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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98화 (59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98화>

거대한 그림자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동굴 입구.

이곳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쪽입니다!”

추적팀 리더는 땀이 흠뻑 젖은 모습으로 동굴에서 나오는 순간 재빨리 몸을 숙이고 주위를 확인했다.

자욱한 안개로 시계가 엉망인 상황!

휘이이이잉-

이때 거센 강풍에 안개가 흩어지고 압도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끝없이 펼쳐진 구름의 바다와 그 위에 솟은 수만의 산과 봉우리!

동굴에서 나오던 철검장과 칠성파의 헌터들은 경악으로 굳어 버렸다.

“이게 대체?!”

“……여기가 던전이라고?!”

“형님! 여기 진짜 던전 맞습니까?!”

……

왕체와 김기철 두 사람은 부하들의 목소리에 담긴 짙은 불안감을 느꼈다!

두 사람도 심장이 터질 듯 불안해졌다.

미궁, 숲, 폐허, 굴, 미로…….

그동안 겪었던 던전과 완전히 다른 환경!

하늘의 달과 별.

눈앞에 펼쳐진 봉우리와 안개.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담긴 생명력까지!

이 모든 것에서 압도적인 개방감, 현실감이 느껴졌다!

던전!

이곳이 포켓 차원, 닫힌 공간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 순간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균열!

설마, 균열에 삼켜진 건가?!

균열에 삼켜졌다면 이곳이 마경이라는 이야기!

마경이라면 거대 괴수, 재앙급 마수와 몬스터가 반드시 있다!

대형 길드 레이드 팀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야 잡을 수 있는 존재들!

지금 상태로 그놈들에게 걸리면 아무것도 못 하고 죽어 나갈 게 뻔했다!

“…….”

“…….”

왕체와 김기철 두 사람이 뭐라 대답하지 못할 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 거의 사라졌지만, 술 냄새가 약간 남아 있습니다! 위쪽입니다! 40분 정도 거리입니다!”

추적팀 리더가 계단에 엎드린 채로 외쳤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추적팀 헌터 전원과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올랐다!

순간 왕체와 김기철은 깨달았다.

어차피 다른 방법은 없다.

어떻게든 이세기를 찾아야 한다!

“우리도 뒤를 따른다!”

“바로 움직인다!”

왕체와 김기철이 움직이는 순간 반사적으로 뒤를 따라 움직이는 부하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헌터들이 있었다.

이세기를 제압하기 위해 고용한 무장 헌터 20여 명!

“…….”

이들은 움직이지 않고 동굴 앞 계단에 서 있었다.

“뭐 하냐?! 당장 따라 올라와라!”

순간 무장 헌터들은 서로를 보더니 그중 지휘관이 앞으로 나섰다.

“……계약은 여기까지로 합시다.”

“뭐? 이 새끼가?!”

칠성파 김기철이 발끈해서 나서는 순간.

왕체가 손을 뻗어 김기철을 제지하고 고개를 돌려 부하들을 훑었다.

왕체의 시선은 최림에서 멈췄다.

최림이 무장 헌터들과 계약한 당사자였다.

“최림.”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에 숨죽이고 있던 최림은 왕체의 말에 바로 앞으로 나섰다.

“계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휘관은 지상으로 이어진 계단을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던전, 마경, 이세계.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의뢰 수행이 무의미합니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가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순간 김기철이 버럭 소리쳤다.

“멍청한 새끼들! 여기가 어딘지 알고 내려가?! 지금은 어떻게든 이세기를 잡는 수밖에 없다!”

“…….”

“…….”

지휘관과 무장 헌터들은 갈등 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이 모습을 본 왕체는 감을 잡았다!

아직 확신을 가진 건 아니다!

감을 잡은 왕체는 바로 질렀다.

“성과급을 지급하겠다. 큰 거 한 장!”

던전, 균열, 이세계…….

지금 있는 장소가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과급은 큰 의미가 없었다.

절벽에 매달린 사람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닌 튼튼한 밧줄이니까.

하지만 왕체가 제시한 성과급은 명분이 되어 줬다.

무장 헌터 지휘관이 부하들을 다시 한번 설득할 명분.

곧 시선이 어지럽게 얽히고, 지휘관은 왕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2장으로 합시다.”

“알았다.”

협상이 끝나는 순간 계단에 멈춰 서 있던 모든 헌터들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쿵쿵, 쿵쿠쿵-

40여 명의 헌터들의 발소리가 단단한 계단을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계단이 다시 한번 진동했다.

위가 아닌 아래 방향이!

쿵, 쿵, 쿵-

자욱한 안개 속에서 나무통이 불쑥 튀어나왔다!

사람 너덧 명은 너끈히 들어갈 거대한 나무 술통!

그런 나무 술통 세 개가 단단히 끈으로 묶여 쇠 지게에 올려져 있고.

이 쇠 지게를 얼굴 전체를 둘둘둘- 천을 휘감아 가린 한 사람 짊어졌다.

이 사람은 주위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오늘따라 왜 이리 조용해?”

