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74화>
위잉, 위이잉-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두 대!
경포호를 한 바퀴 돌아 자전거 대여소가 보일 때까지 천문석과 특급 헌터의 승부는 이어졌다.
특급 헌터는 과연 특급이었다!
처음 자전거를 탄다고는 생각지 못할 기발한 기술들!
거기에 퐁퐁검의 힘까지 더해지자,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내력을 사용했다면 이겼겠지만, 꼬맹이와의 승부에 그럴 수는 없는 법!
천문석은 핸디캡을 몇 개나 짊어지고도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그러나 막판 자전거 대여소가 보일 때 불어온 역풍이 승패를 결정지었다!
“이야얍-!”
기합과 함께 핸들을 잡고 안장에 엎드린 채 몸을 일자로 쭉 편 특급 헌터!
위이이이이잉-
공기저항을 줄인 특급 헌터는 순식간에 천문석을 추월해 결승선을 지나갔다!
“내가 이겼어! 카캬카-.”
특급 헌터가 승리의 환호성을 지를 때.
천문석은 자전거에서 내리며 외쳤다.
“와 이 꼬맹이 녀석! 야, 앞으로 그 기술 금지야! 위험해!”
“뭐!? 하나도 안 위험해! 내가 다시 보여 줄게!”
빙글빙글빙글-
특급 헌터는 슈퍼맨이 하늘을 날듯 안장에 엎드린 채로 빙글빙글 자전거로 원을 그렸다.
얍, 얍얍-
순간 기합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 안장에 거꾸로 앉아 자전거를 타기까지 한다!
엄청난 균형 감각과 민첩성!
특급 헌터의 말대로 타는 특급 헌터는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는 사람은 기겁해서 가슴 졸일 기술이었다.
그래서 천문석은 치트키를 사용했다.
“계속 그 기술 쓸 거면 어쩔 수 없이. 장민…….”
탁-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을 돌려 제대로 앉는 특급 헌터.
“생각해 보니까. 알바 말이 맞는 거 같아!”
피식 웃은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 이제 자전거 반납하고 중앙시장가자…….”
“뭣!? 알바! 우리 자전거 더 타자! 엄청 빨라! 쌩쌩 달린다니까! 내 생각에는 우리는 자전거를 좀 더 타야 할 것 같아! 사슴아 반짝아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앗!? 사슴아? 반짝아!? 어디 갔어?”
특급 헌터는 자전거를 더 타야 한다고 철벽 같은 얼굴로 주장했다!
하지만 천문석이 다음 말을 하는 순간 이 철벽 같은 얼굴은 바로 무너졌다.
“중앙시장에서 닭강정 안 먹고?”
“……!”
경악으로 물든 얼굴!
“닭강정! 그렇지! 우리 닭강정 먹어야지! 검사 할아버지가 중앙시장에서 먹을 거 적어 줬어! 알바 빨리빨리 와! 얼른 가야 해!”
바로 자전거를 반납하고 중앙시장으로 뛰듯이 걸어가는 특급 헌터와 천문석.
중앙시장으로 가는 길가에 오래된 한옥을 개조해 만든 작은 갤러리가 보였다.
“이런 데 갤러리도 있네?”
“돌.담.갤.러.리? 갤러리가 뭐 하는 데야?”
더듬더듬 간판을 읽은 특급 헌터가 고개를 갸웃할 때, 천문석은 적당히 설명했다.
“사진, 미술품 그런 거 전시하는 곳이야.”
“앗! 미술관이구나!?”
“맞아. 갤러리랑 미술관 비슷한 거야. 너 미술관 가 봤냐?”
특급 헌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쏟아 냈다.
“장민이 이런 거 가지고 있거든! 석, 석석…… 뭐라고 했는데!? 안에 보면 신기한 거 엄청 많아! 번쩍이는 가면, 커다란 로봇 머리, 새카만 돌칼! 반짝이는 동전도 잔뜩 있고! 이렇게 멋지게 앉아 있는 조각상도 있어! 앗! 나중에 알바도 같이 가자! 내가 찜해 둔 진짜진짜 신기한 물건 있는데 보여 줄게! 알바도 엄청 신기할 거야! 앗! 혹시 모르니까 여기도 한번 확인해 볼까?”
정신없이 말을 쏟아 내던 특급 헌터는 홀린 듯이 갤러리로 뛰어갔다.
