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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99화 (60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99화>

“소리?”

고개를 들어 주위를 훑었지만.

휘이이잉-

바람 소리뿐 다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천문석은 특급 헌터에게 물었다.

“소리가 들렸다고? 어디서?”

“저어기서!”

높게 솟은 바위.

바위 사이 작은 오솔길.

곳곳에 자라난 나무들.

안개가 흐르는 계단.

하늘 높이 뜬 달과 별.

안개에 가려지는 봉우리와 산까지.

특급 헌터는 퐁퐁검으로 주위 모든 것을 가리켰다.

틀렸다!

이 녀석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돌려 동료들에게 물었다.

“너희 혹시 무슨 소리 들었냐?”

바로 고개를 젓는 동료들.

“난 못 들었는데?”

“아무 소리도 못 들었어요.”

“소리라고? 바람 소리도 잦아드는데?”

천문석은 귀를 기울였다.

휘이이잉-

허준의 말대로 바람 소리가 잦아들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고 있다.

소리가 들리기는커녕 점점 더 조용해지는 상황.

“야, 너 소리 들은 거 맞냐?”

천문석이 다시 물었을 때.

특급 헌터는 옆에 없었다.

어느새 계단을 달려 일행의 선두 한호석 교수 옆에서 신나게 외치고 있었다.

“알바! 빨리빨리와! 왜 이렇게 늦어! 우리 얼른 가서 고기 먹어야지!”

선두의 한호석 교수가 바로 말을 받았다.

“10분 정도만 올라가면 목적지 나온다! 혹시 모르니 빠르게 이동해야 한다.”

2번째 출구에 문제가 생겼으면 바로 다음 출구로 이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호석 교수의 말을 알아들은 동료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

이 순간 천문석은 기묘한 직감을 느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고, 바람 소리마저 잦아드는 지금 무언가 일어날 듯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다!

특급 헌터의 소리가 들렸다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도 그것 때문이다.

천문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외쳤다.

“모두 먼저 올라가세요! 전 뒤 좀 확인하고 따라갈게요!”

외침과 함께 천문석은 주위를 확인했다.

왼쪽으로는 커다란 바위아래 작은 오솔길이 있고, 오른쪽 계단 너머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봉우리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완만한 나선을 그리는 계단까지 계단산을 오르며 몇 번이나 본 풍경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하나!

거센 바람이 잦아들면서 계단을 타고 흐르는 안개가 점점 짙어져 어느새 무릎까지 올라왔다.

이 안개는 연기처럼 흩날려 시야를 가리고, 마치 흡음재처럼 소리마저 흡수해 정적이 내려앉고 있었다.

몸을 돌려 뒤를 보자, 물에 잠긴 것처럼 안개에 완전히 잠긴 계단이 보였다.

“…….”

이 안개 너머로 기감을 뻗어 봤지만, 안개에 기감이 막혀 2, 3미터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자욱하게 차오르는 안개는 시야와 소리, 기감까지 흡수하고 있었다!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볼까?’

이때 퐁퐁검에서 흘러나오는 휘파람 소리와 특급 헌터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리서 들렸다.

휘휘, 휘이이이-

“알바! 얼른 와…….”

고개를 돌리니 안개가 흩날리는 계단 사이로 사라지는 일행이 보였다.

“언제 저기까지 올라간 거야? 알았…….”

대답하려는 순간 섬뜩한 직감이 몸을 휘감았다.

재빨리 몸을 던져 암반 그림자에 붙어 기척을 죽이는 순간.

자욱한 안개 속에서 튀어나오는 강화 전투복을 입은 사람!

헌터!

바로 뒤에 붙을 때까지 내가 몰랐다고?!

안개 때문에 놓쳤구나!

자신이 그렇다면 상대도 마찬가지!

상황을 깨닫는 순간 재빨리 몸을 숙여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때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헌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헉! 허억- 리더!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안개 속에서 줄줄이 나타나는 헌터들!

둘, 셋, 넷, 다섯!

오랜 시간 전력 질주했는지 하나같이 숨을 몰아쉬는 다섯 헌터!

‘이 녀석들 뭐지?!’

의문을 품는 순간 외침이 들려왔다.

“술 냄새는?!”

“안개가 너무 짙어 냄새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쪽으로 길이 있습니다!”

계단 안쪽 높게 솟은 바위 사이에 드러난 오솔길을 가리키는 헌터.

성큼성큼 걸어온 한 헌터가 오솔길과 위로 이어지는 계단을 번갈아 봤다.

망설이는 듯한 모습만으로도 이 헌터의 생각이 짐작됐다.

계단 위와 오솔길.

어느 길을 선택할지 망설이고 있다!

이때 망설이던 헌터가 외쳤다.

