒤로 바짝 붙어!”
천문석은 동료들에게 외치는 동시에 길을 뚫었다.
악을 쓰며 도를 내리찍는 녀석의 뒷덜미를 낚아채 집어던지고!
원심력을 담아 휘두른 강철 방패로 떨어지는 철퇴의 머리를 때렸다!
까아앙-
튕겨 나간 철퇴 머리가 휘두른 무사의 배에 박혔다.
커어어억-
무사가 허리를 반으로 접고 쓰러지는 순간.
그 등을 밟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천문석!
파아앙-
이 타이밍 천문석이 있던 공간을 장창이 갈랐다!
화르르륵-
창의 궤적을 따라 뜨거운 열풍이 쏟아지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천문석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이어진 날카로운 연속 찌르기!
팡, 팡, 파아앙-
전신에서 불티를 흩날리는 이종족 창잡이!
천문석은 내력을 담아 강철 방패를 집어던졌다!
콰직-
일격에 강철 방패를 꿰뚫은 창이 날아왔다.
이 순간 천문석은 창에 꿰뚫린 강철 방패를 잡고 비틀었다!
콰드드득-
엄청난 힘과 체중, 내력에 창대가 부러질 듯 휘어지는 순간 창잡이는 창을 놓았다!
이종족 창잡이가 재빨리 물러서는 순간.
쿵-
바닥에 내려선 천문석은 그대로 밀고 나갔다.
강철 방패를 꿰뚫어 무게 중심이 흐트러진 창을 거꾸로 잡은 채!
이종족 창잡이와 그 동료 낭인 무사들은 즉시 외쳤다.
“멍청한 녀석!”
“창이 거꾸로다!”
“버틸 수 있다!”
“그냥 몸으로 밀고 들어가라!”
……
외침과 함께 십여 명의 낭인 무사들이밀고 들어오는 순간.
그림자가 생길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지는 창대!
타다다다다다-
몸에 맞아도 큰 타격이 없다!
거꾸로 쥔 창대는 예상대로 버틸 만했다!
“버틸만하다!”
“그대로 밀고 들어가!”
“저 새끼 붙잡고 늘어져라!”
그러나 몸으로 밀고 들어가려 할 때.
현기증에 머리가 핑- 돌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창대에 실린 구인창의 경력이 전신의 감각을 뒤집어 놓고 있었다.
다음 순간 밀고 들어오던 창잡이와 낭인 무사들은 허리를 접고 배 속의 모든 걸 토해 냈다.
구웨에에엑-
쿠에에에엑-
참을 수 없는 현기증에 비틀거리는 순간 머리에 떨어지는 창대!
따악, 따악, 따악-
창잡이와 십여 명의 낭인 무사들은 자신의 토사물 위에 모조리 쓰러졌다.
그러나 난장판이 된 내원 마당은 넓고 아직 적은 많았다.
“뚫고 달린다!”
“알았어!”
“뒤에 붙었다!”
최설과 허준이 다급히 달려와 등 뒤에 서는 순간.
천문석은 거꾸로 잡은 창을 앞세워 나아갔다.
쿵쿡, 쿵쿵쿡-
천문석은 발걸음의 강약을 조절하며 갈지자로 전진했다.
궤짝을 들고 달리는 낭인 무사!
살벌한 기세로 격전을 펼치는 수인족!
인간과 요마괴이가 뒤섞인 채로 보물을 찾아 달리는 용병단!
……
이들 모두가 뒤엉킨 난장판 속으로!
격렬한 외침과 함성과 함께 수많은 사람이 한탕을 위해, 도망치기 위해, 약탈을 막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이 거대한 난장판에서 창 한 자루가 천천히 움직였다.
휘이이이이-
부드러운 창의 움직임을 따라 주위 모든 것이 밀려났다.
스스로 달리던 방향을 바꾸고.
자신도 모르게 물러서는 사람들!
천문석은 난장판 속에서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갈지자로 나아갔다.
최설과 허준은 홀린 듯 이 모습을 바라봤다.
창대가 부드럽게 원을 그리는 순간.
사람들이 알아서 창대를 피하고 있다!
거꾸로 잡은 창대가 위협적이라서가 아니다.
사람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스스로 창대를 피하고 있다!
무공도 각성력도 아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이세기! 너 진짜 무림 고수구나!?’
‘이 기술은 뭐야!?’
허준과 최설이 마음속으로 외치는 순간.
후두두둑-
거꾸로 잡은 창대가 토막 나 쪼개지고 검은 형체가 훅 뛰어들어왔다!
“네가 내 동생 때린 새끼냐!?”
대기가 폭발하는 듯한 고함이 터지고, 클로를 앞세워 돌진하는 검은 늑대 인간!
검은 늑대 인간의 클로에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맺혀 있었다!
“검기!”
경악한 허준이 외치는 순간.
후우웅-
늑대 인간의 발에 차여 날아오는 강철 방패!
천문석이 강철 방패를 피하는 타이밍.
좌우에서 방패를 앞세워 돌진하는 늑대 인간 둘이 나타났다.
이 타이밍 정면의 늑대 인간이 땅을 짓밟고 몸을 날렸다!
완벽한 타이밍!
“잡았다!”
늑대 인간이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가슴을 툭 쳤다.
구으응-?
순간 울음소리와 함께 재킷에서 쏙 얼굴을 내미는…….
어린 하늘 고래!?
이 난장판의 모두는 초거대 하늘 고래가 장원을 박살 내는 걸 봤다!
이 어린 하늘 고래를 건드리면 초거대 하늘 고래가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으아아악-
방패를 들고 좌우에서 돌진하던 방패수가 재빨리 멈추려다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크르르륵-
검기가 어린 클로를 앞세운 늑대 인간은 사색이 되어 클로를 땅에 박아 넣었다.
