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11화>
“이 꼬맹이 녀석! 두 번이나 나를 방해하다니!!"
미호는 이마를 잡고 데굴데굴 침대 위를 구르며 연신 분통을 터트렸다.
꿈에서 인과를 잇는 갈림길로 불러.
현실에서 나타나게 하는 여우 일족의 비술!
안개길!
이 비술로 정략결혼을 난장판으로 만들 무시무시한
‘재앙’을 불렀다!
오래전 선조가 무저갱의 마굴에서 스쳤던 경천동지 그 자체, 결혼식장을 난장판으로 만들 재앙!
대대로 내려오는 경계석 조각까지 사용해서 비술을 펼쳤는데!
이 비술이 생각지도 못한 꼬맹이의 방해로 두 번이나 깨졌다!
처음에는 꿈속 세계로 들어오기 직전에 깨워서!
이번에는 아예 비술을 펼치기도 전에 자신에게 기습 공격을 해서!
으아악-
미호는 괴성을 지르며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이 꼬맹이 녀석! 그냥 안 둔…."
툭-
순간 목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어……?"
미호는 반사적으로 침대 위를 봤다가 굳어 버렸다.
반으로 쪼개진 새끼손톱 크기의 돌 조각이 침대 위에 있었다!
"어, 어어어?!?!?!"
재빨리 목걸이를 벗으니 반으로 쪼개진 돌이 보였다!
미호는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침대에 떨어진 돌조각을 주웠다.
"설마설마설마설마…!"
목걸이에 남은 돌조각과 맞추는 순간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손을 놓는 순간 돌조각은 툭- 다시 침대 위에 떨어져 내렸다.
"....!"
순간 미호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이 아이가 만든 것 같은 목걸이의 정체는 경계석 목걸이!
오래전 선조가 무저갱의 마굴을 지나 도착한, 상께서 머무셨다는 전설의 마을에서 가져온 물건이다.
대대로 여우 일족에 내려오는 보물!
엄마가 잠든 틈에 슬쩍 가져온 경계석 목걸이가 쪼개졌다!
재빨리 창을 열고 확인하니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엄마가 일어나 거울을 보는 순간 걸린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안절부절 못할 때.
번쩍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재빨리 방을 가로질러 문을 살짝 여는 순간 보였다!
손도 대지 않고 내놓은 어제 저녁 식사!
미호는 재빨리 밥공기를 낚아채 잘려나간 경계석 절단면에 밥풀을 붙였다.
한참을 꾹- 누르고 있다가, 손을 떼는 순간 감쪽같이 붙어 있는 경계석!
됐다!
이제 이 경계석 목걸이를 엄마가 깨기 전에 원래 자리에 놓아두기만 하면….
뚝-
달려가려는 순간 반으로 떨어져 내리는 경계석 조각!
".....!!!"
미호의 안색이 빙하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이건 걸린다!
반드시 걸린다!!
그리고 걸리는 순간, 결혼식까지 꼼짝없이 갇혀 있게 된다!!!
'지금 도망칠까?!'
문득 생각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질문.
"어디로?"
자신이 갈만한 곳은 엄마도 모두 알고 있다.
이때 벼락같이 떠오른 한 사람이 있었다!
곰 일족의 잔치날!
자신이 요괴선이라고 구라를 치며 십 년 동안 수금한 돈을 모조리 쓸어간 사기 도박꾼!
이 사기 도박꾼은 경계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수많은 요마괴이의 눈탱이를 쳤지만,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그 사기 도박꾼의 이마에 자신의 부하라는 인장을 꾹- 찍어 놨다.
재 승부 전에 혹시라도 다른 요마괴이에게 잡혀 훅 가지 않도록!
그 인장을 쫓아가면 사기 도박꾼의 은신처를 찾을 수 있다!
수많은 요마괴이가 이를 갈았으나 찾지 못한 사기 도박꾼의 은신처!
이곳에 숨으면 된다!
자신이 악명 높은 사기 도박꾼의 은신처에 숨을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거다!
친구의 인장이 찍혔다고 믿고 있는 사기 도박꾼 본인도!
크크크크큭-
미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문제는 적염성을 빠져나가는 방법!
북쪽은 영산이, 남쪽은 거대한 강이 둘러싸고 있다.
