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05화>
천문석이 생사팔문의 보법을 내디딘 순간.
생사를 가르는 여덟 개의 문이 드러났다.
[死.死.死.死.死.死.死.死.]
드러난 팔문이 모조리 사문(死門)!
타짜가 설계한 사기도박판에 앉은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화염 폭풍이 밀려 올 때 순간, 천문석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존재하는 플랜 B, 전생의 경지를 훔친다!
재빨리 혼백에 새겨진 무혼, 전생의 경지들을 훑을 때.
파아아앙-
푸른 화염 폭풍이 화로의 냉기와 자신의 내력을 밀어내고 몰려들었다!
‘뭐야!? 뭐가 이렇게 빠르고 강해!!?’
크아아아아아아악-
맹렬한 푸른 화염에 저절로 비명이 터지고 정신줄이 툭- 끊어지려 할 때.
파스스스슥-
정말 오랜만에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그게 나왔다!
천강흔!
‘와, 이 도움 되는 녀석!’
천문석은 재빨리 정신줄을 잡고, 혼백에 새겨진 무혼을 훑었다!
“……!”
순간 벼락 치듯 머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다.
‘잠깐, 꼭 전생의 경지를 훔쳐야 할까!?’
전생의 자신은 천마신공, 마공에 우연히 입문한 후 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일,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정사마(正邪魔).
기환주(奇幻呪).
유불선(儒佛仙).
무공, 주술, 수도!
이번 위기는 강적과 싸우는 게 아니라 단지 화염 폭풍에 구멍만 뚫으면 된다.
전생의 무공 경지를 훔치지 않아도 이 위기를 타개할 방법이 있다.
유불선 중 불(佛)!
법(法), 교(敎)가 아닌 도(道)!
불도(佛道)!
이번에는 대자대비한 부처님에게 건다!
마음의 결정과 동시에 계획을 세운다.
자신이 슬쩍 빌릴 것은 대화염.
전생 천마가 굉천수를 만들어 낸 기반이 된 불도의 한 방편이다!
제암변명(除暗遍明).
능성중무(能成衆務).
광무생멸(光無生滅).
그림자가 없는 빛, 천지 만물을 키우는 온기, 그 무엇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지혜!
무한의 어둠 속에서 천지 만물을 키우는 태양을 삼키는 태양, 대태양(大太陽)!
마하바이로차나.
대일여래의 광명으로 화염 폭풍을 밀어낸다!
찰나의 순간 계획을 세우고, 천문석은 바로 움직였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염 폭풍의 열기!
천강흔과 냉기를 쏟아 내는 화로로 시간을 벌고.
양손을 하나로 모아 지권인(智拳印)의 수인을 짚는다!
반드시 명심할 것은 적당한 줄타기!
아차! 해서 너무 나갔다가는!?
대일여래의 광명 빔을 맞고 한방에 해탈, 깨달음, 성불, 대오각성하게 된다!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전생의 마지막 순간 천강의 불꽃에 훅 간 것과 다를 것 없는 최후다!
그렇기에 천문석은 혼신의 힘을 다했다.
피안과 사바에 한 발씩 걸치고 조심조심 움직인다.
파스스슥-
대일여래의 광명이 화염을 삼키려 할 때 수인을 변화시켜 광명을 죽이고!
화르르륵-
푸른 화염 폭풍이 거칠게 일어나 몸을 사르려 할 때 지권인의 수인을 짚어 광명을 키운다!
광명의 빛이 작아지고 커지기를 반복할 때.
피안과 사바!
정신과 육체의 죽음에 발을 하나씩 걸치고!
온 마음을 다해 사문과 사문 사이 존재하지 않는 길을 지혜의 빛으로 밝히며 나아간다!
그리하여 마침내 팔방이 모두 사문으로 막힌 공간을 빠져나왔다!
[生.死.生.死.生.死.生.死.]
정상적인 팔문이 떠오르는 순간.
대일여래의 광명으로 생문을 이어 생로를 뚫는다!
서기 어린 소용돌이가 생겨나, 몰아치는 화염 폭풍을 빨아드려 구멍이 뻥 뚫렸다!
빛의 벽!
