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25화 (62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25화>

휘이이잉-

까마득히 높게 솟은 탑에 칼바람이 몰아치는 순간.

모두에게서 잊힌 한 사람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으아악- 젠장! 뭔 탑을 이렇게 높게 올린 거야! 아직 반의반도 못 내려왔잖아!”

분노를 담아 외치는 사람은 화강암 탑에 찰싹- 달라붙어 기어 내려 오고 있는 소녀, 미호였다.

미호는 탑 정상에서 일어난 일을 되뇌었다.

하늘 고래는 뭘 던져 줘도 내려 오지 않고, 출입구는 엄마의 봉인으로 완전히 잠겼다!

그대로 있다간 결국 병사들에게 발견되어 집으로 끌려가 정략결혼을 하게 될 상황!

미호는 최후의 방법을 사용했다.

은신술을 펼친 채 까마득한 탑을 몸으로 기어 내려가는 것!

도시 전체가 축제로 들썩이고 있다.

탑에서 내려 오기만 하면 도망치는 건 쉬웠다!

모든 건 계획대로 됐다.

단 한 가지 예상치 못한 건, 탑이 상상 이상으로 너무 높았다!

벌써 몇 시간째 탑을 내려왔지만, 아직도 지상은 까마득하게 멀었다.

팔다리가 파르르 경련하고, 목과 어깨,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당장이라도 허공으로 몸을 날려 깃털 낙하의 주술을 사용하고 싶지만. 이 탑 주위에서는 하늘 고래만 날 수 있었다!

이건 적염성을 세운 성주님이 탑이 건 대주술!

자신의 힘으로는 깨는 게 불가능했다!

“으으으- 엄마 말대로 무공을 배워두는 건데…….”

주술만 파고든 과거가 너무나 후회됐다.

미호는 후회와 고통, 분노와 울분 온갖 감정을 쏟아 내면서도 쉬지 않고 팔다리를 움직였다.

멈추면 안 된다!

칼바람에 몸이 얼어붙으면 바로 추락이다!

“젠장, 젠장, 젠장!”

미호가 악을 쓸 때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팡팡, 파아앙-

한참 전부터 도시 하늘에 울려 퍼지던 폭죽 터지는 소리!

이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탑 반대편에서 불쑥 튀어나온 오색의 불꽃을 흩날리는…….

“하늘 고래!?”

몸길이 50cm 남짓!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주 작은 하늘 고래가 나타났다!

구으, 구으응-

작은 울음소리를 내며 지느러미를 흔들 때마다, 반짝이는 물방울이 흩날리고.

휘이이이잉-

이 물방울이 바람에 실려 둥실 멀어지더니 터진다!

팡팡, 파아앙-

폭발 순간 오색의 불꽃이 쏟아지고 풋풋한 풀 향기가 밀려 왔다!

미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무리 작아도 하늘 고래는 하늘 고래!

이 녀석에게 매달리면 안전하게 지상으로 내려갈 수 있다!

그리고 이녀석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

미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아무 관심 없는 척했다.

퐁퐁, 퐁퐁퐁-

점점 커지는 이 소리!

23, 19, 17, 13, 11미터…….

하늘 고래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와라!’

온 마음을 모아 기원하며, 몸을 날려 잡을 타이밍을 잴 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 정도면 돼? 더 가야 해?]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작은 하늘 고래 등 위에 탄 일렁이는 형체가 보였다!

마치 찰랑거리는 호수에 비치는 물체처럼 흔들리는 형체!

그러나 형체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어린 꼬마!

“너 뭐야!?”

[나? 세연 누나가 불러서 꿈꾸고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돌아오는 대답!

이 대답을 듣는 순간 미호는 깨달았다.

환몽(幻夢)!

그것도 남의 꿈에 들어가거나, 자신의 꿈으로 다른 사람을 불러들이는 수준이 아니다!

꿈꾸는 자신을 현실 세계에 투영했다!

그야말로 아득한 경지의 환몽!

높은 바람, 류호.

요괴선의 경지에 달한 엄마도 불가능한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경지다!

“……!”

팡팡, 파아앙-

이때 오색 불꽃이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고, 충격으로 굳었던 미호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지금 중요한 건 탑을 내려가는 것!

상대가 누구든지 가릴 때가 아니다.

미호는 재빨리 외쳤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까이 와주세요!”

[알았어! 퐁퐁아 더 가까이 가자.]

