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28화>
“최……!”
이름을 부르려던 천문석은 다급히 외침을 삼켰다.
최설이 걸어오는 동선에 평상이 있다!
왕체와 최림!
최설을 잡으러 온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평상이!
게다가 최설은 음식을 들고 온 일꾼 중에서 유일하게 얼굴을 천으로 가렸다!
‘아니, 도대체 얼굴은 왜 가린 거야!?’
차라리 얼굴을 드러내는 게 낫다!
눈에 익은 체형의 사람이 얼굴을 가리면 당연히 수상하게 본다.
게다가 지금 최설은 무사도 아닌 음식을 나르는 일꾼!
별 부담감 없이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감이 왔다.
걸린다! 이건 반드시 걸린다!
콰득-
천문석은 재빨리 나무 난간을 뜯어내 내력을 담아 던졌다!
목표는 최설이 든 궤짝!
휘이이잉-
직선으로 날아가는 나무토막!
그러나 나무토막은 궤짝을 때리기 직전.
“……밥이다!”
불쑥 튀어나온 우인족(牛人族)의 뒤통수를 때렸다!
쾅-
으아악-
머리를 잡은 우인족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자 그 위로 지나가는 사람들!
으악, 으아악-
비명이 터지는 동시에 가장 먼저 달린 우인족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어떤 놈들이냐!?”
이때 평상에 앉은 왕체와 최림, 김기철, 셋이 몸을 일으키더니 마주 외쳤다!
“잘했다!”
“저 얍삽한 소 새끼들!”
“오늘은 우리가 먼저 밥 먹는다!”
우와아아아아-
무기력하게 밀려나던 용역 헌터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소 새끼들아! 풀이나 먹어라!”
“오늘은 우리가 고기 먹는다!”
“모조리 밀어 버려!”
……
분노한 용역 헌터들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수인족과 요마괴이들이 뭉쳐 있는 곳!
궤짝을 들고 있는 최설이 있는 방향으로!
“…….”
천문석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나무토막을 던진 손.
최설에게 신호하려던 것뿐인데…….
패싸움이 일어났다!
“이 급전개는 뭔데!?”
외침과 동시에 천문석은 난간 너머로 몸을 던졌다.
튀어나온 난간과 나무 기둥을 잇달아 밟고 뛰어 순식간에 땅에 내려서는 동시에.
쾅-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화살처럼 쏘아진 몸에 실린 엄청난 기세!
그러나 이미 늦었다!
수인족과 헌터들이 이미 충돌했다!
“밀어붙여!”
“박살을 내주마!”
“뿔 조심해!”
“꼬리! 꼬리가 약점이다!”
“꼬리 잡고 흔들어!”
“이 인간 놈들이 미쳤나!”
“뿔로 들이박아!”
“이 새끼들 약골이다! 붙잡고 힘으로 깔아뭉개라!”
“새끼들아! 난 세 살 이후로 매일매일 고기만 먹었어!”
갑자기 벌어진 패싸움!
밥을 들고 온 일꾼들은 깜짝 놀라 굳어…….
“잘한다!”
“우인족! 밀어붙여라!”
“이기는 쪽에 불고기, 수육 모조리 몰아준다!”
“인간의 힘을 보여 줘라! 이기면 내가 막걸리 쏜다!”
……
“…….”
달리던 천문석은 우뚝 멈춰 서서 난장판이 된 마당을 바라봤다.
인간과 수인족, 요마괴이.
서로가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고, 머리로 들이박으며 싸운다.
밥을 날라온 일꾼들은 싸움에 환호하고.
어느새 활짝 열린 정문 앞에 탁자가 놓이고 그 위에 동전과 지전이 수북이 쌓였다.
무사들이 앞다퉈 돈을 걸고 승패를 두고 내기를 하고 있었다!
이 순간 천문석은 자신이 너무 상식에 얽매여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은 던전 안 이세계, 적염성!
지구의 상식이 통하는 세계가 아니다!
“잘됐네. 카캬카- 이제 적당히 최설만 데리고 빠져나가면…….”
이때 수인족을 밀어내고, 최설을 향해 돌진하는 조폭 김기철이 보였다!
“너 궤짝! 그 궤짝 내놔라!”
깜짝 놀라 눈을 치켜뜬 최설.
그런 최설을 보는 순간 고개를 갸웃하는 조폭 김기철.
