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93화>
게이트 전쟁이 터지고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렸을 때.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한호석은 자원입대해 낙동강 전선에 배치됐었다.
전선으로 물밀 듯이 쏟아지는 마수와 몬스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급 마수와 초거대 괴수!
이놈들을 상대로 병력을 갈아 넣어 간신히 낙동강 전신을 지키고 있을 때.
그 녀석들이 나타났다.
단단한 암반조차 모래로 만들어 버리는 초진동 톱날 집게!
섬광이 번뜩이고 날카로운 기계어가 울리는 순간 펼쳐지는 엄청난 마법!
초거대 사슴벌레와 황금빛 풍뎅이!
둘은 낙동강 전선에 불쑥불쑥 나타나, 마치 연행하듯 재앙급 마수와 특이 몬스터를 낚아채 땅속으로 끌고 가곤 했다.
마치 어른이 아이를 끌고 가는 듯한 압도적인 힘!
게다가 이 녀석들은 인간에게는 위협적인 행동도 별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당시 간신히 낙동강 전선을 지키던 정부는 이 둘에 관심을 가졌고 조사단을 파견했다.
그리고 그 조사단에 목격자 중 가방끈이 가장 긴 자신이 포함됐다.
조사단이 낙동강 전선 지하에 만들어진 거대한 지하 터널을 거쳐 도착한 곳은 열사의 사막!
낙동강 전선 지하에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었다.
그리고 이 열사의 사막이 수많은 차원에서 흘러들어온 온갖 유랑민이 모이는 스카라베 왕국, 자본 주의의 화신 같은 존재들이 사는 세계였다!
조사단은 바로 스카라베 왕국을 조사했고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열사의 사막은 스카라베 왕국에서도 극히 일부 지역이라는 것!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던 초거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는 일선 병사일 뿐이란 것!
스카라베 왕국은 한 명의 여왕과 12 총독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제대로 된 협상을 하려면 어떻게든 여왕이나 12 총독 중 한 명을 만나야 했다.
그러나 고위층을 만나려면 단계를 밟아 대가를 치러야 했다.
대가, 사실상의 뇌물을 바치고 단계를 밟아 청탁하는 게 스카라베 왕국에선 아예 명문화된 규칙이었다.
조사단은 그 규칙을 따랐다.
9, 8, 7급 공무원!
그러나 7급 공무원을 만나는 순간 조사단은 파산했다!
그리고 자신은 체류비를 벌기 위해 열사의 사막에서 온갖 일을 해야 했다!
그때 수많은 차원에서 흘러들어온 유랑민들을 만나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 당시 얻었던 정보 중 하나가 ‘경계석’이다.
경계석은 스카라베 왕국에서 최고의 보물 중 하나로 여겨지는 돌이었다.
이세계의 창세 신화에 등장하는 경계석!
창세 신화에 등장하는 놀러 다니기 좋아한다는 존재가 모든 것이 뒤엉킨 혼돈에 선을 그어 경계를 구분했다는 돌!
경계석!
이 경계석을 보여만 줘도 몇 단계나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 공무원들을 단숨에 뛰어넘어 ‘총독’과 바로 만날 수 있었다!
그 당시 한호석은 먼 발치였지만, 경계석을 직접 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경계석일지도 모를 돌이 나타났다!
한호석 교수의 손이 흥분으로 떨렸다.
진짜 경계석이라면!?
스카라베 왕국의 총독을 만나 그 엄청난 병사들을 고용할 수 있다!
“제가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바로 건네지는 하얀 돌!
한호석 교수는 조심스레 하얀 돌을 들어 유심히 살피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경계석과 비교했다!
만지고, 두들기고, 바닥에 그어 보고, 튕겨 본다.
한호석 교수의 얼굴에 어린 기대감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천문석을 봤다.
“그냥 평범한 돌이네요. 이 돌을 주니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 그 녀석들은 숨만 쉬어도 돈을 받는데! 설마 내가 잘못 본 건가!?”
어느새 혼란한 표정으로 다시 혼잣말을 시작한 한호석 교수.
천문석은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7시 47분.
이미 일정이 많이 지체됐다.
차라리 던전에 들어가 캠프를 차리고 깊은 대화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천문석은 바로 말을 끊었다.
“교수님. 우선 던전에 들어가서 대화하는 게 어떨까요?”
“아! 내 정신이…… 네 캠프 차리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우선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바로 계약서 작성하고 진입하죠!”
대피소로 들어가려던 한호석 교수는 멈칫했다.
“그런데 인원이 이야기 한 거보다 많은데? 그건 상관없지만, 저 아이는? 설마, 저 아이까지 던전에 데리고 들어가려는 건 아니겠죠?”
