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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18화 (61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18화>

“나다.”

얼굴에 천을 칭칭 휘감은 아카린이 슬쩍 천을 들어 얼굴을 보여 주는 순간.

성문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와락 일그러진 표정으로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

거만하게 의자에 앉아 있던 선임 경비병이 벌떡 일어나 재빨리 달려왔다.

그리고 슬쩍 아카린의 품에 무언가를 집어넣으며 사정하는 조로 말했다.

“아유, 선생님. 왜 자꾸 남문으로 오시고 그러십니까? 다음에는 서문으로 꼭 좀 부탁드립니다!”

“생각 좀 해 보고!”

아카린은 당당히 외치고 천문석에게 손짓했다.

“얼른 가자! 내가 잘 아는 여관 있는데 거기에 양조 설비 있어!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멍하니 아카린을 보던 천문석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성문으로 들어갔다.

‘와, 이녀석 뭘 어떻게 했길래. 경비병이 뇌물을 찔러줘?!’

슬쩍 뒤돌아보니 경비병들이 굵은 소금을 주위에 뿌리는 게 보였다.

“야, 너 뭘 했길래 쟤들이 저러냐?”

“별것 아닌 거로 자꾸 귀찮게 굴잖아. 그래서 나도 귀찮게 해 줬지.”

아카린은 씨익 웃으며 성문 옆을 가리켰다.

한번 무너졌다가 다시 세운 티가 확연한 성벽을!

“와, 이 미친 새끼!”

천문석이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ㄹ’자로 이어지던 성벽 통로가 끝나고 적염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10여 미터 높이의 성벽 통로 아래 펼쳐진 적염성!

중앙에는 하얀 판석과 검은 판석으로 좌우가 구분된 도로가.

가장자리에는 한 뼘 높이로 솟은 인도가 놓여 있다.

도로에는 말과 소가 끄는 마차와 수레, 뿔이 툭 튀어나온 짐승이 등에 집을 짊어지고 이동하고.

인도에는 인간과 수인족, 요마괴이 수많은 사람이 뒤섞여 걷고 있었다.

아카린은 당연하다는 듯 비탈길을 내려가 도로 가장자리를 걸었다.

“야, 얼른 따라와!”

천문석은 대나무 바구니를 짊어지고 아카린의 뒤를 따라 걸으며 주위를 살폈다.

높게 솟은 처마, 지붕에 기와를 올린 한옥.

층층이 대리석을 쌓아 만든 3층 석조 건물.

나무판자로 벽을 세운 2층 목조 건물.

……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뒤섞인 듯한 건물이 줄줄이 이어진 거리!

이 거리 전체에서 축제 분위기가 물씬 났다!

활짝 문을 열고 술과 음식을 파는 상점들.

인도에 매대를 펼치고 풍선과 장난감, 먹거리를 파는 노점상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거리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파가 가득했고, 활짝 열린 2층 창문에서는 웃음과 환호성, 술 냄새가 솔솔 풍겨 왔다.

어느새 해가 떨어져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지만, 거리는 어둡지 않았다.

매대에 걸려 있는 유리 랜턴.

높게 솟은 처마와 솟을대문에 걸린 초롱.

활짝 열린 문과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

사방에서 쏟아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새하얀빛이 도시를 밝히고 있었다.

이 새하얀빛은 양초나 기름으로 밝혀진 불이 아니었다.

이건 뭐지?

매대에 걸린 유리 랜턴을 자세히 보려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 팝니다! 엽전 세 닢이요!”

“여기 불 주세요!”

불을 판다는 상인은 장대에 걸린 커다란 항아리를 내려놓고, 작은 삽으로 푹- 항아리 속 하얀 점토를 파서 작은 단지에 담아줬다.

엽전으로 셈을 치른 여자가 후, 후- 입바람을 불자 곧 단지에서 새하얀빛이 생겨났다!

여자는 능숙하게 단지를 유리 랜턴에 넣어 노점 매대에 매달았다.

이때 불빛 상인이 크게 소리쳤다.