“어, 잠깐 너……?”
‘알아봤구나!’
생각과 동시에 천문석은 패싸움 한복판으로 달렸다!
툭, 툭, 툭-
레이 실트의 강철봉으로 어깨를 두들기는 매 순간.
몸에 실리는 엄청난 무게!
무게는 곧 힘이다!
쿵-
일 보에 2미터가 넘는 우인족을 밀어내고!
쿵, 쿵-
이 보에 뒤엉킨 인간과 견인족을 튕겨 낸다!
천문석은 전차처럼 눈앞의 모든 걸 튕겨 내고 난장판을 단숨에 뚫었다!
그리고 최설과 눈이 마주쳤다.
“……!?”
최설의 두 눈에 떠오른 의혹!
순간 최설의 눈빛을 본 김기철이 번개같이 몸을 돌려주먹을 뻗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
“어, 술 주신 무사님? 혹시 도와주러!?”
조폭 김기철의 얼굴에 떠오른 해맑은 기대감.
“……미안하다.”
“네?”
반문하는 순간 천문석은 번개같이 딱밤을 날렸다.
따악-
끄어어억-
조폭 김기철이 데굴데굴 구를 때.
천문석은 재빨리 최설의 손을 낚아챘다.
그러나 바로 손을 빼서 피하고 반격이 들어온다!
탁, 타다다다닥-
밀고, 당기고, 흘리고, 때리며 수십 번을 맞부딪치는 손!
그러나 손은 페이크!
천문석의 발은 이미 최설의 뒤축을 걸고 있었다!
핑그르르-
최설이 공중으로 떠올라 한 바퀴 회전하는 순간 멱살을 낚아챈다!
콰드득-
팔을 교차해 당겨 옷깃으로 목을 조르자, 단숨에 무력화되는 최설!
커어억-
천문석은 떨어지는 궤짝을 걷어찼다.
후우우웅-
깜짝 놀라 날아오는 음식 궤짝을 받은 우인족 전사!
한달음에 달려 궤짝과 우인족 전사의 어깨를 연속해서 밟고 도약!
천문석은 최설의 멱살을 잡은 채 단숨에 난장판에서 빠져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전각으로 달린다.
“컥, 커억- 잠깐! 컥- 뭔가 오해…….”
발버둥 치며 다급히 외치던 최설은 텅 빈 전각으로 들어가자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시바! 걸렸구나!’
천문석은 팔에 힘을 풀고 입을 열었다.
“야, 나야 나. 이세기…… 아니, 천문석.”
이세기, 천문석!
이 두 이름을 동시에 말할 사람은 한 명뿐이다!
“……너, 너!? 설마!? 그 얼굴 뭐야!?”
최설이 경악하는 순간.
천문석은 멱살을 잡은 손을 놓고 바로 대답했다.
“이거 변장한 거야.”
“변장이라고? 무슨 변장이 인상이 이렇게 변해!?”
어이없어하는 최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설명이 아니다.
“너 누구랑 같이 있어!?”
천문석의 질문에 최설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한호석 교수님! 혹시 다른 동료들은 너랑 같이 있냐!? 허준, 진교은, 특급 헌터!?”
“아니, 나 혼자다. 진교은, 특급 헌터 두 사람 위치는 알아냈어.”
“진짜로!? 어떻게!? 아니, 어디 있는 데!?”
천문석의 손가락이 패싸움이 벌어지는 마당에서 북쪽 언덕으로 움직였다.
“저기 패싸움 벌이는 용역 헌터에게 정보 얻어 냈다. 특급 헌터, 진교은 두 사람. 북쪽 성주 장원에 있다.”
최설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질 때.
딱-
천문석은 최설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야, 정신 차려! 성주 장원 들어갈 방법 있어. 그보다 허준은!? 그 녀석 위치 몰라?”
“도시에 들어오기 전 숲에서 헤어졌어. 아마 이 도시로 들어왔을 텐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을 수가 없었어. 게다가 축제까지 열려서…… 하아-.”
최설의 한숨 소리에 상황이 짐작 갔다.
축제로 평소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모인 도시에서 아무런 기반 없이 사람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최설의 이야기는 희소식이었다.
이 도시 어딘가에 억류되지 않은 자유로운 허준이 있다는 이야기니까!
