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87화>
쓰나미는 수십 미터 높이로 밀려 와 해안의 모든 것을 박살 내 버린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위력의 쓰나미도 처음 시작점에서는 느끼기도 힘든 작은 물결일 뿐이다.
남한 전체에서 울려 퍼지는 거대한 마력 파동!
이 마력 파동도 시작은 쓰나미와 같이 작은 물결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 작은 물결을 일으킨 사람은 서울에 있었다.
노을 지는 서울 외곽 5층 건물 옥상.
한 사람이 파라솔 그늘에 앉아 있었다.
입에 메로나를 물고 그늘진 테이블에 앉아 슬리퍼를 신은 발을 까닥까닥 흔드는 꼬맹이.
평범한 동네 꼬맹이처럼 보이는 이 아이가 W. S. 인더스트리, 미국의 세계 패권을 상징하는 초거대 회사의 오너, 워커 실트였다.
5개 게이트의 통제권을 슬쩍해.
헌터 부대에 비상이 걸리게 하고.
추이린과 김철수 발명가가 긴급 대응팀을 움직이게 만든 장본인!
워커 실트는 테이블 위, 지도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카카카카캌-
강릉, 대구, 완도, 대전, 인천!
경남을 제외한 남한 전체를 잇는 다섯 게이트 위에 놓인 마도구가 점멸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한 미궁 악어 13호는 일본을 지나 이제 곧 동해에 도착한다!
23개의 앵커가 박혀 생겨난 던전, 그 던전을 이용해 게이트 통제권을 슬쩍하는 것도 성공했다!
강릉, 대구, 완도, 대전, 인천!
다섯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마력 파장!
이 마력 파장을 이용하면 대마법을 펼칠 수 있다!
순간 워커 실트의 시선이 테이블 한쪽으로 향했다.
오래전 어린 친구가 가르쳐 준 대로 종이에 빨간펜으로 크게 쓴 타겟!
이제 곧 대마법 ‘추적’이 펼쳐지면, 한국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는 타겟을 찾을 수 있다!
[시간 오류 수정자, 에코.]
[무기제작자, 무겐다흐 아리엘.]
그걸로 끝이 아니다!
이 두 녀석을 부하로 거두면 진정한 자신의 목표를 추적할 수 있다!
순간 워커 실트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
테이블 중앙에 놓인 최종목표가 적힌 커다란 종이를 봤다.
[★★★이세기★★★]
워커 실트는 자신이 직접 붉은 펜으로 적은 이름을 보며 이를 갈았다!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 준 이세기!
워커는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나 다 먹은 메로나 스틱을 휘두르며 외쳤다!
“이번에는 반드시 승리한다!”
어느새 천공탑에 입장해, 배로 돌아간다는 목적을 잊은 채 복수의 화신이 된 워커 실트.
워커 실트가 모든 일의 원인이었다.
-게이트 주둔 헌터 부대에 비상이 걸린 원인.
-게이트 안정화 지역의 휴대폰이 오락가락한 원인.
-추이린과 김철수 발명가가 긴급 대응팀을 움직이게 된 원인.
커다란 쓰나미의 시작, 작은 물결을 일으킨 모든 일의 원인이자 흑막.
워커 실트는 떨어지는 태양을 향해 승리를 선언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내가 이긴다! 100배 농축한 신형 리클레 점착탄으로!”
이렇게 워커 실트가 메로나 스틱을 휘두르며 승리를 다짐할 때.
딩동-
옥탑방 현관 벨이 울렸다!
“누구지!?”
깜짝 놀란 워커는 재빨리 테이블에서 뛰어내려 달렸다.
옥상을 지나, 창문을 넘어, 방을 가로질러 현관에 도착.
바로 도어락을 누르는 워커.
“누구세요!?”
쓰르륵-
현관이 열리자 플라스틱 용기가 나타나고, 이 용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자신이 계약한 원룸 주인집 막내딸.
건방진 중학생 꼬맹이!
중학생 꼬맹이는 예리한 눈으로 현관 너머 방을 스캔하더니 바로 밀고 들어왔다.
“꼬맹이 오늘도 혼자 있냐?”
“뭐야!? 맘대로 들어오지 마!”
워커가 외치는 순간 불쑥 다가오는 용기.
“엇!”
반사적으로 용기를 받자 성큼성큼 방을 가로질러 냉장고로 가며 말했다.
“그거 엄마가 너 가져다주래. 그리고 너 혼자 있는 거 걱정된다고 아저씨 올 때까지 보고 있으래.”
탁-
자기 집인 것처럼 냉장고 냉동실 문을 열고, 냉동실에 가득 쌓인 메로나를 쏙 뽑아 입에 물었다.
“너, 메로나만 먹냐? 다른 거도 좀 사다 놔.”
그리고 익숙하게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꺼내는 주인집 꼬맹이!
“…….”
멍하니 이 모습을 보던 워커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이 무례한 꼬맹이 녀석 같으니라고!
