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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94화 (59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94화>

한호석 교수가 꺼낸 태블릿에 전자 문서가 띄워졌다.

의뢰계약서.

비밀유지 서약서.

최설은 계약서를 두 번 검토하고 천문석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어.”

태블릿을 받은 천문석은 전자 서명을 마치고 최설에게 건넸다.

최설은 바로 쓱쓱- 사인하고.

진교은은 잠시 망설이다가 사인했다.

이때 어느새 검게 변한 손을 번쩍 드는 특급 헌터.

“손도장 여기다가 찍으면 되는 거지!?”

특급 헌터는 태블릿에 검게 물든 손을 찍으려고 달려왔다!

천문석은 재빨리 태블릿을 낚아채 들어 올렸다.

“너 손도장 절대 안 찍는다고 했잖아?”

“알바도 사인 했잖아! 나도 해야지! 그리고 내 첫 임무잖아! 당연히 친구들 보여 줘야 하잖아!”

특급 헌터는 잉크로 검게 물든 손을 흔들며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어차피 미성년자의 계약은 법적 효력이 없었다.

그러나 태블릿에 손도장을 찍게 놔둘 수는 없다.

“야, 친구들 보여 줄 거면 전자 문서는 안 되지!”

외침과 동시에 눈으로 동의를 구하자, 바로 고개를 끄떡이는 한호석 교수.

“넌 따로 계약서 만들어 줄게. 스케치북 줘라.”

“여기 있어!”

특급 헌터는 재빨리 배낭을 열어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내밀었다.

천문석은 한 줄짜리 계약서를 만들어 건넸다.

“특급. 계약서. 특급 헌터는. 열심히. 임무를. 수행한다.”

특급 헌터는 더듬더듬 글자를 읽자마자, 박력 있게 손바닥을 내리찍었다.

쿵, 쿵, 쿵-

순간 터져 나오는 육중한 진동!

“앗!? 이거 뭐야!?”

특급 헌터가 깜짝 놀라 손을 보는 순간.

대피소 문에서 헐떡이는 숨소리 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허억- 야, 너…… 헉- 안에 있지!?”

천문석은 목소리 주인을 바로 알아챘다.

허준!

승합차를 타고 내려간 허준의 목소리다!

인터폰 화면에 뜬 모습!

털가죽 외투를 손에 든 채, 전신이 땀에 흠뻑 젖은 허준.

허준은 연신 뒤를 확인하며 다급히 문을 두들겼다!

쿵, 쿵, 쿵-

그러나 대피소 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문이나 강화 강철로 만든 보안문이다! 당연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제가 아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천문석은 한호석 교수에게 외친 후 바로 문을 열었다.

“헛-.”

순간 넘어지듯 안으로 들어오는 허준.

천문석은 허준의 어깨를 짚어 멈추고 바로 물었다.

“야, 너 여기는 무슨 일이야? 강릉시로 간 거 아니었어?”

“너, 지금. 헉, 허억-.”

허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물 마셔!”

이때 불쑥 튀어나온 특급 헌터가 물이 담긴 컵을 내밀었다.

“……!”

허준은 단숨에 물을 들이켜고 외쳤다.

“김기철! 걔네들이 뒤에 붙었다! 이제 곧 여기로 들이닥칠 거다!”

칠성파 조폭, 김기철!

“뭐?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그 승합차…….”

천문석은 승합차란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알아챘다.

“렌터카! 위치 추적!?”

허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짧게 끊어 말을 쏟아 냈다.

“맞아! 게다가 전문 추적팀이 흔적을 쫓고 있다!”

“내가 확인한 것만. 장갑 SUV 5대, 헌터 수는 40명 이상!”

“전원 제대로 무장했고! 전술 교범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내 뒤 5분에서 7분 거리에 있다!”

순간 최설과 진교은의 시선이 마주쳤다.

제대로 무장하고 전술 교범에 따라 움직이는 헌터들!

왕체와 최림!

철검장 헌터들!?

최설이 다급히 정보를 전하려 할 때.

허준의 말이 이어졌다.

“걔네들 바짝 따라붙어서 포위망 만들고 있다! 지금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포위망 못 뚫는다! 바로 움직이자!”

허준은 외침과 함께 대피소 벽에 걸린 구급 배낭을 챙기고 그 안에 생수를 집어넣었다.

천문석은 감탄했다.

허준은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자신을 돕겠다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추적 전문 헌터팀이 뒤에 붙고, 제대로 무장한 수십 명의 헌터들이 포위망을 만들고 있는데도!

허준은 헌터였다.