북쪽 영산으로 가면 나불대기 좋아하는 요마괴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렇다고 강으로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나루터를 통해 도망치다가 잡힌 게 15번!
이제 어떤 뱃사공도 자신을 태워주지 않는다!
"하- 어떻게 빠져나가지?!"
휘이이-
이때 활짝 열린 창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순간.
"....!"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솟은 탑이 보였다!
하늘 고래와 하누만이 길 잃은 사람들을 데려오는 탑!
적염성을 빠져나갈 완벽한 방법이 눈앞에 있었다!
하늘 고래가 탑에 사람들을 내려놓는 순간 반대로 하늘 고래를 잡아타고 빠져나가면 된다!
미호는 즉시 움직였다.
두터운 덧옷을 입고, 털이 달린 귀달이 모자, 튼튼한 가죽신을 신었다.
쿵-
그리고 탁자를 밟고 뛰어 천장을 들어 올렸다.
위로 들린 천장으로 올라가 들보를 밟고 달려 구석으로 이동, 미리 준비해둔 커다란 행낭을 열어 그 안을 확인했다.
한 줌의 엽전.
단단히 묶은 옷.
커다란 대나무 물통.
나뭇잎으로 싼 주먹밥.
....
순간 미호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이대로 가출하기에는 돈이 너무 모자랐다.
"....복전을 받고 튈까?"
오늘 저녁 사방에서 모여든 일가친척과 엄마의 친구, 부하들이 결혼을 앞둔 자신에게 복전(福錢)을 건네준다.
문득 생각했지만, 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돈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경계석 목걸이가 사라진 게 걸리고, 조각난 게 밝혀지면 끝장이다!
모자라는 돈은 사기 도박꾼에게 빌리면 된다!
미호는 행낭을 단단히 고정하고 미리 뚫어놓은 기와를 열고 지붕으로 나왔다.
그리고 여명에 밝아오는 여우 일족의 장원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한 전각에서 시선을 멈췄다.
"엄마 미안. 그래도 호랑이 일족은 진짜 아냐…."
미호는 바로 몸을 돌려 번개같이 지붕을 달려 펄쩍 뛰었다!
소리도 없이 지붕과 지붕을 넘나들길 한참, 곧 여우 일족 장원을 두른 십 미터가 훌쩍 넘는 높은 담이 보였다.
눈을 부릅뜬 무사들은 모조리 장원 밖이 아닌 안을 살피고 있었다!
엄마가 손을 썼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담을 넘지 않는다!
미호는 수풀 속으로 뚝- 떨어져 뱀처럼 스쓰슥- 기어 담에 도착했다.
그리고 담 한쪽을 미는 순간.
흙과 나뭇잎을 가득 올린 판자가 밀려나고, 작은 여우 구멍이 나타났다!
미호는 주저 없이 구멍으로 기어들어 갔다.
잠시 후, 장원 밖 여우 구멍을 나온 미호는 귀달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번개같이 달렸다.
북쪽 언덕!
성주님의 텅 빈 장원에 높게 솟은 탑!
하늘 고래를 타고 도망칠 정류장을 향해서!
* * *
미호가 높게 솟은 탑을 향해 달리는 순간.
번쩍 눈을 뜬 특급 헌터는 경악하고 있었다.
깜깜한 밤!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못된 원숭이들을 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눈을 뜨니 환한 하늘에 해가 떴다!
“해? 아침! 낮이라고?!”
특급 헌터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비벼도 하늘이 어두워지지도, 뜨고 있는 해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
순간 특급 헌터의 얼굴에 다급한 기색이 떠오르고 폭풍처럼 말이 쏟아져 나왔다.
“고기!"
"설마! 나 빼고 고기 먹은 거야?!”
"아니지!? 나 잤다고 나 빼고 고기 먹은 거 아니지?!"
“알바! 오늘 아침에 우리 고기 먹는 거 맞지?! 그렇지?”
....
특급 헌터가 다급히 외치는 순간.
부드러운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일어났어?”
“신입 누나?!”
특급 헌터는 휙휙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며 외쳤다.
"다른 사람은? 알바는 어디 갔어? 앗! 그보다 고기! 어젯밤에 고기 먹었어?!"
