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71화>
“알바! 저기에 역 보여! 도착한 거야!? 우리 강릉 도착한 거 맞지!? 내 감이 움직이고 있어! 저기 분명 강릉역이야!”
특급 헌터가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 8번째로 강릉역이 분명하다고 외치는 순간.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마지막 역인 강릉역에 도착합니다.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빠르고 편안한 KTX를 이용해 주신…….]
종착역 강릉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역시 내가 맞췄어!”
번쩍 손을 들고 환호하는 특급 헌터.
청량리, 강릉까지 있는 8개의 KTX역!
특급 헌터는 8번 찍어 7번 틀리고 마지막 순간에 맞췄다!
아니, 이건 맞췄다고 할 수도 없었다. 마지막 1개가 남을 때까지 찍으면 당연히 강릉역이 나오는 거니까.
마치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 주술사같이 포기를 모르는 모습!
다시 한 번 감탄한 천문석은 말했다.
“넌 절대 찍기 같은 건 하지 말아라.”
“뭐, 왜!? 나 찍기 엄청 잘하는데! 완전 다 맞춰!”
너무나 당당히 진짜 자신이 잘 찍는다고 믿고 있는 모습!
‘그럴 리가!’
피식 웃은 천문석은 짐칸에 올린 특급 헌터와 자신의 배낭을 내렸다.
“그보다 짐 챙겨. 이제 내릴 준비 해야지.”
“앗! 그렇지! 내릴 거면 준비해야지!”
재빨리 배낭을 품에 안고 수첩을 꺼내 파바밧- 넘기는 특급 헌터.
천문석도 배낭과 소지품을 확인하고 휴대폰을 꺼냈다.
[로밍 중…….]
강릉 게이트 안정화 권역으로 들어오자, 안테나가 살아나고 로밍 중 표시가 떴다.
천문석은 머릿속으로 할 일을 되새겼다.
-대환단을 올린 헌터 나라 게시물은 이미 자리비움 멘트를 달고 거래 비활성을 해놓은 상태.
의뢰가 끝난 후 쪽지를 확인하고, 배낭 안에 넣어 둔 대환단으로 바로 거래하면 된다.
-미국 지수 인버스 ETF 투자는 갑작스러운 의뢰로 못했지만, 이사회까지는 시간이 충분하다. 이것도 의뢰가 끝난 후 투자하면 된다.
이때 로밍이 끝나고 문자가 하나 떴다.
[13:01 KTX-산천 811호 열차 탑승 - 최설]
지금 시간은 13:22.
최설이 도착할 때까지 3시간가량 남았고, 의뢰인 한호석 교수님은 강릉에 도착하면 연락을 준다고 했다.
이제 두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바지락 칼국수 먹고 적당히 놀면 되겠네…….”
천문석이 기지개를 켜며 말하는 순간.
깜짝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으앗! 알바 안 돼! 내가 계획 다 짜놨어! 우리는 계획대로! 빨리빨리! 정확하게! 움직여야 해! 알바! 나를 믿어야 해!”
어느새 꺼낸 수첩을 손에 들고 비장하게 외치는 특급 헌터.
어차피 특급 헌터는 잠드는 순간 황 비서에게 넘겨져 엄마에게 돌아갈 몸이었다.
그때까지 특급 헌터의 계획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 네 계획대로 하자. 뭐부터 하면 되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환한 얼굴로 수첩을 척 내미는 특급 헌터.
“우리는 여기로 뛰어가야 해!”
어린아이 특유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수첩에 적힌 이름.
[초당 순두부 - 짬뽕 순두부 먹기!]
“짬뽕 순두부? 너 강릉 와 봤냐? 그런데 고기가 아니라 순두부라고?”
고기 귀신 특급 헌터가 순두부라고?
의문을 품는 순간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으로 외치는 특급 헌터.
“아니! 처음이야!”
“당연히 고기가 순두부보다 맛있지!”
“하지만 우리는 이거 꼭 먹어 봐야 해!”
“강릉 가면 꼭 먹어야 한다고 소개받았어!”
“그리고 맛없으면 엄청! 완전! 좋을 것 같아! 카카카캌-.”
‘맛없으면 좋겠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특급 헌터.
“누구한테 소개받았는데?”
특급 헌터는 바로 수첩을 한 장 넘겨 내밀며 외쳤다.
“검사 할아버지!”
눈앞으로 다가온 수첩에는 날카로운 필체로 적은 짧은 문장이 있었다.
[초당 순두부 맛없으면, 내 특급 쌩쌩이 넘김.]
그리고 짧은 문장 끝에 이름과 지장이 찍혀 있었다.
[이지광 @]
“…….”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이해되는 순간 들려오는 신나는 노랫소리.
“맛없는 짬뽕 순두부!”
“완전 멋진 특급 쌩쌩이!”
“알바랑 맛없는 순두부 먹고!”
“완전 멋진 쌩쌩이 가지러 가야지!”
“검사 할아버지 리어카는 이제 내 거야! 카카카카-.”