“거기 도깨비 꼬맹이들! 가로등에 불 좀 밝혀라!”

기다렸다는 듯이 뿔이 솟은 아이들이 달려와 항아리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손에 잡혀 나온 한 움큼의 하얀 점토.

아이들은 능숙하게 쓱쓱- 가로등을 기어 올라, 하얀 흙을 가로등에 넣고 후, 후- 입바람을 불어 빛을 밝혔다.

줄줄이 밝혀진 가로등에 거리는 순식간에 환하게 밝혀졌다!

주르륵- 가로등에서 미끄러진 도깨비 아이들이 불빛 상인에게 달려가 손을 내밀었다.

아이들 손에 놓이는 구운 계란과 감자, 옥수수.

우와아아아-

“다음 골목 밝히러 가자!”

“오늘은 우리가 가장 많이 밝힌다!”

환호성을 지른 도깨비 아이들은 손에 놓인 감자와 옥수수를 뚝뚝- 잘라 친구들에게 나눠 주고 어두운 골목을 향해 달려갔다.

도깨비 아이들 사이사이 외모가 다른 아이들이 같이 달리고 있었다.

꼬리를 살랑이는 수인족 아이, 붉은 눈, 붉은 피부의 마족 아이, 평범한 외모 그러나 머리카락이 붉은 인간 아이.

이 아이들은 달려가며 일제히 노래 불렀다.

“위엄 넘치는 뿔뿔뿔!”

“검게 반짝이는 몸몸몸!”

“눈에선 벼락이 번뜩이고!”

“목소리는 위엄 넘치시네!”

“성주님이 내리시는 명!”

“축제다! 열심히 놀아랏! 맛있는 걸 먹어랏!”

으하하하하하하-

꼬맹이들은 신나게 웃음을 터트리며 어두운 골목으로 달려갔고.

곧 어두운 골목은 환하게 불이 밝혀졌다.

천문석은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도로와 인도에 가득한 사람들.

큰 독이 실린 지게를 짊어지고 바삐 걷는 인간.

커다란 칼을 어깨에 걸치고 지게를 슬쩍 피하는 도깨비 무사.

그 뒤를 따라 불꽃이 넘실거리는 바위 몸으로 쿵, 쿵 걷는 괴이, 화염 바위.

후후후훗-

이때 하늘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하얀 눈송이가 쏟아져 내렸다.

문득 고개를 드니 3층 난간에 앉아 살랑살랑 새하얀 꼬리를 흔들며 장죽을 터는 여자가 보였다.

장죽에서 쏟아진 잿가루는 하얀 눈송이가 되어 화염 바위의 불꽃에 닿았다.

파스스슥-

눈송이에 불꽃이 꺼져 깜짝 놀란 화염 바위가 고개를 드는 순간.

후후후훗-

장난스러운 웃음이 담긴 바람이 불어와 화염 바위의 불꽃을 스쳐 지나간다.

이때 들려오는 환호성!

우와아아아아-!

“으아- 엿이 엄청 많아!”

“이번엔 우리 집 창고 가자!”

“맞아 얘네 집에 고물 엄청 많아!”

“얼른 가져다가 엿 바꿔 먹자!”

푸른 머리카락의 인간 꼬맹이.

이마에 뿔이 솟은 도깨비 꼬맹이.

가슴에 반달무늬가 선명한 웅인족 꼬맹이.

황금빛 털에 검은 줄무늬의 호인족 꼬맹이.

네 꼬맹이가 환호성을 터트리며 커다란 엿을 번쩍 들고 달려갔다.

그리고 엿장수는 겸연쩍게 웃으며 손수레에 녹슨 방패를 올려놨다.

저 방패 녹이 슬었지만, 쇠 값만 해도 한두 푼이 아니다.

엿의 단맛에 홀린 꼬맹이들은 오늘 밤 눈물이 쏙 빠지게 엄마에게 혼날 것이다.

아카린을 따라 걷는 천문석은 어느새 웃으며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이미 아카린에게 이 적염성에 대해서 들었다.