단지 가슴을 한번 툭 치는 것만으로 모든 공격을 막아 낸 천문석.
천문석은 번개같이 움직였다.
쾅, 쾅-
균형을 잃고 쓰러진 방패수의 투구에 적당히 두 번.
콰아아앙-
무방비하게 드러난 검은 늑대 인간의 뒤통수에 강하게 한번!
내력이 실린 주먹이 세 번 떨어졌다.
두 방패수는 단숨에 기절해 쓰러졌으나, 맨 뒤통수를 맞은 검은 늑대 인간은 쓰러지지 않고 비틀거리며 외쳤다.
“으으윽- 하늘 고래를 방패로 써!? 그런 비열한 수를 쓰다니!”
천문석은 기시감이 들었다.
자신이 이기기만 하면 ‘사술이다!’를 외치던 무림인들.
그러나 이런 녀석들을 상대하는 건 자신의 주특기다!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
“야, 넌 어떻게 생각하냐?”
구으, 구으으-?
고개를 갸웃하는 어린 하늘 고래.
순간 천문석은 외쳤다.
“아주 훌륭한 작전이었다고!? 역시 그렇지! 카캬카카카카-.”
“뭐, 야! 무슨 말도 안 되는…….”
늑대 인간이 분통을 터트리려는 순간.
천문석은 내력을 실어 외쳤다!
“명치명치명치!”
반사적으로 클로로 명치를 가리는 순간.
번개같이 목으로 날아가는 손날치기!
커어어억-
완벽하게 들어간 손날치기에 늑대 인간의 허리가 접힐 때.
파아앙-
로우킥이 들어가고.
콰드득-
털을 움켜잡고 땅에 내리꽂았다.
쾅-
늑대 인간은 단숨에 기절했다.
이 늑대 인간이 마지막이었다.
기절한 늑대 인간 뒤로 높게 솟은 담과 그 뒤 전각 지붕이 보였다.
내원 마당에 펼쳐진 난장판을 뚫고 허준의 은인이 있는 전각에 마침내 도착했다!
* * *
천문석은 최설과 허준을 단숨에 5미터 높이 담으로 던져 올리고, 도움닫기로 뛰어 강철봉을 뻗었다.
“잡았어!”
“끌어올린다!”
담 위에 올라선 천문석은 눈앞의 전각을 살폈다.
이미 약탈당했는지 사방의 문이 떨어져 나가고, 집기가 흐트러진 5층 전각.
“허준. 이 전각 맞냐?”
“맞아. 꼭대기 층이다. 그런데…….”
허준은 어두운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이렇게 약탈당했다면 허준의 은인이 이 전각에 있을 가능성은 작았다.
그러나 이건 허준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천문석은 담장에서 뛰어내리며 외쳤다.
“우선 올라가서 확인하자.”
“……고맙다.”
뒤이어 허준과 최설이 뛰어내리고, 세 사람은 약탈당한 전각 꼭대기로 향했다.
나뒹구는 의자와 탁자를 밀어내고 도착한 전각 5층.
의자와 탁자, 벽에 걸린 족자와 그림, 문까지 들고 갈 수 있는 건 모조리 사라졌다.
탁 트인 사방으로 호랑이 일족 장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초거대 하늘 고래가 꾹꾹 누르며 기어간 내원 성벽 폐허가 보이고, 그 위와 아래 난장판이 된 장원이 보였다.
조직력을 잃은 무사들이 흩어지자, 낭인 무사, 한탕을 노리는 용병단, 뒷골목 요마괴이와 수인족이 쏟아져 들어와 장원 전체를 약탈하고 있었다.
최설은 탄식했다.
“천명의 무사도 못한 걸 네가 해냈구나!”
“야,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얘야!”
천문석이 가슴을 툭 치는 순간.
구으, 구으응-
자랑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파닥, 파닥- 가슴지느러미를 흔드는 어린 하늘 고래.
“……너 걔랑 같이 있으면 재수 없는 거 옮는다. 언니랑 같이 있자.”
최설이 손을 뻗자, 하늘 고래는 천문석의 가슴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때 허준의 허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없다. 이미 떠난 거 같다.”
“…….”
천문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기다렸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동료의 선택을 기다릴 시간은 있었다.
그리고 허준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특급 헌터, 진교은 찾으러 가자.”
천문석은 바로 몸을 돌려 계단으로 걸었다.
이때 여전히 난장판인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왕체, 최림, 김기철과 40인의 헌터들.
“와, 저 녀석들 어떻게 쫓아온 거야!?”
탄성을 터트린 천문석이 계단을 내려가려 할 때 계단 앞 벽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잠깐만!”
벽에 손을 올리고 진기를 쏘아 보내는 순간.
천천히 느리게 나아가다가, 텅- 폭발적으로 뻗어 나가는 진기!
바로 감이 왔다!
“여기 비밀 공간 있다!”
천문석은 외침과 동시에 허준을 봤다.
척하면 척!
허준은 바로 벽을 두들기며 외쳤다.
쿵쿵, 쿵쿵쿵-
“이 장주님! 구하러 왔습니다! 제 동료들입니다!”
그러나 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천문석은 재빨리 기감을 일으킨 손으로 벽을 훑었다.
하지만 다른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열지 못하는 공간이다.
이때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 수 있지!?”
“여는 방법 찾았지!?”
최설과 허준은 당연하단 듯 자신이 문을 여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뭐지, 이 녀석들!?’
어이없어하는데 문득 머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천문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지!”
허준과 최설의 얼굴이 환해지는 순간.
천문석은 가볍게 뒤로 뛰어 강철봉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그리고 진각을 밟고 나아가며 강철봉을 내리쳤다.
비밀 공간이 있는 벽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