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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01화 (60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01화>

휘이이이-

한 줄기 술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는 순간.

암반을 달려온 그림자들은 일제히 우뚝 멈춰 섰다.

술 냄새가 흘러나오는 곳은 계단을 뛰어오르는 인간의 등!

시작은 은밀했다.

암반에서 미끄러져 나무를 잡고 뛰어, 계단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기척도 소리도 없는 수백 그림자의 움직임!

수백 그림자가 겹겹이 쌓인 짙은 어둠이 되어 번개처럼 쏘아졌다!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오르는 인간을 향해서!

그리고 쏘아진 짙은 어둠이 땅에 드리운 인간의 그림자를 잡는 순간.

“이건 또 뭐야!?”

그제야 휙 고개를 돌려 경악하는 인간!

이제 이 인간을 털어먹으면 된다!

[……!]

소리 없는 웃음이 터질 때, 인간의 양손이 부딪혔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모든 어둠을 날려 버리는 섬광이 터졌다!

모든 그림자를 지워 버리는 빛, 굉천수.

굉천수가 터진 순간 다리에 달라붙었던 그림자들은 단숨에 사라졌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잠시 사라졌을 뿐이다!

굉천수의 경계 너머, 빛이 방향성을 띠는 가장자리에서 그림자가 생겨나고 있다!

두 다리로 서서, 위협적으로 두 팔을 흔드는 그림자!

그림자 마수!

동료들이 위험하다!

직감하는 순간 천문석은 달렸다.

단숨에 굉천수의 섬광이 터진 장소를 벗어나 바람처럼 계단을 오른다!

그러나 마치 문을 열고 나오듯 바위, 나무, 계단의 음영에서 나타나는 그림자 마수들!

2차원의 그림자 마수가 음영이 진 모든 곳에서 쏟아졌다!

천문석은 재빨리 손을 들어 박수를 쳤다.

짝-

순간 움찔해서 몸을 웅크리는 그림자 마수들!

이 타이밍 단숨에 그림자 마수를 뛰어넘어 달린다.

속았다는 걸 알고 다시 달려드는 순간.

콰아아앙-

터져 나오는 진짜 굉천수!

[……!]

섬광으로 단숨에 그림자 마수들을 떨쳐 내고.

쿵, 쿵, 쿵-

내력이 실린 발로 계단을 밟고 뛰어오른다.

‘최대한 내력을 보존한 채 동료들과 합류해야 한다!’

천문석은 능수능란하게 진짜 굉천수와 가짜 굉천수를 번갈아 사용하며 길을 열었다!

절벽을 타고 크게 휘어진 계단에 도착했을 때 그 너머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휘이, 휘휘이이-

특급 헌터의 퐁퐁검 소리!

“뒤 조심해!”

“랜턴에 붙어!”

“거기 그림자가 생겼다!”

“플래시 비춰!”

다급한 동료들의 외침!

그림자 마수와 싸우고 있구나!

전장에 들어가는 순간 최대 출력 굉천수부터 때려 박는다!

천문석은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굉천수의 구결에 따라 움직였다.

왼손의 음극과 오른손의 양극!

파득, 파드득-

반발력을 담은 굵은 뇌전이 꿈틀 치솟는 순간.

바로 앞으로 다가온 모퉁이!

쿵-

성큼 뛰어 바닥을 짓뭉갤 듯 밟고 몸을 던지며 외친다!

“전방 섬…….”

굉천수를 터트리려던 천문석은 돌처럼 굳어 버렸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절벽을 타고 휘어진 곳, 계단과 계단 사이 평평한 공간.

사방에서 밀려 오는 그림자 마수들.

랜턴을 바닥에 깔고 플래시를 서로에게 비춰 그림자를 없애는 동료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종횡무진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었다.

휘이, 휘휘이이-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지는 나뭇가지 검을 들고.

이야압, 얍얍얍얍-!

경쾌한 기합을 터트리며 펄쩍 뛰어올라 퐁퐁검을 내리치는 사람.

특급 헌터!

“……!?”

아무리 눈을 비벼도 그대로다.

어이없게도 특급 헌터가 그림자 마수를 쥐어패고 있었다!

* * *

퐁퐁, 퐁퐁퐁-

특급 헌터의 퐁퐁검에서 쏟아지는 비눗방울에 닿는 순간.

검은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짧은 털, 긴꼬리, 붉은 얼굴의!

거대한 원숭이들!

