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07화>
“…….”
천문석은 멍하니 멀어지는 하늘 고래를 바라봤다.
갑자기 튀어나온 하늘 고래가 동료들과 짐을 모두 싣고 날아가 버린 황당한 상황!
당장이라도 쫓아가고 싶지만, 하늘 고래는 끝없이 펼쳐진 산과 봉우리 위를 ‘날아’가고 있다!
그렇다!
하늘 고래는 날고 있었다!
계단을 달려서는 추적은 불가능했다!
“아니, 뭐가 이따위야!?”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으아악! 야, 이 미친놈들아!”
분노 어린 고함이 들려왔다!
암반 방향!
자신을 아카린이라고 소개한 거대 원숭이, 아니 하누만의 외침이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하누만과 하늘 고래!
생경한 단어를 말하던 그 모습.
아카린은 이 세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즉, 동료들을 찾으려면 아카린의 도움이 필요하다!
천문석은 바로 몸을 돌려 한달음에 숲을 빠져나갔다.
쿵, 쿵, 쿵-
암반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리고 지게를 짊어지고 달리는 아카린의 모습이 보였다.
“야, 내려 주고 가! 그놈들 데려가면 안 돼! 술 납품해야 한다니까!”
분통을 터트리는 아카린의 앞, 몸길이 10여 미터 크기의 하늘 고래가 하늘을 유영하고 있다!
등 위에 낯익은 사람들을 태우고!
칠성파 김기철!
그리고 완전무장한 헌터 둘!
지게에 실려 있던 세 사람을 하늘 고래가 낚아채서 튀고 있다!
‘이 녀석들 상습범이구나!’
방금 자신이 겪은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다른 건 이 하늘 고래가 나는 높이가 10여 미터로 낮다는 것!
도움을 바라면 먼저 도움을 줘야 하는 법!
이 높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려 암반 위를 질주하며 외쳤다.
“숙여!”
“……!?”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이심전심!
천문석이 하려는 걸 깨달은 아카린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쾅-
암반을 밟고 도약!
타다다다다닥-
지게 위에 오르는 즉시 그 위에 실린 거대한 술통을 밟고 달려 단숨에 뛰어오른다!
파아아앙-
솟구치듯 하늘로 날아올라 유영하는 하늘 고래의 몸통 위로 떨어지는 천문석!
“해 냈구나! 단단히 잡아!”
아카린의 환호성이 터지는 순간.
천문석은 무장벨트에 걸린 밧줄을 풀어내며 하늘 고래의 몸통 위로 내려설 준비를 했다!
‘됐다! 이제 이 하늘 고래를 타고 아카린의 도움을 받아 동료들을 쫓으면…….’
이 타이밍.
바로 옆 허공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구으으으응-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투명한 영체가 튀어나오며 실체를 갖췄다.
불쑥 튀어나온 하늘 고래의 눈에서 반짝이는 장난기!
“……!?”
그리고 블랙박스 사고 영상에서 수없이 봤던 상황이 벌어졌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받고 나아가는 자동차를 들이박는 트럭!
콰아아앙-
몸길이 20여 미터, 무게 수백 톤!
거대한 하늘 고래가 천문석의 옆구리를 들이박았다!
공중에서 불의의 일격을 받은 천문석은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이 멀리 날아가 암반 위를 나뒹굴었다!
커어어억-
순간적으로 흐려지는 시야에 아카린이 지게를 벗고 하늘 고래를 따라 달리며 몸을 날리는 게 보였다.
그러나 거대한 꼬리지느러미가 휘둘러지자.
파아아앙-
아카린은 공깃돌처럼 튕겨 나와 암반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으악, 으악, 으아악-
육중한 거대 원숭이와는 달리 작은 몸의 아카린은 빠르게 암반을 굴러 천문석을 향해 다가왔다.
“……!”
순간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다!
될 것 같다!
벌떡 일어난 천문석은 전력을 다해 달리며 외쳤다.
“야, 손 내밀어!”
데굴데굴 구르던 아카린이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자.
탁-
천문석은 바로 낚아채 전력 질주했다!
손에 걸리는 무게가 생각보다 더 가볍다!
게다가 도망치는 하늘 고래는 아직 지상 10여 미터 높이!
이건 먹힌다!
이번에는 가능하다!
순식간에 견적을 짠 천문석은 외쳤다.
“야, 내가 너 던져 올릴게! 하늘 고래 등에 올라타서 데리고 내려 와라! 할 수 있지!?”
