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82화>
콰아아앙-
강철 화살이 단단한 콘크리트 외벽에 박히고 와르르- 잔해가 쏟아졌다!
“벽! 벽 뒤로 달려!”
“일어서지 말고! 기어서 움직여!”
땅바닥으로 몸을 던진 용역 헌터들은 다급히 벽을 향해 기어 갔다!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한 골목길.
허준은 이세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 위에 음속 화살이 박혔다!
이세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가볍게 옆으로 걸어 쏟아지는 잔해를 피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다.
이 담대한 모습에 허준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신강릉 고산지대에서 발견됐다는 센트라 군락지.
새로운 센트라 군락지가 발견되면 센트라를 독점 공급하는 자신의 헌터팀에 막대한 타격이 온다.
하지만 그 센트라가 진짜라면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
자신의 헌터팀은 직접 발견한 센트라를 독점 공급하는 것뿐.
이세계에 있는 모든 센트라의 소유권을 가진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동안 발견된 센트라 대부분이 가짜라는 사실이다.
아니, 의도를 가진 가짜라면 오히려 낫다.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 죽어 나가지는 않을 테니까!
센트라는 특징이 거의 없는 식물.
독성 식물을 센트라라고 오인하고 유통되면 대량 중독 사태가 발생한다!
3년 전처럼!
그래서 신입 정찰조를 보내고, 직접 팀원을 데리고 강릉까지 왔다.
그리고 차근차근 추적을 시작하려는 찰나, 강릉시 어디서나 보이는 엄청난 빛이 터졌다.
문제가 생겼다는 걸 직감하고 빛이 터진 광장으로 달리던 중 대치한 헌터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단어를 듣게 됐다.
‘센트라의 정보!’
그 즉시 끼어들어 활잡이가 포지션을 잡을 시간을 벌고, 장거리 화살을 날려 기를 죽였다.
허준은 문득 고개를 돌려 골목 바닥을 봤다.
벽 뒤로 숨기 위해 다급히 골목 바닥을 기고 있는 헌터들!
용역 헌터 놈들은 완전히 기가 죽었다.
하지만 정작 이세기는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놀라기는커녕 지루하게까지 보이는 얼굴!
‘하, 시바! 이 녀석 상대하기 쉽지 않겠는데…….’
센트라 헌터팀의 리더 허준, 카티야는 내심 혀를 차며 자신을 보고 있을 활잡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검지와 중지를 세워 가볍게 X자를 만들고 원을 그리는 수신호!
‘텃다. 이 새끼 화살에 안 쫄아! 포지션 풀고 운전수랑 같이 바로 달려와라!’
수신호를 보내는 즉시 허준, 카티야는 머리를 굴렸다.
지금 자신이 펼친 표상 오러는 겉보기만 화려한 가짜!
어차피 용역 헌터들은 기가 죽었으니 상관없다.
동료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끈다.
그리고 이세기란 헌터의 포커페이스를 깨트리고, 센트라에 관한 정보를 알아낸다!
그러나 이 순간 천문석은 얼굴과 달리 지루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경악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놈들이 총을 들고 쏟아져 나와 골목을 막았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센트라 정보’로 낚시질을 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센트라를 독점 공급하는 헌터가 나타났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어이없을 정도로 연속된 불운!
게다가 허준이라고 자신을 밝힌 오러 각성자!
이 녀석이 김기철에게 ‘빵야!’ 하는 순간 자신에게 음속 화살이 날아왔다!
천문석은 포커페이스로 허준을 샅샅이 살폈고 감을 잡았다!
170이 훌쩍 넘는 장신의 키에 금발, 벽안!
예카테리나라는 이름이 딱 어울릴 듯한 외모로 댄 이름은 너무나 유명한 이름 허준!
이 성의 없는 가명이라니!
게다가 표상 오러를 불꽃처럼 흩날리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허준은 한겨울에나 입을 무릎까지 내려오는 털가죽 외투를 입고!
표상 오러에서는 전기 온풍기처럼 뜨거운 열기까지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오러 각성자로 정점에 선 이태성 길드장을 만났었기에 알 수 있었다.
표상 오러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CPU 발열이나 마찬가지다.
각성력이 엉뚱하게 열에너지로 샌다는 뜻!
천문석은 직감했다.
허준, 이 녀석의 표상 오러는 뻥카다!
