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16화>
적예(赤芮)!
성주님의 이름이 새겨진, 휘파람 소리를 내는 나뭇가지 검!
성주님의 보물이 맞았다!
류호는 격동으로 전신을 떨었다.
하늘 고래와 하누만과 약속해 길을 잃은 사람을 데려오는 탑을 세우고.
기원을 현실로 만드는 하늘 고래의 념(念)이 흐르는 영산을 만들어 기원하셨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만날 수 없었다.
결국, 성주님은 평생에 걸쳐 그리워했으나 만나지 못한 사람을 찾아 다시금 경계를 넘어 떠나가셨다.
그렇게 떠난 성주님의 보물이 성주님이 세우신 이곳 적염성에 다시 돌아왔다!
울리지 않는 종을 울린 적염성의 새로운 성주님의 손에 들려서!
류호는 눈앞의 인간 아이를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흠칫 놀랐다.
아이의 몸 주위에서 원을 그리는 반짝이는 황금 풍뎅이, 스카라베 마법사!
게다가 아이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스카라베 전사가 수족처럼 종을 들어 탑을 내리찍었다!
스카라베 전사와 마법사를 수족처럼 부리는 인간 아이가 적예님의 나뭇가지 검을 들고 찾아왔다!
“당신은 누구……?”
류호가 이름을 물으려는 순간.
“저기다!”
“스카라베 전사!”
“저기서 종을 울리고 있다!”
……
계단을 오른 가문과 문파의 대표들이 크게 외치며 달려왔다.
그 선두 탄의 시선이 류호에게 닿았다.
그리고 그 시선이 류호 앞에 선 인간 아이에게 움직였다.
류호와 인간 아이!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탄은 투지와 기세를 담아 외쳤다.
“인간 꼬맹이 이름이 뭔가!?”
탄의 외침에 담긴 힘에 모두가 움찔하는 순간.
씩씩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나는 특급 헌터다!”
“……네?”
류호가 얼빠진 목소리로 반문하고 대표들이 멍하니 바라볼 때.
쿵-
묵직한 진동과 거대한 외침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호랑이 일족의 가주 탄! 인사 올립니다!”
가장 먼저 인간 아이 앞에 도착한 탄!
탄은 어느새 한쪽 무릎을 꿇고 양손을 마주 잡은 채 왕에게 예를 올리듯 깊게 고개 숙이고 있었다!
돌연한 행동에 모두가 당황할 때.
툭-
탄의 어깨에 닿는 작은 손.
쓱쓱, 쓱쓱쓱-
특급 헌터는 뻣뻣한 어깨 털을 문지르다가 환한 얼굴로 외쳤다.
“훌륭해! 이 털 엄청 멋지고! 따뜻하고! 보드랍잖아! 호랑이 아주 훌륭해!”
탁, 탁탁-
특급 헌터가 연신 어깨를 두들기며 칭찬하는 순간.
번쩍 고개를 든 탄은 연신 굽실거리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항상 털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헤헤헤-.”
“……저게 뭐야?”
“호랑이 일족의 탄이 아부한다고!?”
사람들이 경악할 때.
류호는 탄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바로 깨달았다.
천생 전사인 겉모습과 달리 음흉하고 잔머리에 능한 탄!
화로가 다리로 우뚝 서듯이, 군주의 권위를 세우는 건 신하!
탄은 스스로를 낮춰 새로운 성주의 권위를 높이고 있었다!
이렇게 권위가 오른 성주의 총애를 받는다면,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자신이 머리 쓰기에서 호랑이 일족, 그것도 아직 30년도 살지 못한 어린 탄에게 밀리다니!
류호는 재빨리 나뭇가지 검을 바치고 깊게 고개 숙여 외쳤다.
“여우 일족의 류호입니다!”
“……!”
“……!”
적염성 12 가문의 우두머리, 호랑이 일족과 여우 일족의 가주가 고개를 숙였다!
탑에 오른 대표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사람들 모두가 경악할 때.
