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15화 (61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15화>

“류호! 빨리 봉인을 풀어라!”

탄의 사나운 외침에 류호는 느긋하게 대답했다.

“기다려라. 성질 급한 호랑이.”

탁-

손에 쥔 장죽을 가볍게 털고 봉인된 탑의 문에 부드럽게 손을 올리는 류호.

등 뒤에서 전해지는 저릿저릿한 투지!

수백이 넘는 강자들이 투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류호는 느긋하고 여유롭게, 전혀 급할 것 없다는 듯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나 류호의 머릿속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봉인구로 잠긴 탑 입구를 보는 순간 바로 눈치챘다.

미호!

경계석 목걸이를 가지고 사라진 딸의 솜씨다!

미호가 이 탑 입구를 봉인하고 탑 정상으로 올랐다!

상황을 깨닫는 순간.

미호가 탑을 오른 이유도 바로 알아챘다.

하늘 고래!

적염성 주위를 두른 영산(靈山)과 강은 이미 막힌 상황.

미호는 탑 정상에서 하늘 고래를 타고 탈출하려는 것이다!

‘하아-.’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는 순간 콕, 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가슴에서 느껴졌다.

류호는 딸의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경계석으로 안개길의 비술을 펼쳐 정략결혼을 망치려 했고, 옷과 돈, 여우 구멍을 만들어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을.

내심 미호가 성공하기를 바랐지만, 겉으로 그것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류호는 힐끗 주위를 살폈다.

호랑이 일족 옆으로 선 12 가문의 깃발은 다섯!

청혈회, 적룡방, 수로 18채 같은 새롭게 세를 불린 가문들이 12 가문을 밀어내고 그 앞에 서 있다!

이 광경이 지금 적염성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적염성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 서 있었다!

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우 일족과 호랑이 일족의 정략결혼 말고는 답이 없었다.

적염성 12 가문의 일문, 여우 일족의 수장으로 수많은 피와 희생을 요구한 자신이 딸의 정략결혼을 반대할 수는 없었다.

류호가 할 수 있는 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봉인을 풀어내며 마음속으로 기원하는 것뿐이었다.

‘미호 내 딸아. 어서 도망가라. 멀리 훨훨 날아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라…….’

그러나 탑의 봉인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하늘 고래는 나타나지 않았고.

류호는 차마 문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

이때 탄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이냐!? 언제까지 봉인을 풀고 있을 거냐! 비켜라! 차라리 내가 부수겠다!”

류호는 돌아보지도 않고 휙- 장죽을 휘저었다.

휘잉-

돌풍이 하늘에서 쏟아져 단단한 판석 수십 장을 반으로 갈랐다!

“……!”

깜짝 놀란 탄과 호인족 전사들이 물러서는 순간.

류호는 단호히 외쳤다.

“기다려라!”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어 높게 솟은 탑을 바라봤다.

이 탑은 자신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어린 시절, 황무지뿐인 이 땅에서 만난 그분이 세우셨다.

붉은 비단옷, 검은 머리카락.

노래하듯 울려 퍼지는 휘파람 소리.

누군가를 찾아 경계를 넘어 이 세계에까지 왔다던 그분은 먼지만 날리던 황무지를 완전히 바꾸셨다.

거대한 빙하를 녹여 강을 만들고, 날카로운 돌산을 영맥이 흐르는 영산으로 바꾸셨다.

하늘에선 하늘 고래가 춤을 추고, 대지에선 수많은 생명이 자라났다.

어느새 황무지는 옥토가 되고 인간과 수인족, 요마괴이 모두가 살아가는 거대한 도시, 적염성이 생겨났다.

그리고 어느 날 그분은 이 적염성을 떠나셨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마음을 읽는 투명한 눈으로 밤하늘을 짚으며 노래하듯이 말씀하신다.

‘언젠가 울리지 않는 종을 울릴 사람이 올 거란다.’

‘얄미운 동생 같고, 아주 가끔은 든든한 오빠 같은 사람.’

‘모든 것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뒷골목 악당처럼 옷을 사람.’

‘수많은 고난과 사건, 재앙에 구르게 될 그 사람이 오면.’

‘높은 바람 류호. 네가 잘 쉬다가 돌아갈 수 있게 보살펴 주렴…….’

