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85화 (58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85화>

천문석은 조수석에 앉으며 외쳤다.

“허준! 거기 기절한 내 동료들 안전 벨트 해 줘!”

“…….”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대답.

“허준?”

고개를 돌리자 멍한 얼굴의 허준이 보였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넋이 나간 듯 말하는 허준의 시선은 승합차 운전석에 고정돼 있었다.

딱, 따딱-

천문석은 허준의 얼굴 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야, 야! 정신 차려!”

순간 허준의 눈에 번쩍 빛이 돌아오고 운전석을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야, 이게 뭐야!? 운전석! 이 개빡센 승합차 운전사가!”

운전석을 보지 않아도 허준이 왜 놀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꿈 아냐. 진짜다.”

천문석이 대답하는 순간.

운전석에서 들려오는 씩씩한 외침!

“난 진짜다! 진짜 특급 헌터가 왔다!”

“……!”

허준은 외계인이라도 본 듯 경악한 얼굴로 말을 쏟아 냈다.

“특급 헌터!? 설마 환골탈태!? 아니지, 저렇게 어려진 거면 반로환동? 맞아, 반로환동! 그렇지! 반로환동 맞지!? 내 생각이 맞았어! 한국 어딘가는 반로환동의 고수가 있을 줄 알았어! 마침내 내가 무림고수를 만나다니!”

흥분으로 달뜬 얼굴로 열변을 토해 내는 허준.

“…….”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170이 넘는 장신에 금발, 푸른 눈.

게다가 털가죽 외투와 불꽃을 흩날리는 표상 오러까지!

이 녀석 겉모습은 카리스마 넘치는 러시아 마피아 보스. 언젠가 봤던 만화 속 ‘발랄라이카’ 그 자체다.

그런데 이름은 ‘허준’이고 특급 헌터를 보고는 무협지에서 나올법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반로환동(返老還童).

환골탈태(換骨奪胎).

거기에다가 검강(劍罡))까지!

‘뭐지, 이 익숙한 느낌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뒷좌석 허준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느낌의 정체를 깨달았다!

어린 시절 산속 사당에서 같이 살던 동생들!

무림 고수 이야기를 해 주면 눈을 반짝반짝 빛내던 꼬맹이들.

자신이 빡세게 굴려 전원 마종문에 입문시켰던 동생들과 같은 시선이다!

오러 각성자 중에 한국 무협지에 빠지는 헌터들이 그렇게 많다더니!

‘이 녀석 무협지 마니아구나!’

천문석이 깨닫는 순간.

허준은 운전석 특급 헌터를 향해 눈을 빛내며 질문을 쏟아 냈다.

“고수님!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반로환동 맞으시죠!? 반로환동이면 경지가 어떻게 되시나요? 환골탈태는 당연히 했을 테니! 화경? 설마 현경이신가요!? 오러 블레이드! 아니, 검강! 당연히 검강도 가능하시죠!?”

“……!?”

힐끗-

운전 중인 특급 헌터의 시선이 천문석에게 잠시 닿았다.

‘뭐지? 지금 이 누나 무슨 말을 하는 거지?’라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끼어들어 대신 대답했다.

“……반로환동했다고 꼭 화경이라고는 할 수 없어. 주술공, 사공, 마공. 심지어 도문의 내공에도 회춘의 비기는 있으니까. 그리고 화경에 들었다고 꼭 반로환동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반로환동이 장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무공은 내공과 외공에 모두 쌓이니까. 영육, 그중에서도 육체에 쌓아 올린 수십 년의 무(武)의 경험을 리셋하면 당연히…….”

천문석은 길게 설명하다가 흠칫 놀랐다.

“그래서!? 그래서 당연히 어떻게 되는 건데?”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허준!

갑자기 튀어나온 무협지 같은 이야기에 말려들었다!

천문석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운전석의 특급 헌터를 가리켰다.

“야, 아냐! 얘 진짜 꼬맹이야.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갔어!”

“……뭐!?”

허준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특급 헌터와 천문석을 번갈아 봤다.

