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27화>
‘운이 좋았다!’
최설은 화덕 앞에서 전을 부치며 내심 안도했다!
자신이 지원한 호랑이 일족의 장원에 수백 명의 일꾼과 무사들이 모여들었다!
혹시 뽑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무사히 일꾼으로 그것도 계획대로 주방 일꾼으로 배치됐다!
이 정도 크기의 장원이라면 주방도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나 새로 채용한 일꾼을 무사나 높은 분들이 드실 음식을 만드는 주방에 배치할 리 없었다.
당연히 자신이 배치된 곳은 탑에서 데려온 사람들에게 줄 음식을 만드는 주방이었다.
자신이 바라던 데로!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음식을 가지고 가서 배식하는 것도 초짜인 자신이 할 일이었다.
행운이 연이어 이어지고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구나!’
다시 한 번 감탄한 최설은 번개같이 전을 뒤집으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점검했다.
목표는 왕체와 최림에게서 진교은과 특급 헌터의 정보를 얻는 것!
계획에서 가장 어려울 거로 생각한, 왕체와 최림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쉽게 해결됐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를 아는 순간 왕체, 최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다.
분노가 폭발해 난장판을 만들 수도.
생경한 이세계에서 만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손을 잡을 수도 있었다.
최설은 머리에 쓴 보자기와 얼굴에 감은 천을 만지며 생각을 정리했다.
최선은 정체를 들키지 않고 정보를 얻는 것!
차선은 두 사람과 손을 잡고 거래를 하는 것!
다행히 갇혀 있는 인간의 수가 40여 명이라고 했다.
우선은 왕체와 최림을 피해서 정보를 모아보고, 정보를 얻지 못하면 왕체와 최림에게 접근해 거래한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한숨.
하아-
거래의 대가로 왕체와 최림이 원할 걸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탈출과 귀환!’
적염성의 유력가 호랑이 일족의 장원에서 ‘탈출’시키고, 어딘지도 모르는 던전 안 이세계에서 한국으로 ‘귀환’한다.
둘 다 자신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두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최선을 다하겠다!’
‘하, 시바. 그 녀석들 발작할 것 같은데.’
난장판이 된 감옥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최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진교은과 특급 헌터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기다릴 뿐!
이때 주방 안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탑에서 데려온 사람들 식사 배식해야 한다! 자원자 없냐?”
최설은 번쩍 손을 들고 외쳤다.
“저요! 제가 하겠습니다! 꼭 해 보고 싶습니다!”
* * *
“여기가 탑으로 흘러들어온 녀석들을 모아둔 전각입니다!”
호인족 무사가 말하는 순간.
천문석은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열어라. 확인할 게 있다.”
대수롭지 않은 말투, 그러나 이 순간 천문석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안 된다고 거부할 때.
-명령서를 있냐고 되물을 때.
-누군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
-갑자기 무기를 뽑아 들고 자신을 공격할 때.
……
천문석은 온갖 반응에 대응할 말과 행동을 생각하며,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바짝 긴장했다!
이때 문을 지키는 무사들이 움직였고!
끼이익-
그냥 문이 열렸다.
‘뭐야, 이렇게 쉽게!?’
어이없어하는 순간 앞장서는 두 무사.
“들어가시죠. 대주님.”
천문석은 손을 좌우로 저었다.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라!”
천문석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문을 지나쳐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등 뒤로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며 걷는 순간.
끼이이익-
별 반응 없이 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통했구나!’
천문석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주위를 훑었다.
사방에 세워진 5미터 높이의 담 안쪽.
판석이 깔린 마당이 있고, 그 가운데 5층 전각이 있었다.
이 전각이 탑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을 가둬둔 감옥이었다.
천문석은 경비 무사들이 별다른 질문도 경계도 없이 문을 열어 준 이유를 바로 깨달았다.
인간과 수인족, 요마괴이는 마당과 5층 전각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신체를 구속하지도 않고, 몸에 위해를 가한 것 같지도 않았다.
천문석은 기감을 퍼트려 자세히 살폈다.
입구를 제외하고는 껄끄러운 느낌이 없다!
5미터 높이의 담장이 주위를 두르고 있지만, 각성자나 수인족이라면 간단한 도움닫기만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도 무사 몇 명이 입구만 막았을 뿐.
담장을 지키는 무사도, 감옥이라면 흔히 생각할 창살, 족쇄, 간수 그 무엇도 없다!
전각 안은 감옥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널널했다!