2미터가 훌쩍 넘는 어지간한 몬스터는 두 팔로 찢어 버릴 듯한 거대 원숭이들이 그림자에서 나타났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거대 원숭이들은 자신의 손과 몸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리고 하나같이 번쩍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더니 전신의 털이 모조리 곤두서 파르르 떨었다.

“ㅁㅁㅁ!”

다급한 외침과 함께 몸을 돌려 도망치려 할 때.

짧은 털을 움켜쥐는 작은 손!

“……!?”

이아얍, 얍얍얍얍-!

그리고 기합과 함께 무자비한 퐁퐁검 회초리 세례가 전신에 떨어졌다!

찰싹-

크아악-

차알싹-

케에에엑-

퐁퐁검에 스치기만 해도 눈을 하얗게 뒤집고 쓰러져 전신을 파르르 떠는 거대 원숭이들!

겁먹은 그림자와 거대 원숭이들이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지만.

“멈춰!”

“이리와!”

“빨리빨리 오란 말야!”

특급 헌터가 외치는 순간 도망치던 몸이 빙글 반전해 저절로 퐁퐁검 앞으로 뛰어갔다!

어느새 천문석을 따라 달리던 그림자 마수들도 특급 헌터 앞으로 끌려 간 상황!

“내가 바로 특특급 헌터다!”

카카카카캌-

특급 헌터는 웃음과 기합을 터트리며, 그림자 마수, 거대 원숭이 모두를 쥐어박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내가 꿈을 꾸는 건가!?”

황당함에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일 때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도대체 뭐지!?”

“그림자에서 본체가 나온다고!?”

“아니, 나오는 게 아냐! 그림자의 형질이 변화되고 있다!”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내가 설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저 나뭇가지 검! 저 검 때문인가!?”

한호석 교수가 눈을 부릅뜨고 정신없이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이때 얼굴에 쏘아지는 플래시 불빛!

“왔냐? 빨리 이쪽으로 와라!”

최설이 천문석에게 플래시를 비추며 외쳤다.

천문석은 재빨리 최설과 동료들이 있는 장소로 이동해 질문부터 던졌다.

“……저거 어떻게 된 거야?”

최설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어이없어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한호석 교수님이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계단에 그림자가 지는 거야…….”

자신도 겪은 일.

그림자 마수들의 공격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뒷말은 허준과 진교은에게서 들려왔다.

“달이 구름에 가려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도련님이 우뚝 멈추더니 ‘그림자! 그림자가 이상해!’라고 외치셨어요!”

최설이 특급 헌터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밀려 오는 그림자랑 정신없이 싸웠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까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됐다.”

“…….”

“아니, 지금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원숭이 그림자를 나무 막대기로 때리니까 진짜 원숭이가 튀어나온다고!? 지금 저거 나만 이상 한 거야!?”

머리를 부여잡고 어이없어하는 허준.

최설과 진교은, 한호석 교수. 다른 동료들의 상태도 허준과 다를 게 없었다.

믿기지 않는 얼굴로 연신 눈을 비비며 무쌍을 찍는 특급 헌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천문석도 마찬가지였다.

은연중 특급 헌터는 안전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특급 헌터의 모자에 매달린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 때문!

특급 헌터 이 꼬맹이가 직접 나서서 그림자 마수들을 쥐어박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얼마나 야무지게 쥐어박는지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원숭이들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이때 당당한 외침이 다시금 울려 퍼졌다.

“내가 바로 특특특급 헌터다!”

어느새 그림자 마수는 모두 사라지고, 수백의 거대 원숭이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카카카카카캌-

특급 헌터는 승자의 오연한 웃음과 함께 거대 원숭이들이 널브러진 전장을 돌아봤다.

이때 특급 헌터의 시선이 천문석에게 닿았다.

순간 특급 헌터는 번쩍 손을 들고 외쳤다.

“알바! 봤지!? 난 드디어 진정한 특특특특급 헌터가 됐어!”

“…….”

그리고 천문석이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픽- 전원이 끊긴 장난감 로봇처럼 쓰러졌다.

“으앗!”

“어어어!?”

“안 돼!”

경악한 동료들이 움직이는 순간.

천문석은 이미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특급 헌터가 바닥을 구르기 전에 낚아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이때 머리에 손을 올린 채 납작 엎드린 거대 원숭이와 천문석의 눈이 마주쳤다.

“……!”

순간 전율이 전신을 달렸다.

무쌍을 찍던 특급 헌터는 잠잘 시간이 지나 완전히 잠들어 버렸다.

달려 오면서 살피니 대부분의 거대 원숭이들은 기절한 게 아닌 그냥 납작 엎드린 상태.

바닥에 납작 엎드린 거대 원숭이 수백 마리가 일제히 달려들면 답이 없다!

