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31화>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천문석은 힐끗, 이번 사태를 예상한 사람을 확인했다.
으아악-
악을 쓰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무사 셋의 합공을 피하는.
최설!
‘크게 성장했구나! 최설!’
감탄과 함께 지금 상황이 머릿속에서 정리됐다.
연이어 치른 7번의 전투!
예상대로 닥치니까 어떻게든 해결할 수는 있었다.
문제는 그 결과가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흘렀다는 것!
성주의 숨겨진 검, 경천동지(驚天動地) 이세기!
어느새 자신에게 붙은 설명이었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나, 천문석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최설, 허준 모두 빡세게 싸우고 있지만, 부상 없이 무사하다!
그래, 몸 건강히 무사하게 여기까지 왔으면 된 거다!
이때 상념을 깨는 적룡방주의 외침이 들려왔다.
“방도들은 모두 도망쳐라!”
내가중수법으로 기혈이 뒤틀린 적룡방주가 어느새 자신의 앞을 막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형형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비장하게 외친다.
“이세기 대주. 내 목이면 충분할 거요. 방도들은 보내 주시오.”
‘……이 녀석이 뭐라는 거야?’
내심 의아해하던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아차! 강호!’
천문석은 즉시 내력을 담아 외쳤다.
[전투 중지! 야, 이 새끼들아! 그만 싸워!]
벼락이 떨어진 듯한 굉음에, 역으로 밀어붙이던 무사와 헌터들은 다급히 공격을 멈췄다.
재빨리 전장을 살핀 천문석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크게 피를 보기 전에 멈췄다!
이곳은 무림 던전과 같은 세계, 강호다!
허준의 말대로, 협객은 은원을 잊지 않는 법!
인과는 그 끝을 헤아릴 수 없고, 강호의 원한은 반드시 돌아온다!
남의 싸움에 끼어들어 원한을 쌓을 필요는 없었다.
천문석은 벽에 박힌 참마도를 뽑아 적룡방주에게 던졌다.
“야, 내가 이겼으니까! 애들 데리고 꺼져라!”
“뭐? 지금 무슨…….”
적룡방주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순간.
천문석은 바로 몸을 돌려 외쳤다!
“우리는 내원으로 달린다!”
우와아아아아-
환호성과 함께 무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 * *
“…….”
적룡방주는 멍하니 자신을 꺾은 이세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방주님!”
“괜찮으십니까!? 방주님!”
부하들이 다급히 달려와 외치는 순간에도, 적룡방주의 시선은 멀어지는 경천동지 이세기에게 꽂혀 있었다.
이때 한 무사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방주님! 기회입니다! 바로 뒤로 따라붙죠!”
“……뭐?”
“저 녀석들 지쳤습니다! 뒤를 따라가다가 전투가 벌어질 때 들이치면!”
“…….”
“경천동지 이세기! 성주의 숨겨진 검을 잡을 수 있습니다!”
“…….”
“엄청난 공적을 세우는 일입니다!”
적룡방주는 말없이 이야기를 듣다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적룡방주를 따라 방도들이 하나둘 웃으려는 순간.
쾅-
적룡방주의 주먹이 날아갔다!
커어억-
뒤를 치자던 무사는 일격에 기절해 파르르 경련했다.
적룡방주는 쓰러진 부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멀어지는 이세기를 봤다.
처음 강철봉과 부딪치는 순간 깨달았다.
태산을 향해 도를 내리치는 듯한 막막함!
길어야 100초!
버티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순식간에 100초를 넘어가고 자신이 오히려 압도했다.
‘잘못 봤구나!’ 생각하고 숨겨 둔 비장의 수, 강기로 끝내려는 순간.
이세기는 단숨에 상황을 뒤집었다!
손에 쥔 참마도를 들어 올리자, 톱날처럼 깨져나간 날이 보였다.
이세기는 평범한 강철봉으로, 강기가 담긴 참마도의 날을 녹슨 쇳조각처럼 바스러트렸다!
적룡방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아득한 경지!
절정을 넘어 초절정의 벽을 두들기는 자신이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지라면 하나뿐이다.
초절정!
경천동지 이세기는 초절정의 고수였다!
이번 싸움에서 초절정 수준의 적은 둘뿐이라고 생각했다.
호랑이 일족의 가주 탄!
여우 일족의 가주 요괴선 류호!
여기에 이세기라는 초절정의 고수가 더해졌다!
적룡방주는 문득 고개를 들어 멀리 언덕 위 성주 장원을 봤다.
계획대로 언덕 위 성주 장원으로 밀고 올라가는 무사들이 보였다.
호랑이 일족의 장원에서 탄과 류호를 끝장내고, 그 사이 성주 장원에 있는 새로운 성주를 잡아 꼭두각시로 내세운다!
적월 상단의 당종은 이 계획을 위해 3천이 훌쩍 넘는 무사들을 움직였다!
그러나 완벽한 것 같던 당종의 계획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초절정 고수, 경천동지 이세기로 인해서!
