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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76화 (57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76화>

열차가 강릉역에 가까워지자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알림.

[로밍중…….]

“이거 로밍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야, 누구 용역 애들이랑 연락되는 사람 있냐?”

왕체가 외치는 순간 철검장 헌터들이 곳곳에서 대답했다.

“저도 같습니다.”

“제 폰도 마찬가집니다!”

“다른 승객들 휴대폰도 안 터지고 있습니다.”

이때 기회를 노리던 최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갑자기 강릉에 인원이 몰리면서 로밍에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맡겨 주시면 용역 헌터 조직을 제가 움직이겠습니다.”

왕체는 고개를 들어 최림의 얼굴을 살폈다.

최림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 초조함의 정체를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배신자는 어디서든 경원시 당하는 법!

최림은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장주님 앞에서 호언장담한 게 무색하게도 최평의 딸을 찾는 일은 완전히 실패했다!

단혈철검 주호!

철검장의 장주님은 신상필벌에 엄격하시다!

이대로 돌아가면 최림의 앞날은 운이 좋아야 그저 그런 중간 조직원!

최림으로서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왕체에게는 최림의 이런 초조함이 나쁘지 않았다.

초조해하는 최림은 살짝만 등을 떠밀어 주면 알아서 움직일 테니까!

대환단 판매자, NTM_CHS!

가능한 평화로운 방법으로 돈을 주고 사들일 생각이다.

하지만 일이 꼬이게 되면 선을 넘어야 할 수도 있었다.

대환단은 어떻게든 확보해야 하는 물건!

선을 넘는 것에 주저함은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쉽게 무마할 수 있는 남중국이 아니다.

선을 넘는 순간 반드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한국이다.

왕체는 최림을 보며 내심 웃었다.

부조장 최림 정도면 책임지기 충분했다.

왕체는 최림의 어깨를 툭 두들기며 말했다.

“최림 부조장. 부탁한다. 우리는 한발 뒤로 물러나 있겠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성과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연신 고개를 숙인 최림은 바로 좌석에서 일어나 출구로 달려갔다.

“괜찮겠습니까? 조장?”

조원의 의문 어린 목소리에, 왕체는 웃으며 대답했다.

“사냥개가 요란하게 달리면. 주인은 그 뒤를 천천히 쫓으면 되는 거다.”

“아, 그래서!”

“역시 조장!”

……

철검장 헌터들의 탄성과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올 때 창밖으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릉!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꽈드득-

왕체는 가볍게 주먹을 쥐며 다짐했다.

‘반드시 대환단을 손에 넣는다!’

* * *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 811호가 강릉역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슨 헌터가 이렇게 많아? 희한하네, 강릉 게이트는 헌터가 별로 없다고 했는데……?”

최설은 역사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최설의 바로 뒤, 진교은은 파리한 안색으로 주위를 돌아보고 있었다.

“……!”

쿵쿵, 쿵쿵쿵-

열차에서 내린 순간부터 심장 박동 소리가 빨라지고, 아찔한 현기증과 초조함이 느껴졌다!

마치 맹수가 숨어 있는 숲으로 다가가는 듯한 느낌!

“너 괜찮아? 얼굴이 왜 그렇게 창백해!?”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최설이 깜짝 놀라는 순간.

진교은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부사장님 아직 연락 안 돼?”

최설은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 줬다.

[로밍중…… ]

“전화가 먹통이야.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서 로밍에 시간이 걸리는 건가? 그래도 이렇게 오래 걸릴 리가 없는데?”

진교은의 시선이 방금 플랫폼에 도착한 KTX 열차로 향했다.

분명 서울역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텅텅 비다시피 한 열차.

그러나 강릉역에 도착한 KTX 열차에서는 엄청난 수의 헌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중간 정차역에서 탄 헌터들이다!

얼핏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당이 그렇게 세다고? 무슨 일인데?”

“강릉역 앞 광장에서 대기하면. 팀장이 톡으로 연락 준다던데.”

“설마, 갑자기 사냥터로 밀어 넣는 건 아니겠지?”

“당연하지. 신강릉 주위에 무슨 사냥터가 있냐? 뭐 세력 과시할 일이 있나 보지.”

