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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92화 (593/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92화>

“헉, 허억- 시바! 뭐 이렇게 빨라!”

숨을 몰아쉬며 칠성산 등산로를 달리는 허준.

허준은 30여 분 전 기억을 되짚었다.

능선을 타고 올라 등산로에 도착하는 순간 낙엽과 흙에 남겨진 발자국들을 발견했다.

이세기와 그 일행이다!

‘흔적을 찾았으니 곧 따라잡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등산로를 달린 지 벌써 30분 째다!

이세기와 그 일행들이 얼마나 빠르게 이동 중인지 아직도 꼬리가 보이지 않았다!

“꼬맹이까지 끼어 있는데 뭐 이리 빨라. 헉-.”

숨을 몰아쉬며 어이없어할 때.

문득 등산로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법왕사 방향!

김기철과 용역 헌터들이다!

자신은 쉬지 않고 직선으로 능선을 타고 달렸다!

‘이렇게 빨리 쫓아왔다고!?’

김기철과 용역 헌터들이 생각 이상으로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따라붙었다!

지금은 한밤중!

등산로에 남겨진 미세한 흔적을 추적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흔적을 어떻게 찾은 거지!?’

의문을 품는 순간 바람에 실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셋. 둘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고…….”

“이 한 명은…… 좀 이상한데…… 이거 발자국이 왜 이리 얕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의문이 풀렸다.

용역 헌터들이 발자국으로 흔적을 읽어 냈을 리 없다!

추적 전문 헌터팀이 붙었다!

깨닫는 순간 허준은 바로 전력으로 달렸다.

지금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조심할 때가 아니다.

상대는 추적 전문 헌터팀!

아주 작은 흔적!

각성 헌터의 감각에도 걸리지 않는 작은 흔적만으로도 현상금이 걸린 타겟을 쫓아서.

이세계, 마경, 던전, 균열을 헤집는 놈들이 추적 전문 헌터팀 놈들이다.

자신이 아무리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해도 전문가에게는 걸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차라리 속도를 올리는 게 났다!

허준은 맹렬한 속도로 등산로를 달리며 어이없어했다.

추적 전문 헌터팀의 고용비는 최소 억 단위!

어지간한 원한으로는 고용할 엄두도 내지 못할 거액이다!

‘이세기. 너 도대체 무슨 원한을 산 거냐!?’

* * *

“이번에도 이세기라고?”

강릉시로 향하는 국가 헌병대 지프 안, 국가 헌병대 부대장 염하늘 대령은 어이없어했다.

“네. 대령님! 경찰, 정보상, 채집 길드 쪽에서 건네받은 자료 모두에서 같은 이름이 튀어나왔습니다.”

“이름만 같은 건 아니겠지?”

“네! 엄청난 빛과 섬광! 시력과 청력이 날아가고, 균형 감각이 무너졌다! 증상 모두 일치합니다. 게다가 듣는 순간 울화통이 터지는…… 흠, 흠 죄송합니다. 분노가 끓게 만드는 웃음소리! 홀리듯 군중을 선동하는 연설까지 모두 데이터베이스와 일치합니다!”

부관은 태블릿에서 얼굴을 들어 확신을 담아 말했다.

“이번에도 ‘이세기’가 나타났습니다!”

확신에 찬 보고를 듣는 순간.

염하늘 대령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고블린 평야 몬스터 웨이브.

-신동대문 소요사태.

-공방 도시 추격전.

……

언젠가부터 굵직굵직한 사건이 터져 국가 헌병대가 출동해 무더기로 헌터들을 잡아들일 때마다 튀어나오는 이름.

‘이세기.’

잡아들인 헌터들은 언제나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세기 새끼! 그 새끼가 진짜 범인이라니까!”

“우리는 이세기 놈한테 당해서 미친 듯이 구른 죄 밖에 없어!”

“마탄 취급 위반!? 하! 이세기 그 미친놈은 마력 섬광탄을 셀 수도 없이 던졌어! 그놈부터 잡아야지!”

……

처음에는 어떻게든 강제 자원봉사 시간을 줄이려는 헌터들의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많은 증언에 담긴 상황, 정황이 국가 헌병대 데이터베이스에 모이면서.