퐁, 퐁, 퐁-

작은 하늘 고래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7, 6, 5, 4, 3미터……!

그리고 손을 뻗으려는 순간 하늘 고래는 멈췄다!

“조금만 더 와 줘!”

미호가 다급히 외쳤지만, 작은 하늘 고래는 움직이지 않았다.

“저기 조금만 더 오게 해 주세요!”

[좀 더 가야 하나 본데?]

구으으, 구으으응-

작은 하늘 고래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일렁이는 아이 형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데? 하늘에서 도와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는데?]

“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순간 작은 하늘 고래와 일렁이는 아이 형체가 대화를 시작했다.

[그냥 퐁퐁이가 조금만 더 가서 도와주면 안 돼?]

구으, 구으으-

[나는 태워 줬잖아? 저 누나 되게 힘들어 보이는데?]

구응, 구으으응-

[아, 아! 그렇구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구으으, 구으으응-!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더니, 너무나 불길하게도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형체와 작은 하늘 고래!

“지금 뭔데요!? 뭐예요!? 어떻게 된 거예요!?”

미호가 다급히 외치는 순간.

아이 형체는 고개를 휙휙 저으며 말했다.

[하늘이 이렇게 말했대. ‘인생은 독고다이야!’ 에휴- 독고다이면 어쩔 수 없잖아.]

“……!”

미호는 순간적으로 손발에 힘이 풀려 떨어질 뻔했다!

‘뭐, 아니! 지금 이게 뭔 소리야!?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인생은 독고다이!?’ 지금 하늘이 그렇게 말했다고!? 그걸 믿으라는 거야!?’

끓어오르는 분노를 쏟아부으려는 순간.

일렁이는 아이 형체가 벌떡 일어나는데 보였다.

상대는 까마득한 경지의 주술사!

끓어오르던 분노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생각해 보니까 인생은 독고다이가 맞는 것 같았다.

미호가 눈물을 삼키며 재빨리 탑을 기어 내려가려는 순간 씩씩한 외침이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네!?”

[이야아아압-]

기합 소리와 함께 펄쩍 뛰는 아이 형체.

아이 형체가 허공을 날아 미호 바로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자, 이제 내가 내려가는 걸 도와줄게!]

미호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 주술사님!”

[뭘. 자! 내가 하는 거 잘 보고 따라 해. 이렇게 하면 금방 내려가!]

미호는 모든 정신을 하나로 모아 아이 형체를 살폈다!

[이야얍!]

씩씩한 기합과 함께 벌떡 일어나는 아이 형체!

아이 형체는 수직으로 솟은 탑을 밟고 일어서 달렸다!

다다다다닥-

마치 평지를 달리듯이 자유롭게 탑을 달리는 놀라운 모습!

“……!”

미호는 환희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바로 이거다!

이 방법이면 순식간에 탑을 내려갈 수 있다!

이때 탑을 달리던 아이 형체가 멈춰 서더니 외쳤다.

[봤지!]

“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 ]

“…….”

‘뭐지, 왜 가만히 있어?’

한참을 기다리던 미호가 입을 열었다.

“저, 주술 안 걸어 주시나요?”

[주술?]

“그 탑을 밟고 달리는 주술요.”

[이거 그냥 하면 되는 건데?]

“……네? 그게 무슨…….”

이 순간 번개같이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분명 아닐 거다!

그러나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꿀꺽-

미호는 마른침을 삼키고 애써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저 혹시 도와주신다는 게…… 시범을 보여 주신다는 건가요? 그건 아니죠? 하하-.”

아이 형체는 휙휙-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데? 이건 그냥 하면 되는 거잖아? 퐁퐁이 너도 할 줄 알지?]

구으, 구으응-

어느새 다가온 하늘 고래가 대답하듯이 울고는 탑에 찰싹 달라붙어 가슴지느러미로 탑을 기었다.

쓱쓱, 쓰스스슥-

[퐁퐁이 하는 거 봤지? 아주 쉬워!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이렇게 하면 엄청 빨리 내려갈 수 있어!]

“…….”

뭐지, 배고프면 밥을 먹으라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이 이야기는?

미호는 어째선지 방금 전 들은 이야기가 머리에 떠올랐다.

‘인생은 독고다이야!’

순간 배 속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뜨거운 열기가 솟구쳤다!

미호는 팔다리를 움직여 다시 탑을 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인생은 독고다이다!’