탁-
퐁퐁검을 돌려받은 특급 헌터는 손을 번쩍 들고 크게 외쳤다.
“사슴이! 이번에 될 거 같아! 이게 마지막이야! 아주아주! 세게 내리쳐!”
“……마지막?”
“뭐가 마지막이라는 거야?”
모두가 의아해하는 순간.
구으, 구으으응-
대답하는 듯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후우우우웅-
스카라베 전사의 톱날 집게에 잡힌 종이 화강암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이 순간 거대한 종이 산산조각나고 탑 전체에 어린 빛이 폭발했다!
단숨에 하늘로 뻗어 오르는 빛의 기둥!
빛이 하늘에 닿는 순간 바다로 쏟아지는 폭포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방울이 하늘에 펼쳐졌다.
구으으으으으으응-
거대한 종소리와 하늘 끝까지 솟은 빛의 기둥!
[…… 울리지 않는 종을 울리고, 하늘과 땅을 하나로 이으리라.]
수백 년 동안 전해진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탑 위와 아래, 시가지와 성벽, 넓은 강과 높게 솟은 영산.
적염성과 그 주위를 둘러싼 모든 곳에서 들렸고 보였다.
구으으으으응-
천지를 떨어 울리는 종소리와!
파스스스스슥-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빛의 기둥이!
그리고 하늘에 생겨난 물방울 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구으으-
구으으으응-
마치 물 밖으로 뛰어오르듯 쏟아져 나오는 하늘 고래.
수많은 하늘 고래가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빛의 기둥 주위를 유영했다!
천지를 울리는 거대한 종소리가 영육(靈肉)을 뒤흔들고. 안개처럼 쏟아지는 하늘 고래의 념이 혼백(魂魄)에 스며든다.
이 순간 천지를 잇는 빛의 기둥에서 전해지는 압도적인 힘!
저절로 머리가 숙어지고 경외심이 솟아났다.
인간, 수인족, 요마괴이!
적염성의 모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광경에 넋을 놓고 탑을 바라봤다.
이 순간 이 광경을 보는 모두는 깨달았다.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약속이 이뤄졌다!
적염성의 진정한 주인, 성주님이 나타나셨다!
모두의 가슴속에서 경외와 찬탄이 싹트는 이 순간.
적염성의 새로운 성주, 특급 헌터는 산산이 조각난 종 잔해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사슴이! 반짝이! 잘 찾아 봐! 분명 적혀 있었다니까!”
구으으-?
띠디딛디디-?
“진짜라니까! 내가 똑똑히 봤어!”
이때 잔해 속에서 반짝이는 빛!
“여기닷!”
특급 헌터는 재빨리 쇳덩어리를 치우고 빛이 반짝인 구멍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꼼질꼼질-
“으앗- 모자라잖아! 사슴이 나 좀 밀어 봐봐!”
사슴벌레가 커다란 몸으로 슬쩍 미는 순간.
쑥 밀려들어가는 손!
“잡았다!”
구멍에서 휙 빠져나온 특급 헌터의 손에는 오래된 붉은 반지가 놓여 있었다.
“이거 봐! 내 말 맞지!”
특급 헌터는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반지를 보여 줬다.
그리고 오래된 반지 안, 아주 오래전 새겨진 듯한 한글을 더듬더듬 읽었다.
[류. 세. 연.]
조각난 종의 잔해에서 나온 반지에 새겨진 익숙한 이름.
그러나 특급 헌터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고개를 내리자 조각난 종 조각에 새겨진 한글이 보였으니까.
[하늘 고래]
지금은 산산조각났지만, 이 앞뒤로 이어지던 문장을 똑똑히 기억했다.
[이 종을 세게 내리치면 하늘 고래가 올 거야. 그리고 이 안에 멋진 반지도 넣어 뒀어. - 류세연.]
특급 헌터는 반지를 번쩍 들어 태양에 비춰봤다.
태양 아래 붉게 빛나는 반지 안쪽에는 또 다른 글자가 적혀 있었다.