여기가 타대륙! 아니 전능 옥좌가 떠 있는 서울만 아니었으면 이 꼬맹이 녀석은 끝장이다!
100배 농축 리클레 가루로 눈이 탱탱 부을 때까지 엉엉 울게 하고!
한 달 동안 절대 지워지지 않는 매직펜으로 얼굴에 커다란 수염을 그렸을 거다!
워커는 용기를 든 채로 치솟는 분노에 부르르 떨었다!
‘아니지, 이 정도는 안 걸릴 거 같은데…… 그냥 저질러 벌일까!?’
워커는 힐끗 창밖을 살폈다.
노을 지는 하늘, 천공의 섬 전능 옥좌가 보였다.
순간 분노가 빠르게 사그라졌다.
제국 군단 놈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마법이 아닌 다른 관측 수단을 갖추고 있을 수도 있었다.
운명의 저울, 인과율 계측기, 그림자 염탐꾼…….
게다가 벌써 게이트 통제권을 슬쩍해서 비상이 걸렸을 거다!
도망친 부하 놈들을 찾고 이세기에게 복수하고 무사히 도망치려면, 더는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
후, 하-
후, 하-
워커 실트는 심호흡하며 남은 분노를 마저 사그라트렸다.
이때 소파에 누운 주인집 꼬맹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꼬맹이. 그거 사이다랑 같이 먹어야 맛있어. 사이다 사러 갈 거면 내 콜라도 사다 줘.”
“내가 사이다 사러 갈 리가 없잖아!”
버럭 외치는 순간 바로 돌아오는 대답.
“그거 김밥이야. 김밥은 당연히 사이다랑 먹어야지.”
“김밥이라고!?”
깜짝 놀란 워커는 재빨리 플라스틱 용기를 열어 안을 살폈다.
확 올라오는 고소한 냄새!
알루미늄 포일에 쌓인 길쭉한 덩어리가 잔뜩 쌓여 있다!
수없이 들었던 모양 그대로다!
김밥!
옛 친구가 너무 먹고 싶다고, 마도 엔진에 새기기까지 한 김밥이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오래전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더럽게 끈질긴 용인족 추적자를 피해 얼어붙은 바위산을 파고 들어가 만든 비밀 연구실, 기름투성이 작업복 차림으로 말을 걸 던 옛 친구.
‘야, 타이탄 마스터! 내 이야기만 들어도 김밥 먹고 싶지 않냐? 나중에 이 모든 게 끝나고 인류의 시대가 열리면. 내가 반드시 이 대륙에 ‘김밥’ 퍼트린다! 하하하-.’
악신과 허신, 고대신과 마룡,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초월자!
상상을 초월하는 강적들로 하루 앞을 짐작하기 어려울 때였다.
그러나 옛 친구는 크게 웃으며 불가능할 것 같은 미래, ‘인류의 시대’를 장담했다.
그리고 장담한 대로 인류의 시대를 여는 데 성공했다!
대륙을 휩쓴 강철의 폭풍!
인류의 뜻을 하나로 모은, 대륙어!
인류가 가지게 된 초월적인 힘, 마법!
찬란한 인류의 시대가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약속, 대협약!
그러나 신화적인 위업을 이룬 옛 친구조차도 김밥 복원에는 실패했다!
어쩔 수 없었다.
타대륙에는 김밥의 필수 재료 ‘김’이란 게 없었으니까!
‘이게 뭐야!? 바다에 ‘김’이 왜 없어!?’
타대륙의 바다에는 ‘김’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친구의 얼굴에 드리워진 표정!
그 절망과 좌절!
그 당황과 어이없음!
바로 앞에서 보듯 그 표정이 떠오른 순간 워커 실트는 오래전 그날처럼 웃었다!
카카카카카캌-
이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전능 옥좌를 본 순간 당연히 김밥부터 찾아서 먹었어야 했다!
옛 친구조차 복원에 실패한 김밥이 손에 들어왔다!
김밥과 사이다!
옛 친구를 다시 만나면 엄청난 자랑거리가 되리라!
‘야, 너 김밥 언제 먹어 봤냐? 난 얼마 전에 먹었다! 카카카카카카캌-’
상상만으로도 미친 듯한 웃음이 터져 나오려 한다!
옛 친구는 이미 생사인과(生死因果)를 벗어났으나, 삶이 엮어 내는 인연은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법!
혼돈에 경계를 만드는 세계의 나무는 인연을 이어 자라나고.
천공탑은 이런 세계의 나무를 가로질러 끝없이 솟아 있다.
자신이 완전히 잃어버렸던 기억을 천공탑에서 다시 찾은 것처럼.
천공탑 어디선가 말도 안 되는 인연으로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옛 친구를!
카카카카카캌-
너무나 유쾌해져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
워커는 슬리퍼를 신으며 외쳤다.
“나 사이다 사러 갔다 온다!”