평소 경계 너머 지름길로 술통을 나를 때면 술 냄새라도 맡겠다고 개떼 같이 달려들던 놈들!

하누만의 그림자!

그 녀석들이 오늘따라 진짜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누만이 술을 끊었을 리는 없으니, 분명 어디선가 다른 사고를 치고 있을 거다!

그림자에서 불쑥 튀어나와 짐을 낚아채 도망치거나.

안개 강을 지나는 배에 탄 얼빠진 여행객을 납치해 술과 바꿀 수도 있었다!

쯧쯧쯧-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고 하늘을 바라봤다.

꿈꾸는 달이 뜨고, 별의 강이 흐르는 하늘.

빛의 베일에 가려져 하늘 너머의 허공도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그림자 세계는 허공도의 반면(反面)이자 반면(半面)!

하늘로 튕겨 올라 회전하는 동전이다.

동전이 멈추고 꿈꾸던 허공도의 제사장이 깨어나는 순간!

경계를 넘나들던 하누만들은 곡소리가 날 것이다!

순간 쇠 지게에 술통을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는 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 말은 제사장이 깨어나도 자신보다 하누만들이 먼저 아작이 난다는 뜻!

즉, 자신이 건방진 잔소리꾼 제사장 놈에게 걸려 폭풍 잔소리와 협박을 당할 위험이 없었다!

‘잘됐다!’

이 틈에 재빨리 배달을 완수하고 대금을 수금해서 돌아가면 된다!

이번이 100번째 배달 의뢰다!

이번 의뢰만 끝나면 자신의 과수원에도 양조장을 세울 돈이 모인다!

마침내!

격동으로 전신이 부르르 떨리는 순간.

붉은빛과 금빛 안광이 천을 뚫고 쏟아졌다!

양조장을 세우면 세계의 나무조차 가지를 기울일 천상의 미주를 만들리라!

오래 산 하누만 장로가 점을 친 대로 자신에게 이름, 명운(命運)을 주실 분을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

크카카카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지는 순간.

쿵쿵, 쿵쿵쿵-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이렇게 쫓기는 사람도 모르는 추격전이 시작됐다.

-천문석 일행.

-파도처럼 몰아치는 하누만의 그림자.

-왕체와 김기철, 40여 명의 헌터들.

-술을 배달하러 경계를 슬쩍 넘어온 과수원 주인.

이때 이 추격전의 선두 천문석은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 * *

환한 달이 뜬 하늘에는 별의 강이 흐르고.

층층이 계단이 이어지는 지상에는 빛을 품은 안개가 흘러내린다.

마치 꿈속을 걷는 듯한 흑백 농담의 세계에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휘이이, 휘이이이-

천문석의 부는 휘파람에 담긴 아득한 그리움이 밤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이때 돌연 휘파람이 끊기고 질문이 튀어나왔다.

“야, 할 수 있겠냐?”

“이번에 될 거 같아!”

특급 헌터는 주먹을 뿔끈 쥐고 당당히 외쳤다.

일행 모두의 흥미진진한 시선이 특급 헌터에게 모이는 순간.

입을 오므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휘파람을 부는 특급 헌터!

“히이이, 히이이이!”

하지만 입에서 튀어나온 건 휘파람 소리가 아닌 목소리였다!

피식, 피식-

사방에서 헛웃음 소리가 터져 나올 때.

천문석은 다시 한번 특급 헌터의 실수를 교정했다.

“야, 그게 아니라니까. 휘파람은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입으로 바람을 부는 거야. 피리 부는 거처럼. 이렇게!”

휘이, 휘휘휘-

천문석이 능숙하게 휘파람을 불어 시범을 보이자.

특급 헌터는 두 손을 꽉 쥐고 이 모습을 유심히 살피다가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히이, 히이이이!”

그리고 또다시 실패했다!

“……안 되잖아!”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엄청 열심히 하는데?!”

“왜 휘파람 소리가 안 나?!”

“히이이! 히이이이!”

특급 헌터가 연이은 실패에 분통을 터트릴 때,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렸다.

“와, 너도 못 하는 게 있구나?! 휘파람. 이 간단한 게 안 되네? 카캬카-.”

휘이, 휘휘휘-

“으악! 왜 안 되지! 분명 똑같이 했는데!?”

“히이, 히이이!”

“히히, 히히히!”

……

몇 번이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 특급 헌터.

그러나 특급 헌터의 휘파람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대신 심각한 표정이던 동료들을 웃기는 데 성공했다!

얼굴 전체에 웃음이 걸린 한호석 교수.

‘이렇게 간단하네! 왜 못하지?’

연신 놀리는 허준.

‘괜찮아. 휘파람 좀 못 불 수도 있지!’

‘맞아요! 휘파람은 안 나와도 목소리가 훌륭해요!’

아부하는 최설과 진교은.

동료 모두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특급 헌터는 포기를 모르는 아이!

쉴 새 없이 휘파람을 불기 위해 노력했다!

특급 헌터의 얼굴이 터질 듯 빨갛게 달아올랐을 때.