그리고 자신과 방도들은 그 초절정 고수의 아량으로 살아남았다.
아량을 보인 고수의 뒤를 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초절정 고수의 발목을 이 정도 잡았으면, 그동안 당종에게 받은 돈값은 충분히 했다!
적룡방주는 참마도를 잡고 몸을 돌리며 외쳤다!
“모두 돌아간다! 부상자를 챙겨라!”
무사들이 흩어져 동료들을 챙길 때.
적룡방주는 이세기가 달려간 방향을 봤다.
탄과 류호가 있을 호랑이 일족의 내원.
두 사람을 잡기 위해 청혈회, 수로 18채, 남궁세가가 내원으로 향하고 있다.
남궁세가의 가주, 무애(無礙) 남궁휘는 초절정의 고수.
경천동지 이세기와 무애 남궁휘!
초절정 고수 둘이 맞붙는 엄청난 격전이 이제 곧 펼쳐질 거다.
이 격전을 못 보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그러나 강자의 아량으로 살아난 패자는 물러서는 게 당연한 법!
적룡방주는 아쉬움을 달래며 방도들을 이끌고 동문으로 달려 전장에서 빠져나갔다.
* * *
‘뭐가 이렇게 빡세!?’
헉, 허억, 헉-
최설은 숨을 몰아쉬며 내심 분통을 터트렸다.
상대는 몬스터가 아닌 제대로 된 무림인!
최설은 제대로 된 무림인과 싸우며 생사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나들었다!
미친 듯이 바닥을 구르고, 팔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검을 뿌렸다!
그런데도 상대를 완전히 압도하지 못했다.
전투가 멈추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끝장났다!
이런 전투가 벌써 8번!
최설은 천문석을 향해 물었다.
“야, 진짜 계획대로인 거 맞아? 지금 뭔가 이상……!”
이때 허준이 끼어들었다.
“방금 그 빛! 강기 맞지!? 강기를 그 강철봉으로 막은 거야?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뭐, 강기라고!?”
경악한 최설이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너무나 뿌듯한 눈으로 강철봉을 바라봤다.
적룡방주의 참마도와 처음 강철봉을 맞부딪치는 순간 깨달았다.
‘비장의 한 수를 숨기고 낚시질을 하고 있다!’
그래서 비장의 한 수를 확인하려 100초 동안 낚시질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튀어나온 강기!
적룡방주가 숨긴 비장의 한 수는 강기였다!
내가중수법을 펼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미친놈인가!?
강기가 있으면 처음부터 써야지!
비장의 한 수로 강기를 숨겨 두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어!?
본능적으로 강철봉을 들었지만, 강기가 실린 참마도에 크게 손상되고 개싸움이 벌어질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캐부자 마도구 제작자, 레이 실트의 강철봉은 달랐다!
기세, 힘, 자세 모든 면에서 밀렸는데도, 강기가 실린 참마도의 일격을 막아 냈다!
아니, 막아 내는 정도가 아니라 참마도의 날이 유리처럼 깨져나갔다!
과연 명불허전!
캐부자 마도구 제작자의 무기!
레이 실트의 강철봉 덕분에 내가중수법으로 내력을 흔들고, 자신과 비슷한 경지인 적룡방주를 압도적으로 찍어 눌렀다!
즉, 자신은 템빨로 적룡방주를 이긴 것이다!
순간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피어나는 존경심!
‘레이 실트, 캐부자 마력 마도구 각성자님 충성충성!’
천문석이 감회에 젖어 있을 때.
허준이 외침이 다시 한 번 들려왔다.
“강기 맞지!? 강기를 강철봉으로 막은 거면…… 너 설마!?”
허준의 얼굴에 생겨난 경악이 주위로 퍼져 나갔다.
최설.
호랑이 일족의 무사.
용역 헌터와 수인족, 요마괴이.
……
모두가 타 버릴 듯 뜨거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이 바라는 대답은 하나였다!
진정한 초인의 상징, 초절정!
사실이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군의 사기를 꺾을 수는 없는 법!
“하- 애써 숨겼건만…….”
천문석은 짧은 탄식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 초절정이다.”
순간 엄청난 환호성과 외침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초절정!”
“역시 그랬어!”
“경천동지 이세기!”
“초절정 고수! 경천동지 이세기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
터질 듯 끓어오른 사기!
연이은 전투에 지쳤던 모두는 미친 듯이 함성을 질렀다.
당연했다!
초절정은 절정과는 차원이 다른 경지!
진정한 초인이자, 승리를 부르는 상징이다!
이 순간 천문석은 외쳤다.
“내원이 멀지 않다! 모두 내 뒤를 따라라!”
와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모두는 내원을 향해 질주했다!
멍하니 천문석을 보던 허준과 최설이 정신을 차렸다.
“진짜야!? 진짜로 초절정이야!? 검강! 너 검강도 사용할 수 있어!?”
허준이 외치는 순간.
최설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야, 왜 여기서 외친 거야? 뒤에 저 무사들 어떻게 하려고!?”