‘이세기’라는 헌터의 실체가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손을 부딪칠 때마다 터져 나오는 엄청난 섬광과 굉음!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에 휩싸이고!

-몇 마디 연설만으로 수천 군중을 움직일 정도의 탁월한 선동력을 가졌다!

게다가 본신의 능력을 숨겨 방심을 유도하다가 맞붙어 싸우는 타이밍!

천 년 동안 쌓인 타르처럼 더럽게 끈끈하게 달라붙어 앗! 하는 순간 당해 버린다고 한다!

그동안 모인 증언 일부만 해도 ‘이세기’는 국가 헌병대 현상금 리스트에 올리기 충분한 거물이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상부에서는 이세기에 관해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마치 ‘언터처블 이태성 길드장’처럼 ‘이세기’란 인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 이세기가 내가 출동하는 강릉에 나타났다고?’

염하늘 대령은 눈을 번뜩였다.

327명의 국내외 주요 범죄자들을 던전 노역장에 처박은 국가 헌병대의 사냥개, 염하늘 대령.

염하늘 대령의 최종 목표는 언터처블 ‘이태성 길드장’을 단 한 시간이라도 노역장에서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불가능에 가까운 이 목표를 미리 연습해 볼 타겟이 나타났다.

이세기!

염하늘 대령은 미소 띤 얼굴로 지시했다.

“이세기 동선 추적해라.”

“대령님…… 설마?”

“순찰 중 우연히 이세기를 만날 수도 있잖아?”

염하늘 대령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발화능력과 염동력.

다중 초능력 각성자 염하늘 대령은 수많은 헌터를 잡아 던전 노역장에 처박았다!

그중에는 대형 길드의 이사급 헌터, 1세대 헌터에 필적하는 명성을 지닌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직접 싸워본 헌터들은 하나같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다를 거다.

이세기는 수천의 헌터들이 뒤엉키는 난장판을 수없이 만들어 내고 구르면서 언제나 최후의 승리자가 됐던 놈이니까.

염하늘 대령은 마음속에서 기대감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이세기. 날 실망시키지 마라!’

염하늘 대령이 탄 지프와 국가 헌병대 병력을 태운 장갑 버스 십여 대가 강릉시를 향해 나아갔다.

김기철과 왕체, 칠성파와 철검장의 헌터들이 뒤를 쫓고.

허준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조력자가 달려 오고 있는 이때.

천문석이 그동안 수도 없이 외친 이름 ‘이세기’.

‘이세기’의 이름을 사칭한 인과가 구르고 굴러 마침내 천문석을 조준했다!

국가 헌병대 염하늘 대령이 자신도 모르게 천문석을 찍었다!

* * *

“다 왔다. 이 계단 올라가면 목적지다.”

천문석은 가파른 계단을 가리켰다.

“내가 1등!”

탁탁, 타타탁-

특급 헌터가 선두로 계단을 오르고, 그 뒤로 최설과 진교은 마지막으로 지게를 짊어진 천문석이 올랐다.

천문석은 후미에서 일행을 살폈다.

목말 타기, 지게 타기, 걷기, 달리기를 번갈아 한 특급 헌터는 여전히 체력이 남아 생생한 상태.

최설은 숨소리조차 거칠어지지 않았고, 신입사원 진교은도 생각 이상으로 잘 버티고 있다!

이 상태라면 던전에 들어가 캠프를 설치할 때까지 체력 문제는 없어 보였다.

천문석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오르는 속도를 올렸다.

설치된 지 얼마 안 된 계단을 쭉 올라가자, 나무와 바위에 가려진 절벽 앞에 작은 건물이 나타났다.

[칠성산 대피소]

계단과 마찬가지로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대피소다.

이 대피소 입구 벽에는 도어락과 전화기가 있고 안내 패널이 세워져 있었다.

[대피소 사용 시 연락 주시면 열어 드리겠습니다. 칠성산 관리팀.]

“대피소? 여기가 목적지라고?”

최설의 어이없어하는 목소리.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아직 최설에게는 이상 던전에 대한 정보를 전하지 않았다.