천문석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넌 입으로는 안 되겠다. 다른 방식으로 불게 해 줄게. 퐁퐁검 줘봐.”

“다른 방식으로 휘파람을 불어?”

솔깃한 표정으로 퐁퐁검을 건네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간만에 돌아온 퐁퐁검을 쓱 훑었다.

나무 속을 파내서 만든 짧고 가벼운 퐁퐁검.

이 퐁퐁검은 전생의 천문석이 어린 시절 만든 물건이었다.

전생의 자신이 만든 물건이, 현생의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어지는 인연.

하늘의 인과란 너무나 아득하여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이 아득한 인연에 웃음 짓는 순간 나무 검에 얽힌 기억이 떠올랐다.

장난감도 놀거리도 없는 산속 사당의 동생들에게 만들어 준 장난감 나무 검.

이 나무 검은 속이 비었기에 맞아도 다치지 않는다.

무림 던전에서 만난 이세기가 전해 준 이 검에는, 이제는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적예(赤芮).’

그 이름과 얽힌 추억은 모두 사라졌지만,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천문석은 퐁퐁검의 구멍에 손가락을 올리고 가볍게 휘둘렀다.

휘이이-

바람 소리를 닮은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곧.

휘이이, 휘휘휘휙-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퐁퐁검에서 나오는 휘파람 소리가 운율을 띄기 시작했다.

특급 헌터의 눈이 커다래졌다.

아무리 해도 나오지 않던 휘파람 소리가 퐁퐁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 노랫소리에 감정이 담기기 시작했다.

한여름 소나기 후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같고.

한겨울 높게 쌓인 눈을 흩날리는 매서운 바람 같다.

시원하나 쓸쓸하고 아련하나 문득 미소 짓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퐁퐁검에서 울려 퍼지는 휘파람으로 부는 노래.

이 노래는 전생의 천문석이 휘파람을 불지 못했던 어린 적예에게 가르쳐 준 노래였다.

“어때 이건 할 수 있겠냐?”

천문석은 특급 헌터에게 퐁퐁검을 던져 줬다.

탁-

퐁퐁검을 잡은 특급 헌터는 신나게 검을 휘둘렀다.

휘이, 휘이휙휙히이-

처음에는 엉망진창이었으나 금세 퐁퐁검에서는 그럴싸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시 특급 헌터는 이름 대로 몸 쓰는 데는 특급이었다!

휘이이이-

이때 돌연 퐁퐁검에서 흘러나오던 바람 소리가 그치고 특급 헌터가 물었다.

“알바 이 노래 이름이 뭐야?”

이 순간 완전히 지워졌다고 생각한 기억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붉은 비단에 은사로 문양을 넣은 옷을 입고, 달빛이 비치는 무덤 앞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아이.

검은 머리카락이 달빛에 반짝이고, 붉은 비단옷이 밤바람에 흩날린다.

이 순간 바람결을 타고 퍼져 나가는 처연한 노랫소리.

이 아이의 얼굴, 웃음, 이름. 그 무엇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부른 휘파람 소리와 어우러지는 처연한 노래는 너무나 생생히 기억났다.

이 순간 불현듯 무덤의 주인이 누군지 깨닫고 동시에 이 춤의 이름이 기억났다.

진혼무(鎭魂舞)!

그리고 벼락같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기억에서 사라진 아이가 추는 진혼무!

진혼무를 추는 아이의 이름은 적예.

적예가 부르는 노래는 너무나 빨리 하늘과 대지로 돌아가는 혼백을 위로하는 노래.

“진혼가.”

천문석이 말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고개를 갸웃했다.

“진혼가?”

그리고 곧 환한 얼굴로 퐁퐁검을 휘둘렀다.

휘휘이, 휘후휘후히휘-

오래전 너무 이른 죽음을 위로하던 노래가 긴 세월이 흘러 다시 한번 불러 졌다.

너무나 경쾌하고 즐겁게!

이 순간 천문석은 웃었다.

적예, 기억에서 사라진 그 아이도 이 경쾌한 진혼가가 마음에 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죽음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다.

지금 이곳에 있는 자신이 그 증거였다.

어쩌면 언젠가 어디선가 ‘적예’ 그 아이와 다시 인연이 닿을지도 몰랐다.

퐁퐁검 전생에 만든 나무 검이 아득한 인연으로 자신에게 돌아온 것처럼!

천문석은 너무나 즐거운 상상을 하며 밤의 계단을 올랐다.

꿈꾸는 달이 뜨고 별의 강이 흐르는 하늘 아래.

허공도의 반면, 그림자 세계가 펼쳐져 있다.

이 끝없는 계단 산에 흘러내리는 안개는 갈망을 현실로 바꾸는 하늘 고래의 념(念).

그리고 천문석의 잡낭 속에는 인과와 운명을 잇는 동전, 흑전이 들어 있었다.

문득 흑전이 빛나고.

[ㅁㅁㅁ ㅁㅁ]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응?”

특급 헌터는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를 돌아봤다.

“무슨 소리 들린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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