[赤芮]
꼬불꼬불 처음 보는 글자를 보는 순간.
휘잉-
가슴속으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찌릿찌릿-
반지를 잡은 손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주아주 훌륭해! 이 반지는 9점이야!”
특급 헌터는 신나게 외치고 목걸이에 반지를 걸었다.
이 9점짜리 반지는 집에 가면 세연 누나에게 줘야 했다.
잃어버린 물건은 주인에게!
특급 헌터는 언제나 정의로워야 하니까!
* * *
반지를 찾은 특급 헌터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쿵, 쿵, 쿵-
곳곳에서 무릎 꿇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적염성 12 가문의 가주, 유력 문파와 방파, 단체의 대표들은 일제히 외치기 시작했다.
“성주님을 뵙습니다!”
“적염 성주님을 뵙습니다!”
……
“성주!? 내가 성주라고!? 그 성!? 성벽 있고 공성전 할 수 있는 성!”
특급 헌터가 깜짝 놀란 얼굴로 묻는 순간.
탄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성주님! 저기 보이는 성벽 안에 보이는 모든 것! 이 적염성의 모든 게 성주님의 것입니다!”
“……!”
특급 헌터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외쳤다.
“박스성이 철거당했는데…… 진짜 성이 생겼잖아! 사슴이 반짝이! 나 다시 성주가 됐어!”
구으으-
띠디딛-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가 우는 순간.
특급 헌터는 퐁퐁검을 번쩍 들고 외쳤다.
퐁, 퐁, 퐁-
“고기다! 고기! 이런 기쁜 날에는 모두 고기를 먹어야 해!”
이 순간 류호가 앞으로 나서 무릎을 꿇은 이들에게 외쳤다.
“성주님의 첫 번째 명이시다! 오늘은 고기를 먹는다!”
우와아아아아-
번쩍 손을 들고 환호성을 내지르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명을 알려라!”
환호한 사람들은 번개같이 출구로 달려가 계단을 내려갔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리로…….”
호랑이 일족의 가주 탄이 선두에서 길을 열었다.
특급 헌터는 빙글빙글 원을 그리는 황금 풍뎅이, 진교은과 함께 사슴벌레 위에 앉아 황제처럼 위엄있게 외쳤다!
“고기 먹으러 가자!”
특급 헌터가 외치는 순간.
쿵, 쿵, 쿵-
사슴벌레는 탑 정상을 가로질렀다.
이때 문득 잊고 있던 게 기억났다.
자신이 돌머리로 해치운 악당 아저씨!
“앗! 저기 악당! 내가 박치기로 해치운 악당 아저씨 데려가야 해!”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휙 고개를 돌리는 탄의 눈에 바짝 엎드려 있는 인간과 수인족, 요마괴이가 보였다.
“저 악당들을 챙겨라!”
탄은 명령을 내린 후 종종걸음으로 달려 특급 헌터의 앞길을 열었다.
그리고 출입구로 들어가기 직전, 특급 헌터는 고개를 돌려 무너진 종루 방향에 외쳤다.
“누나! 누나도 얼른 와서 고기 먹어!”
그리고 특급 헌터를 시작으로 모두가 탑 정상에서 내려갔다.
여우 일족의 가주, 류호 한 사람을 제외하고.
“…….”
류호는 한참 동안 말없이 무너진 종루를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그르르르륵-
돌이 맞물려 갈리는 소리와 함께 출입구가 닫히는 순간.
무너진 종루 잔해 속에서 번개같이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흙먼지로 엉망이 된 모자와 옷, 신발을 신고 단단히 싼 행낭을 가슴에 안은 사람.
미호였다.
“하아- 마지막에 걸리는 줄 알았네!”
미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주가 된 꼬맹이의 고기 먹으라는 외침!
평소라면 눈치가 귀신 같은 엄마한테 걸렸을 거다!
그러나 수백 년 만에 성주님이 나타나자, 귀신 같았던 엄마도 자신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탑 주위에는 수백 마리의 하늘 고래가 유영하고 있는 상황!