타인의 도움에 기대지 않고, 홀로! 내 힘으로 내려가리라!

그러나 미호는 지금까지처럼 홀로 탑을 내려갈 수는 없었다.

으악, 으아악-

악을 쓰며 탑을 기어 내려가는 매 순간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게 아니지!]

[누나! 이렇게 이렇게! 내려 오란 말야!]

구으, 구으응-!

[이렇게 하면 빨리빨리!]

[엄청 빨리빨리 내려갈 수 있다니까!]

구으으, 구으으응-!

파바바바밧-

쓱쓱, 쓰스스슥-

미호 바로 옆 아이 형체와 작은 하늘 고래가 탑에 찰싹 달라붙어 위아래로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조언했다!

“…….”

미호는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외쳤다.

‘독고다이라며! 쟤들 좀 데려가!’

휘이이잉-

그러나 매서운 칼날 바람만 불어올 뿐 하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여명이 밝아 올 때까지도!

* * *

“……!”

번쩍 눈을 뜨는 순간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이 보였다.

새벽!

벌떡 일어난 천문석은 가볍게 몸을 풀며 어젯밤의 결과물을 확인했다.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나무 술통 하나, 중간 크기의 술통 7개!

마탄에 오염된 술과 아카린이 구한 청주를 베이스로 만들어 낸.

이세기 뱀술, 칠전팔기다!

자신이 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아카린이 오는 대로 호랑이 일족 장원으로 출발하기만 하면 된다.

천문석은 수건을 하나 챙겨 씻기 위해 우물로 걸어갔다.

그리고 널브러진 하늘 고래를 봤다.

“…….”

어린 하늘 고래는 만취한 대학생이 변기를 붙잡고 잠든 것처럼 우물을 지느러미로 꼭 붙잡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너 뭐하냐?”

번쩍 들어 올리니, 진한 풀 내음이 확 쏟아지고 힘겨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구으으으으-

얼핏 봐도 숙취로 제 상태가 아니다.

그 독한 술을 다 마셨으니 당연했다!

“무슨 영물이 술에 취해서 이 모양이냐?”

구으, 구으으응-

큰 소리에 머리가 울리는지 동글동글한 얼굴을 찡그리는 하늘 고래.

“야, 물 마셔봐. 좀 나아질 거다.”

천문석은 우물물을 길어 대접에 부어 줬고.

하늘 고래는 대접에 얼굴을 박고 단숨에 물을 들이마셨다.

얼굴과 몸을 씻는 동안 대접에 부어 준 물만 7통!

엄청난 양의 물을 마신 하늘 고래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퐁, 퐁, 퐁-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숙취 후유증인지 지상 1미터 이상 날아오르지 못했다!

이때 아카린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 나 왔다!”

창살로 막힌 수로 방향!

아카린은 돛이 달린 작은 배를 타고 나타났다.

“너, 그 배!”

“바로 빠져나갈 수 있게 준비했다!”

아카린은 창살을 열고 들어와 배를 단단히 고정하며 말했다.

“이 배 말고 하누만 농악대도 불렀다.”

“하누만 농악대라고?”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씩 웃으며 대답하는 아카린.

“하누만 농악대 녀석들. 시선 잡아끄는 데는 최고다!”

천문석은 아카린의 생각이 짐작됐다.

시선을 돌리려는 거구나!

“고생했다. 감옥 위치는 확인했냐?”

“어, 잠시만.”

아카린은 품에서 종이를 꺼내 건넸다.

“제대로 된 지도는 아니고 일하는 사람 찾아서 간략하게 그렸어. 마차랑 변장할 옷은 장원 근처에 준비했고.”

천문석은 종이를 펼쳐 훑었다.

사각형이 겹치는 듯한 구조의 장원.

세세하지는 않지만, 인간들이 잡혀 있는 감옥의 위치와 빠져나갈 길을 찾는 데는 충분했다.

“그럼 바로 출발할까?”

아카린의 말에 천문석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긴 하루가 될 거다. 아침 먹고 출발하자.”

천문석과 아카린은 든든한 아침 식사를 먹고 바로 호랑이 일족의 장원으로 출발했다.

아카린은 커다란 술통이 담긴 지게를 짊어지고 앞장서고.

천문석은 옷 안에 깊이 잠든 하늘 고래를 넣고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계획에 따라 뒤엉킬 하루가 시작됐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시작은 천문석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