은원에 목숨을 거는 무림인처럼, 반드시 은혜를 갚는 진짜 헌터!

“야, 바로 나가자! 이곳 인근 지리는 익숙해. 바로 이동하면…….”

이때 활짝 열린 대피소 문 너머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계단 발견했습니다!”

바로 대피소 밖으로 나가 진입로를 확인하는 일행들.

시야는 바위와 나무, 수풀로 완전히 가려져 있다.

그러나 나무 사이로 번쩍이는 플래시 빛이 보이고, 계단을 달리는 헌터들의 육중한 발소리가 전해졌다!

쿵쿵, 쿵쿵쿵-

“하, 시바! 뭐 이리 빨라! 벌써 포위망을 만든 건가!?”

허준의 시선이 주위를 훑는 순간, 머릿속에서 현재 위치가 그려졌다.

한번 지나갔던 장소다!

절벽으로 막힌 막다른 장소.

그러나 암반에 자란 나무를 타고 이동하면 빠져나갈 수 있는 능선이 나온다!

“저기! 저 나무를 타고 암반 뒤로 움직이면, 빠져나갈 수 있다! 바로 움직이자!”

허준이 다급히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한호석 교수에게 질문했다.

“이 친구 괜찮을까요?”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한호석 교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순간 돌아가는 사정을 모두 파악했다.

그래서 오히려 천문석에게 질문했다.

“자네가 보증할 수 있나?”

진심에는 진심으로!

천문석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네. 제가 보증합니다.”

“뭘 보증해! 바로 튀어야 한다니까! 꼬맹이는 네가 업어! 일반인을 힘들어도 헌터라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허준은 로프를 풀어내며 외쳤다.

천문석은 당장이라도 달려가려는 허준을 잡았다.

“여기서 빠져나갈 다른 방법 있어.”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 막다른 곳인데!?”

“우선 안으로 들어가자!”

천문석은 일행을 이끌고 대피소로 들어왔다.

그리고 육중한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었다.

강화 강철로 만든 보안문.

헌터들이 작정하면 뚫을 수 있지만, 시간은 충분히 벌어 줄 거다.

천문석은 바로 태블릿을 허준에게 내밀었다.

“여기 사인해라.”

“뭐?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허준은 황당해하는 얼굴로 태블릿을 보더니 어이없어했다.

“비밀유지 서약서, 단기 고용 계약서? 야! 한가하게 뭐야!? 저놈들 지금 장난 아냐! 마주치는 순간 마탄이 쏟아질 거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사인했어.”

허준의 시선이 닿는 순간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특급 헌터는 스케치북을 번쩍 내밀었다.

“나도 계약서에 손도장 찍었어!”

[특급 헌터는 열심히 임무를 수행한다.]

스케치북에 적힌 한 줄의 문장 옆에 찍힌 손도장!

허준은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머리 회전이 기가 막힌 녀석이다!

이 녀석 뭔가 계획이 있는 건가!?’

왠지 모를 불길함이 느껴졌으나, 주위의 사람들 모두 한없이 진지하다.

“…….”

잠시 고심하던 허준은 전자 문서에 사인해 태블릿을 넘겼다.

[카티야]

서명을 확인한 천문석이 물었다.

“카티야? 이게 누군데?”

“내 이름.”

“너, 허준이라며?”

천문석의 질문에 헛웃음을 터트리는 허준.

“하- 야, 당연히 허준은 별호지! 누가 여자 이름을 허준으로 지어?”

“……아니, 헌터가 무슨 별호야!?”

“당연히 헌터니까 별호 쓰지! 하얀 번개, 검은 폭풍, 암살검, 강철 해머! 몰라!?”

“……!”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허준이 특급 헌터를 보고 감탄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반로환동, 골탈태!

와, 이 어이없는 무협지 마니아 같으니라고! 별호를 뭐 이렇게 만들어!

“야, 어떤 미친놈이 별호를 사람 이름을 붙여!”

허준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허준 카티야. 진짜로 이상해? 내 부하들은 괜찮다고, 나한테 잘 어울린다고 했는데……?”

‘이 녀석 당했구나!’

“허준 카티야!? 진시황 김철수! 클레오파트라 최설! 엘사 진교은! 이거랑 다를 게 없잖아! 딱 봐도 뭔가 이상하지 않냐!?”

“……!?”

순간 허준 카티야의 얼굴이 충격으로 얼어붙었다.

천문석은 이 어이없는 친구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칠성파 조폭들이 달려 오고 있다!

우선 안전한 장소, ‘이상 던전’에 들어가는 게 먼저다!

천문석은 바로 한호석 교수를 봤다.

