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86화>
부으으응-
천문석과 일행이 탄 승합차가 편의점으로 달리고.
우와아아아-
분노한 헌터들의 함성이 텅 빈 도로를 휩쓸었다.
이때 강릉 헌터 부대 군인과 경찰, 소방관, 응급구조대 대부분은 강릉 대학교에 모였다.
마치 거세게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마력 파장을 사방으로 뿌리는 강릉 게이트!
강릉 대학교에 자리한 강릉 게이트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
버스, 트럭, 승용차 행렬이 쉴 새 없이 강릉 게이트를 넘어가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강릉 헌터 부대 부대장은 이상 현상이 확인되는 즉시 모든 헌터 부대 병력을 강릉 대학교로 모아 신강릉 소개 작전을 시작했다.
동대문 게이트 소멸사건 같은 일이 일어나면 끝장이다!
신동대문은 게이트가 사라져도 신서울과 육로 이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강릉 게이트 너머 신강릉 주변에 있는 건 수천 미터의 산과 고산지대!
강릉 게이트가 소멸하면 신강릉의 사람들은 수천 미터 고산지대 한가운데 고립돼 버린다.
진입로를 뚫고 이들을 구하는데 년 단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었다!
만약의 사태를 생각한 헌터 부대장은 부대원을 총동원해 신강릉의 사람들을 긴급 대피시키고 있었다.
이때 서류철을 든 부관이 달려와 보고를 시작했다.
“김 대령님! 신강릉 인원이 73%까지 대피시켰습니다. 거점도시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빠져나왔습니다!”
신강릉의 사람 모두가 게이트 거점도시 안에 있는 건 아니기에 전원 대피는 불가능했다.
“신호탄 계속 쏘아 올리고, 끝까지 최대한 사람들을 빼낸다.”
김 대령은 시선을 게이트에 둔 채로 부관에게 질문했다.
“전파 교란은? 강릉역 광장 폭음은 확인했나?”
“……게이트 관리팀에서는 아직 전파 교란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부에서도 정확한 원인 파악 중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게이트 이상 현상이 원인 같다고 합니다. 강릉역 광장 폭음은…….”
차락, 차락-
재빨리 서류를 몇 장 넘기더니 말을 잇는 부관.
“광장에서 섬광과 폭음이 터지기는 했는데 사상자는 전무합니다. 아무래도 폭탄이 아니라 각성력의 일종 같습니다. 지금은 정신을 차린 헌터들이 범인을 찾아 달리며 소요사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현재 피해자는…….”
차락, 차락-
“용역 헌터 3개 조직, 헌터 50명 정도…… 일반인 중에는 찰과상 같은 경상자뿐 크게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용역 헌터면 센트라 분쟁 때문에 모여든 그 헌터들?”
“아닙니다. 그쪽은 가해자 쪽이고, 이번에 맞은 용역 헌터 조직은 울진, 포항 쪽 놈들인데. 경북 경찰청에서 조직 폭력단으로 의심하고 주시 중이던 조직이라고 합니다.”
강릉역 광장에 용역 헌터들이 하나둘 모일 때 이미 이들의 정체를 파악한 상황.
부관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2000년 1월 1일 최초의 게이트가 열린 후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군은 하루도 쉬지 않고 마수와 몬스터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실전과 제대로 된 대우.
매일매일 실전을 치르며 끝없이 매뉴얼과 대응 수칙을 조율한 군은 유능했다.
김 대령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마수와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들의 폭력성은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다.
억누르기만 하다가 폭발하면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다.
적당히 폭력성을 드러낼 여지를 주는 게 헌터 부대의 헌터 관리 지침이다.
그래서 강릉역에 용역 헌터들이 모여드는 걸 알면서도 방관했다.
위험도 등급 최저, 강릉 게이트에 배치된 헌터 부대로 이 정도 결과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풀어만 줄 수는 없는 법!
이제 슬슬 폭력성을 억제하고, 헌터들을 조일 때다.
김 대령은 슬쩍 주위를 살피고 목소리를 낮춰 부관에게 지시했다.
“해가 지는 데로 ‘국가 헌병대’를 시가지에서 돌리도록 하지.”