‘성주님이 기다리시다가 직접 만나시면 되잖아요?’

어린 자신의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던 성주님.

‘경계를 넘나들며 너무나 많은 금기를 범했단다. 이 이름, 이 생으로는 만나지 못한단다.’

이름을 묻는 자신에게 속삭이듯 이름을 말씀해 주시고, 성주님은 바람을 닮은 휘파람 소리와 함께 경계를 넘어 떠나가셨다.

수백 년 전 일이지만, 어젯밤처럼 생생한 기억.

이 기억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미호는 탑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벌써 수백 년이 지났지만, ‘돌멩이’ 님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으시네요…….’

인연이 끊긴 이를 만나기 위해 경계를 넘어가신 성주님.

자유롭게 살기 위해 집을 떠나가는 어린 딸.

과거와 현재.

두 사람이 올랐던 탑을 보며.

류호는 마음속으로 한숨지었다.

‘여기까지구나…….’

탄뿐만 아니라 모두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끓어오르고 있다.

류호는 가볍게 손을 밀었다.

그르르륵-

봉인된 탑 입구가 열리는 순간.

환호성과 포효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

크어어어엉-

선두의 탄과 호인족 전사들, 그 뒤로 가려 뽑은 수백의 정예들이 기세와 투지를 폭발시키며 일제히 돌진했다!

부르르르르-

이때 돌연 탑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

선두의 탄이 멈추고.

호인족 전사들이 뒤따라 멈추자 달리던 각 가문과 문파의 정예들이 잇달아 멈췄다.

“어, 어어!?”

“뭐야!? 달리다 말고!”

“야, 얼른 길 열어! 뭐 하는 거야!?”

……

이 순간 부르르 진동하던 탑에서 불쑥 터져 나오는 소리!

구으으으으으으으응-

파장이 소리가 되어 울려 퍼지는 순간.

탑 앞에 모인 모두는 굳어 버렸다.

이 떨림, 이 파장, 이 소리!

“설마……!?”

경악한 모두의 시선이 하늘 높게 솟은 탑에 못 박힐 때.

누군가 홀린 듯이 말했다.

“이거 종소리 아냐?”

이 순간 모두는 깨달았다.

구으으으으으으응-

거칠게 진동하는 탑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종소리다!

그것만이 아니다.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든 탑 전체에 새하얀빛이 생겨나고 있다!

이 모습을 보는 모두의 머릿속에서 대대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적염 성주의 후계자가 울리지 않는 종을 울리고 하늘과 땅을 하나로 잇는다!]

“이럴 수가!”

“전설이 사실이라고!?”

“이 소리! 이 빛 이야기랑 똑같다!”

순간 류호와 탄의 눈이 마주쳤다.

호랑이 일족과 여우 일족은 12 가문의 우두머리 격!

이런 상황에서 말은 필요 없었다!

눈빛만으로 의견을 나눈 두 사람은 잇달아 외쳤다.

“울리지 않은 종이 울리고!”

“탑이 하늘과 땅을 이으려 한다!”

“정상에서 확인한다!”

“가문과 문파, 방파, 단체에서 대표 한 명씩 나와라!”

탑 앞으로 모여든 수십 개의 깃발 아래에서 인간, 수인족, 요마괴이가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대표가 추려지고, 탄과 류호는 부하들에게 외쳤다!

“성주님을 모셔 올 때까지 입구를 봉하라!”

“그 누구도 안으로 들이지 말아라!”

쿵-

일제히 발을 구른 호인족 전사들이 몸을 돌려 벽을 쌓고.

탁-

두 손을 모아 읍한 여우 일족의 주술사들이 부적과 보패를 들고 결계를 펼쳤다!

“잠시만! 여기도 대표가 있다!”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다급히 외쳤으나 탄은 시선을 두지 않고 외쳤다.

“올라간다!”

이 순간 류호와 탄!

12 가문과 수십 단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탑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 계단을 달렸다.

구으으으으으응-

계단을 달리자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몇 배로 강해졌다.

계단을 달리는 여러 가문의 가주, 각 문파와 방파의 대표들은 바로 깨달았다.

“이 탑이 종이었구나!”

“이 간단한 걸 모르고 있었다니!”

……

허탈함과 황당함이 섞인 탄성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하- 이 진동하는 벽! 그랬구나! 완전히 잘못 생각했어!”