순간 아카린의 번뜩이는 시선이 날아가는 하늘 고래에 닿았다!
“당연하지! 던져만 올려 줘! 내가 저 고래 새끼 목을 졸라서라도 땅으로 끌어내린다!”
으아아악-
순간 천문석은 악을 쓰며 내력을 모조리 끌어올려 가속했다!
30, 25, 19, 10미터!
순식간에 줄어드는 거리!
그리고 하늘 고래가 공중에서 몸을 비트는 타이밍!
쿵!
단단한 암반을 짓밟으며 아카린은 잡은 채 몸을 회전시켰다!
이야아아아아아압-!
훙훙, 훙훙훙-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아카린!
원심력과 구심력이 극한에 달하는 순간.
천문석은 혼신의 힘을 다해 쏘아 올렸다!
아카린이라는 탄환을!
파아아아앙-
아카린은 인간 탄환이 되어 직선으로 하늘 고래에게 날아갔다!
“옆! 옆에서 튀어나오는 놈 조심해라! .”
“알았다! 이녀석 반드시 끌어내린다!”
하하하하하하-
아카린의 미친 듯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구으으으-
……
예상대로 하늘 고래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 아래, 전후좌우 모든 곳에서.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하늘 고래 다섯 마리!
“……!”
“……!?”
천문석과 하늘을 나는 아카린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강아지 공원에 모인 수십 마리 강아지들에게 휙- 공을 던져 주면 생기는 일이 일어났다.
팡, 팡, 파아아앙-
악, 악, 으아아악-
붉은 털의 하누만 아카린은 신이 난 하늘 고래들의 지느러미와 이마에 맞아 공처럼 튕겨 다녔다.
하늘 고래들의 신나는 울음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질 때.
천문석의 동료들과 배낭을 실은 하늘 고래, 아카린의 기절한 헌터 셋을 실은 하늘 고래는 유유히 하늘을 날아 줄줄이 이어진 봉우리를 향해 날아갔다.
“하, 인생…….”
* * *
한참 후.
하늘 고래의 거대한 꼬리지느러미 스윙이 허공을 갈랐다.
파아아앙-
하늘 고래 사이에서 공처럼 튕겨 다니던 붉은 털 하누만이 홈런볼이 되어 날아왔다.
천문석을 향해서.
데굴데굴 굴러 오는 아카린을 낚아채 일으키자 튀어나오는 분노어린 목소리.
“미친 하늘 고래 놈들! 너희 어디 갈지 내가 알아! 끝까지 쫓아가서 작살을 내주마!”
아카린은 멀어지는 하늘 고래를 향해 분통을 터트렸다.
반색한 천문석은 재빨리 질문을 던졌다.
“야, 쟤들 어디로 가는지 너 알아!?”
아카린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하늘 고래가 날아가는 하늘을 가리켰다.
“적염성(赤焰城)!”
“적염성?”
아카린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공도로 흘러들어온 인간을 데려오면, 적염성의 관리들이 원하는 걸 내준다! 하누만에겐 술을. 하늘 고래에겐 영기를! 저 방향에 적염성이 있다! 저 녀석들 분명 적염성으로 가고 있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들을수록 의문이 생기는 대답이다.
하지만 지금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핵심은 파악했다.
동료들을 태운 하늘 고래가 날아가는 곳 ‘적염성’!
그리고 이 하누만은 적염성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적염성으로 최대한 빨리 달려가 동료들을 구한다!
천문석은 아카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늘 고래가 내 동료들을 태우고 적염성으로 날아갔다! 난 바로 적염성으로 갈 생각이다!”
반색한 아카린은 술 지게를 가리켰다.
“저기 지게 위 맨 위 술통, 적염성 호랑이 일족에 납품할 술이다. 당연히 나도 적염성으로 간다!”
순간 천문석과 아카린의 눈이 마주쳤다.
“난 하늘 고래가 데려간 동료들을 구할 거다.”
“저 술을 제대로 납품하려면. 하늘 고래가 데려간 인간들이 필요하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순간.
천문석과 아카린은 동시에 손을 내밀고 맞잡았다.
“바로 출발하자!”
“내 뒤로 바짝 붙어라! 저 구름다리부터 건너가야 한다!”
바로 몸을 돌려 구름다리로 달리는 아카린.
천문석은 바짝 따라 달리며 물었다.
“적염성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얼마 안 걸려! 대략…….”
다행이다!
장비와 식량이 든 배낭이 사라져, 지금 남은 건 강철봉과 잡낭에 담긴 하루 치 비상식량…….