안정화 권역 안에 던전이 생긴 건 민감한 정보다.

의뢰인이 깨어나고 계약서와 비밀유지 서약서에 서명한 후에야 정보를 전할 수 있다.

“의뢰인 깨어나면 사정 말해 줄게. 우선 안으로 들어가자.”

“전화라도 하게? 지금 전화 전부 먹통이잖아?”

“방법이 있다.”

이 전화기와 도어락 모두 위장이다.

천문석은 전화기를 들고 장민 대표에게 미리 들었던 번호를 눌렀다.

[#327304]

철컥-

바로 대피소 문이 열리고 일행 모두는 안으로 들어갔다.

20평 정도 되는 넓은 공간.

벽에는 2층 침대 몇 개가 중앙에는 난로 안쪽으로는 주방과 화장실이 있었다.

“여기가 내 자리! 나 화장실 갔다 올게!”

번개같이 달려가 침대 2층에 배낭을 던지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특급 헌터.

“의뢰인 깨어날 때까지 숨 좀 돌리자.”

천문석은 지게를 내려놓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어느새 눈을 뜬 한호석 교수와!

“……!”

재빨리 입에 손가락을 올린 한호석 교수!

한호석 교수는 화장실을 손으로 가리키더니 바로 대피소 밖을 가리켰다.

천문석은 한호석 교수의 제스처를 바로 알아챘다.

특급 헌터. 아니,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다는 제스처!

천문석은 최설과 진교은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특급 헌터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나 잠시만 밖에 나갔다 올게. 냉장고에서 음료수 꺼내먹고 있어!”

“알았어!”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씩씩한 목소리.

천문석은 바로 한호석 교수와 대피소 밖으로 나왔다.

쿵-

대피소 문이 닫히는 순간 한호석 교수는 한껏 낮춘 목소리로 바로 물었다.

“경호 의뢰 받으신 분 맞으시죠?”

“네 천문석. 맞습니다.”

천문석은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한호석 교수에게 받은 문자를 보여 줬다.

신분을 확인하자 심각한 얼굴로 대피소를 가리키는 한호석 교수.

“저 아이가 데리고 있는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 혹시 정체를 아십니까!?”

“…….”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다.

천문석은 처음 사슴벌레를 만났던 때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짐작만 하고 있는데…… 교수님. 혹시 신동대문 지하 터널 아시나요?”

한호석 교수는 천문석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바로 알아챘다.

“신동대문 지하터널! 사슴벌레! 황금 풍뎅이! 맞아! 그런 지하 터널은 그 녀석들만 만들 수 있지! 어쩐지 찬석이 녀석 반응이 이상하다 했더니! 진짜였어! 정말로 사막에서 올라온 녀석들이었구나……!”

한참 동안 말을 쏟아 내던 한호석 교수는 번쩍 고개를 들고 질문했다.

“그런데 저 꼬맹이는 뭡니까!? 사슴벌레뿐만 아니라 황금 풍뎅이까지 데리고 있다니!? 슬쩍 살펴보니까 힘이 봉인된 것 같기는 한데…… 혹시 청구서! 엄청난 청구서를 받지 않았습니까!? 저렇게 아무렇지도 같이 다니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청구서?’

사슴이와 반짝이가 특급 헌터에게 점수와 스티커 보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뭔가를 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었다.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특별히 뭘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항상 저 모습 그대로여서, 저도 신동대문에 나타난 초거대 괴수인지 아닌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금, 은, 구리. 감람석…… 희귀 금속이나 돌 그런 걸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요!?”

한호석 교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다시 확인했다.

“그런 적이…….”

고개를 저으려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게 하나 있었다.

특급 헌터가 줍는 돌!

가끔 그 돌을 사슴이, 반짝이에게 준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잡낭 안에도 특급 헌터가 준 돌이 들어 있었다!

“잠시만!”

천문석은 바로잡낭을 열어 하얀 자갈을 꺼내 내밀었다.

“이런 돌을 준 적이 있습니다! 혹시 이 돌이 특별한 건가요!?”

순간 한호석 교수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리고 불쑥 튀어나온 외침!

“경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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