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72화>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바로 강문해변으로 달렸다.
이제 막바지 여름 더위도 끝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초입이었다.
하지만 강문해변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부아아아앙-
모터보트를 타는 관광객.
두 손을 잡고 어깨를 맞댄 채 해변을 걷는 연인.
친구와 연인 사이,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한 남녀.
“셋에 던져!”
“하나! 둘! 셋!”
몰려 오는 파도를 향해 친구들을 집어던지는 학생들.
사람으로 북적이는 강문해변에 어린아이의 외침이 섞여들었다.
우와아아아-
커다란 환호성을 지르며.
찰팍, 찰팍, 찰팍-
파도가 밀려 오는 해변을 맨발로 달리는 꼬맹이.
특급 헌터!
“알바! 빨리빨리와! 바닷물이 엄청 간지러워! 카카카캌-.”
특급 헌터의 배낭과 벗은 신발을 챙긴 천문석은 손을 흔들었다.
“먼저 가! 따라갈 게!”
“알았어!”
이얍, 이야얍-
특급 헌터는 기합을 지르며 파도를 맨발로 걷어차며 달리다가 깜짝 놀라 주저앉았다.
“으앗! 이거 뭐야!”
파도 속으로 넣었다 뺀 손에 들린 하얀 돌멩이!
하얀 돌멩이를 요리조리 햇빛에 살핀 특급 헌터는 탄성을 터트렸다.
“훌륭해! 6점! 이건 6점짜리 돌이잖아!?”
벌떡 일어나 찰팍, 찰팍- 파도를 걷어차며 달리며 돌을 찾는 특급 헌터.
“앗! 멋진 돌! 5점!”
“아앗! 예쁜 돌! 4점!”
“으앗! 훌륭한 돌! 5점!”
……
특급 헌터는 신나게 달리고, 외치고, 주머니에 돌을 담으며 감탄했다.
“뭐야!? 진짜잖아! 할아버지 말처럼 훌륭한 돌이 엄청 많아! 알바! 알바도 얼른 돌 주워!”
때마침 천문석도 투명한 돌을 하나 주웠다.
유리병이 깨져 파도에 수십 년 동안 동글동글 깎여 만들어진 바다 유리!
천문석이 주운 바다 유리는 흔하게 보이는 흰색, 녹색 바다 유리와 달리 투명한 자주색으로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특급 헌터!”
“……!?”
휙 고개를 돌린 특급 헌터에게 날아가는 자주색 바다 유리.
“받아라!”
탁-
특급 헌터가 번개같이 낚아채는 순간.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레 물었다.
“그 돌 내가 주운 건데 어떠냐?”
“음! 알바가 주운 돌이란 말이지?”
태양을 향해 번쩍 손을 들고 유심히 바다 유리를 살피는 특급 헌터.
한참 동안 바다 유리를 살피던 특급 헌터는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으앗!”
“엄청 좋은 돌이라서 놀랐냐? 카캬카-.”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바로 돌아오는 대답.
“별론데? 1점!”
“뭐? 1점!? 야, 잘 좀 봐! 그거 보석 같지 않냐? 자주색이야! 자주색 바다 유리는 처음 보는 거야!”
“……?”
얼굴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감정, 의문!
특급 헌터는 ‘뭐지, 지금 진심으로 말하는 건가?’라는 눈으로 천문석을 바라봤다!
지금 특급 헌터의 얼굴은 이모티콘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email protected]?]
표정만 봐도 장난이 아닌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천문석이 말문이 막힌 사이, 특급 헌터는 주머니에서 돌을 하나 꺼내 바다 유리와 함께 건네줬다.
“알바! 좋은 돌은 이런 돌이야! 6점짜리 돌멩이!”
평범한 하얀 돌멩이!
뭐가 특별한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주운 자주색 바다 유리가 174.18배 더 훌륭해 보였다!
‘혹시, 이 녀석 그냥 막던지는 거 아냐!?’
불쑥 의혹이 치솟는 순간 특급 헌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그 돌! 간만에 주운 6점짜리 돌이지만 알바 줄게. 그거 보고 비슷한 돌로 주워. 앗! 저기도 멋진 돌이!”
파바바밧-
바로 달려가 돌을 주워드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다시 한 번 6점짜리 하얀 돌멩이와 1점짜리 자주색 바다 유리를 번갈아 봤다.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야?”
아무리 봐도 하얀 돌멩이의 무엇이 특별한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 답이 있는 건 아니고, 특급 헌터의 생각은 원래 이해하기 힘들었다.