“이세기가 마지막 희망이다! 그놈 찾지 못하면 여기에 고립된다! 바닥 샅샅이 훑어라! 어떻게든 술 냄새를 찾아야 한다!”

헌터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자욱한 안개 속에 얼굴을 박고 흔적을 찾았다.

‘이세기’를 말하는 순간 천문석은 이 헌터들의 정체를 알아챘다.

허준이 말한 그 헌터들!

칠성파 김기철이 고용한 추적팀 헌터구나!

바닥에 얼굴을 박은 모습을 보자, 어떻게 자신을 쫓았는지도 감이 왔다.

배낭에 단단히 고정한 종이 팩 청주, 그중 하나가 터졌었다.

적당히 뒤처리하고 신경을 끊었는데, 터진 청주에서 흘러나온 술 냄새를 쫓아 왔구나!

그렇다면 이 녀석들을 따돌리는 건 간단했다.

천문석은 배낭에 고정된 종이 팩 청주 하나를 뜯어냈다.

그리고 산 안쪽으로 이어진 바위 사이 오솔길을 바라봤다.

빛과 소리를 막는 안개 때문에 술 냄새만으로 추적하는 상황!

오솔길 방향으로 술을 흘려 주면 간단히 유인할 수 있다!

천문석은 기척을 죽인 채 안개 속으로 스며들어, 계단과 오솔길 바닥을 기고 있는 헌터들을 크게 우회했다.

좁은 오솔길 입구를 훑는 한 녀석이 있지만, 문제는 없다!

가볍게 몸을 띄워 벽을 박차고 들어가면 되니까!

휘휘, 휘이이이-

이때 퐁퐁검의 휘파람 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

“……!”

휘파람 소리를 눈치채고 번쩍 고개를 드는 헌터!

“지…….”

헌터가 외치려는 순간 천문석은 등 뒤에서 달라붙어 경동맥에 조르기를 넣었다.

“……!”

생각지도 못한 기습 공격에 단숨에 기절하는 헌터!

‘하, 시바 걸릴 뻔했잖아!’

재빨리 헌터를 어깨에 짊어지고 오솔길로 방향으로 몸을 던지려는 순간.

바로 앞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이 빌어먹을 안개! 하나도 안 보이잖아! 모두 안쪽으로 붙어라! 바깥쪽 위험하다!”

그리고 바로 앞 안개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얼굴!

“……!”

“……!”

천문석은 안개에서 나오던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땀과 흙으로 엉망인 얼굴.

하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칠성파 김기철!

김기철은 생각지도 못한 조우에 넋이 나갔다.

그러나 곧 얼굴에 환희가 생겨나고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세…….”

그러나 김기철의 외침은 다른 헌터들에게 닿지 않았다.

한발 먼저 터져 나온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거대한 외침이 김기철의 목소리를 지워 버렸다.

“이세기가 기습 공격했다! 엎드려!”

* * *

“뭐?! 이세기!”

“이세기가 나타났다!”

“안개 속에서 이세기가 기습 공격했다!”

“사격 금지! 모두 사격 금지!”

“벽! 모두 벽으로 붙어라!”

……

다급한 외침이 사방에서 터지고, 헌터들은 바짝 몸을 숙여 벽으로 기었다!

자욱한 안개에 시야가 죽은 상황!

이럴 때 사격을 하다간 아군 뒤통수에 마탄이 박힌다!

단숨에 눈먼 마탄 사격을 막아 낸 천문석.

“……!”

이때 김기철이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보였다.

“이 미친…….”

천문석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깨에 짊어진 헌터를 김기철에게 집어던졌다!

“동료 받아라!”

후우우웅-

당연하단 듯 날아오는 헌터를 피하고.

손으로 강화 전투복을 훑는 김기철!

날카로운 예기를 품은 단검을 잡는 순간.

거리낌 없이 옆구리에 찔러 넣는다!

완벽한 타이밍!

“잡았다! 이 새끼!”

이 순간 쇳소리가 울렸다!

깡, 깡, 깡-

세 번의 충돌 만에 부러져 날아가는 단검!

김기철보다 천문석이 더 놀랐다!

강화 전투복의 마력장은 무기에도 적용된다.

이렇게 단검이 단숨에 부러져 나갔다는 건?

김기철 이 녀석의 강화 전투복 마력이 완전히 방전된 상태라는 것!

‘이 녀석 숨어다니느라, 강화 전투복 충전도 제대로 못 했구나!’

천문석은 깨닫는 순간 거침없이 밀고 들어갔다.

불쑥- 튀어나와 대놓고 강화 전투복을 노리는 강철봉!

으아악-

김기철은 떨어지는 강철봉을 피해 악을 쓰며 몸을 날렸다!