레이드 메인 탱커는커녕, 5인 던전 탱커급도 안 된다.
마탄이 쏟아지는 순간 표상 오러는 뚫리고 끝장이다!
즉, 허준 이녀석은 지금 사기를 치고 있었다!
게다가 빵야는 김기철한테 했는데, 음속 화살은 자신한테 날아왔다!
천문석은 그 사실이 진정으로 두려웠다.
정말 무서운 총은 베테랑 헌터의 손에 들린 총이 아니라, 어디로 쏠지 모르는 미친놈 손에 들린 총이었으니까!
‘하, 시바! 사기꾼까지 엮이네!? 이번에는 어떻게 빠져나가지!?’
천문석이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릴 때 돌연 다급한 기합 소리가 터졌다.
으아악-
김기철!
모두에게서 잊힌 김기철이 골목 바닥을 기어, 건물 벽 뒤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줄줄이 건물 벽 뒤로 몸을 던지는 용역 헌터들!
“헉, 허억- 시바, 개 시바! 헉-.”
김기철은 숨을 몰아쉬더니 벽 뒤에서 고개만 내밀어 버럭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쟤는 우리가 찍었어! 당장 꺼져!”
순간 허준은 번개같이 몸을 돌리더니 손가락 총을 겨눴다.
“너 또 화살…….”
김기철이 분통을 터트리려는 순간.
한발 먼저 허준이 외쳤다!
“빵야-!”
“으아악- !”
비명을 지르며 벽 뒤로 몸을 날리는 김기철!
“……?”
한참이 지나도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허준의 피식거리는 웃음과 비웃음만 들려왔다.
“하! 새끼 쫄기는……!”
“…….”
김기철이 멍하니 허준을 바라보는 순간.
다급히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풉-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세기가 다급히 손으로 입을 가린 게 보였다.
“……!”
김기철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익숙한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분노!
익숙한 분노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세기 새끼의 모략과 계략, 군중 선동에 몰려나온 수천의 헌터들!
광기 어린 수천의 헌터들에게 신동대문에 기반을 쌓아가던 칠성 길드의 모든 것이 박살 나던 그 날의 기억!
자신들이 개같이 고생하게 만든 이세기!
이세기, 그놈에게 비웃음까지 당하고 있다!
김기철은 분노를 담아 외쳤다!
“다 필요 없다! 쏴버려! 저 새끼들 박살 낸다!”
“……네?”
“……형님!?”
용역 헌터들은 경악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화살을 날리고, 표상 오러까지 전신에 두르고 있다!
그런 상대한테 마탄을 갈긴다고!?
으아악-
이 순간 김기철은 악을 쓰며 소총을 뺏어 들고 허준을 겨눴다.
‘뭐야, 완전히 기가 죽은 게 아니었어!?’
허준은 순간 움찔했다.
저격 포인트를 잡은 활잡이와 운전수는 이동 중!
게다가 자신의 표상 오러는 겉보기 등급만 높은 뻥카다!
한두 발이면 몰라도, 연속 사격을 맞으면 훅 간다!
‘아니지!? 설마 아무리 막 나가는 용역 헌터라도 사람한테 마탄을 갈길 리가…….’
이때 김기철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렸다!
진짜 긁을 분위기!
경악한 허준은 다급히 외쳤다.
“잠깐! 야! 잠깐만! 시발, 잠깐만 기다려!”
방금까지 여유로웠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
무시하고 김기철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픽-
불꽃처럼 일렁이던 표상 오러 가 물을 뿌린 것처럼 꺼졌다!
‘허세였구나!’
진실을 깨달은 김기철이 분통을 터트리려는 순간 허준은 재빨리 양손을 들고 외쳤다.
“야! 너 그 소총 당기면 좆되는 거야!”
“시발! 어차피 이세기 새끼 때문에! 벌써 좆됀 상태야!”
“뭐!? 잠깐! 야, 그러면 이세기부터 쏴야지! 왜 날 겨눠!”
“……!”
깨달은 표정이 된 김기철은 이세기를 향해 총구를 돌렸다.
그러나 이세기는 벽에 없었다!
낮게 쪼그려 앉아 골목 입구를 향해 오리걸음으로 어느새 수십 미터나 전진했다!
“와, 이세기! 이 얍삽한 새끼!”
버럭 외친 김기철이 탄환을 장전하는 순간.
철컥-
천문석은 벌떡 일어나 말을 쏟아 냈다.