피식 웃은 천문석은 하얀 돌멩이와 자주색 바다 유리를 상의 포켓에 넣었다.
그리고 특급 헌터를 따라 강문해변을 천천히 걸었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 하얀 모래사장을 걷는다.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꼬맹이의 탄성이 들려올 때.
휘이이이-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촤아아아-
푸른 파도가 밀려 와 산산이 부서진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너무나 여유로운 한때.
해야 할 것도, 하는 것도 없는 한적함.
이제야 진짜 휴가를 즐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것이나, 관광지에서 노는 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릉까지 와서 여유롭게 해변을 걸으니,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쉬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 삼겹살 구워 먹다가 서울 사태가 터진 이래 쉼 없이 달려왔다.
체감상 서울 사태가 터진 지 십 년은 지난 것 같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았다!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그동안 겪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스쳐 지나갔다.
서울 사태.
오리온 길드 현장 면접.
이세계 쿠팡맨 시즌 1, 배송 경주.
각성 스팟. 무림 던전.
고블린 평야 몬스터 웨이브.
신동대문의 난장판과 깃발전.
제주도 휴가에서 연이어 터진 사고.
이세계 쿠팡맨 시즌 2, 부산 던전.
세기말 대한민국!
……
얼핏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 이 정도다!
헌터가 된 이래 제대로 쉬지도 않고 이 모든 일을 헤쳐나왔다!
천문석은 자기 자신에게 감탄했다.
‘와, 나 진짜 빡세게 살았구나!’
쉼표도 줄 바꿈도 없이, 페이지를 하나 가득 채운 벽돌체 문장 같은 삶을 살았다!
천문석은 새삼 다짐했다.
이번 의뢰만 끝내면 좀 더 게으르고 널찍하게 산다!
이때 특급 헌터의 우렁찬 목소리가 상념을 끊어 냈다.
“특급 헌터가 왔다! 카카캌-.”
이야얍, 얍얍얍-
기합을 지르며 파도와 모래를 발로 걷어차며 달리는 특급 헌터!
‘뭐야, 쟤 갑자기 왜 저래?’
의문은 바로 풀렸다.
촤악, 촤아악-
사방으로 치솟는 파도와 모래에.
꺄야, 꺄아아-
깜짝 놀라 남자 품에 안기는 여자!
“이 꼬맹이 녀석이!”
분노한 듯 크게 외친 남자는 품에 안은 여자 너머로 척- 엄지를 내밀고 입으로 말했다.
‘고맙다! 꼬맹아!’
순간 마주 척 엄지를 내밀고 고개를 끄덕이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가 왔다! 카카캌-.”
촤악, 촤아악-
특급 헌터는 파도와 모래를 걷어차며 계속 해변을 달렸고.
꺄아아, 하하하-
그 경로를 따라 즐거운 비명과 웃음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특급 헌터는 줄줄이 생겨난 행복한 피해자를 뒤로하고 달려 오며 외쳤다.
“알바! 뛰어! 우리 다음은 경포호에 자전거 타러 가야 해!”
‘와, 이 생각 있는 꼬맹이 같으니라고!’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따라 달리며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카카캌-
카캬카-
* * *
순식간에 달려온 경포호.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자전거를 앞에 둔 특급 헌터가 얼어붙은 것!
“…….”
심각한 얼굴로 자전거를 요리조리 살핀 특급 헌터는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더니 분통을 터트렸다.
“하아아아- 왜! 세발자전거가 없는 거야! 내가 탈 수 있는 자전거가 없잖아!”
이 순간 천문석은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카캬카캌-
“와! 진짜로? 너 정말 자전거 탈 줄 몰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몸 쓰는 데는 천부적인 특급 헌터가 일반 자전거를 타지 못할 줄은!
순간 분통을 터트리는 특급 헌터.
“당연하지!”
풉-
다급히 웃음을 삼키는 순간 이어지는 목소리.
“장민이 두 발 자전거 타는 건 엄청 배우기 힘들다고 했단 말야.”
“뭐……?”
특급 헌터는 너무나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장민이 두 발 자전거 타는 거 배우려면, 한 달 동안 고기 끊고 고등어랑 샐러드만 먹어야 한대…….”
‘뭐지, 이 곰이 100일 동안 마늘 먹는 이야기는?’
천문석이 내심 웃음을 삼킬 때.
특급 헌터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더 빠른 쌩쌩이가 있는데. 또 배울 필요 없잖아!”
“……응?”