인간과 수인족, 요마괴이가 같이 살아가는 도시.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요마괴이(妖魔怪異).

요괴(妖怪), 마족(魔族), 괴물(怪物), 이물(異物).

천문석은 무저갱의 마굴을 가로지르며 수많은 요마괴이, 요괴, 마신, 괴이들과 싸웠다.

그러나 그들과 지금 자신이 보는 이들은 전혀 달랐다.

마굴의 존재들처럼 욕망에 잡아 먹히지도, 분노에 이성을 잃지도 않았다.

열 명만 모여도 분쟁이 시작되는 게 사람이다.

그런데 적염 성주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인간, 수인족, 요마괴이 꼬맹이들이 같이 놀고 같이 웃을 수 있는 이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다!

권력을 쉽고 사소한 일에 사용하면 그 권위과 위엄은 뚝 떨어진다.

권력은 어렵고 힘든 일,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사용해야만 그 권위와 위엄이 살아난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적염성, 이런 도시를 만드는 일에 말이다.

천문석은 어쩐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적염 성주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도시를 만들었다는 적염 성주를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적염 성주 대단하네.”

천문석이 새삼스레 감탄할 때.

앞서 걷는 아카린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 얼른 와! 이 여관이야!”

“알았어!”

천문석은 한달음에 달려가 여관 앞에서 주위를 돌아봤다.

인간과 수인족, 요마괴이의 도시 적염성.

너무나 흥미로운 도시였지만, 지금은 천마 뱀술, 칠전팔기를 만들어 동료들을 찾는 게 먼저다.

천문석은 몸을 돌려 여관으로 들어갔다.

* * *

천문석이 여관으로 사라지는 순간.

구르르르륵-

도로 북쪽에서 나타난 수레 여러 대가 여관 옆 공터에 멈춰 섰다.

수레를 끄는 병사들을 인솔한 곰 일족의 무사가 명령했다.

“방을 붙이고 사람들을 모아라!”

병사들이 벽과 가로등에 축제를 알리는 방을 붙이고 사람들을 모아오자, 곰 일족의 무사는 수레 앞에서 세 번 소리쳤다.

“성주님이 내리시는 명이다!”

“성주님이 내리시는 명이다!”

“성주님이 내리시는 명이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이목이 모이는 순간.

곰 일족의 무사는 수레를 덮은 두꺼운 천들을 휙 걷으며 다시 한번 외쳤다.

“모두 맛있는 고기를 배불리 먹어라! 성주님의 명이시다!”

여러 대의 수레에는 커다란 화로와 숯.

닭, 양, 돼지, 도마뱀…… 온갖 고기가 꽂힌 꼬치가 높게 쌓여 있었다.

쿵-

커다란 화로가 줄줄이 내려지고 그 안에 숯이 쏟아지고 불을 붙였다.

화르르륵-

화로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자 철망을 깔고 꼬치를 굽기 시작했다.

병사들뿐만 아니라 인솔해 온 곰 일족의 무사까지.

적염성 12 가문, 곰 일족의 무사가 직접 꼬치를 굽는 어이없는 상황!

성주님의 명이란 말에 모여든 사람들은 황당한 얼굴로 이 모습을 봤다.

이때 모여든 사람들 다리 사이에서 푸른 머리카락의 꼬맹이 한 명이 튀어나왔다.

파바바밧-

푸른 머리의 꼬맹이는 곰 일족 무사가 꼬치를 굽는 화로 앞에 착 앉아 조심스레 물었다.

“무사 아저씨. 이거 공짜예요?”

“그래 공짜다.”

순간 푸른 머리 꼬맹이는 빙글 몸을 돌려 크게 외쳤다.

“애들아 이거 공짜래!!”

순간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엇, 얘 뭐야?!”

“아래, 아래에 뭐가 있어!”

화로 주위를 둘러싼 인파의 다리 아래에서 꼬맹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1등!”

“2등!!”

“3등!!”