“그보다 누구 휴대폰 되는 사람 없냐? 뭔 로밍이 이렇게 오래 걸려?”

“전부 안 되는 거 같던데?”

……

“……야, 야! …… 좀 갔다 올게.”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한 진교은을 깨우는 목소리.

“……뭐라고?”

반문하는 순간, 최설이 손을 들어 역사 한쪽을 가리켰다.

“나 저기 휴대폰 대리점 좀 갔다 올게. 아무래도 휴대폰 확인 좀 해 봐야 할 거 같아. 너 괜찮아?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아냐 괜찮아. 나 커피 좀 사야겠다. 갔다 와.”

“알았어. 금방 갔다 올게. 서 있지 말고 커피숍에 앉아 있어.”

최설이 한달음에 휴대폰 대리점으로 달려가고, 진교은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사서 커피숍 의자에 앉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단숨에 비우고 심호흡하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정신 차려! 지레 겁먹고 이 꼴이 뭐야!?”

차가운 커피에 점차 정신이 들고 빠르게 뛰던 심장 박동 소리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좁아졌던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고, 주위의 모습에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헌터들과 관광객, 등산을 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KTX 강릉역사가 보였다.

진교은은 역사 안에 가득한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는 한 밤의 바다 위 카지노 유람선이 아니다.

마수나 몬스터가 나올 리도 갑자기 무장공작선이 튀어나올 리도 없다.

이곳은 게이트 안정화 권역 안이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불안함은 아이들이 옷장 안, 침대 밑에서 느끼는 이유 없는 공포와 다르지 않다.

점차 안색에 핏기가 돌아오고, 뻣뻣하게 경직된 몸이 부드럽게 풀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긴장으로 굳은 얼굴에 미소가 생겨났을 때.

진교은은 깨달았다.

테이블에 놓인 얼음만 남은 컵.

얼마나 긴장했는지 최설의 커피까지 단숨에 마셔 버렸다!

“아이도 아니고…….”

가볍게 웃은 진교은은 카운터로 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아이스. 아니, 핫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소소한 복수, 뜨거운 아메리카노!

완전히 여유를 찾은 진교은이 핫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고 몸을 돌릴 때.

커피숍 창문 너머로 휴대폰 대리점에서 나오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진교은은 눈을 빛내며 빠르게 걸었다.

자신을 조마조마하게 만든 친구에게 소소한 복수를 해야 했다!

그리고 커피숍을 나가는 순간.

툭-

완전무장한 헌터와 부딪혔다.

단단한 육체에 진교은이 짧은 비명과 함께 밀려나는 순간.

한국어 각인을 받은 헌터 특유의 억양이 들려왔다.

“제대로 보고 다녀라!”

“……네?”

진교은이 발끈하는 순간 스마트폰을 짜증스레 바라보던 헌터가 고개를 들었다.

강화 전투복에 방검방탄복.

검대에 걸린 봉인 처리된 커다란 참마도.

전에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

그러나 진교은은 한눈에 알아봤다.

최림!

철검장과 제주도에 나타났던 최림!

그 최림이 완전무장한 채 지금 눈앞에 있었다!

“……!”

진교은이 얼음처럼 굳는 순간.

최림의 시선이 손에 든 커피로 향했다.

반쯤 쏟은 커피!

“하- 시바. 가뜩이나 휴대폰도 먹통인데!”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하고 툭 지폐 몇 장을 던지는 최림!

‘못 알아봤구나!’

진교은은 바로 떨어진 지폐를 주워들고 천연덕스럽게 쏘아붙였다.

“좀 조심하고 다녀요!”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몸을 돌려 걸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짜증 난 사람을 연기하며, 새로 커피를 사려는 듯 커피숍으로 걸어간다.

그러나 진교은은 모든 신경을 등 뒤 최림에 쏟았다!

하-

어이없어하는 웃음소리!

탁-

바닥을 밟고 몸을 돌리는 발소리!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정면 커피숍 유리 벽을 보니.

거울 같은 유리 벽에 반사된 최림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모습 그대로 스마트폰을 짜증스럽게 바라보며 다급히 걸어가는 최림!

‘됐다! 이제 이대로 최설과 함께 자리를 피하면…….’

이때 최림의 정면에서 걸어오는 헌터가 보였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걸어오는 헌터.