탄이 탄성을 터트릴 때.

류호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탑 위에 세워진 종루에 놓인 종은 함정.

지금 자신이 오르는 텅 빈 탑 자체가 적염 성주의 종이였다!

‘과연 성주님다운 함정이다!’

순간 성주님의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오르고, 가슴속에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수백 년 동안 누구도 깨닫지 못한 성주님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사람!

성주님이 평생을 찾았던 ‘돌멩이’ 그분이 오신 건가!?

가슴이 두근거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류호는 선두에서 달리는 탄에게 외쳤다.

“먼저 올라가겠다! 탄!”

그리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장죽을 휙- 내리그었다.

휘이이잉-

순간 허공에서 쏟아진 바람의 소용돌이가 몸을 감쌌다!

여우 일족의 가주, 류호(飂狐)의 비술.

높이 부는 바람, 류(飂)!

류호는 계단 옆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파아아아앙-

폭발하는 소용돌이가 류호의 몸을 단숨에 하늘로 밀어 올렸다!

탑 정상에 뚫린 출입구 너머로 보이는 하늘!

소용돌이에 휩싸인 류호는 단숨에 출입구를 지나, 탑 정상에서 10미터 허공에서 멈췄다.

그리고 종루가 있는 방황을 바라보는 순간 굳어 버렸다.

와르르-

무너져 내린 종루!

후우우우웅, 쾅-

톱날 집게로 종을 잡고 바닥에 내려치는 스카라베 전사!

납작 엎드려 머리를 부여잡은 수십 명의 인간, 수인족, 요마괴이!

그리고 신나는 웃음소리와 생경한 소리가 들려왔다.

카카카카카카캌-

퐁퐁퐁, 퐁퐁퐁퐁-

류호의 시선은 이 소리가 나는 장소에 고정됐다.

종을 내리치는 스카라베 전사 옆, 인간 아이가 번쩍 든 손을 내리치며 외친다.

“사슴이! 더 세게! 카카카카캌-.”

후우우우웅, 쾅-

이 순간 종이 떨어져 내려 바닥을 때리고!

구으으으으으응-

탑이 종소리를 내고 탑에 생겨난 새하얀빛이 강해졌다!

저 인간 아이다!

저 아이가 성주님의 수수께끼를 풀었다!

순간 류호의 얼굴에 실망감이 떠올랐다.

성주님이 말씀하신 ‘돌멩이’ 그분의 모습과는 맞지 않는다!

이때 생경한 소리가 들려왔다.

퐁퐁, 퐁퐁퐁-

커다란 물방울이 터지는 듯한 소리.

휘이이, 휘이이이-

그리고 이 소리 뒤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

깜짝 놀라 바람 소리에 집중하는 순간.

결코, 잊을 수 없는 휘파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휘이이, 휘이이이-

성주님의 휘파람 노래!

류호는 홀린 듯이 아이에게 다가갔다.

“크게! 울려라! 크게 크게 울려!”

“으아앗! 조금만! 조금만 더하면! 빵 터질 거 같아!”

아이가 신나게 외치며 손을 휘젓는 매 순간.

휘이이, 휘이이이-

휘파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손에 들린 속이 텅 빈 나무 막대기에서!

류호의 전신이 덜덜덜 떨리고,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었다.

울리지 않는 종.

빛을 발하는 탑.

새로운 적염 성주.

적염성의 세력 다툼.

류호의 머리를 가득 채웠던 모든 게 사라졌다.

아이가 들고 있는 나무 막대기!

어찌 잊겠는가?

이 거대한 도시와 산처럼 쌓인 금은보화와 보패.

이 모든 것을 놓아두고 떠난 성주님의 유일한 보물.

나뭇가지 검!

류호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깊이 허리 숙이며 말했다.

“제가 그 검을 잠시 볼 수 있을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쓱 건네주는 나뭇가지 검.

눈을 감은 류호는 조심스레 나뭇가지 검의 한쪽 구석에 손가락을 댔다.

손가락을 올리는 순간 느껴지는 기억 그대로의 촉감!

‘맞구나!’

번쩍 눈을 뜬 순간 오직 자신에게만 말씀해 주신 성주님의 이름이 보였다!

적예(赤芮)!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