천문석 특급 헌터를 번쩍 들어 목말 태우고 말했다.
“야, 닭강정이 우리를 기다리잖아! 갤러리는 이번 일 끝나고 나중에 놀러 가자.”
“앗! 그렇지 닭강정! 알바! 빨리 시장가자!”
“출발!”
외침과 함께 천문석은 바로 중앙시장으로 달렸다!
최설이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던전 안에서 사용할 식량과 소모품, 부동산 전문가 한호석 교수님에게 대접할 청주를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도착한 중앙시장.
앞장선 천문석 뒤로 특급 헌터가 닭강정 상자를 손에 들고 시장을 걸었다.
“으앗- 닭강정 엄청 맛있어! 매콤달달해!”
특급 헌터가 연신 감탄할 때.
천문석은 한호석 교수님에게 접대할 청주를 사들였다.
500mL 종이팩 청주.
종류별로 하나씩 모두 40팩!
과할 정도로 많이 샀지만, 상황이 변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이 한호석 교수님에게 받을 건 일반 부동산 컨설팅이 아니라 성채 빌딩 컨설팅이다.
당연히 충분한 성의를 보여야 했다!
천문석은 단단히 포장된 청주 팩을 배낭에 연결해 짊어졌다.
그리고 시장 안을 훑으며 다른 물품들을 빠르게 사들였다.
이상 던전 안에서 사용할 2, 3일 치 식량과 소모품.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보존식품과 고체 연료, 식수 소독 정제, 비상 구호 물품…….
한호석 교수님의 호감을 살 히팅 패드와 휴대용 손난로 여러 개!
천문석의 배낭이 점점 묵직해지는 동안.
특급 헌터는 동전 주머니에서 꺼낸 동전으로 사방에서 먹거리를 사서 달려왔다.
“알바! 이거 먹어 봐! 아!”
아-
입을 벌릴 때마다 쏙쏙- 입안으로 들어오는 먹거리들!
-달달한 닭강정.
-매콤한 중화 짬뽕빵.
-계란에 부친 오징어순대 튀김.
……
그리고 엄청나게 매운 땡초 고로케!
“컥! 이거 뭐야!?”
입안에서 터진 매운맛에 고통스러워하는 순간, 땀을 뻘뻘 흘리는 특급 헌터가 기다렸다는 듯 척- 내미는 쿨피스!
“아저씨가 이거랑 같이 먹는 거래!”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단숨에 쿨피스를 들이켰다.
“카아- 시원하다!”
“캬아아- 시원해!”
동시에 탄성을 터트리는 두 사람.
천문석은 감탄했다.
“와, 여기 먹거리 진짜 괜찮네?”
“그렇지!?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검사 할아버지 말대로 엄청엄청 맛있어! 앗! 저기 튀김도 맛있을 거 같아!”
특급 헌터는 신난 얼굴로 달려가 동전 지갑을 번쩍 들고 외쳤다.
“아저씨! 튀김 주세요! 제일 맛있는 거로 두 개 주세요!”
동전 지갑이 홀쭉해질 수록, 특급 헌터와 천문석 두 사람의 배는 볼록 솟아 올랐다.
이렇게 먹거리를 먹으며 걸으니, 어느새 중앙시장이 끝나고 약초시장이 나타났다.
강릉 게이트 너머 신강릉은 엄청난 높이의 산이 끝없이 이어지는 고산지대.
이 신강릉에서 쏟아진 엄청난 양의 약초가 모이는 곳이 지금 앞에 있는 약초시장이었다.
천문석은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슬슬 최설이 도착할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최설 곧 오겠는데. 여기는 나중에 구경하고 강릉역으로 올라가자.”
바로 돌아오는 대답.
“앗! 잠깐만 나 여기서 꼭 살 거 있어! 얼른 사서 올게!”
“꼭 살 거?”
수첩을 꺼내 파바밧- 넘겨서 보여 주는 특급 헌터.
[예쁜 꽃씨.]
“나 강릉 간다고 하니까! 뜨개질 할머니가 이거 사다 달라고 했어!”
“약초시장에서 꽃씨를 산다고?”
“약초시장은 꽃씨 안 팔아!?”
특급 헌터는 깜짝 놀라 시장 상인에게 달려가 손짓 발짓하며 뭐라 설명하기 시작했다.
부르르-
이때 짧게 진동하는 스마트폰!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의뢰인 한호석 교수가 보낸 문자였다.