최설!

이 넓은 강릉 역사에서 절대 만나선 안 되는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7, 6, 5, 4, 3미터!

최설과 최림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

머리가 하얗게 변한 진교은이 굳어 있을 때.

최설과 최림의 거리가 ‘0’이 됐다!

순간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좌우로 움직이는 두 사람!

오른쪽으로 움직인 최설.

왼쪽으로 움직인 최림.

보지도 않고 서로를 피한 두 사람은 옷깃조차 스치지 않고 멀어졌다!

“……!”

바짝 긴장했던 진교은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렇게 재수가 좋다니!

됐다! 이제 이대로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면 된다!

이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은이 얘는 어디 간 거야?”

그리고 커피숍 유리창에 반사되는 모습.

의아한 듯 커피숍을 살피는 최설.

다급히 걷던 발걸음을 멈춘 최림.

최림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등을 보인 최설을 향해 말했다.

“최설?”

“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린 최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

“……?”

멈칫한 최설과 최림.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최설은 사촌 최림을 보는 순간 바로 알아봤다!

‘서울에 있어야 할 최림이 왜 여기에!?’

그러나 최림은 최설을 알아보지 못했다.

강화 전투복과 방검방탄복, 안전 군화에 안전 장갑. 그리고 봉인돼 무장 벨트에 걸린 장검까지!

완전무장한 헌터용 복장.

능력 없이 혈연으로 비서 자리를 차지한 사촌이 헌터 복장을 할 리 없었다.

게다가 인상!

설(눈)이란 이름 그대로 투명할 정도로 새하얀 사촌과 달리 새까맣게 탄 얼굴과 냉랭함이 아닌 거친 폭력성이 느껴지는 눈빛!

필드에서 몇 년을 굴렀을 것 같은 베테랑 헌터가 앞에 있었다.

최림은 피식 웃었다.

대환단을 찾아온 강릉에서 최설을 만난다고?

그런 우연이 일어날 리 없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했다.

“혹시 최설…….”

이 순간 다급한 외침이 옆에서 터져 나왔다.

“최림!”

“……!?”

갑자기 불린 이름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촤아아-

최림의 얼굴에 뜨거운 커피가 쏟아졌다.

핫 아메리카노!

으아악-

최림의 비명과 동시에.

진교은의 다급한 외침이 터졌다.

“튀어!”

* * *

타다다다닥-

뜨거운 커피를 뒤집어쓰는 순간 들려오는 다급한 발걸음 소리!

최림은 커피가 날아오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자신에게 커피를 뿌린 건 커피숍에서 부딪혔던 여자, 제주도에서 만났던 진교은이다!

제복과 캐쥬얼을 입은 인상이 너무 달라 순간적으로 알아채지 못했다!

최림은 직감했다.

진교은과 같이 도망친 여자!

인상이 달라져 최설이 아니라고 생각한 그 여자가 진짜 최설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최설이 강릉에 있다!

최림은 바로 각성력을 끌어올려 뜨거운 커피를 뒤집어쓴 얼굴로 보냈다.

육체 각성자의 엄청난 회복력!

순식간에 열감이 사라지고 빠르게 시야가 회복됐다!

최림은 재빨리 주위를 훑었다.

진교은과 최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이동한 방향은 기억한다!

강릉역 광장!

최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강릉역 광장에는 용역 헌터 3개 조직 수백 명의 헌터, 혹시나 해 따로 고용한 추적 전문 헌터팀까지 있다!

실패를 만회할 기회가 생겼다.

대환단뿐만 아니라!

최설까지 잡는다!

최림은 바로 광장을 향해 달리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로밍중…… ] 표시!

“빌어먹을!”

분통이 터졌지만, 아직 방법은 있다.

이번에 고용한 용역 헌터들의 보스들은 자신과 안면이 있다!

직접 만나 추적을 시작하면 된다!

최림은 기억 속 진교은과 최설의 인상착의를 잊지 않기 위해 빠르게 되뇌었다.

“진교은! 스키니 진, 하얀 운동화, 실크 셔츠, 네이비 야구 모자! 오른쪽 귀에만 귀걸이! 반지는 없고 선이 부드러운 미녀!”

“최설! 강화 전투복에 장검! …… 까맣게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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