너무나 상식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특급 헌터를 이곳에 놔두고 가면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을 써서 반드시 따라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원래 계획대로 데리고 가서 잠든 후 엄마에게 넘기는 게 안전했다.
그리고 천문석에겐 상식적인 어른 한호석 교수를 설득할 방법이 이미 있었다.
“교수님. 저 아이를 꼭 던전으로 데려갈 이유가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이 던전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계단만 끝없이 이어지는 산봉우리인데…… 설마 저 사슴벌레, 황금 풍뎅이랑 관련된 건가요!? 장민 대표가 뭔가 알아낸 겁니까!?”
의아해하다가 다급히 묻는 한호석 교수.
“아뇨. 그게 아니라. 저 아이 장민 대표님 아들입니다.”
“……어? 장민 대표 아들이면? 그……!”
들은 내용이 이하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하던 한호석 교수.
그러나 한호석 교수는 곧 경악해서 외쳤다.
“장철 헌터 조카! 그 악마 꼬맹이!”
순간 대피소 문이 활짝 열리고 씩씩한 외침이 들려왔다!
“나 불렀어!?”
* * *
“…….”
옥탑방으로 돌아온 워커 실트는 멍하니 손에든 쟁반을 바라봤다.
김치부침개가 가득 담긴 쟁반!
순간 오늘 하루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주인집 꼬맹이가 가져온 김밥과 자신이 사 온 사이다를 같이 먹었다.
그리고 주인집 꼬맹이와 저녁까지 게임을 하며 놀아줬다.
저녁 시간이 되어 간신히 꼬맹이를 돌려보내고 대마법 추적을 펼치려는 찰나!
똑똑똑-
“안에 있니!?”
현관문을 두들기던 주인집 아주머니!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이끌려 강제로 끌려 간 501호 주인집!
저녁으로 숯불갈비를 먹고, 후식으로 과일을 잔뜩 먹은 후.
주인집 식구들과 함께 일일 드라마를 봤다!
그리고 김치부침개가 가득 담긴 쟁반을 들고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워커 실트는 멍하니 김치부침개가 가득 담긴 쟁반을 바라봤다.
뭔가, 뭔가 계획이 자꾸 어긋나고 있다!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전능 옥좌가 떠 있는 서울에 잠입했다!
그런데 대마법을 펼치기는커녕 김밥, 갈비, 과일을 먹고 드라마를 보고 이제는 김치부침개까지 하나 가득 들고 있다!
게다가 주인집 아줌마의 ‘내일 아침 먹을 때 보자!’라는 인사!
이게 아니다!
자신은 꼬맹이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놀려고 서울에 잠입한 게 아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탁-!
워커는 쟁반을 거칠게 내려놓고 달렸다.
단숨에 베란다 창문을 넘어 옥상을 지나 파라솔이 펼쳐진 테이블에 도착!
워커는 랜턴부터 켰다.
환하게 밝혀진 테이블 위 계측용 마도구.
자신이 탈취한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마력 파장이 남한 전체에 물결치는 게 보였다.
“마압은?”
계측용 마도구를 확인하니 이미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
바로 대마법 추적을 펼칠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두 가지다!
워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첫 번째 문제!
밤하늘에 뜬 커다란 불빛, 전능 옥좌!
대마법이 완성되고 발현되는 순간 전능 옥좌에서 자신의 위치를 역추적할 수 있다!
즉, 누구인지 모를 마도왕의 추적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미 서울 곳곳에 더미를 깔아 놓았고, 숨어 들 은신처까지 준비해 뒀다!
더미로 추적이 지연되는 동안 그 은신처로 튀어 장비가 도착하는 걸 기다리면 된다!
두 번째 문제!
지도에 표시된 다섯 게이트.
강릉, 대구, 완도, 대전, 인천 게이트!
자신이 대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이곳 게이트 주변에 생겨난 이상 던전이 주위 대략 1km 안의 모든 사람을 삼켜 버릴 거다!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아니, 더욱 정확히는 대책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5개의 이상 던전 모두 인적이 거의 없는 장소에 있다.
게다가 이 던전은 허공도의 그림자 세계!
이 던전에 삼켜져도 아무 위험도 없었다!
더럽게 많은 계단을 걸어서 빠져나오느라 허리와 무릎이 끊어질 듯 아프다는 것만 빼면!
이때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 던전에 들어가면 개고생을 할 사람이 있기는 했다.
-세계의 나무의 정상에 올라 경계를 걷는 사람!
-허공도의 주인에게 이름을 바친 사람!
-운명을 사는 화폐, 흑전에 얽힌 사람!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허공도의 그림자에 삼켜지는 건.
배 타고 가다가 멍청하게 하누만에게 잡혀가는 것과 비슷한 확률이다!
카카카카캌-
워커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다가 돌연 멈췄다!