출구까지 이어지는 통로가 열렸다!
천문석은 눈을 반개했다.
동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 우뚝 서 있는 제사장도!
“……!”
천문석은 재빨리 반개한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야, 뒤에 제사장!’
‘뛰어! 출구 열렸어!’
‘빨리빨리! 출구로 달려가!’
그러나 동료들은 넋을 놓고 움직이지 않았다!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려 심어(心語) 보냈다.
[빨…… 리…… 빨…… 리…… ]
순간 난리가 났다!
“고고성! 역시 해탈이구나! 하, 시바! 소원! 당장 소원 빌어야지!”
갑자기 엎드려 절을 하는 지게꾼!
‘고고성!? 소원이라고!? 이 미친놈이 지금 나한테 성불하라는 거야!?’
어이없어하는 순간 불쑥 튀어나와 지게꾼 옆에서 같이 절을 하며 소원을 비는 허준!
“검강! 검강의 경지에 오르는 게! 제 평생의 소원입니다!”
‘와, 정신 나간 무협지 마니아 녀석!’
천문석은 다른 동료들에게 연신 신호를 보냈다.
‘야, 쟤들 데리고 얼른 튀어!’
“……!”
“……!”
“……!”
그러나 한호석 교수, 최설, 진교은 셋 모두 경외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만 있었다.
아무리 눈짓을 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뜨거운 열기에 땀조차 흐르지 않고, 피안과 사바에 걸친 혼백은 당장이라도 거꾸러질 것 같다!
‘아니, 힘들어 뒤지겠는데!? 이 사람들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그동안 특급 헌터가 왜 그렇게 ‘빨리빨리’를 강조했는지!
화염 폭풍에 간신히 구멍을 뚫어 출구로 이어지는 통로를 만들었다!
불구덩이에 탈출구가 보이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겠는가!?
당장 출구로 뛰어들어가 도망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허준과 지게꾼은 절을 하며 소원을 빌고, 다른 동료들은 넋 나간 얼굴로 경외 어린 시선을 보내고만 있다!
자신들 뒤에 무시무시한 맹수, 제사장이 서 있는데 말이다!
힐끗 제사장을 본 순간 감이 왔다.
거대 괴수도 걸리면 1초 컷이다!
여기서 싸우면 자신 빼고는 전부 훅 간다!
어쩔 수 없다.
더욱 직접적인 시그널을 보내야 했다!
천천히 입을 여는 순간.
대일여래의 광명이 흐려지고.
화르르르륵-
밀려나던 청염의 열기가 전신으로 쏟아진다!
으아아아아악-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터지는 단말마의 비명을 삼키며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빨리빨리! 출구로 달려!”
“……아!”
“……아!?”
“앗…… 아앗!”
……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감탄사!
“야, 이 감탄사 터트릴 시간에 달리라고!”
이 순간 모두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진교은이다!
재빨리 특급 헌터를 품에 안고 주저 없이 화염에 뚫린 통로로 달려온다!
‘그렇지! 그렇게 해야지!’
파아아앙-
그 즉시 지권인의 빛으로 푸른 화염과 열기를 밀어냈다!
“……!”
하얗게 질린 진교은이 여전히 쿨쿨쿨- 잠든 특급 헌터를 품에 안은 채 고개를 까닥하고 지나가는 순간!
다른 동료들이 달려왔다!
한호석 교수와 배낭을 짊어지고 달리는 허준!
지게와 짐을 챙겨 그 뒤를 따르는 최설!
정신을 차린 동료들이 줄줄이 천문석을 스쳐 지나갔다!
팟, 팟, 팟-
그리고 등 뒤에서 연속해서 터지는 섬광!
‘출구로 들어갔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게꾼!
쿵, 쿵, 쿵-
거대한 지게를 짊어지고 제사장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뒷걸음질 친다!
천문석도 바짝 긴장했다.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자신과 지게꾼, 제사장 셋만 남은 상황!
천둥벼락과 함께 나타난 제사장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는 종이 가면을 쓴 채로 천문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
시선도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선지 제사장에게서 한 가지 감정이 느껴졌다.
망설임.
모든 걸 뒤엎어 버릴 듯 기세등등하게 나타난 제사장이 망설인다고?