그야말로 천우신조!
이제 주위에 가득한 하늘 고래 중 하나에 올라, 얼른 도망가면 된다!
크크킄-
미호는 웃음을 삼키며 하늘로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야, 얼른 내려 와서 나 좀 태워 줘!”
구으, 구으응-
한 하늘 고래의 울음소리가 대답하듯 울려 퍼졌다.
“오! 그래! 너 아주 멋지네! 나 좀 태워 줘!”
미호는 크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구으으, 구으으응-
천천히 탑 위로 내려 와 부드럽게 유영하며 다시 한 번 우는 하늘 고래.
“너무 높잖아! 좀 더 내려 와!”
구으으, 구으으으응-
다시 한 번 S자를 그리며 탑 위를 유영하는 하늘 고래.
“야, 너무 높다고! 낮게! 아니 지느러미 좀 뻗어 봐!”
구으, 구으으으으응-
그러나 하늘 고래는 울기만 할 뿐 더 내려 오지도 지느러미를 뻗지도 않았다.
“……어, 설마?”
번개같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늘 고래와 하누만들이 이 탑으로 길잃은 사람들을 데려오는 건.
영기(靈氣)와 술을 대가로 주기 때문이다!
하늘 고래를 타고 도망치려면 뱃삯을 내야 했다!
미호는 재빨리 행낭에서 엽전꾸러미를 꺼내 하나 튕겨 올렸다!
핑그르르르-
하늘 고래 앞으로 솟아오르는 엽전 한 닢!
힐끗 엽전을 보더니 필요 없다는 듯 가슴지느러미를 휘두르는 하늘 고래!
“어……?”
땅-
발 앞에 엽전이 떨어지는 순간 깨달았다.
‘부족하구나!’
미호는 재빨리 엽전을 던져 올렸다.
3, 7, 11, 17, 29개!
그러나 결과는 항상 같았다.
땅, 땅, 땅-
하늘 고래가 휙- 휘두르는 가슴지느러미를 맞고 돌아오는 엽전들!
마지막으로 엽전꾸러미 전체를 던지는 순간!
하늘 고래는 날아오는 엽전을 건들지도 않고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이 순간 힐끔 자신을 바라보는 하늘 고래의 눈에 담긴 감정!
어이없음!
으아아아악-
엄청난 심적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는 순간.
“……!”
다시 한 번 번쩍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수백 년 만에 새로운 성주님이 나타나셨다!
당연히 적염성 전체가 난리가 날 거다.
이 혼란을 틈타 슬쩍 도망치면 된다!
즉, 하늘 고래를 타고 도망칠 필요가 없었다!
미호는 떨어진 엽전꾸러미를 낚아채, 번개같이 출입구로 달려가 손을 올렸다.
“열려라!”
그러나 출입구는 열리지 않았다.
휘이이이잉-
거센 바람과 함께 출입구 위에 봉인부가 생겨났다!
소용돌이치는 바람!
이 봉인부가 누구의 솜씨인지 바로 알아챘다.
여우 일족의 가주, 높은 바람 류호…….
“……엄마?”
엄마가 출입구를 잠갔다!
하늘 고래를 타기에는 돈이 부족하고, 탑 출입구는 엄마의 봉인구로 막혔다.
자신은 이 탑 위에 갇혔다!
“으아아악- 엄마……!”
미호의 고통 어린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수백 하늘 고래들의 울음소리에 삼켜졌다.
구으으-
구으으응-
* * *
구으으응-
류호는 하늘 고래가 노래하는 탑을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성주님이 돌아오신 이상 정략결혼의 필요성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자신이 정략결혼을 깨는 건 도의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탑의 정상 출입구를 막았다.
딸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하늘 고래를 타고 떠나갈 수 있도록.
빙그레 미소 지은 류호는 탑 정상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기원했다.
“훨훨 날아가 자유롭게 살 거라. 내 딸 미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