“에휴- 초등학교 가면 엄청 힘들다던데 걱정이야.”

특급 헌터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

허준은 깨달았다.

‘진짜 꼬맹이다! 꼬맹이가 모는 승합차에 농락당했다고!?’

그러나 곧 한가지 생각이 다른 모든 생각을 집어삼켜 버렸다!

조수석으로 향하는 시선!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꼬맹이에게 대형 승합차 운전을 맡겼다고!?

게다가 헌터들이 뒤엉킨 난장판! 마탄이 장전된 소총까지 겨눠진 난장판으로 꼬맹이가 운전해서 오게 했다고!?

허준은 모든 걸 깨닫는 순간 분노를 터트렸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너 지금 꼬맹이에게 뭔 짓을 시킨 거야! 위험하게 저런 난장판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의 반응을 보이는 허준.

천문석은 재빨리 허준의 말을 끊고 들어갔다.

“야, 나도 황당해! 얘 꽁꽁 묶어 놨는데…….”

“앗! 맞아! 나 묶여 있었지! 알바! 왜 나 묶어 놨어!? 내가 얼마나 열심히 꼼지락거렸는지 알아!”

특급 헌터는 되살아난 기억에 분노했다

이유야 너무나 당연했다.

허준이 놀라는 것과 같은 이유!

아니, 누가 꼬맹이를 난장판에 데려간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자신은 그런 꼬맹이의 도움을 받아 위기 상황에서 탈출했다.

“…….”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천문석은 말을 돌렸다.

“……야, 그보다 너 도대체 어떻게 밧줄 푼 거야? 혹시 편의점 알바가 풀어 준 거야!?”

“누구도 특급 헌터를 가두지 못한다! 알바 대실망이야! 이렇게 재밌는 걸 혼자 하다니!”

끼이이익-

대답과 함께 빙글 핸들을 돌리며 브레이크.

부아아앙-

차체가 빙글 회전하는 순간 급가속.

승합차는 텅 빈 교차로에서 360도 원을 한번 그리고 전진했다!

엄청난 운전실력!

카카캌-

특급 헌터의 신나는 웃음소리가 터지고.

구으으-

띠디딛-

그리고 추임새를 넣는 듯한 울음소리가 뒤따라 울려 퍼졌다.

“……!”

대답을 듣지 않아도 특급 헌터가 어떻게 탈출했는지 알 수 있었다.

특급 헌터의 챙이 넓은 모자에 앉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

‘두 각성 동물의 도움을 받았구나!’

이때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특급 헌터는 학교도 안 들어간 꼬맹이다.

‘아무리 좌석을 당겨도 브레이크, 클러치, 액셀에 발이 닿을 리 없을 텐데!?’

“너 지금 운전은 어떻게 하는 거야?”

“잘……?”

“아니, 그게 아니라! 발! 너 발이 안 닿을 거 아냐?”

휙- 오른발을 들어 보여 주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의 신발 밑에는 너무나 낯익은 물건이 붙어 있었다.

자신이 산 종이 곽 청주!

“반짝이가 붙여 줬어! 앗! 알바 위치도 반짝이가 찾았어!”

띠디딛디-

자기가 했다는 듯 자랑스레 우는 황금 풍뎅이.

‘네가 범인이었구나!’

어이없어할 때 바로 이어지는 목소리.

“잘했어. 반짝이! 앗! 사슴이는 아까 내가 밧줄 꼬물꼬물 풀 때 같이 씹어 줬어! 사슴이도 아주 훌륭해!”

구으으으-

대답하듯이 집게를 끄덕이며 우는 사슴벌레.

순간 특급 헌터는 힐끔 조수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알바? 어때 우리 엄청 도움 됐지!?”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과 기대감이 잔뜩 어린 목소리.

어느새 모자챙에 앉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의 시선도 자신에게 향해 있었다.

“…….”

특급 헌터, 사슴벌레, 황금 풍뎅이.

어째선지 꼬맹이 셋이 칭찬을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꼬맹이가 난장판에 달려왔다.