순간 워커 실트의 눈에선 형형한 빛이 쏟아지고, 몸에선 타인을 내리누르는 엄청난 위압감이 생겨났다!
워커 실트는 공허의 바다를 건너온 노움!
겉모습은 10살 남짓한 꼬맹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워커 실트는 초거대 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 강철의 폭풍 타이탄을 만들어 낸 마도 공학자, 마도왕조차 아래로 내려다보는 타이탄 마스터였다!
게다가 천공탑을 오르며 레이의 ‘영과 혼을 붙잡는 수정 기둥’을 통해 전생하며 잃었던 마도의 기억과 자신이 창안한 백곰권까지 되찾았다!
수많은 마도왕을 패퇴시키고, 제국 군단조차 물을 먹인 장본인!
강대한 암흑 제국!
초월종, 용인 군단!
허신과 마신의 숭배자!
이들조차 엄두도 내지 못한, 마도 황제의 전능 옥좌마저 떨어뜨린 게 자신이다!
워커 실트는 손을 뻗어 테이블에 놓인 트리거, 게임 패드로 위장한 마도구를 잡았다!
아직 장비가 도착하지 않았지만,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
이제 이 패드로 커맨드만 입력하면 ‘대마법 추적’이 시작된다!
오래전 동생 놈에게 당했던 ‘대마법 추적’이라면, 에코와 무겐다흐가 두 녀석이 한국 어디에 숨어 있든 찾을 수 있다!
워커 실트는 게임 패드를 양손으로 잡고 바로 커맨드를 입력했다!
[>>BBYYY <><> ABXY]
그리고 잠시 후.
부르르르르-
테이블에 놓인 지도 위 계측용 마도구가 미친 듯이 진동을 시작했다.
5개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마력 파장이 실이 되어 거대한 마력회로를 짜 올리기 시작했다!
대마법이 시작됐다!
이제 남은 건 대마법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 에코와 무겐다흐의 마력 패턴을 새기는 것뿐!
그전에 튈 준비를 해야 했다!
워커는 재빨리 배낭을 열어 테이블 위에 놓인 마도구와 물건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그리고 방으로 달려가 잡다한 물건과 메로나를 배낭에 챙겨 메고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었다.
워커 실트는 순식간에 도망칠 준비를 끝내고 두툼한 봉투를 꺼내 매직펜으로 짧은 문장을 휘갈겨 쓰고 휙- 방 중앙에 던졌다.
그리고 김치부침개 쟁반을 들고 옥상으로 돌아와 테이블 위에 앉았다.
트리거는 작동됐다!
이제 대마법이 완성되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오물오물-
“음 이거 맛있네?”
워커가 나무젓가락으로 김치부침개를 먹으며 대마법 추적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이 순간 대한민국 전 지역에 비상이 걸리고 있었다.
강릉, 대구, 완도, 대전, 인천 게이트!
다섯 게이트에서 쏟아져 통신 교란을 일으키던 마력 파장이 몇 배로 강해졌다!
그리고 이 마력 파장이 서로 겹치더니 거대한 마법 회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경남을 제외한 대한민국 전체가 범위에 들어가는 엄청난 마법 회로를!
게이트 관리팀에서 다이렉트로 청와대로 비상 상황이 전파되고, 곧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렸다.
회의가 열리는 순간 헌터 부대와 기갑 부대에 비상이 걸리고.
1종 길드, 위기 상황 시 긴급 동원 대상인 대형 길드들에 출동 대기 명령이 떨어졌다!
전능 옥좌에서는 긴급 대응팀을 태운 헬기 다섯대가 이륙했고,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은 언제든 움직일 준비를 끝냈다.
2000년 1월 1일 최초의 게이트가 열리고 20년의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게이트 전쟁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
20대에 게이트 전쟁에 참전한 청년들은 지금 40대.
정부와 군대, 헌터 업계 모든 곳에 게이트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번 이상 현상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대한민국 전체가 이상 현상에 대응할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이렇게 워커 실트가 부하들을 찾기 위해 발동시킨 대마법이 대한민국 전체를 들썩이게 하고 있을 때.
허준은 마침내 이세기의 꼬리를 잡았다.
위로 쭉 뻗은 가파른 계단에 남겨진 지나간 지 얼마 안 된 흔적!
이 계단 끝에 이세기가 있다!
문제는 뒤에 붙은 용역 헌터들과의 거리가 5분도 안 된다는 것!
지금 당장 이세기를 만나 움직여야 꼬리를 끊고 도망칠 수 있다!
‘으아악-.’
허준은 속으로 악을 쓰며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휘이이이잉-
이 순간 너무나 거대하여 오히려 감지하지 못하는 거대한 마력 파장이 칠성산에 불어왔다.
그리고 ‘이상 던전’이 마치 살아 있는 듯 맥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