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21화>
“그러니까. 네가 저 탑에서 인간들을 업고 내려왔다고?”
아카린이 눈을 빛내며 묻는 순간.
비익족 전사는 아카린이 사준 공짜 술을 연신 들이켜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술 먹다가 깜빡 졸다 깨니까. 탑 정상이더라고. 분명 하누만 놈들 짓이야! 하누만 놈들 이제는 길 안 잃은 사람도 아무나 데려다가 술이랑 바꿔 먹는다니까! 내가 전에도…….”
분통을 터트린 비익족 전사가 엉뚱한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쿵-
아카린은 탁자를 두들겨 말을 끊었다.
“야, 그건 됐고. 탑에서 업고 내려왔다는 인간들! 그 이야기 해 봐라!”
“……어 그러니까. 40명쯤 됐나? 속옷만 입은 남녀였는데…… 그 인간들 전신에 붉은 회초리 자국이 잔뜩 난 채로 기절했더라고. 캬- 술맛 좋다. 한 병 더 시켜도 되냐?”
탁자에 놓인 빈 술병만 10병!
‘이런 돼지 같은 녀석!’
내심 분통이 터졌으나 간신히 잡은 실마리, 어쩔 수 없었다!
“여기 술 한 병 더!”
아카린은 손을 들어 술을 시키고 이야기를 채근했다.
“야, 빨리 말해 봐. 그래서 걔네들 어떻게 됐어?”
꿀꺽, 꿀꺽-
비익족 전사는 병째로 술을 마시며 대답했다.
“덩치가 엄청 크고 눈에 푸른 벼락이 담긴 호인족 전사가 그 인간들 업고 탑에서 내려가라고 명령하더라고. 그래서 간신히 업고 탑을 내려왔더니. 수인족 병사들이 몰려 와서 수레에 싣고 갔다.”
비익족 전사는 힐끗 눈치를 봤다.
이 짧은 정보로 11병의 공짜 술을 먹었다.
비익족 전사는 앞에 앉은 호구가 속았다고 분노할까 봐 눈치를 봤다.
그러나 아카린은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심 환호하고 있었다.
덩치가 크고, 눈에 푸른 벼락이 담긴 호인족 전사!
듣는 순간 바로 누군지 알아챘다.
술을 납품하며 멀리서 얼핏 본 기억이 난다.
호랑이 일족의 가주, 탄!
그렇다면 수인족 병사들이 탑에서 내려온 인간을 데려갔을 장소도 뻔했다.
호랑이 일족의 장원!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사람들을 심문하는 감옥에 가뒀을 거다!
갑자기 탑 정상에 나타난 40여 명의 인간!
호랑이 일족의 장원 감옥에 갇힌 인간 중에 이세기가 찾는 동료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카린은 번쩍 고개를 들고 질문을 던졌다.
“너 혹시 그 인간들 이름 아냐?”
“내가 이름을 알 리 없잖아? 걔네들 전부 기절했다니까?”
“그럼 생김새는? 그 인간들 어떻게 생겼어?”
“야, 비인족이 인간을 어떻게 구분해? 게다가 40명이나 됐다니까? 어이, 친구들 이 친구가 나한테 인간 생김새를 묻네?”
사방에서 웃음이 터지고,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실마리를 찾았으니 이제 차근차근 추적해 나가면 된다.
“정보 잘 들었다.”
아카린이 바로 몸을 일으킬 때.
비익족 전사가 다급히 말했다.
“잠깐만 나한테 다른 정보도 있어!”
“다른 정보?”
“그래 이건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급 정보야!”
아카린의 표정에 호기심이 드러나자.
비익족 전사는 날개를 펼쳐 주위 이목을 가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성주님! 새로운 성주님에 관한 정보다!”
아카린의 얼굴에 생겨난 호기심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이세기는 뱀술을 만들고, 자신은 이세기의 동료들을 찾을 정보를 구한다.
지금 중요한 건 이세기의 동료들을 찾을 정보다.
새로운 성주에 대한 정보는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야, 됐어.”
아카린은 주저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이세기의 동료들을 찾을 실마리, 하늘 고래가 싣고 온 인간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
여기에 더해 적염성에 떠도는 소문을 모았고, 뱀술로 바꿀 청주의 주문도 끝냈다.
우선 이세기에게 자신이 찾은 실마리를 전하는 게 먼저다.
아카린은 성큼성큼 술집을 가로질렀다.
이때 수인족 병사가 벽에 붙은 방 옆에 새로운 방을 붙이는 모습이 보였다.
-3일 밤, 3일 낮 축제를 한다.
-모두 맛있는 고기를 먹는다.
-축제 동안 고등어는 금지한다!
-성주님이 친견하시는 대회를 연다.