최설은 광기마저 느껴지는 무사들을 가리켰다.
천문석은 최설이 말하려는 게 뭔지 바로 감을 잡았다.
처음 이십여 명의 무사들이 어느새 백 명이 훌쩍 넘었다.
게다가 초절정이라고 구라를 치자, 사방에서 합류하는 무사들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다른 호랑이들이 모여들어 같이 뛰는 상황!
여기에 연이은 승리와 자신이 초절정이라는 구라에 사기가 터질 듯 끓어올랐다!
이제 어지간한 적들은 감히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거다!
하지만 이건 역으로 말하면, 은근슬쩍 몰래 빠져나가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말과도 같다.
최설은 그걸 지적하고 있었다.
“계획, 야, 너 계획 있어!?”
다급하게 외치는 최설.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돼버린 의도치 않은 상황이다.
당연히 계획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다.
천문석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상정 범위 안이다!”
“……뭐!?”
최설이 기막혀하는 순간.
천문석은 목소리를 낮췄다.
“쟤들은 걱정할 거 없다. 내원 ‘방어선’에 도착하면 해결돼.”
방어선!
최설과 허준은 천문석의 말뜻을 바로 알아챘다.
뒤를 쫓는 무사들은 호랑이 일족의 무사들!
방어선, 내원을 지나 계속 따라올 리 없었다.
“내원 성벽에 도착하면 무사들은 알아서 방어선에 남을 거다. 우리는 그 틈에 튀면 된다. 걱정할 거 없어.”
천문석이 자신 있게 장담하는 순간.
최설이 악착같이 따라오는 용역 헌터들을 가리켰다.
“그럼 쟤들은? 저 헌터들은 어떡하려고?”
“…….”
천문석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헌터들을 바라봤다.
왕체, 최림, 김기철과 40여 명의 용역 헌터들.
이 녀석들은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달리고 있었다.
분명 변장이 풀린 자신의 얼굴을 봤는데도!
자신과 최설, 허준을 공격하거나 잡으려 하지도 않고, 그냥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미친 듯이 따라오기만 했다.
혹시라도 눈이라도 마주치면 흠칫 놀라 시선을 피한다!
천문석은 헌터들의 의도를 이미 짐작했다.
자신의 뒤를 따라 던전에서 나가려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던전 출구로 이동하는 게 아니다.
내원에서 허준의 은인을 픽업한 후, 아카린과 만나 성주 장원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천문석은 멀리 북쪽 언덕 위에 세워진 성주 장원을 봤다.
수많은 무사가 성주 장원으로 밀고 올라가고 있었다.
이 모습을 처음 보는 순간 깨달았다.
이번 전투는 단순한 세력 다툼이 아닌, 적염성의 권력을 두고 벌어진 내전이다!
그리고 내전은 장기, 체스와 마찬가지로 왕, 킹을 잡아야 승패가 갈린다.
적염성 내전의 왕은 새로운 성주!
즉, 이곳 호랑이 일족의 장원은 양동일 뿐, 주된 전장은 북쪽 언덕 위다!
언덕 위 성주 장원.
내전의 승패가 갈릴 장소이자, 특급 헌터와 진교은이 있는 지금 자신이 향하는 목적지!
즉,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라오는 왕체, 최림, 김기철과 용역 헌터들은 스스로 내전의 중심지인 성주 장원, 불구덩이로 달려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와, 저 녀석들 뭐가 이렇게 재수가 없어? 완전 삼재가 겹쳤네!”
천문석이 탄식할 때.
최설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야, 헌터들 어떡할 거냐니까? 절대 포기할 거 같지 않은데!? 내가 다른 곳으로 유인할까!?”
천문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이번엔 진짜로 계획대로다!”
“…….’진짜로’ 계획대로? 너 설마!?”
그동안의 개고생에 비약적으로 촉이 상승한 최설이 무언가 깨닫는 순간!
골목 너머, 10미터가 훌쩍 넘는 벽이 보였다!
내원 성벽!
마침내 내원에 도착했다!
“내원 성벽이다! 전력으로 달려라!”
천문석이 재빨리 외치는 순간.
모두는 함성을 지르며 힘을 끌어내 달렸다!
“내원 성벽이 보인다!”
“아직 전투 전이다!”
“적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살았다! 하하하-.”
……
쿠쿠쿠쿠쿠쿵-
수백 명의 무사, 일꾼, 헌터, 이종족이 몰아치는 파도처럼 골목을 달렸다.
그리고 골목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시야가 확 트이고 내원 앞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파르르륵-
바람에 펄럭이는 수많은 깃발.
완전무장한 채 진형을 갖춘 무사들.
내원 성벽 앞에는 이미 적이 있었다.
천여 명의 무사가!
달리던 모두가 얼어붙은 듯 멈춰 서고, 당장이라도 터질듯한 침묵이 흘렀다.
“…….”
“…….”
모두의 시선이 천문석에게 모이는 순간.
사색이 된 최설이 다급히 외쳤다.
“……이것도 상정 범위지!?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