스마트 폰에 시선을 둔 채 고개만 까닥이며 대답하는 주인집 꼬맹이.
“내 거 코카콜라도!”
워커 실트는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서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건방진 꼬맹이 녀석! 넌 솔의 눈이다! 카카카캌-.’
* * *
천문석은 승합차가 편의점에 도착하자마자 움직였다.
우선은 콜택시.
“죄송합니다. 강릉역 광장에서 일이 좀 생겨서, 택시를 이용하지 못할 것 같네요.”
한참을 기다린 콜택시 기사에게 사과 후 기본요금을 건네고 바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천문석을 보자마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치는 편의점 알바.
“아이! 제게 맡겼던 아이가 사라졌어요! 경찰에 연락하려는데 휴대폰도 안 되고! 유선 전화도 연결이 안 되는 데…….”
“안녕! 나 여기 있어! 이거 계산해 줘.”
아무렇지도 않게 계산대에 아이스크림을 내려놓는 특급 헌터.
“…….”
편의점 알바의 멍한 시선이 닿을 순간.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번쩍 들고 말했다.
“야, 너 사과…….”
“뭐!? 특급 헌터는 사과하지 않는다!”
특급 헌터가 버럭 소리치는 순간.
편의점 알바의 선한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너, 너는 진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흑-.”
툭, 투두둑-
굵은 눈물이 떨어지고.
흑, 흐흑-
흐느낌과 함께 어깨가 떨렸다.
순간 특급 헌터는 당황해서 외쳤다.
“울지마! 어른은 울면 안 돼! 울어도 되는 건 꼬맹이뿐이란 말야!”
그러나 멈추지 않는 눈물과 흐느낌!
탁-
재빨리 계산대에 올라선 특급 헌터는 편의점 알바의 양 볼을 손으로 잡고 외쳤다!
“울지마! 계속 울면 나는 더 크게 울 거야! 막, 막! 편의점 바닥에서 뒹굴뒹굴 구르면서! 앙앙앙! 엄청엄청 커다랗게 울 거야! 멈춰, 제발 멈추란 말야!”
순간 천문석은 이마를 짚었다.
이 꼬맹이 녀석 달래는 건지, 협박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야, 그런 게 통할 리가…….”
풋-
순간 들려오는 작은 웃음소리.
어느새 울음이 멈춘 알바는 웃고 있었다.
‘이게 통했다고!?’
어이없어하는 순간.
편의점 알바가 말했다.
“이 아이스크림은 누나가 사줄게. 너 또 이렇게 다른 사람들 걱정시키면 안 된다?”
“…….”
엄청나게 갈등하는 특급 헌터.
그러나 다시 한 번, 흑- 흐느낌과 툭-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
깜짝 놀란 특급 헌터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
편의점 알바는 빙그레 웃으며 아이스크림 바코드를 찍었다.
이때 계산대에 수북이 놓이는 초콜릿과 과자, 음료수.
“같이 계산해 주세요.”
삑, 삑, 삑-
“전부 4만 7천 원이에요.”
천문석은 5만 원권 3장을 계산대에 올려놓고 솔의 눈 캔만 하나 집었다.
“나머진 제 성의입니다. 이 녀석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편의점 알바가 깜짝 놀라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특급 헌터를 옆구리에 끼고 밖으로 달리며 손을 흔들었다.
“감사했습니다!”
“알바 누나 안녕! 아이스크림 잘 먹을게!”
편의점에서 나온 두 사람은 바로 승합차 운전석에 올라탔다.
“이제 내가 운전할게!”
“앗! 그렇지!”
타다닥-
특급 헌터는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이동했고.
천문석은 바로 시동을 걸며 공중전화기 앞에 선 허준을 봤다.
“허준! 동료들이랑 연락됐냐?”
“이제 유선 전화도 먹통이야!”
바로 고개를 젓는 허준.
자신의 휴대폰도 완전히 먹통.
게다가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다.
이제 곧 해가 진다.
칠성파 조폭 헌터들과 용역 헌터들은 헌터 쓰나미에 삼켜져 아작이 났다.
하지만 어차피 헌터 패싸움,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리 없다.
해가 진 강릉 시가지에서 허준이 녀석들과 다시 만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허준도 자신에게 말려든 피해자. 여기서 그냥 헤어질 수는 없었다.
“야, 우선 타라. 우리는 법왕사까지만 가면 되니까. 거기서 이 승합차 넘겨줄게.”
“그래도 될까!?”
허준은 솔깃한 표정으로 달려와 승합차에 탔다.
천문석, 특급 헌터.
잠이든 최설과 진교은.
일행에 새로운 동료가 일시적으로 끼어들었다.
금발, 푸른 눈의 오러 각성자, 허준.
부아아앙-
허준을 태운 승합차는 바로 출발했다.
워커 실트가 일으킨 작은 물결이 쓰나미로 변해 몰아치는 장소.
칠성산 법왕사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