정상적인 어른이라면 허준처럼 당연히 혼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천문석은 고개를 돌려 사이드미러를 살폈다.

광기 어린 헌터 쓰나미는 조폭 김기철과 칠성파 잔당, 용역 헌터, 무장 헌터들을 집어삼키고 도로로 쏟아졌다.

텅 빈 도로 위에 강릉역 광장과 같은 난장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저 난장판에 휩쓸린 조폭 김기철, 칠성파 잔당, 용역 헌터, 무장 헌터들이 어떤 꼴이 될지는 뻔했다.

특급 헌터가 오지 않았으면 자신과 최설, 최설 친구, 허준 모두는.

저 뒤 헌터 쓰나미에 삼켜진 김기철과 기타 등등과 비슷한 처지였을 거다.

그래서 차마 혼을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특급 헌터를 혼낼 사람은 따로 있기도 했다.

하늘이 정해 준 특급 헌터의 천적, 장민 대표!

조만간 잠들었다 깨어난 특급 헌터는 분노한 장민 대표와 만나게 될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천문석은 환하게 웃으며 진심으로 특급 헌터에게 감사를 표했다.

“셋 다 정말 큰 도움 됐다! 고맙다!”

“그럼 내가 선물 줄까?”

반짝이는 눈으로 손을 쓱 내미는 특급 헌터.

감사를 받았으니까 선물을 주겠다는 이상한 논리.

하지만 오랜 시간 특급 헌터를 겪은 천문석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아니, 선물은 사양할게.”

순간 운전석 뒤로 쓱 손을 내미는 특급 헌터.

“반가워 외국인 누나. 난 특급 헌터라고 해! 내가 선물 줄까?”

“어, 그래…… 난 허준이야 반갑다.”

허준은 바로 손을 뻗어 특급 헌터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이 순간 허준은 손바닥에서 꿈틀거림을 느꼈다!

“……!?”

깜짝 놀라 펼친 손에는 작은 지렁이가 놓여 있다!

꿈틀, 꿈틀-

살아서 움직이는 작은 지렁이가!

“……!?”

허준은 손바닥의 작은 지렁이와 운전석의 특급 헌터를 번갈아 봤다.

‘뭐지, 이 꼬맹이 녀석?’

선물을 준다더니 지렁이를 손에 쥐여 줬다!

센트라 채집, 던전 노역장 자원봉사로 온갖 곤충에 익숙한 자신이 아니라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을 상황!

이때 허준의 반응을 본 특급 헌터가 환한 얼굴로 외쳤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누나 지렁이 좋아하는구나! 내가 잔뜩 줄…….”

천문석은 재빨리 특급 헌터를 막았다.

광장에서 난장판에 휘말리는 바람에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편의점에서 기다릴 콜택시, 법왕사에서 기다릴 의뢰인 한호석 교수를 바로 만나야 했다.

“야, 지금 이럴 때가 아냐. 지금 당장 자리부터…… 아니, 우선 편의점까지는 네가 운전해라. 거기서 자리 바꾸자.”

혹시나 뒤로 꼬리가 붙으면 자신이 떼어 내야 했다.

“알았어! 맡겨줘! 엄청 빠르고 안전하게 갈게! 안전운전!”

부아아앙-

구호를 외친 특급 헌터가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천문석은 뒷좌석 허준을 향해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했다.

“아까는 미안했다. 짐작했겠지만, 아까 헌터들 나랑 악연으로 얽힌 녀석들이야.”

“너 그럼 아까 말했던 센트라…… 정보라는 건?”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까. 그 자리 빠져나오려고 한 말이야. 정보는커녕 센트라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

“……? .”

허준의 눈에서 의혹이 사라지지 않자, 천문석은 바로 추가 설명을 했다.

“잘 생각해 봐. 내가 했던 말 중에 센트라에 관해 제대로 설명한 건 하나도 없어. 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걸 좀 다르게 말한 거뿐이야.”

허준은 기억 속에 남은 이야기를 빠르게 되짚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지금 말한 대로 특별한 정보를 하나도 흘리지 않았다.