꿀꺽-

바짝 긴장해 마른침을 삼키는 순간.

쿨, 쿨- 잠든 특급 헌터의 잠꼬대가 들려왔다.

“배고파…… 고기, 맛있는 특급 고기가 필요해…….”

“……!”

순간 원숭이의 눈에 스치는 공포!

바로 질끈 눈을 감고 숨소리조차 죽인다!

거대 원숭이는 진짜 죽은 듯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른 거대 원숭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탁, 탁, 탁-

천문석이 특급 헌터를 안고 쓰러진 거대 원숭이 사이사이 땅을 디딜 때마다, 몸을 얼어붙고 숨소리마저 죽였다!

수백 마리 거대 원숭이가 겹겹이 엎드린 공간에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

“……!”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폭발할듯한 아찔한 침묵이 흐를 때.

천문석은 거대 원숭이 한가운데 문득 멈춰 서서 주위를 살폈다.

절벽을 타고 휘어지는 계단 사이 공간.

이 공간 전체에 수백 마리의 거대 원숭이가 쓰러져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려면 이 거대 원숭이들을 지나가야 한다.

이때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다.

잠든 특급 헌터를 엎드린 거대 원숭이 귓가에 살며시 가져가는 순간!

파스스슥-

전신의 털이 뻣뻣하게 곤두서고.

부르르르-

온몸이 떨리더니 하체가 축축해졌다.

‘이 녀석들 제대로 겁을 집어먹었구나!’

천문석은 바로 동료들에게 외쳤다.

“야, 바로 들어와라! 계단 올라가려면 여기 지나야 한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천문석을 바라보던 동료들은 기겁했다.

“뭐!? 지금 어디를 가로지르라고?”

천문석은 잠든 특급 헌터를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말하고 다시금 외쳤다.

‘얘들 특급 헌터에게 겁먹었어!’

“괜찮으니까! 얼른 이동해! 출구 가려면 저 계단 올라야 한다!”

천문석의 말이 맞았다.

출구로 가려면 어떻게든 거대 원숭이 쓰러진 이곳을 지나가야 했다.

한호석 교수, 허준, 최설, 진교은. 네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고 넷은 발을 내디뎠다.

빈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깔린 수백 마리의 거대 원숭이들 사이로!

거대한 육체에 완전히 압도된 네 사람은 극도로 조심조심 땅을 밟고 이동했다.

그러나 거대 원숭이가 너무 많았기에 땅만 밟고 이동할 수는 없었다.

물컹-

꼬리를 밟고!

꽈득-

손가락, 등, 허리, 몸 곳곳을 밟았다!

밟힐 때마다 거대 원숭이들은 움찔움찔 경련했으나 눈을 뜨지도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

“……!”

터질듯한 아찔한 침묵은 절대 깨지지 않았다.

천문석과 특급 헌터.

다른 동료들이 모두 거대 원숭이를 지나쳐 계단에 도착할 때까지도!

계단에 동료들이 도착한 순간.

천문석은 바로 계단 위를 가리켰다.

“먼저 올라가세요. 제가 뒤에서 걷겠습니다.”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선두는 오러 각성자 허준.

중앙에 한호석 교수와 진교은.

후열에 무공 각성자 최설.

동료들이 계단을 올라갈 때, 천문석은 거대 원숭이들에게 시선을 둔 채로 뒤로 걸어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자 한눈에 들어온다.

2미터가 넘는 신장.

300kg이 넘을 몸무게.

압도적인 신체 스펙을 지닌 거대 원숭이 수백 마리가 감히 고개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죽은 척 바짝 엎드려 있다!

지금 자신의 품에 안긴 특급 헌터, 이 꼬맹이에게 퐁퐁검으로 쥐어박혀서!

이 순간 천문석은 기이한 직감이 들었다.

퐁퐁검의 힘이 아니다.

특급 헌터 이 꼬맹이의 힘이다!

이때 특급 헌터의 정글모에 미동도 없이 붙어 있는 곤충이 보였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들.

신동대문에서 압도적인 힘을 보여 준 ‘초거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나타나 모든 걸 난장판으로 만드는 ‘새끼 다람쥐’.

한강에 거대한 얼음 다리를 만들었던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

가끔 찾아와 칼로리 바를 날름날름 먹고 가는 ‘새끼 고양이’.

사슴이, 반짝이, 니케, 탱탱이, 냠냠이.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모든 동물 친구들보다 특급 헌터가 더 범상치 않다!

천문석은 품에 안긴 특급 헌터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너 정체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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