‘뭐야?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래?’
이때 조심스레 한 걸음 다가오는 제사장.
제사장은 주저주저하며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일…….”
“지금이다!”
천문석을 스쳐 지나가던 지게꾼의 외침!
지게꾼은 천문석의 벨트를 낚아채는 동시에 몸을 돌려 땅을 박찼다!
콰직-
단단한 화강암 바닥이 으스러지는 순간.
엄청난 힘이 속도로 변해 쏘아졌다!
쾅, 쾅, 쾅-
발걸음마다 가속!
천문석을 낚아챈 지게꾼은 순식간에 화염 폭풍에 뚫린 통로를 돌파했다.
‘나이스! 타이밍 죽였다!’
천문석은 내심 환호성을 터트릴 때.
빠르게 멀어지는 통로 끝 제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눈!?’
어느새 종이 가면과 모자, 옷은 불티가 되어 흩어지고, 색색이 옷을 입은 소녀 한 명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뚝뚝-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얼굴로 너무나 환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탁드립니다.”
으아아아악-
순간 지게꾼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날렸고.
팟-
곧 섬광이 전신을 감쌌다!
* * *
팟-
빛이 전신을 감싸는 순간 느껴지는 익숙한 부유감!
던전에 들어온 그때와 같은 빛, 같은 감각이다!
던전 출구!
드디어 이 난장판도 끝나는구나!
천문석이 직감하는 순간 시야를 가린 빛이 사라졌다.
빛바랜 영화 같던 흑백 농담의 세계는 더 이상 없었다.
같은 밤이지만, 총천연색의 세계가 눈앞에 있었다!
“드디어 빠져나왔구나! 하하하-.”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휘이이잉-
바람이 불어오고.
우수수수-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그리고 보였다.
눈에 익은 평평한 암반!
“어? 왜 같은 지형이……!”
번개같이 뒤로 고개를 돌리자, 천천히 사라져 가는 빛의 벽 너머로 보이는 풍경.
가로세로 100미터가 훌쩍 넘는 평평한 암반!
빛의 벽을 가운데 두고, 똑같은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잘라 낸 듯 평평한 봉우리 정상.
거대한 달이 뜨고 별의 강이 흐르는 밤하늘.
바람에 흩날리는 안개와 다른 봉우리로 이어지는 구름다리.
그리고 구름다리 옆에 있는 작은 숲까지.
하늘, 땅, 바람, 안개, 나무, 계단, 구름다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똑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변했다.
생명력!
환한 달빛 아래 펼쳐진 세계는 방금 나온 던전 안과 달리 엄청난 생명력을 뿜어냈다.
“……분명 출구로 나왔는데!?”
의문을 품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먼저 들어간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다!?’
“야! 모두 어디…….”
천문석이 내력을 담아 외치려는 타이밍.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달빛을 가려졌다.
그림자 마수!?
내력을 끌어올려 굉천수부터 때려 박으려는 순간 까마득한 하늘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구으으으으으으으-
천지를 떨어 울리는 부드러운 울음소리.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을 반으로 가르는 별의 강 위, 거대한 산악 같은 생명체가 유영하고 있었다.
수백 미터가 넘는 유선형 몸과 길게 뻗은 지느러미.
달빛을 받은 거대한 몸체가 유리처럼 반짝이며 실체와 영체를 오간다.
구으으으으으-
뿔피리 소리를 닮은 울음소리를 내며 달을 향해 수직으로 날아올라.
파스스스스스-
푸르스름한 안개를 뿜어내며 빙글빙글 회전하며 별의 강으로 뛰어드는!
거대한 고래!
산처럼 거대한 고래가 밤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천문석은 이런 광경을 이미 한번 본 적 있었다.
이세계 배송 경주!
고산 마을로 달릴 때 만났던 하늘을 날던 고래!
그때 만난 개체는 훨씬 더 작고 어린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보는 순간 알아볼 수 있었다.
같은 종이다!
고산 마을에 나타난 그 경이로운 생명체와 같은 하늘 고래가 이 지금 이곳에 나타났다!
“하늘 고래!? 하늘 고래가 여기 왜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