‘이세기’ 뱀술, 칠전팔기가 퍼져 나가고 이세기란 이름이 알려지는 순간 허준은 바로 자신을 찾아올 거다!
장원에서 빠져나가 이세기 뱀술을 도시에 풀고, 북쪽 성주 장원에서 특급 헌터, 진교은을 빼낼 때쯤 알아서 찾아온 허준이 합류할 거다.
촉이 왔다.
길어야 2, 3일이면 이 모든 걸 끝내고 튈 수 있을 거라는 촉이!
“……허준 괜찮을까?”
천문석은 최설의 어깨를 툭 쳤다.
“야, 걱정할 거 없다. 나한테 허준 찾을 계획 있다! 우선 여기서 나가서 합류하자. 너 혼자서 빠져나갈 수 있냐? 한호석 교수님은 어디서 기다리는데?”
“주방 분위기 보니까 가능할 거 같아. 한호석 교수님은 남문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어.”
바로 머릿속에 동선이 그려졌다.
시간을 끌고 있는 아카린과 합류.
동문으로 빠져나가 남문으로 이동 최설, 한호석 교수와 만난다.
바로 여관으로 돌아가.
자신이 성주 장원에 뱀술을 진상하고 특급 헌터, 진교은을 찾는 동안, 적염성에 인맥이 있는 아카린과 최설, 한호석 교수가 ‘이세기’ 뱀술을 풀면 된다!
‘이세기’란 이름을 들은 허준이 찾아오는 순간이 이 적염성을 떠날 시간이다!
힐끗 마당을 살피니 패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일꾼들과 무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내기 돈을 걸고 구경 중이다!
자신과 최설에게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럼 바로 빠져나가자. 내 뒤로 바짝 붙어서 따라와. 여기서 빼내 줄게.”
“알았어.”
천문석과 최설은 마당 가장자리로 돌아 정문으로 다가갔다.
힐끗 최설을 살피더니 말없이 좌우로 물러나는 무사들.
천문석과 최설은 무사들이 열어 준 통로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저 전각에 도시로 흘러들어온 인간들이 모두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인간 말고 수인족, 요마괴이들도 모두 저곳에 있습니다.”
문득 고개를 들자 호인족 무사의 안내를 받아 전각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보였다.
무복 위에 털가죽 외투를 걸치고, 검대에 장검을 찬 금발, 푸른 눈, 장신의 여자 무림인…….
“허준?”
천문석의 입에서 이름이 튀어나오자, 문득 고개를 들어 천문석을 보는 허준.
“……?”
고개를 갸웃한 허준의 시선이 최설에게 닿는 순간.
얼굴에 드러나는 놀람과 의혹!
“……최설!?”
허준이 경악하는 순간.
천문석도 경악했다.
허준!
마지막 동료 허준이 눈앞에 나타났다!
특급 헌터와 진교은의 위치를 알아내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최설!
찾을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는 순간 알아서 나타난 허준!
지금껏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연이은 행운!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땅을 바라봤다.
땅님, 이거 땅님이신가요!?
지금 땅님이 행운을 몰빵해 주시는 건가요!?
당연히 땅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 온 우주적인 의지가 느껴졌다!
지금 자신은 소설 속 주인공이나 마찬가지다!
천지만물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자신을 향해 웃고 있다!
들린다!
그 웃음소리가!
카캬카카카카카카-
“카카카- 야, 봤지! 이 연속 행운! 아, 로또! 당장 로또를 사야 하는데!”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대주님!”
길을 안내하던 호인족 무사가 깜짝 놀라 허리를 숙이고.
“……로또라고?”
허준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천문석을 바라봤다.
이때 최설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허준!”
“……진짜 최설 맞구나! 어떻게 여기서!?”
말도 안 되는 우연에 허준과 최설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봤다.
천문석은 호인족 무사의 시선을 몸으로 가리고 허준에게 말했다.
“우선 여기서 빠져나가자.”
“이분은?”
허준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천문석을 봤다.
처음 최설과 같은 반응이다.
“야, 나야 나. 알지 이거?”
천문석은 힐끗 호인족 무사를 눈짓하며 두 손을 펼치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섬광!’
“……!”
허준의 얼굴이 일순간에 환하게 펴졌다.
“와, 너구나!?”
“맞다. 나다!”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펼친 손으로 박수를 쳤다.
짝-
콰아아아앙-
이 순간 폭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