평소라면 당연히 상대가 사기꾼이라고 의심했을 정도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만 했다!

전형적인 센트라 사기꾼의 방식!

어째서 진작 알아채지 못했는지 어이없을 지경이었다.

“와, 이 사기꾼 녀석! 그게 전부 구라였다고!?”

허준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하자, 천문석은 민망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난 상황이 좋지 못해 서로 한방씩 주고받았다.

하지만 특급 헌터를 보고 보인 반응을 보면 허준은 이름 그대로 괜찮은 녀석이었다.

그래서 천문석은 손을 내밀었다.

“……우리 이제 서로 빚은 없는 거다. 딜?”

“딜!”

손을 잡고 악수하는 순간.

천문석은 바로 말했다.

“우리 편의점 거쳐서 강릉시 남쪽까지 내려갈 건데. 너 어디에다가 내려줄까?”

허준은 힐끗 사이드 미러를 보더니 대답했다.

“잠시만 같이 이동하자. 내 동료들 신호 추적하고 있을 거야.”

손목에 찬 헌터용 시계를 흔드는 허준.

천문석은 실소를 흘렸다.

어쩐지 의도적으로 시간을 끈다 했더니, 허준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헌터용 시계에 달린 추적장치.

무지막지한 화살을 날린 활잡이와 다른 동료가 허준에게 오고 있었다.

이때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게 하나 있었다.

김기철을 협박했던 휴대폰!

“너 아까 PC방 간판에 휴대폰, 맞지?”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

허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품 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아까 용역 놈 휴대폰 하나 슬쩍해서 붙인 거야. 간판에 붙여서 촬영? 누가 그렇게 번거롭게 하냐? 이렇게 촬영하면 되는데.”

쏙-

강화 전투복 포켓에 휴대폰을 넣는 허준.

수십 개의 총구 앞에서 가짜 표상 오러로 당당히 사기를 친 녀석다운 임기응변이다!

천문석이 새삼 감탄할 때 허준은 다시 꺼낸 휴대폰과 헌터용 시계를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네. 얘들 왜 이리 늦지? 도착할 때가 됐는데…….”

“전파 신호 교란되는 거 아냐? 지금 휴대폰 상태가 영 안 좋던데?”

“그런 건가? 추적장치는 헌터용 GPS 사용해서 어지간하면 교란되지 않는데…….”

“우선 편의점까지 같이 가자. 거기 유선 공중전화 있으니까. 그걸로 연락하면 될 거다.”

“고맙다.”

허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때, 천문석은 네비게이션에 경로를 입력했다.

“다 됐다. 편의점에서 짐 찾으면 그때부터는 내가 운전할게.”

“짐! 앗! 맞다! 알바 짐 내가 뒤에 챙겼어!”

“뭐를 챙겼다고?”

천문석은 바로 뒤를 살폈다.

3열 좌석에 놓인 헌터용 배낭 둘.

편의점에 맡겨 둔 자신과 특급 헌터의 배낭이다!

특급 헌터의 배낭은 경량화 마력 회로가 새겨져서 특급 헌터도 메고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배낭에는 경량화 마법 회로 같은 건 흔적도 없었다!

“너 내 배낭 어떻게 옮겼냐?”

“……잘?”

언제 나와 같은 시크한 대답.

천문석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편의점에 들렀다가 가자.”

기다리고 있을 콜택시 기사에게 사과하고 허탕 친 비용을 지급하고.

맡긴 아이가 도망쳐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편의점 알바도 안심시켜야 한다.

그리고 허준이 동료와 연락하는 걸 확인하고 바로 법왕사로 이동하면 된다!

중간에 난장판에 휩쓸렸지만, 해결하는 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한 출발이다.

어쩐지 이번 던전 조사 의뢰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조수석 시트에 몸을 기대는 순간.

천문석은 아주 중요한 걸 잊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바로 몸을 돌려 허준에게 말했다.

“허준. 뒤에 내 동료들 안전 벨트 해 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