부관도 바로 목소리를 낮췄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할까요?”
김 대령은 잠시 고민하다가 지시했다.
“음…… 자원봉사 1일에서 3일. 적당한 경범죄로 100명 채우는 거로 하지.”
“네!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부관이 바로 달려가자.
김 대령은 내심 웃었다.
이제 곧 해가 지면 국가 헌병대가 강릉 시가지를 훑으며, 온갖 마탄 관련 트집을 잡아 헌터들을 잡아들일 거다.
총구를 사람에게 겨누는 건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위반 사항!
무장 상자를 세게 내려놓는 것.
자신이 소지한 마탄 개수 미숙지.
무장 상자를 멘 채로 담배를 피우기.
……
이런 사소한 위반 사항만으로도 국가 헌병대에 현행범으로 끌려가 즉결 심판을 받고 자원봉사를 하게 된다.
던전 노역장, 몬스터 광산, 마경 개척단!
각성 헌터조차 치를 떠는 장소에서!
경범죄로 이런 강제 자원봉사라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과도한 처벌이었다.
그러나 이건 게이트 전쟁 이래 20년의 세월이 증명하는 효율적인 헌터 대응 수칙이었다.
착한 경찰 - 헌터 부대.
나쁜 경찰 - 국가 헌병대.
헌터 부대가 풀어 주고, 국가 헌병대가 조인다!
자신도 영관급 장교가 되고서야 알게 된 비공식 헌터 대응 수칙.
이 대응 수칙과 국가 헌병대를 만든 사람은 게이트 전쟁의 전설 검은 폭풍이었다.
모든 헌터들이 이를 가는 국가 헌병대의 창시자가 검은 폭풍이라니.
사실이 알려지면 헌터 업계가 뒤집힐 일이었다.
김 대령은 피식 웃으며 강릉 게이트를 바라봤다.
이미 신강릉 전체 인원의 70% 이상을 소개했다.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김 대령의 마음속에선 불안감이 생겨나고 있었다.
부관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지금 이상 현상이 생긴 건 이곳 강릉 게이트만이 아니다.
강릉, 대구, 완도, 대전, 인천 게이트!
이상 현상이 일어난 게이트를 모두 이으면, 경남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체가 영향권에 들어간다!
김 대령은 가슴속에서 이유 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생겨나는 걸 느꼈다.
문득 동대문 게이트 소멸 이후 헌터 부대에 돌았던 소문이 떠올랐다.
동대문 게이트 소멸은 ‘정체불명의 마력 각성자’가 일으킨 인위적인 사건이라는 소문.
한반도 전체에 걸친 다섯 게이트의 이상 현상.
‘혹시 인위적인 현상이 아닐까?’
김 대령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게이트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건, 1세대 헌터, 마력 각성자 하얀 번개 추이린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 대령은 잡념을 흩어 버리고 지휘 차량을 향해 걸었다.
이제 자신이 넘어가 마지막 소개 작전 지휘를 해야 했다.
김 대령의 생각이 맞았다.
1세대 헌터 하얀 번개 추이린에게도 게이트 마력장을 조정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추이린뿐만 아니라 재금 그룹의 숨겨진 실세 김철수 발명가에게도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게이트 이상 현상이 일어난 지금 두 사람도 경악하고 있었다.
* * *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천공의 섬 상업지구에 있는 평범한 건물.
그러나 평범한 외관과 달리 이 안에는 김철수 발명가의 비밀 연구실이 있었다.
비밀 연구실 안 추이린과 김철수 발명가 두 사람은 경악하고 있었다.
한반도의 모든 게이트가 표시된 LED 패널.
재금 그룹의 게이트 관리팀에서 보내온 정보가 LED 패널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강릉, 대구, 완도, 대전, 인천!
다섯 개 게이트에서 쏟아진 마력 파장이 한반도 전체에서 파도치듯 일렁이고 있다!
마치 거대한 호수에 떨어지는 돌처럼 파문을 일으키는 마력 파장!
추이린은 대한민국 전체에 펼쳐진 마력 파장을 본 순간 하얗게 질렸다.
이 엄청난 규모!