천문석은 이 모든 것에서 호랑이 일족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자신들이 땅바닥에 금하나만 그어도 감히 그 금을 넘지 못할 거라는 엄청난 자신감이!
‘하, 이 허술한 녀석들!’
원래 자신감과 자만심은 한 끗 차이다!
그리고 자신이야말로 자신감을 깨부수는데 전문가였다!
소림은 대일여래의 광륜으로!
무당은 태극의 묘리를 막대기로 펼쳐!
화산은 매화향이 진동하는 돌팔매질로!
개방에서는 거지보다 더 끈질기고 질척이는 박투술로!
……
전생의 자신은 수많은 문파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깨부쉈다!
경계가 소홀하면 오히려 좋다!
바라는 대로 대놓고 깨트려 주마!
천문석은 재빨리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 목표를 찾았다.
인간과 수인족, 요마괴이의 얼굴에 드러난 지루함!
이 안의 모두는 감옥에 갇힌 죄수가 아닌 자가 격리 중인 사람처럼 보였다.
이때 잔뜩 위축된 두려움과 긴장감이 감도는 얼굴들이 보였다.
각기 다른 옷을 입은 수인족, 요마괴이와 달리 모두 비슷한 옷을 입은 인간들!
이 인간들 사이사이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조폭 김기철과 자신의 뒤를 쫓았던 용역 헌터들!
자신이 동료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목표들이다!
아카린이 약속한 시각은 한 시진, 2시간!
‘어떤 방식을 쓸까?’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입고 있는 건 호랑이 일족 대주의 무복!
괜히 머리 굴릴 필요 없이 가장 빠르고 간단한 방법을 사용한다!
천문석은 용역 헌터를 향해 직선으로 걸어갔다.
용역 헌터의 의아한 시선이 무복에 수놓아진 은색 호랑이, 손에 든 강철봉, 얼굴로 움직였다.
얼핏 봐도 고위 무사로 보이는 복장에 바짝 긴장한 용역 헌터가 입을 열었다.
“저 무슨 일이신……?”
“너 탑에서 있었던 일 모두 이야기해라.”
천문석은 말을 끊고 툭 질문을 던졌다.
“네?”
반문하는 순간 강철봉으로 판석을 지그시 누르는 천문석.
콰직-
단단한 판석에 금이 가는 순간 용역 헌터는 마른침을 삼키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사님!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이냐면…….”
그리고 정보수집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천문석은 용역 헌터를 한 명씩 훑으며 질문을 던졌다.
가뜩이나 생경한 장소에 끌려 왔는데 머릿수에서도 수인족, 요마괴이에게 밀리고 있었다.
크게 위축된 용역 헌터들은 천문석이 강철봉으로 판석에 금만 만들어도 술술 입을 열었다.
그러나 어디든 뻗대는 놈은 있는 법!
“하! 그걸로 내 머리라도 박살 내게!? 때려 봐라. 새끼야! 이세기 새끼 때문에 어차피 망한 인생이야!”
“…….”
칠성파 김기철이 머리를 들이밀며 자해공갈단처럼 뻗대고 있었다.
‘하, 이 조폭 새끼! 딱밤 마렵네!’
당장이라도 전법륜인 딱밤을 갈기고 싶었으나, 숨을 죽이고 이쪽을 주시하는 용역 놈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김기철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 완전히 겁을 먹고 입을 다물 확률이 컸다!
그렇다면 여기선 당근이다!
쪼르륵-
천문석은 허리춤에 매어 둔 술병을 기울여 잔에 술을 담았다.
이세기 뱀술, 칠전팔기를!
“흥분하기는 야, 우선 이거부터 한잔 마셔라.”
“어, 이 냄새…… 술!?”
의심스럽게 술잔을 바라보던 조폭 김기철이 칠전팔기를 마시는 순간!
“어, 어어!? 이거 뭐야!?”
김기철은 아찔한 현기증에 비틀거리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
“와! 미친! 이 끝내주는 술 뭔가요!?”
“야, 우선 이야기부터! 쓸만하면 한 잔 더 주지.”
찰랑-
천문석이 술병을 흔드는 순간.
꿀꺽-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 김기철은 홀린 듯이 정보를 불었다.
“사실 저희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이세기라고 미친 악마 새끼가 있는데……!”
“…….”
이 뒤로는 일이 더 쉽게 풀렸다.
술 한잔에 술술 풀려나오는 온갖 정보들!
헌터들은 머리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저기 왕체 정체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뭔데?”