“교수님. 이제 들어가죠.”

“내가 1등!”

타다다닥-

재빨리 입구로 달려가는 특급 헌터와 그 뒤를 따르는 일행들!

“야, 거기 아냐.”

“네……? 그게 무슨?”

“야, 빨리 튀어야 한다니까!”

“앗! 나는 무슨 말인지 알겠어! 비밀통로가 있는 거구나!”

“이런 곳에 무슨 비밀통로야!?”

모두의 시선에 의문이 떠오를 때.

한호석 교수가 나무 바닥에 손을 짚었다.

순간 나무 바닥에 네모난 빛이 떠오르고 키패드가 생겨났다!

틱틱틱틱틱틱-

키패드에 여섯 자리 비밀번호가 입력되는 순간.

철컥-

미끄러지듯이 바닥이 열리고 계단이 나타났다!

“비밀통로!?”

일행 모두가 동시에 외치는 순간.

한호석 교수는 천문석을 봤다.

“문 여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데 바로 열까?”

“네. 바로 열어 주시면 됩니다. 전 혹시 모르니 꼬리 확인하고 마지막에 내려가겠습니다.”

한호석 교수가 계단으로 내려가고, 천문석은 어리둥절한 표정의 동료들에게 말했다.

“우선 내려가라.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

“알았어! 내가 1등!”

이번에도 번개같이 달려가는 특급 헌터와 그 뒤로 따라붙는 최설과 진교은.

“뛰면 안 돼요!”

“앗! 도련님 같이 가요!”

“진짜로 비밀통로가 있었다고? 누가 안정화 권역 안에 무슨 비밀통로를 만들어. 설마, 너 혹시 간첩이냐?”

허준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흔들리는 눈동자로 천문석을 봤다.

천문석은 허준의 등을 밀며 외쳤다.

“야, 간첩은! 간첩만 생각하면 내가 이가 갈리는 사람이야! 우선 내려가라. 교수님이 문 열면 바로 알 거다!”

허준이 의혹 어린 얼굴로 내려간 후, 천문석은 휴대폰과 대피소 전화기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휴대폰과 전화기 모두 여전히 먹통이다!

통신이 먹통인 상황에 칠성파 조폭 잔당이라는 변수가 발생했다.

이곳 대피소에서 장민 대표에서 특급 헌터를 인도하기로 했는데, 통신이 먹통이라 칠성파 조폭이라는 변수가 발생했다는 걸 알릴 방법이 없다!

“이게 문제가 될까?”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럴 리 없다.’

장민 대표 정도 되는 인물은 무방비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경호팀과 비서실, 정보팀의 서포트를 받으며 철저히 준비하고 움직인다.

지금쯤이면 강릉에 통신 이상이 생겼다는 건 이미 알아챘을 거다.

당연히 장민 대표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칠성산에 올 테고, 칠성산에 도착하는 순간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는 것도 알아챌 거다.

40여 명의 무장한 헌터들!

개인이 상대하기에는 부담되는 무력이지만, 장민 대표의 영향력이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경찰, 헌터 부대, 국가 헌병대!

무엇이 됐든 공권력이 움직이는 순간, 무장한 조폭 헌터 놈들은 감히 대항할 엄두도 못 내고 정신없이 도망칠 거다!

지금 자신들이 할 일은 계획대로 이상 던전 안으로 몸을 피했다가 돌아오는 것뿐!

그것만으로 문제는 모두 해결된다!

이때 인터폰 화면에 헌터들이 나타났다.

한껏 몸을 숙이고 계단에서 튀어나와, 능숙하게 사방으로 흩어져 은폐 엄폐한다!

안전 헬멧에 편광 바이저!

강화 전투복에 소총을 들고 능숙하게 포위 진형을 짠다!

이때 수신호를 하는 게 보였다.

움켜쥔 주먹!

펼친 손가락 셋!

대피 입구를 가리키는 손가락!

낮게 숙인 몸으로 달려와 벽에 안전 헬멧을 붙이고 확인하는 헌터 셋!

생각 이상으로 능숙한 모습.

대인전 경험이 많은 놈들이다!

평범한 조폭 헌터들이 절대 아니다!

‘혹시 모르니 한번 휘저어 줄까?’

문득 생각하는 순간 지하실 방향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 이제 문 열린대! 빨리 내려 와!”

천문석은 휘젓겠다는 생각을 지워 버렸다.

어차피 자신이 손을 보지 않아도, 문밖에 놈들은 던전 노역형 확정이다.

천문석은 바로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10여 미터의 계단을 내려가 동료들과 합류하는 순간 마침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엄청난 빛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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