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77화>
타다다닥-
강릉역 광장으로 뛰어나오는 순간 최설은 다급히 물었다.
“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최림 쟤가 여기 왜 있어!? 서울에 있을 거라면서!? 혹시 뒤를 밟힌 거야!?”
진교은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 우리 이동 경로 생각해 봐!”
“……!”
암살검에게 잡혀 연속 점멸로 이동하고, 헌터용 콜밴을 타고 서울 도로를 질주했다!
그 뒤로 최림과 철검장이 따라붙었을 리 없다!
“그리고 나랑 먼저 마주쳤는데 날 못 알아봤어! 아무래도 우연 같아!”
“우연이라고!?”
순간 등골을 스치고 지나가는 전율에 최설은 멈춰 섰다.
“야, 빨리 도망쳐야 해!”
“잠깐만! 잠깐만 생각 좀 정리하고!”
최설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열차에서 쏟아져 내린 헌터들.
-생각지도 못하게 마주친 사촌 최림.
-강릉역 밖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수백 명의 헌터.
그리고 여전히 [로밍중…… ] 화면을 띄워 놓은 휴대폰!
문득 이 모든 것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다.
그러나 어째선지 같은 느낌이 왔다.
수많은 우연!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을 정도로 많은 우연이 겹쳤던 그 날.
수많은 헌터들이 신동대문을 행진하며, 삼합 길드, 칠성 길드를 박살 낸 파멸의 날!
그날과 같다!
이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천문석 부사장!
그리고 운송선을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던 중에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
“최설 세상에 우연은 없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들면 감을 잡아야 한다!”
“감이라고?”
“하늘님이 시련 연타를 준비했구나! 하는 감!”
하늘을 바라보며 일대종사다운 기품을 담아 했던 말.
그러나 이 말을 한 상황은 어이없게도 ‘동전 있는 손 맞추기’, 손목 맞기 내기를 했을 때였다!
그것도 자신이 33연패해서 손목이 끊어질 듯 부어올랐을 때!
‘와, 이 녀석! 또 약을 파는구나!’
아픈 손목을 잡고 속으로 이를 가는 순간.
천문석 부사장은 참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쯧쯧쯧- 분노가 눈을 가렸구나! 너 이렇게 감을 못 잡으면 이 험한 세상에서 계속 구른다?”
“야, 됐고! 빨리 던져!”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핑그르르-
회전하며 하늘로 솟아오른 동전!
팟-
동전이 떨어지는 순간 교차해서 동전을 낚아챈 양손!
천문석은 양손을 내밀며 묻는다.
“동전은 어느 손에 들었을까?”
자신은 선택했고, 다시 한 번 분통을 터트렸다!
“34연패!? 시바 이게 말이 되는 거야!?”
///
이 순간 최설은 번쩍 회상에서 깨어났다!
그렇다! 말이 안 된다!
이 모든 게 우연일 리 없었다.
아니, 우연이어도 상관없었다.
최설은 천문석이 하려던 말을 이제야 깨달았다!
중요한 건 우연인지 우연이 아닌지가 아니다.
남의 만든 판, 상황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주도권을 잡고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 상황을 통제하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뒤엉킨 매듭이 단숨에 잘려 나가듯 머리가 맑게 깨어나고 한가지 답이 튀어나왔다!
난장판의 황제!
상황이 아무리 개판으로 돌아가도 어떻게든 해결해 내는 사람!
‘천문석 부사장!’
그렇다!
자신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강릉에는 먼저 도착한 천문석 부사장이 있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난장판은 천문석 부사장에게!
하-
깨달음의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덩달아 오랜 의문이 풀렸다!
운송선을 타고 공방 도시로 내려갈 때 당한 77연패의 진실!
최설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동전! 동전은 양손 어디에도 없었다! 와, 이 사기꾼 녀석!”
* * *
“뭐!? 야,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진교은이 황당한 얼굴.
최설은 바로 대답했다.
“……방법이 생각났어!”
“방법!? 그게 뭔데!?”
진교은이 반색하자, 최설은 당당히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로밍중…… ]
“…….”
“그 해결 방법 찾아서! 우리는 지금 당장 여기서 튀어야 해! 빨리 가자!”
그리고 앞장서서 잰걸음으로 걸었다.
“…….”
진교은은 최설을 멍하니 바라봤다.
잘 도망치다가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서서 고뇌하다가 낸 결론.
‘얼른 튀자!’
도망치는 거랑 튀는 거랑 뭐가 다르다고!?