반문하는 순간 얼핏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오래전 백화점에서 만난 기억.
장민을 설득해 특급 쌩쌩이 1호의 바퀴가 줄어드는 것을 막았다던 특급 헌터!
‘설마, 이 녀석!?’
“너…… 세발자전거가 두발자전거보다 빠르다고 생각하냐?”
휙휙-
특급 헌터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손을 번쩍 들었다.
“당연하지! 저기 봐봐!”
번쩍 든 손이 향한 곳은 쌩쌩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였다.
“자동차 바퀴가 많으니까 더 빠르잖아! 아까 기차도 바퀴가 잔뜩 달렸으니까 엄청 빠른 거 봤지!?”
“야, 그럼 비행기는 뭔데?”
“비행기는 날개가 달렸잖아? 아무리 바퀴가 많아도 날개는 못 이기지!”
“아…….”
자신도 모르게 터지는 탄성과 끄덕여지는 고개.
‘뭐지, 말이 안 되는데 묘하게 설득되는 이 느낌은!?’
자신도 모르게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아차, 설득당할뻔했다!
“야, 그건 아니지! 그냥 자전거가 세발자전거보다 훨씬 빨라!”
[@[email protected]?]
해변에서와 같은 표정으로 묻는다.
“그럼 한 바퀴 자전거가 제일 빠른 거야?”
“어…….”
순간 말문이 컥 막혔다.
두발자전거가 세발자전거보다 빠른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걸 말로 풀어 설명하려니, 난감했다!
그래서 천문석은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직접 몸으로 이해하게 하는 것!
“일반 자전거 타는 법 가르쳐 줄게. 지금 배우자. 타보면 바로 알 거야!”
“뭐!? 나보고 고기를 끊으라고!?”
“나한테 배우면 고기 안 끊어도 돼. 그런데 항상 안전운전하기로 약속해야 한다. 어때 배울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망설이는 목소리에 담긴 두려움.
꼬맹이나 어른이나 새로운 도전이 두려운 건 마찬가지다.
천문석은 툭 특급 헌터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야, 내가 속성 과외로 네 또래 애들 수십 명을 한방에 마종문에 합격시킨 사람이야! 30분이면 자전거 타기 배울 수 있어!”
그리고 시작된 일반 자전거 타기 교습!
천문석은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까지 했다.
특급 헌터가 처음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순간이라니!
이건 반드시 기록해야 할 귀중한 영상이었으니까!
그러나 교습에 30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특급 헌터가 안장을 조정해 앉은 후, 손으로 잡아 주고 30미터쯤 전진했을 때.
“어, 알바! 나 뭔가! 뭔가 할 수 있는 거 같아!”
외침과 함께
위이잉-
자전거는 번개같이 치고 나갔다!
특급 헌터는 순식간에 자전거 타기를 배웠다! 그리고 경악했다!
“으앗! 이게 뭐야!?”
“무슨 문제 있어!?”
재빨리 따라붙은 천문석이 묻는 순간.
특급 헌터는 외쳤다.
“내 쌩쌩이보다 빠르잖아! 바퀴 수가 줄었는데 더 빨라 졌어!?”
크리스마스 새벽.
끝까지 자지 않고 버텨 마침내 산타의 정체를 목격한 아이처럼 특급 헌터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충격은 길지 않았다!
특급 헌터는 순식간에 자전거 타기에 빠져들었다!
빙글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회전하다가.
끼이익, 콩콩콩-
브레이크를 잡고 앞바퀴만으로 일어나 튕긴다!
핑그르-
손잡이를 잡고 몸을 돌리는 순간 180도 회전하는 안장!
단숨에 턴해서 전진하고, 어느새 앞바퀴를 들고 뒷바퀴만으로 튕기듯 계단을 내려갔다!
방금 자전거 타기를 배운 꼬맹이가 할 수 있는 기술들이 아니었다!
그동안 타던 세발자전거가 억제기였던 것처럼. 특급 헌터는 배우지도 않은 기술을 펼쳐 냈다!
본능적으로 자전거의 메커니즘을 이해해 기술로 펼쳐 내고 있다!
간결한 동작과 여유마저 느껴지는 몸짓!
배우고 수련해서 익힌 게 아닌 타고난 재능이 느껴졌다!
천문석은 연신 감탄하며 특급 헌터 뒤를 따라 자전거를 몰았다.
“와, 이 녀석 무공 배우면 장난 아니겠는데!?”
자신도 모르게 감탄이 튀어나온 순간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무공을 가르쳐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