“저놈 중국에서 건너온 놈이 분명합니다!”
“…….”
쓸모없는 정보가 쏟아지고, 수인족, 요마괴이들이 앞을 막고 시비를 걸기도 했다.
“거기 인간 무사님, 그 대단한 술 나도 한잔 좀 주지.”
따악-
으아아악-
그러나 천문석이 날린 전법륜인 딱밤에 동료가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지르자, 사색이 된 얼굴로 사방으로 도망쳤다.
당근과 채찍!
천문석은 마당을 지나 전각을 거침없이 오르며 빠른 속도로 정보를 모아들였다.
30분이 지나 전각 5층에 도착했을 때.
천문석은 필요한 정보를 모두 파악했다!
용역 헌터들은 그림자 마수에게 잡혀서 끌려 왔고, 칠성파 김기철, 중국에서 건너온 왕체와 최림. 보스 셋은 하늘 고래에게 실려 왔다.
만반의 준비를 한 게 어이없게도. 최설과 한호석 교수, 허준, 진교은과 특급 헌터는 이 전각에 없었다.
그래도 헛수고는 아니었다.
동료들의 실마리를 잡았으니까!
몇몇 용역 헌터들이 진교은과 특급 헌터를 탑에서 봤다!
파편화된 정보를 모으니 두 사람이 있을 장소를 특정할 수 있었다!
바로 저기!
천문석은 5층 전각에서도 올려다보이는 장원을 바라봤다.
북쪽 언덕 위에 자리한 성주 장원!
특급 헌터와 진교은은 저곳 성주 장원에 있었다!
바로 앞에 두고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바로 움직여 특급 헌터와 진교은부터 빼낸다!
“어떻게?”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바로 해결 방법이 떠올랐다.
호랑이 일족의 장원에 오던 길에 본, 북쪽 언덕으로 향하는 수레와 지게 행렬.
진상품!
청주로 만든 뱀술 몇 통을 진상품으로 바치면 간단히 들어갈 수 있다!
‘오늘 바로 처리한다!’
천문석의 시선이 마당으로 움직였다.
나무 그늘에 놓인 평상 위 허망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셋이 보인다.
칠성파 김기철, 중국에서 온 왕체와 최림.
칠성파 김기철은 신동대문에서 악연으로 얽힌 놈이고.
왕체와 최림은 모종의 이유로 중국에서 온 녀석들이었다.
다른 정보는 술술 부는 놈들도 왕체와 최림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간접적인 정황만으로도 두 사람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최설!
두 사람은 삼합회 단주의 딸 최설을 잡으러 한국에 왔다!
김철수 사무실 최고의 인재 최설을 노리다니!
천문석은 하늘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더니,
불공평, 불공정!
자기 맘대로의 대명사!
하늘의 저울이 정말 오랜만에 인과응보를 보여 줬다!
열심히 사는 자신과 김철수 사무실의 인재 최설을 괴롭힌 용역 헌터 40인과 보스 셋!
이들은 이종족의 도시 적염성, 호랑이 일족의 장원감옥에 갇혀 무기력하게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럼 모두 고생해라! 카카카-.’
천문석은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바로 몸을 돌리려 했다.
땡, 땡, 땡-
이때 종소리가 울리고 높게 솟은 정문이 좌우로 열렸다.
그리고 줄줄이 들어오는 일꾼들!
“밥 시간이다!”
“킁, 킁- 이 냄새! 술도 있다!”
“얼른 뛰어가서! 인간 놈들 밥도 뺏어 먹자!”
……
무기력하게 늘어졌던 인간, 수인족, 요마괴이 모두가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달렸다!
“와 이놈들 무슨 황금 마차 발견한 군인들 같네!”
천문석이 새삼 감탄하며 일꾼들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을 볼 때.
“……어?”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에 보자기.
얼굴에 천을 두르고.
단색의 일꾼 옷을 입은 채.
커다란 궤짝을 두 손으로 번쩍 들고 들어오는 익숙한 체형의 사람…….
“……최설?”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내력을 실어 눈을 부릅떴다!
최설이 맞다!
김철수 사무실 최고의 인재 최설!
“아니, 최설이 왜 여기서 나와!?”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보였다.
전각을 향해 걸어오는 최설.
최설의 동선에 걸리는 평상.
평상에 앉아 있는 왕체와 최림!
[최설 vs 왕체, 최림]
도망치는 자와 잡으려는 자가 호랑이 일족의 감옥에서 마주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