“……도대체 멈춰 서서 무슨 생각을 한 거야?”
하아-
진교은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재빨리 최설을 따라붙었다.
이때 강릉역 방향에서 각성력이 실린 외침이 들려왔다.
“진교은! 최설!”
최림의 목소리!
광장 곳곳에 흩어진 헌터들이 웅성거리고 강릉역 방향을 바라본다!
최림이 밖으로 나왔다!
진교은은 최설 옆에 바짝 붙어 소리죽여 말했다.
“최림 혼자 움직였을 리 없어! 분명 철검장 헌터들이 전부 같이 움직였을 거야! 어쩌면 주위에 헌터 중에도 조력자가 있을지도 몰라!”
진교은은 바짝 긴장해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그러나 최설은 침착했다.
난장판에서 구르는 건 익숙해졌다!
게다가 방금 커다란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난장판은 천문석 부사장에게!’
그걸 위해 지금 가장 먼저 할 것은 확인!
“철검장 애들 수준 어때? 최림이랑 비교하면?”
“배 이상. 그리고 그놈들 손에 피를 묻혀본 놈들이야…….”
“숫자는?”
“내가 확인한 인원. 제주도로 들어온 인원만 15명 내외. 서울로 오면서 인원을 충원받았을 수도 있어.”
******-
헌터용 장비로 완전무장한 최림 2배 수준의 강자 15명 내외!
vs
천문석 부사장!
******-
최설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천문석 부사장이 신동대문에서 헌터들을 선동해 박살 낸 칠성 길드와 삼합 길드는 핵심 조직원만 백 명이 훌쩍 넘는다!
철검장의 헌터 15명은 천문석 부사장에게 걸리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빡치는 패배를 당할 것이다!
최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도 그렇게 당했으니까!
이때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빠져나갈 수 있을까?”
“당연하지. 주위를 봐!”
“주위?”
진교은이 주위를 살피자 최설의 목소리가 바로 이어졌다.
“이렇게 헌터가 많은데 우리 못 찾아. 인파에 스며들어서 빠져나가면 돼.”
“이 안에 철검장 조력자가 있으면?”
최설은 바로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로밍중…… ]
진교은의 얼굴이 환해졌다.
지금은 통신이 먹통이 된 상황!
최림이 우연히 만난 자신들의 정보를 전할 방법이 없다! 바로 빠져나가면 된다!
이때 최설이 배낭에서 머플러 와 가죽 재킷을 꺼내 건넸다.
“모자 벗고 이거 걸쳐.”
위장하라는 이야기!
“알았어!”
진교은이 재빨리 옷을 갈아입을 때.
최설도 방검방탄복과 장검을 배낭에 넣고, 틀어 올린 머리카락을 풀고 바람막이를 걸쳤다.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확 변해 버린 이미지!
진교은과 최설은 순식간에 위장을 끝마치고, 광장에 가득한 인파 속으로 스며들었다.
“최설, 진교은!”
최림의 각성력이 담긴 외침이 들려왔지만,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최림은 최설과 진교은의 위치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도로 끝에서 다가오는 버스가 보였다!
순간 최설과 진교은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심전심!
‘저 버스를 타고 빠져나간다!’
‘저 버스를 타고 빠져나간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 정류장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이때 주위를 둘러싼 헌터들에 변화가 생겼다.
톡, 톡, 톡-
문자 전송음!
그리고 휴대폰을 확인하는 헌터들!
고개를 내려 스마트폰을 보자 화면에 뜬 안테나!
[로밍중…… ] 알림이 사라졌다!
‘하필이면 지금!’
광장 곳곳에서 고개를 든 몇몇 헌터들이 외쳤다.
“타겟이 확인됐다!”
“최설! 진교은! 여자 둘! 확인해라!”
“인상착의 확인하고! 모두 움직여라!”
‘……!?’
진교은이 긴장으로 굳는 순간 최설은 바짝 붙어 속삭였다.
“고개 들지 마. 우리 찾는 헌터 많지 않아. 아직은 상정 범위 안이야. 저 버스 타고 바로 빠져나가면 된다.”
친구의 너무나 침착한 모습에 진교은은 정신을 차렸다.
스마트폰을 들고 확인하고 다니는 헌터들은 일부일 뿐!
광장에 가득한 헌터 상당수는 멀뚱멀뚱 이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게다가 정류장이 바로 앞이고 버스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친구의 말대로 저 버스를 타면 바로 빠져나갈 수 있다!