“잠깐! 센트라! 너 센트라를 생각해야지! 좆됐다고 그냥 포기할 거야!? 센트라만 있으면 재기할 수 있어!”
김기철의 몸이 멈칫하고, 얼굴에 갈등이 생기는 순간.
천문석은 직감했다.
이건 먹힌다!
바로 허준을 가리키며 외쳤다.
“허준! 센트라 독점 공급하는 헌터 저 녀석 봐라!”
허준에게 모이는 시선.
“뭐? 난 왜?”
허준이 당황해서 대답하는 순간.
천문석은 허준의 외투를 가리키며 말을 쏟아 냈다.
“털가죽 외투! 저 녀석 초가을에 털가죽 외투 입은 거 봐! 너도 저렇게 살 수 있어! 겨울에 반팔! 여름에 외투! 센트라만 있으면 짠내나는 헌터 일할 필요도 없어! 임대료 따박따박 통장에 꽂히는 건물 사서! 건물주! 사장님! 소리 들으면서 인생을 즐기면 된다니까!”
“…….”
“넌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상상해 봐라. 김기철!”
천문석은 얼떨떨한 표정의 김기철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선언하듯 외쳤다.
“온종일 편안하게 노는 삶!”
“오전 10시에 일어나 더럽게 비싼 브런치를 먹는 삶!”
“건물을 한 바퀴 휙 돌면 ‘아이고 사장님 오셨어요!’ 환대를 받는 삶!”
“가장 큰 고민이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오늘 밤은 어디서 놀까?’인 캐부자 한량의 삶!’
“…….”
“그런 캐부자의 삶을 살 수 있는 거야! 너뿐만 아니라 네 부하까지!”
“……!”
순간 김기철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벽에서 머리를 내밀고 홀린 듯이 이세기의 열변을 듣고 있는 부하들!
칠성 길드가 개박살 난 후.
간신히 몸과 장비만 가지고 빠져나왔다!
이태성 길드장의 주의를 끌까 봐. 제대로 된 헌터 일도 하지 못한 채, 용역 헌터로 온갖 잡일을 하며 굴렀다!
그 개고생에서 버틴 힘은 하나였다.
이세기!
자신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이세기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일념!
그런데 마침내 찾은 원수 이세기가 새로운 비전을 보여 주고 있다!
‘센트라로 맞이할 캐부자의 삶이란 비전을!’
어느새 김기철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던 분노가 사그라졌다.
김기철은 허준에게 총구를 겨누고 외쳤다.
“저 새끼를 조진다!”
“네!”
“알겠습니다!”
“당장 박살 내버리죠!”
사람에게 마탄을 겨누는 걸 꺼리던 부하들까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총구를 겨눴다.
그 정도로 이세기가 보여 준 비전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캐부자, 건물주.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비전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태성 길드장에게 찍혀 아무 꿈도 희망도 없이 죽은 듯이 용역 헌터일을 했다.
이들이 가진 복수심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었기에 생겨난 것이었다.
게다가 이세기의 열변에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만이 가지는 힘이 담겨 있었다.
당연했다.
캐부자, 건물주는 천문석의 전생에서부터 가진 꿈, 진심이었으니까.
천문석은 진심을 담아 열변을 토했고, 이 진심이 전 칠성 길드 조폭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지금 이 순간 이 골목 안은 뜨거운 열기가 흐르고 있었다!
캐부자 건물주라는 꿈을 향한 뜨거운 열기가!
“…….”
허준은 멍한 얼굴로 총구를 보다가 열변을 토한 이세기에게 시선을 옮겼다.
1분도 걸리지 않아 원수를 설득해 총구의 방향을 돌리게 했다!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건, 센트라가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아는 자신!
자신까지도 이세기가 열변에 설득될 것 같다는 거다!
‘이 미친 설득력은 도대체 뭐지!?’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눈앞에 캐부자의 삶이 펼쳐지고.
정보는 듣지도 않았는데 이세기가 가진 센트라 정보가 진짜일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샘솟았다.
지금 자신의 헌터팀이 하는 센트라 채집은 그야말로 극한노동.
자신도 이세기가 말한 편안한 캐부자의 삶을 살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향해 수십 개의 총구가 겨눠져 있다!
여기서 마탄을 맞으면 모든 건 끝장이다!
그래서 허준은 미리 준비한 비장의 한 수를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