이 순간 천문석은 몸을 날리는 김기철의 멱살을 틀어쥐고 같이 굴렀다.

데굴데굴데굴-

안개가 가득한 화강암 계단을 정신없이 구르는 두 사람!

으악, 컥, 으아악-

조폭 김기철의 비명만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당연했다!

강화 전투복이 완전히 방전됐고 자욱한 안개로 시야가 가려져 마탄이 봉인된 상황!

근접 1:1로 붙는 순간 김기철은 천문석의 상대가 아니었다!

탁-

천문석이 땅을 박차고 몸을 일으켰을 때 조폭 김기철은 완전히 제압된 상태였다.

“너 이 개…… 커억!”

틀어쥔 멱살에서 경력을 쏟아부어 단숨에 마비시킨다!

이때 자욱한 안개 속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야, 김기철! 대답해라!”

“이세기 놈은 어디 있습니까?!”

……

엄청난 살기!

그러나 안개가 있는 이상 마탄을 쏠 수는 없다!

천문석은 김기철을 잡은 채 오솔길로 달려가며 연신 외쳤다.

“왼쪽 바위 사이! 오솔길!”

“이세기가 오솔길로 도망쳤다!”

“보스가 이세기를 쫓고 있다!”

“너…….”

제압된 김기철이 분통을 터트리려는 순간.

천문석은 경력을 거두고 번개같이 딱밤을 날렸다.

따아악-

딱밤을 맞는 순간 칠성파 중간 보스 김기철의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반응은 바로 돌아왔다.

“형님?!”

“보스가 이세기와 싸우고 있다!”

“오솔길이다!”

“바위 사이에 길이 있다!”

“잡을 수 있다! 전력으로 달려라!”

……

다급한 외침과 함께 오솔길로 쏟아지는 헌터들!

등 뒤로 찌르는 듯한 살기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이때 오솔길 출구가 보였다.

휘이이이-

계단과 달리 출구 너머에는 넓게 펼쳐진 초지가 있었다!

이 타이밍 천문석은 오솔길 좌우 바위를 박차고 위로 뛰었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오른쪽!

1미터 남짓한 오솔길 좌우 바위를 밟고 수십 미터를 오르는 순간 바위에 자라난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마비시킨 김기철을 나무 위로 던져 올린다!

김기철이 나무에 걸리는 순간.

천문석은 종이 팩 청주를 움켜쥐었다!

왈칵-

쏟아지는 청주를 내력으로 하나로 모아 초지를 향해 발사한다!

파아아앙-

내력의 공은 점점이 청주를 흘리며 초지 깊은 곳으로 쏘아졌다!

반응은 바로 돌아왔다.

“이쪽입니다! 안쪽으로 술 냄새가 이어집니다!”

다급한 외침과 함께 오솔길 출구를 지나 초지로 달려가는 헌터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헌터들과 조우하고 이들을 엉뚱한 장소로 유인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분 남짓!

이제 마지막으로 할 일만 끝내고 빠져나가면 된다!

천문석은 나무에 걸어 둔 칠성파 중간보스 김기철을 봤다.

“……!”

경악으로 일그러진 얼굴과 부르르 떨리는 몸만 봐도 조폭 김기철의 생각이 짐작됐다.

‘당장! 이거 풀어라! 새끼야!’

쓱, 쓱쓱-

천문석은 손에 묻은 청주를 김기철의 강화 전투복 포켓에 닦으며 질문했다.

“야, 다시는 보지 말자고 했잖아? 여기는 왜 온 거야?!”

“……!”

터질 듯 핏대가 솟고 분노로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 그렇지? 몸이 마비됐지?”

천문석은 풀어 줄 듯 손을 움직이다가 멈췄다.

생각해 보니까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복수하러 왔을 거다.

“당연히 복수하러 왔겠지?”

그렇다는 듯 마비된 몸을 부르르 떠는 조폭 김기철!

천문석은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쯧쯧쯧. 야, 복수심은 스스로를 망치는 거야! 원수를 용서할 줄 알아야지!”

뭐, 이 새끼가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 때려놓고는 자기를 용서하라는 거야!?

김기철이 너무나 황당해서 각성력을 끌어올리던 것도 잊는 순간.

천문석은 김기철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그럼 수고해라. 난 간다.”

천문석은 오솔길 좌우 바위를 박차고 달려 순식간에 계단에 도착했다.

오솔길 안쪽 초지로 유인해 시간을 벌었지만 길어야 1, 20분!

하지만 이 1, 20분이면 충분하다.

이 던전의 2번째 출구는 10분 거리에 있으니까!

천문석은 전력으로 계단을 뛰어오르며 기원했다!

“2번째 던전 출구는 제대로 있겠지? 있을 거야. 있어야 해! 땅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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