……
특급 헌터의 엉망진창 노래를 듣는 순간.
천문석은 어째선지 환영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된 난장판!
그 난장판에서 힘겹게 구르는 자신이!
그러나 천문석은 곧 웃었다.
괜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난장판이 되려고 해도 뭐가 있어야 난장판이 되는 법!
강릉 게이트와 연결된 신강릉은 마수와 몬스터를 찾아보기 힘든 고산지대!
이번 의뢰의 목적지인 이상 던전도 마수와 몬스터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마수와 몬스터가 없는 곳에는 헌터들이 모일 이유도 없었다.
박수 소리가 나려면 손이 마주쳐야 하는 법!
그러나 강릉은 마수, 몬스터, 헌터 모두 보기 힘들었다.
즉, 강릉은 사고가 터질 만한 조건 자체가 없었다!
앞으로 3시간 재밌게 놀다가 최설과 합류하고.
한호석 교수님과 함께 던전으로 들어가 캠프를 꾸리고.
잠이 든 특급 헌터를 최설 편에 내보내면 모든 건 깔끔하게 끝난다.
자신은 2일가량 한호석 교수님에게 좋은 말씀, 부동산 컨설팅을 받으면 된다!
순간 이성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이번 의뢰는 역대급으로 알차고 보람찬 의뢰가 될 거라고!
이때 KTX 열차의 속도가 줄어들고 창문 너머로 플랫폼이 가까워졌다.
목적지 강릉에 도착했다!
* * *
“알바! 빨리빨리 와!”
강릉역에서 나오자마자 앞장서 달리는 특급 헌터.
“야, 알았으니까. 뛰지 말고 걸어!”
“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짧은 팔다리로 인파를 사이를 헤치고 걸어가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따라가며 강릉역 주위를 훑었다.
역사 앞 광장과 거리 곳곳에 생각과는 달리 많은 헌터들이 보였다.
‘뭐야, 웬 헌터들이 이렇게 많아?’
강릉 게이트 너머에 있는 신강릉은 수천 미터의 산이 줄줄이 이어진 만 년설과 빙하가 가득한 고산지대다.
이 고산지대 주위에는 마수와 몬스터 사냥터가 같은 건 없었다.
당연히 마수와 몬스터를 사냥하는 대형 길드, 헌터팀, 클랜에 신강릉은 인가가 없었다.
신강릉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KTX를 타고 오면서 본 심마니 헌터들, 등산객들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광장과 거리가 좁아 보일 정도로 헌터들이 많았다!
그것도 약초와 각종 자원 채집을 하는 심마니 헌터가 아닌 제대로 무장한 헌터들이!
게다가 이 헌터들에게서 묘한 위화감과 낯익은 느낌이 전해졌다.
‘분위기가 뭔가 익숙한데?’
천문석이 의아해하는 순간.
등 뒤에서 헌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오늘 무슨 일 있어? 웬 헌터들이 이렇게 많아?”
“그러게 말야? 서울 갔다 온 일주일 사이에 뭔 일이라도 터졌나?”
“쟤네들 약초 캐는 애들은 아닌데?”
“그러네. 장비가 등산객도 아니고, 사냥하러 왔냐?”
“신강릉 주위에는 사냥터 없잖아? 약초 분쟁 생긴 거 아냐?”
“약초 분쟁? 신강릉에 분쟁 생길만한 약초가 있어? 누가 산삼이라도 발견한 건가?”
“이거 있잖아! 이거! 한동안 이거 독점 공급하는 헌터팀 애들이 신강릉에 왔다는 소문 돌았잖아?
힐끗 바라보니 머리를 톡톡- 두들기는 헌터의 모습이 보였다.
“아, 그 센……!”
말을 하다가 말고 깜짝 놀라 다급히 숨을 삼키는 헌터.
이 순간 천문석의 기억 속에 있던 단어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센트라!
센트라 잎은 외상 회복과 멘탈 회복에 큰 효과가 있는 약초였다.
항상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는 레이드, 던전 공략 헌터뿐만 아니라, 기업 임원, 정치인 등에겐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큰 수요에 비해 센트라 공급은 몇몇 헌터팀이 독점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가격은 엄청났고, 센트라를 독점 공급하는 헌터팀 들은 관련 정보 자체를 비밀로 움켜쥐고 풀지 않았다.
센트라라는 이름조차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런 센트라 자생지가 신강릉에서 발견됐다고!?’
순간 천문석은 주위에 가득한 헌터들에게서 전해지는 위화감과 낯익은 느낌의 정체를 깨달았다.
예전에 한 번 겪은 분위기의 헌터들이다.
신동대문!
삼합 길드, 칠성 길드!
주위에 있는 헌터들에게서 조폭 길드, 용역 헌터 특유의 느낌이 전해졌다!
바로 용역 헌터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센트라 발견!
그걸로 분쟁이 발생한 게 분명했다!
역시 사람이 있는 곳에선 분쟁이 없을 수가 없었다.
이권이랄게 없는 신강릉에서 분쟁이 터지고, 용역 헌터들까지 이렇게 대규모로 동원되다니!