[한호석입니다. 부산 쪽 일정이 늦어졌습니다. 강릉에는 오후 6시 이후에나 도착할 것 같네요. 칠성산으로 바로 갈 테니 칠성산 입구 법왕사에서 보도록 하죠. 곧 통신 불가 지역으로 들어가서 연락이 안 될 것 같습니다. 법왕사에 도착하면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역시 한국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 한호석 교수님!
문자에서도 바쁜 일정이 느껴졌다!
천문석은 바로 지도 앱을 켜서 동선을 확인했다.
칠성산 법왕사까지는 도로가 연결돼 있었다.
이제 곧 최설이 탄 KTX 열차가 강릉역에 도착하니, 강릉역에서 택시를 타면 법왕사까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다!
이때 특급 헌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이제 가면 돼!”
고개를 내려 보니 연필 크기의 나무줄기 한 다발을 든 특급 헌터가 보였다.
“너 꽃씨 산다며?”
“꽃씨보다 더 좋은 거 샀어!”
특급 헌터는 반짝이는 눈으로 손에 쥔 나무줄기를 내밀었다.
“이 나무줄기 땅에 심으면 저기 하늘 끝까지 자라는 꽃나무가 된대! 꽃나무에서 꽃잎이 흩날리면! 완전완전 멋진 꽃비를 매년 볼 수 있는 거야!”
특급 헌터와 꽃나무.
하늘 끝까지 자라는 나무.
어쩐지 너무나 익숙한 동화 속 이야기다.
그러나 특급 헌터, 이 특이한 꼬맹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럼 이제 강릉역 가자. 이제 최설 올 시간 다 됐어.”
특급 헌터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외쳤다.
“우리 이제 헌터 일 시작하는 거야!? 나 진짜로 특급 헌터 되는 거야!?”
“……!”
이 순간 천문석은 특급 헌터가 강릉까지 따라온 진정한 이유를 깨달았다!
맛있는 순두부, 강문해변, 중앙시장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스스로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 때문이었다.
‘나 진짜로 특급 헌터 되는 거야!?’
이 외침에 모든 답이 있었다.
특급 헌터는 이름과 달리 단 한 번도 헌터일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헌터 일을 하지 않은 특급 헌터!
이번 강릉행은 특급 헌터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였다!
천문석은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제 던전 갔다 오면, 진정한 특특특급 헌터로 태어나는 거야!”
“진정한 특특특급 헌터!”
몸을 부르르 떤 특급 헌터는 우렁차게 외쳤다.
“알바 빨리 와! 우리 얼른 의뢰하러 가야 해!”
타다다다닥-
앞장서서 짧은 팔다리로 달리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따라가며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거짓말은 아니다.
특급 헌터는 던전에 들어간다.
단지 그 시간이 좀 짧을 뿐이다.
대략 2시간에서 3시간!
2, 3시간이나 2, 3일이나 던전에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특급 헌터는 이제 곧 이름에 걸맞은 던전 경험까지 갖추게 되는 것이다!
던전에 들어가 밥을 먹고 잠들었다가 깨어났을 때면, 분노한 엄마 앞일 테지만 말이다!
‘카캬카카카카-.’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삼키며 외쳤다.
“특급 헌터 같이 가자!”
“알바! 빨리 달려!”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KTX 선로 옆 인도를 뛰어 강릉역으로 달렸다.
강릉역으로 가까워질 수록 헌터들의 수가 빠르게 늘어났다.
처음 강릉역에 도착한 몇 시간 전보다 몇 배로 늘어난 헌터들!
천문석은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깨달았다.
센트라 분쟁 때문이구나!
역시 빨리빨리의 민족 한국 사람들!
‘심 봤다’를 외친 산에 온갖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센트라가 발견된 강릉으로 헌터들이 빠르게 모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강릉 게이트가 아닌 ‘이상 던전’으로 갈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부르르르-
이때 발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진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서울 방향으로 뻗은 KTX 선로!
천문석은 직감했다.
최설이 탄 811호 KTX 열차가 강릉으로 오고 있다!
“이제 시작이구나.”
천문석이 말하는 순간.
앞장서 달리는 특급 헌터가 빙글 고개를 돌리고 외쳤다!
“맞아! 이제 시작이야!”
카캬카카카-
카카카카캌-
같은 웃음, 다른 생각.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며 강릉역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