……

순식간에 무사의 화로 앞에 다닥다닥 앉은 꼬맹이들은 외쳤다.

“이거 진짜 공짜예요?”

“앗! 도마뱀 고기도 있잖아!”

“양꼬치! 양꼬치도 있어!”

“무사 형! 난 양념 많이 발라 주세요!”

“전 반반! 도마뱀, 돼지고기 반반 주세요!”

“무사 아저씨 녹봉 얼마나 받아요?”

“무사 오빠. 검 좀 만져 봐도 돼요?!”

“으어어! 불 엄청 뜨근뜨근해!”

……

꼬맹이들이 쉴 새 없이 지르는 외침에 정신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곰 일족의 무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노릇노릇 맛있게 꼬치를 구웠다!

자신은 그냥 무사도 아닌 밑에 100명의 병사를 둔 백인 대장이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 건 자신만이 아니다.

적염성의 12 가문과 이름이 알려진 모든 문파와 방파, 단체의 무사와 병사, 장로와 실력자들 모두가 도시 곳곳에서 ‘고기’를 굽고, 삶고, 조려서 나눠 주고 있었다.

돌아오신 성주님의 첫 번째 명을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게다가 지금 이곳에서 꼬치를 굽는 자신은 성주님께서 명을 내리시는 모습을 직접 봤다!

지금도 머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

한옥 면류관에 천둥새의 깃털을 꽂고.

오래국 설녀가 만든 12마리 하늘 고래가 수놓아진 경포(鯨袍)를 입고 나타나신 새로운 성주님!

12 가문의 가주와 수십 명의 문주, 방주, 대표들 앞.

옥좌 위에 벌떡 일어선 성주님은 나무막대기를 휙 휘두르시며 명령하셨다.

퐁, 퐁, 퐁-

“고기! 축제라면 모두 맛있는 고기를 먹어야 해! 모두에게 아주 맛있는 고기를 나눠 줘!”

성주님이 명을 내리시는 순간.

곰 일족의 가주가 손을 들고 반론을 제기했다.

“고기보다 물고기가 더 맛있는데요? 물고기를 구워서 나눠 주는 게 어떨까요?!”

“뭐?! 물고기가 고기보다 맛있다고?!”

성주님이 깜짝 놀라 외칠 때.

모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곰 일족의 가주 태웅님은 전부터 눈치가 젬병이었다!

“당연하죠! 펄떡 펄떡이는 연어를 와작- 한입 씹으면 카- 특히 내장이 기막힙니다! 당장 돼지 같은 가축은 그만 키우고! 연못을 파고 강을 이어서 물고기를 대량으로 길러야 합니다!”

성주님은 잔뜩 굳은 얼굴로 입을 여셨다.

“혹시 고등어…….”

“고등어 가져올까요?! 간 고등어 창고에 엄청 많이 있습니다!!”

이 순간 성주님의 작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일어난 일들!

///

“……!”

곰 일족의 무사는 생각만으로도 지금도 몸이 덜덜덜 떨렸다!

‘새로운 성주는 12 가문이 세운 가짜다!’

‘스카라베 왕국에서 허수아비 성주를 보냈다!’

도시를 가로지르면서 들었던 헛소문!

그러나 자신이 본 광경을 직접 봤다면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못하리라!

퐁, 퐁, 퐁-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터져 나온 울음소리!

머리에 도끼를 맞고, 전신에 화살과 창이 박혀도 웃던 태웅님의 그 처절했던 모습!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된다.

새로운 성주님은 무시무시한 폭군이었다!

그런 폭군이 내린 첫 번째 명(命)!

‘모두에게 아주 맛있는 고기를 나눠 줘!’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장난처럼 하신 말씀.

‘진짜 맛있는지, 내가 먹어 보러 나갈 거야!’

곰 일족의 무사는 연신 부채질을 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온갖 고기 꼬치를 구웠다!

적염성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꼬치를 꼬맹이들이 신나게, 어른들이 겸연쩍게 먹고 있었다.

3일 밤, 3일 낮의 축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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