“같이 있으면 시선을 끈다. 따로 떨어져서 정류장으로.”
“알았어.”
최설과 진교은은 자연스럽게 양쪽으로 갈라졌다.
타다다닥-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힐끗 얼굴을 살피고 지나가는 헌터들이 보였다.
이 헌터들이 목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실크 셔츠, 야구 모자, 선이 부드러운 미녀, 진교은. 강화 전투복 새카맣게 탄, 최설. 여자 둘! 거기 잠시만!”
최설과 진교은은 용역 헌터들 사이를 지나 순식간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때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고 문이 열렸다!
완벽한 타이밍!
최설은 힐끗 눈짓했다.
‘너 먼저!’
진교은은 떨리는 발을 떼어 버스에 올렸다.
쿵-
바짝 긴장한 마음이 단숨에 풀리는 순간.
탁-
버스에 오르는 진교은의 팔을 잡는 사람이 있었다!
“……!”
소스라치게 놀란 진교은이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기억하시죠? 방금 열차 옆자리! 헌터팀 정찰조! 기억하시죠!? 아까 그 살벌한 친구분은 어디 가셨나 보네요? 와, 어떻게 여기서 다시 만나요! 저희 정말 인연인가 보네요! 그러니까 번호 좀! 하하하-.”
열차 안에서부터 끈질기게 번호를 묻던 헌터!
그 헌터가 힐끗힐끗 주위를 살피며 말을 붙였다!
“어, 어!?”
카지노에서 수많은 사람과 상황에 단련된 진교은도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이런 타이밍에 번호를 묻는다고!?’
그러나 진교은의 좋은 머리는 이 헌터의 얕은 노림수를 바로 파악했다!
열차에선 최설에게 기가 질려 도망치듯 떠난 헌터!
위장한 최설을 알아보지 못하고, 버스에 타는 순간을 노리고 팔을 잡았다!
자신이 통로를 막고 있는 상황!
의도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하고, 곤란한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마음을 이용하고 있다!
평소라면 이 정도 잔머리는 몇 번이라도 받아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최림과 철검장이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쫓는 상황!
그 둘에게 걸리면 곤란한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훅 갈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대폰 주세요. 제가 번호 드리죠.”
최설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네? 저는 이쪽분에게 관심이 있는데…….”
힐끗 최설을 곁눈질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헌터.
최설은 손을 들어 진교은을 가리켰다.
“제 친구예요. 제가 대신 번호 찍어드릴게요. 우선 좀 비켜 주세요. 뒤에 다른 분들 버스 못 타고 기다리시잖아요?”
버스 기사가 바로 한마디 했다.
“승객분들 기다리잖아요? 좀 비켜 주세요.”
그리고 정류장에 선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헌터는 섬뜩한 눈으로 버스 기사와 승객들을 노려봤다.
찔끔한 사람들이 시선을 돌리는 순간.
능글맞은 표정으로 웃으며 뼈있는 말을 던진다.
“혹시, 가짜 번호 주고. 바로 버스 타고 가시려는 거 아니에요?”
“설마요?”
최설이 정곡을 찔리고도 웃으며 대답하는 순간.
“잘됐네요! 그럼 확인하고 보내드릴게요!”
헌터는 진교은의 팔을 잡고 버스 통로에서 강제로 끌어내렸다!
우르르-
승객들이 버스에 타고.
부으응-
버스는 바로 출발했다.
그리고 헌터는 휴대폰을 내밀며 장난스레 말했다.
“어, 버스 떠났네? 잘됐네요! 얼른 번호 주세요. 확인하고 제가 직접 모셔다드릴게요!”
“…….”
최설은 잠시 멀어지는 버스를 보다가, 휴대폰을 받아 바로 번호를 찍어서 돌려줬다.
“바로 확인해 봐야지!”
장난스러운 말투에 담긴 집요함!
그러나 휴대폰에 찍힌 번호를 보는 순간 헌터는 얼어붙었다.
[010-4444-4444]
“뭐야, 지금 장난하는 거야!?”
버럭 소리치는 순간.
시야의 사각에서 날아온 훅!
번쩍-
턱 끝에 훅이 스치고 눈앞에 섬광이 번쩍였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비틀비틀 물러서는 헌터!
“야, 이 새끼야! 상식적으로 이 정도 했으면, 튕기는 게 아니라 진짜 싫은 거잖아!”
분노한 최설은 번개같이 달라붙어 아구창에 주먹을 날렸다!
“적당히! 어, 시바! 적당히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