“……일주일이면 도착한다!”
천문석은 우뚝 멈춰 서서 아카린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며칠 걸린다고?”
“일주일이면 충분히 도착한다!”
“……일주일이 그러니까. 7일이란 말이지?”
“어, 맞아! 7일! 네가 경계에 통로를 뚫어 준 덕분이야! 그게 아니었으면 보름은 달려야 했을 거야! 고맙다!”
“…….”
천문석은 하늘 고래가 날아간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저 구름다리를 지나서 계단과 봉우리를 일주일 동안 달리면 적염성이 나온다는 거지?”
“어, 맞아! 서두르면 6일에 끊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순간 천문석은 외치고 싶었다.
‘와, 이 더럽게 긍정적인 새끼!’
아니, 어떤 미친놈이 일주일 거리를 금방이라고 말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달리면 일반인이 37시간, 각성자가 5시간 정도 걸린다!
일주일 거리!?
각성자가 일주일 동안 달리면 서울에서 광화문 게이트 너머 신서울을 거쳐 고산 마을을 찍고, 그 너머 마경을 2개는 지날 거리다!
아무리 행복회로를 돌려도 일주일은 너무 길었다!
그동안 터진 사건들을 생각하면 일주일이면 마신의 강림체, 몬스터 웨이브, 세기말 한국까지 갔다 오고도 시간이 남는다!
일주일 동안 적염성에 있을 동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천문석은 재빨리 아카린에게 확인했다.
“야, 혹시 거리 줄일 다른 방법 없냐? 방금 했던 것처럼. 경계? 그 경계 다시 넘으면 어떨까?”
“뭐!? 야, 너도 제사장 봤잖아! 방금은 정말 운이 좋았던 거야! 경계 넘어갔다가 제사장한테 걸리면 아작나! 너 우리 뒤에 낙오한 하누만들 봤지! 걔들 지금 암반에 대가리 박고 쥐어박히고 있을걸!?”
아카린이 기겁해서 말을 쏟아 내는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린의 말이 맞았다.
제사장에게서 느껴지는 그 무시무시한 위압감!
시간을 줄이겠다고 경계를 넘었다가 제사장과 싸우면!?
머릿속에서 저절로 돌아가는 시뮬레이션.
전생의 경지를 훔치면 이길 수는 있다.
그러나 하늘의 저울은 언제나 예측불허!
항상 의표를 찌르는 무언가를 대가로 원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무엇을 대가로 가져갈지 감이 왔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시간’.
전생의 경지를 훔친다는 것.
역천을 행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하- 어쩔 수 없이 달려야 하는 건가?”
“야, 동료들은 걱정하지 마. 적염성 지금 성주 사라지고 12 가문이 서로 성주 하겠다고 개판이라 괜찮아! 일주일이면 12 가문이 뭘 하겠다고 의제 내기도 힘든 시간이야.”
천문석은 아카린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성주라는 권력이 사라지고 12 가문이 성주 자리를 노리는 중.
즉, 적염성은 지금 12 가문이 서로서로 견제하는 중이라는 말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
이것을 기대하자는 말이다.
불확실한 기대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지름길로 부탁한다!”
그리고 천문석과 아카린이 달리려는 순간.
하늘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구으으, 구으으으-
작고 여린 울음소리!
문득 고개를 드는 순간.
빙글빙글빙글-
나선을 그리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작은 하늘 고래가 보였다.
투명한 영체를 깜빡이는 하늘 고래.
50cm도 안 되는 아주 작은 하늘 고래가 지상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 하늘 고래가 허공을 나는 궤적을 따라 물결치듯 파문이 퍼져 나갔다.
퐁퐁, 퐁퐁퐁-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는 것처럼 퍼져 나가는 파문과 이 파문에서 생겨난 방울이 흩날린다!
“……!”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천문석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어 버렸다.
영체와 실체를 오가는 몸에서 얼핏얼핏 보이는 특징!
검은 등과 새하얀 배.
길게 뻗은 유선형 지느러미.
동글동글한 얼굴.
착해 보이는 검은 눈동자.
게다가 초롱초롱 빛나는 검은 눈에 담긴 감정!
반가움!
“……너 설마!?”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들려오는 울음소리!
구으, 구으으응-
지상에 내려온 작은 하늘 고래는 천문석 주위를 빙글빙글 회전하며 안개를 뿜어내고 방울을 흩날렸다!
파스스스스-
퐁퐁, 퐁퐁퐁-
마치 다시 만나서 반갑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