엄청난 이권을 약속하는 신비의 약초 센트라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목적지는 게이트 너머 신강릉이 아니었으니까!
천문석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특급 헌터의 뒤를 쫓아 걸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 목적지인 초당 순두부 식당에 도착했다.
“…….”
“…….”
그리고 말을 잊었다.
* * *
초당 순두부 입구에 길게 늘어선 줄!
얼핏 봐도 웨이팅이 100명이 넘었다!
천문석은 줄을 선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 죄송한데. 이 줄 순두부 식당 줄 맞습니까?”
남자는 지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1시간 전에 와서 기다렸어요…… 애들이 이걸 꼭 먹고 싶다고 해서…….”
“……애들이요?”
“…….”
말없이 손을 들어 맞은편 2층 키즈카페를 가리키는 남자.
창문에 달라붙어 손을 흔드는 엄마와 아이 셋이 보였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천문석은 위로의 말을 건네고 바로 고개를 돌려 특급 헌터를 봤다.
“야, 이거 안 되겠는데?”
“89, 90, 91…….”
멍한 얼굴로 줄을 선 사람을 세던 특급 헌터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으앗! 잠깐만! 알바 잠깐만! 나한테 방법이 있어!”
특급 헌터는 재빨리 수첩을 꺼내더니 가게 입구로 달려갔다.
“누나! 이것 좀 봐주세요!”
카운터 직원에게 수첩을 내밀고 무언을 열심히 설명하는 특급 헌터.
직원이 곤란한 표정을 지을 때, 가게 안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그리고 곧 특급 헌터와 아주머니가 같이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미리 연락받았어요. 제가 여기 주인이에요.”
“연락이라고요?”
천문석의 반문에 특급 헌터가 바로 대답했다.
“검사 할아버지!”
“네 맞아요. 총장님이 예약하셨어요. 이쪽으로 오시면 돼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아주머니는 가게를 지나쳐 건물 뒤쪽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일반 가정집 마당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식당은 대기하시는 손님분들 많으셔서 누추하지만, 집에서 대접할게요. 이 메뉴판 보시고 편하게 고르세요.”
“난 짬뽕 순두부!”
“저도 같은 거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곧 상이 차려지고 짬뽕 순두부 두 그릇이 상에 놓였다.
“으앗!”
짬뽕 순두부를 앞에 둔 특급 헌터는 경악했다.
천문석은 특급 헌터가 경악한 이유를 바로 알아챘다.
검사 할아버지의 약속은 초당 순두부가 맛없으면, 리어카를 넘기겠다였다.
그 약속에 따라 특급 헌터는 최선을 다해 맛없게 먹을 준비를 끝마쳤다!
그러나 짬뽕 순두부가 놓인 순간.
천문석은 특급 헌터의 패배를 직감했다.
새빨간 국물에 가득 담긴 새하얀 순두부!
송송 썰려 놓인 부추 한 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위에 한 움큼 올라간 숯불 향이 나는.
고기!
“이건…… 이건 반칙이잖아!”
특급 헌터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짬뽕 순두부에 왜 숯불 고기가 들어간 거야!?”
“그럼 고기는 내가 대신 먹어 줄까?”
“앗! 안 돼!”
재빨리 그릇을 당겨 젓가락을 막고, 짬뽕 순두부를 먹기 시작하는 특급 헌터.
“흐어, 흐어- 마이서!”
천문석도 땀을 뻘뻘 흘리며 짬뽕 순두부를 먹었다.
특급 헌터는 순식간에 식사를 끝마치고 우울한 표정으로 패배를 시인했다.
“졌어! 순두부 엄청 맛있잖아!”
“너 이제 어떡하냐? 리어카 못 가지겠네?”
그러나 특급 헌터는 좌절하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수첩을 척 내밀었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
“와, 이게 다 뭐야!?”
그렇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착, 착, 착-
한장 한장 넘어가는 수첩에 적힌 강릉시 명소와 지장!
[강문해변]
[경포호]
[중앙시장]
[악초시장]
……
강릉시 명소에서 재미가 없으면 특급 쌩쌩이, 리어카를 넘기겠다는 약속이 적혀 있었다.
검사 할아버지의 어떻게든 리어카를 넘기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천문석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검사 할아버지, 이지광 검사.
그 차갑고 냉정해 보이던 얼굴 안에 담긴 마음이 느껴졌다.
무뚝뚝한 얼굴로 손자를 기다리는 외할아버지 같은 마음이.
그렇다면 특급 알바인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천문석은 수첩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럼 우리 다음으로 넘어갈까?”
“당연하지! 다음은 강문해변이야!”
벌떡 일어난 두 사람은 주인아주머니에게 인사와 음식값을 전하고 강문해변을 향해 달렸다.
빨리빨리 움직여야 했다!
최설이 타고 있는 811호 열차가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알차게 놀아야 했으니까!
[02:29:57]
강릉행 KTX-산천 811호 열차가 도착할 때까지 남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