-축제 마지막 날 여우 일족과 호랑이 일족의 결혼식을…….
……
“대회?”
아카린은 발걸음을 멈추고 새로 붙은 방에 적힌 대회 항목을 자세히 살폈다.
-대회 우승자에게는 성주님이 직접 엄청난 보물을 수여한다.
-대회 종목 : 닭싸움, 말뚝박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그러고 보니!?’
아카린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술집 안을 훑어봤다!
그르르륵, 딱-
탁자 위에서 구슬을 치는 요괴들!
팡, 파아앙-
바닥에 딱지를 때리는 인간과 도깨비!
술집 안에서 구슬치기, 딱지치기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처음 술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상했지만, 간만에 온 적염성이 한층 더 미쳐 돌아간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성주가 구슬치기 대회를 연다는 방이 붙었다!
‘이 녀석들 이 대회 준비를 하는 거구나!’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하는 순간 구슬을 날리고, 딱지를 내려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승자한테 준다는 보물이 뭘까?”
“혹시 경계석 주시는 거 아닐까!? 엄청난 보물이라잖아!”
“하, 꿈도 거창하네? 어차피 성주 12 가문 허수아비야! 뭐 금덩어리나 좀 주겠지.”
“그거 헛소문이라는데? 그 곰 일족 가주, 태웅이 머리가 깨졌다던데?”
“그 소문 나도 들었어! 이번 성주 엄청난 폭군이라더라! 탄과 류호도 설설 기고 있대!”
“경계석은 몰라도 한자리는 받을 것 같은데?”
“그런데 닭싸움이랑 말뚝 박기는 뭐야? 투계(鬪鷄), 바위 말뚝 박는 건가?”
……
인간과 수인족, 요마괴이 들은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연신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연습했다.
“…….”
이 모습을 본 아카린은 전 적염 성주의 기행이 생각났다.
-가장 멋진 버섯 기르기.
-가장 예쁜 겨우살이 채취하기.
-가장 맛있는 벌꿀 모으기.
……
어이없는 대회들.
그리고 가장 황당했던 대회.
-가장 악당처럼 웃기.
대회 자체도 어이없었지만, 이 대회의 우승자에게 주는 부상들도 황당했다.
도시의 주요 이권들!
지금 적염성의 12 가문들은 전 적염 성주가 연 대회에서 우승해 받은 이권을 기반으로 성장한 가문들이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대회라니!
이번 성주도 전 적염 성주 못지않았다!
“……하, 어떻게 된 게 적염 성주는 다 이 모양이야?”
아카린은 깊게 탄식하며 술집을 나와 여관으로 바삐 걸어갔다.
끼이익-
술집 문이 닫히는 순간 구석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있던 무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다란 장포를 입고 검대에 날렵한 검 두 자루를 찬 채 손에는 술병을 든 무사.
최설!
무림인으로 위장한 최설은 직선으로 술집을 가로질러 비익족 전사의 탁자 위에 술병을 내려놨다.
탁-
비익족 전사가 고개를 드는 순간, 최설은 은근한 어조의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한 이야기. 나도 좀 들을 수 있을까?”
* * *
“으아아- 겨우 다 끝났네!”
천문석은 크게 기지개를 켜며 항아리를 살폈다.
작은 항아리 안에는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물이 반쯤 채워져 있었다.
이 투명한 물이 수백 마리 독사의 독액과 거머리 풀을 일기일원공으로 정제해 만들어 낸, 천마 뱀술의 재료였다!
퐁, 퐁, 퐁-
하늘 고래가 항아리 안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야, 이건 먹으면 안 돼.”
천문석은 가볍게 하늘 고래를 밀어냈다.
이제 이 재료를 마탄의 마력으로 맛이 간 술과 섞어 일기일원공으로 다시 한 번 정제하면 뱀술, 칠전팔기가 만들어진다.
우선은 아카린에게 확인시킬 시제품부터!
천문석은 술통에 박힌 나무 마개를 뽑아 맑은술을 대접에 담았다.
그리고 재료가 담긴 항아리를 가볍게 툭 치는 순간.
퐁-
정제한 독액이 저절로 튀어 올라 맑은 술이 담긴 대접으로 떨어졌다.
투명한 물방울이 황금빛 술에 떨어지는 순간 물속에 물감이 퍼져 나가듯 붉고푸른 기운이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이 순간 천문석은 움직였다.
왼손에 일기공.
오른손에 일원공.
술이 담긴 대접을 중심으로 왼손에는 대지의 일기공, 오른손에는 하늘의 천원공이 펼쳐진다!
이 순간 대접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 안에 담긴 술이 폭풍이 몰아치듯 요동쳤다!
파르르르릇-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회전하는 붉고 푸른 기운!
높게 솟아 산산이 부서지며 떨어져 내리고, 새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쳤다!