이와 비슷한 마력 파장을 이미 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시공간 도약으로 떨어진 시대, 세기말 대한민국!
광화문 게이트 방어 병력을 무력화시킨, ‘EMP 마력 폭풍’과 너무나 비슷했다!
“설마, EMP 마력 폭풍의 전조일까요?”
김철수 발명가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EMP 마력 폭풍이라기에는 강도가 너무 낮다. 휴대폰 감도만 좀 낮아질 뿐. 밀리터리 스펙을 갖춘 장비들은 정상 작동 중이다.”
“그렇다면……?”
김철수 발명가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조사하던 ‘이상 던전’ 때문 같다.”
동대문 게이트 소멸 직후 발견된 ‘이상 던전’.
조사 결과 별다른 위험이 없어 출입 봉쇄 후 정밀 조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부산 던전에서 나와 천공의 섬으로 돌아왔을 때, ‘이상 던전’ 수십 개가 나타났단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몇몇 이상 던전이 게이트 안정화 권역 안에서 발견됐다.
안정화 권역에 던전이 생겨난 건 엄청난 사회 혼란이 일어날 일!
정부의 조사단과는 별개로 재금 그룹의 영향력을 이용 정밀 조사를 시작할 참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상 던전이 생긴 곳 주변의 게이트에서 마력 파장이 쏟아지고 있다.
강릉, 대구, 완도, 대전, 인천 게이트!
5개 게이트에서!
김철수 발명가, 하얀 번개 추이린.
단순한 마력 각성자가 아닌 마도 공학자로 정점에 선 두 사람은 직감했다.
이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누군가 게이트 마력 파장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
직감하는 순간 두 사람은 전율했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는 그걸 만들고 운용하는 재금 그룹조차 작동 원리 파악에 실패한 오파츠!
그런 오파츠,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설치된 게이트 다섯의 통제권을 뺏겼다!
이것만으로도 경악할 일인데. 그렇게 통제권을 뺏어간 게이트에서 쏟아진 마력 파장이 남한 전체를 덮고 있다!
엄청난 스케일의 마력구성!
누군가 상상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하려 한다!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추이린이 외치는 순간.
김철수 발명가는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런 사태를 대비한 긴급 대응팀이 있다! 긴급 대응팀 바로 움직일 테니 넌 그 헌터에게 연락해라.”
“네? 누구를…….”
반문하는 순간 추이린의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들!
-부산 던전, 배송의뢰.
-공방 도시, 증기관 폭발.
-투영 공간, 재의 숲의 격전.
-최초의 게이트가 열린 세기말 서울.
상상을 초월하는 난장판을 뚫고, 일행 전원을 무사 귀환시키는 데 성공한 헌터!
“천문석!?”
김철수 발명가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LED 패널을 가리켰다.
“지금 상대의 정체도 의도도 알지 못한다. 변수가 너무 많아. 이런 돌발 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추이린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철수 발명가의 말대로다.
하늘 고래가 등장한 첫 번째 배송의뢰.
세기말 대한민국으로 날아간 두 번째 배송의뢰.
천문석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돌발 상황, 난장판을 헤쳐나왔다!
사상 초유의 게이트 통제권 상실 상황!
지금 필요한 사람은 ‘천문석’ 지옥에서도 살아 돌아올 것 같은 그 녀석이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추이린이 보안 전화기 번호를 누를 때.
쓰으으윽-
플라스틱 카드가 테이블 위를 미끄러져 추이린 앞에서 멈췄다.
헌터용 수표.
“의뢰비로 사용해라.”
김철수 발명가는 짧게 말하고, 재금 보안 긴급 대응팀을 호출했다.
딸깍-
이때 연결된 전화.
=안녕하세요. 믿음과 정직. 김철수 헌터업 사무실. 최우수 대리, 게릭입니다! 무엇을 도와…….
“…….”
추이린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헌터용 수표를 집어 들었다.
9자리 숫자가 떠오른 헌터용 수표.
그러나 이번 일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이 금액조차 낮다.
‘이건 우선 선금으로!’
추이린은 상대의 말이 끝나는 순간 바로 입을 열었다.
“나 추이린이다. 중요한 의뢰가 있다. 천문석 부사장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