양 주먹을 불끈 쥐고 바짝 긴장한 얼굴로 묻는 특급 헌터.
진교은은 애써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할 것 없어. 어제 고기 안 먹어…."
휴우우우우우-
커다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특급 헌터의 눈에 잊고 있던 게 보였다!
진교은 등 뒤 멀리.
우뚝 솟은 종루 앞에 떨어진 배낭!
"앗! 저기 내 배낭 있잖아!"
다다다다닥-
특급 헌터는 떨어진 배낭을 향해 번개같이 달렸다.
곳곳에 기절한 사람들이 널브러진 탑 정상을!
깜짝 놀란 진교은이 다급히 특급 헌터를 따라 달릴 때.
으으, 으으윽-
곳곳에 쓰러진 사람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잠깐 멈춰……!"
다급히 외치려던 진교은의 시선에 무언가 보였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낯익은 헌터, 왕체!
깜짝 놀란 진교은은 외침을 삼키고 특급 헌터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곳곳에 널브러진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특급 헌터는 어느새 탑 중앙, 종이 있는 곳에 도착한 상황!
이때 왕체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힐끗 바라보니 왕체가 널브러진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순간 진교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탑 정상에 널브러진 수십 명의 남녀!
자신들처럼 하늘 고래에게 실려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왕체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장포, 가죽옷, 평상복….
서로 다른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사이 속옷만 입고 기절한 남녀가 있었다!
왕체는 속옷만 입은 남녀를 깨우고 있었다!
너무나 낯익은 남녀!
강릉역 광장에서 자신과 최설의 뒤를 쫓은 헌터들이다!
철검장의 헌터들과 용역 헌터!
강화 전투복과 헌터용 장비로 완전무장했던 헌터들이 어째선지 속옷만 입은 채 탑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게다가 곰, 늑대와 인간이 섞인 듯한 존재!
뿔, 꼬리, 날개를 가진 사람들도 보였다!
이 순간 진교은은 절감했다.
이곳은 인간의 도시가 아니다.
던전 안에 있는 이종족의 도시다!
자신의 뒤를 쫓는 적과 도망칠 곳이 없는 이종족의 도시, 탑 정상에서 맞닥뜨렸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 할 때.
카카카카캌-
특급 헌터의 신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종루 앞에 도착한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종 앞에 놓인 타종 나무, 당목(撞木)에 올라타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종이 울리면 왕체의 관심을 끈다!
기겁한 진교은은 재빨리 달려 몸을 날리며 손을 뻗었다!
특급 헌터를 낚아채려는 순간.
당목 위에서 빙글- 회전해 거꾸로 매달리는 특급 헌터.
진교은의 손은 허공을 지나 당목을 매달은 밧줄에 걸렸다!
밧줄이 부드럽게 밀려나고, 당목이 거대한 종의 당좌를 향해 나아갔다!
"....!"
진교은은 반사적으로 특급 헌터 앞을 가리며 외쳤다.
"특급 헌터 도망쳐!!!"
그리고 당목이 종을 때렸다!
"....?"
"....?"
사방에서 쏟아지는 의아한 시선.
그러나 가장 의아한 건 진교은 자신이었다.
분명 당목이 종의 당좌를 때렸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울려 퍼지지 않는다!
이때 특급 헌터의 목소리가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기하지! 이거 아무리 때려도 소리가 안 나!!"
당목을 잡아당겨 휙 집어 던지는 특급 헌터.
"....!"
종과 당목이 연신 충돌했다!
그러나 특급 헌터의 말대로 마치 허공을 때린 듯 아무 소리도 울려 퍼지지 않았다!
"쟤 지금 뭐 하는 거야?"
"울리지 않는 종 처음 보나?"
"꼬맹이라면 신기하…. 어?!"
....
종루 주위에 널브러진 사람들의 피식거리는 웃음과 어이없어하는 시선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 시선 중에는 멀리 떨어진 왕체의 시선도 있었다!
자신의 외침이 오히려 왕체의 주의를 끌었다!
“특급 헌터. 바로 이동하자.”
진교은은 재빨리 특급 헌터를 품에 안고 사람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이때 너무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교은! 여기서 만나는구나!!"
최림!
어느새 왕체 옆에 나타난 최림이 섬뜩한 웃음을 띤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