어느새 색은 사라지고 황금빛 술이 물처럼 투명하게 변하는 순간.
짝-
왼손과 오른손이 부딪혔다!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지고, 내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며. 너무나 가벼운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전생 천마가 익힌 연단술의 극치였다!
왼손의 일기공은 대지이자, 음!
오른손의 일원공은 하늘이자, 양!
이 박수는 음과 양의 충돌이고, 하늘과 땅을 가르는 폭발이다.
혼돈에서 태극이 생겨나고, 천지가 갈라져 세상이 열리는 개벽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운이 모인 일 점!
대접에 담긴 맑은 술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린 하늘 고래는 동그래진 눈으로 빛을 뿜어내는 맑은 술을 바라봤다.
천상의 감로수와 같은 오색의 빛을 뿜어내는 술!
그러나 이 상태로는 결함품일 뿐이다.
아무리 마셔도 정신이 명료한 술!
취하지 않는 술을 누가 마시겠는가?
천문석은 전법륜인의 수인을 짚으며 빛을 뿜어내는 술에 마음에서 마음으로 의념을 심었다.
“자양강장, 허리튼튼, 정력제일…….”
잠시 후 빛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 마침내 완성됐다!
이세기 뱀술, 칠전팔기(七顚八起)!
천문석은 바로 술의 상태를 확인했다.
술이 담긴 대접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순간.
술 한 방울이 저절로 튀어 올라 입안에 떨어졌다.
“……!”
화한 냉기가 입가에 담겼다가, 다음 순간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흐르는 기분 좋은 전율!
전생에 만들었던 천마 뱀술을 아득히 뛰어넘는 엄청난 술이 만들어졌다!
“와, 이거 뭐야!?”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베이스가 된 술, 하누만 주조장인의 맑은 술 때문이구나!
거기에 정품 마탄의 마력과 23종 독사의 독액을 정제한 재료.
반야공을 사용한 전생과 달리 일기일원공을 사용한 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모든 게 어우러진 결과 그야말로 인세에 다시 없을 특급 뱀술이 탄생했다!
경매장에서 억 단위로 팔린다는 와인이 이러할까?
“캬- 완전 로또 터졌네!”
천문석은 스스로 만들고도 감탄했다.
이때 커다란 바구니를 든 아카린이 나타났다.
“뭐야!? 벌써 완성한 거야!?”
“왔냐? 시범 삼아 약간만 만들었다. 시음해 봐라. 생각보다 더 괜찮은 게 나왔다.”
반색한 아카린은 한달음에 달려와 바구니부터 건넸다.
“그 바구니에 식사 거리랑 이것저것 담았다! 어디!”
쪼르륵-
대접에 담긴 술을 넓은 잔에 따르고 얼굴로 가져와 빙글빙글 돌리는 아카린.
코로 향기를 마시고, 눈으로 그 빛깔을 담는다.
뱀술이라고는 믿겨 지지 않는 깔끔한 풀 내음을 지닌 물처럼 투명한 술이 보였다.
조심스레 기울여 입술을 대는 순간.
아카린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이 느낌!
입술, 혀, 입안에 닿는 매 순간.
차갑고 뜨거운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독화살에 오염된 이질적인 마력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기분 좋은 전율이 몸을 달린다!
그와 동시에 전신의 기력이 몸의 중심으로 모이는 게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칠전팔기의 효능!
감이 왔다!
이 술은 반드시 먹힌다!
탁-
술잔을 내려놓은 아카린은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최고다! 이 술 내가 생각한 거보다 몇 배나 좋다! 아니, 내가 마신 술 중에 최고야!”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술통을 두들겼다.
“바탕이 되는 술이 워낙 대단해서 그래. 보통 청주로 만든 술은 이것만큼은 아닐 거다. 잘해야 한 1할? 그 정도 나올 거다.”
아카린은 희열에 눈을 번뜩였다.
“야, 그 정도면 충분해. 이 술 하누만 주조장인이 빚은 맑은술이다. 일반 청주랑 가격 차이가 천 배가 넘어! 일반 청주가 오히려 수익이 더 높을걸!? 우리 완전 대박 날 거야!”
하하하하하-
아카린은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천문석의 어깨를 두들겼다.
아카린의 말이 맞았다.
단가 차이가 워낙 커서 일반 청주가 오히려 마진이 높을 거다.
하누만 주조장인의 술로는 호랑이 일족의 결혼식에 참가할 적염성의 주요 인사를.
일반 청주를 정제한 술로는 적염성의 일반인들을 공략하면 된다!
아카린의 반응을 보니 바로 칠전팔기로 바꾸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전에 꼭 확인할 게 있었다.
천문석은 웃음을 지우고 진지한 얼굴로 질문했다.
“내 동료들 정보 찾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