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69화>
[제가 강릉에서 의뢰를 하나 해야 해서 2, 3일 연락을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쪽지 보내 주시면 의뢰 완료 후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자동 회신 메시지입니다=
“…….”
“…….”
“…….”
유희명 대표, 임제원 실장, 의뢰인 왕체 세 사람의 허탈한 시선이 교차했다.
“하필이면 지금……!”
유희명 대표가 말끝을 흐릴 때.
임제원 실장이 바로 말을 받았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다른 대환단도 찾고 있으니…….”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왕체는 굳은 얼굴로 손을 들어 태블릿을 가리켰다.
“이 대환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임제원 실장은 태블릿 상단의 아이디를 짚었다.
[NTM_CHS - VIP]
“이미 NTM_CHS 아이디를 사용하는 판매자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오프라인 팀이 움직이고 있으니 대략 4-12시간이면 판매자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2, 3일이면 의뢰가 끝난다고 하니까. 의뢰가 끝나는 즉시 접촉하면 됩니다.”
2, 3일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
왕체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졌고, 이 모습을 유희명 대표가 바로 알아챘다.
마케팅 업체는 그야말로 소리 없는 전쟁터.
유희명 대표는 그런 마케팅 업체에서 오랜 시간 구르며 원래도 좋았던 촉이 더욱 좋아졌다.
그 촉에 의뢰인이 껄끄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유희명 대표는 감을 잡고 바로 입을 열었다.
“의뢰인분께서 무얼 걱정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
말없이 유희명 대표를 보는 왕체.
“냄새를 맡은 날파리들이 모여들까 걱정이시죠? 하지만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투트랙 접근법!”
유희명 대표는 태블릿을 가리켰다.
“우선 경매에 올라온 이 대환단을 다른 정보상들이 진짜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연막을 치겠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왕체의 솔깃한 표정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유희명 대표.
“어차피 증빙 자료도 없는 영약! 연막을 치는 건 간단합니다! 이렇게 신뢰도를 떨어뜨려 날파리가 꼬이지 않게 막은 후!”
꽝-
유희명 대표가 테이블을 내리치고 말했다.
“2, 3일 후 판매자와 연락이 되는 순간 바로 낚아채면 됩니다!”
왕체의 머리가 회전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대환단이 자신의 손에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다!
그러나 여전히 2, 3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2, 3일을 기다린다고?’
생각만으로도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이번 일에 엮인 사람들의 면면이 엄청났다!
헌터 군벌!
남중국 각 지방의 왕이나 다름없는 헌터 군벌 아래의 모두가 움직였다!
지금은 철검장이 한발 빨랐지만, 자본과 머릿수, 권력으로 밀고 들어오면 언제 역전될지 모른다!
이때 유희명 대표가 왕체의 생각을 짐작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임 실장이 지금 당장 직원들을 데리고 강릉으로 출발할 겁니다.”
“그게 무슨……?”
반문하던 왕체는 순간 전율했다!
‘강릉!’
바로 시선을 내려다본 태블릿 화면.
[제가 ‘강릉’에서 의뢰를 하나 해야 해서 2, 3일…….]
그렇다!
대환단의 판매자는 강릉에 있다!
“생각하시는 게 두 번째 방법입니다!”
유희명 대표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빠르게 설명했다.
“지금 당장 강릉으로 임 실장과 직원들을 보내겠습니다!”
“대환단 판매자 인적 사항이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4-12시간!”
“강릉에서 헌터가 갈 의뢰 장소는 많지 않습니다!”
“인적 사항이 나오는 즉시! 판매자와 접촉해서 대환단을 구하겠습니다!”
하하하하하-
왕체는 웃음을 터트렸다.
최림이 찾아낸 현대정보컨설팅 그룹의 투트랙 전략!
1. 대환단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날파리를 방지한다!
2. 판매자가 있을 장소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인적 사항을 확인하는 즉시 대환단을 사들인다!
완벽하다!
단 한 가지만 제외하면!
왕체는 번뜩이는 눈으로 메모지에 숫자를 적어 밀었다!
유희명 대표 앞에 놓인 메모지에 적힌 숫자!
[100,000,000]
“설마 이 숫자는!?”
상상 이상의 숫자에 유희명 대표가 놀라는 순간.
왕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이 제대로 처리되면 받게 될 성공보수입니다.”
약속한 성공보수의 5배!
“감사합니다! 의뢰인님! 믿음! 정직! 신뢰! 최선을 다해서 의뢰를 완수하겠습니다!”
유희명 대표가 깊게 고개 숙일 때.
왕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조건이요?”
“강릉에는 나와 동료들이 가겠습니다.”
“……네? 직접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시면 협상에 불리할 텐데…….”
왕체는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유 대표께서는 판매자의 정보를 확인하는 즉시 연락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
“…….”
유희명 대표와 임제원 실장의 눈이 순간적으로 마주치고 두 사람의 시선이 의뢰인 왕체에게 향했다.
강화 전투복, 방검방탄복, 안전 장갑과 안전 장화.
그리고 무장 벨트에 봉인된 채 걸려 있는 살벌한 참마도!
의뢰인 왕체는 당장이라도 눈앞의 사냥감을 박살 낼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꿀꺽-
유희명 대표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뢰인이 원하시면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그리고 20분 후.
왕체와 최림, 철검장 헌터들은 서울역 KTX 열차에 탑승했다.
서울 -> 강릉행.
KTX-산천 811호, 13:01, 3호차.
왕체는 헌터 장비로 완전무장한 부하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대환단을 이렇게 빨리 찾다니!
판매자가 있는 장소는 이미 파악했다.
강원도 강릉!
이제 판매자의 인적 사항만 알면 ‘대환단’은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직거래 사이트에 대환단을 올린 헌터가 대단한 배경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무장한 자신과 부하들의 힘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제대로 당한 왕체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옆자리 최림을 보는 순간.
바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최림.
“용역 헌터 3개 조직 강릉에 준비했습니다! 도착 즉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돈과 힘!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대환단을 손에 넣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왕체는 좌석에 깊게 몸을 누이며 웃었다.
“幸运!”
* * *
임제원 실장은 심각한 얼굴로 유희명 대표를 봤다.
“선배 괜찮을까요?”
“뭐가?”
임제원 실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의뢰인 눈빛이…… 아무리 봐도 사고를 칠 눈인데…….”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검색하던 유희명 대표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나도 사고 칠 것 같기는 한데…….”
촉이 귀신 같은 선배의 생각!
긴가민가하던 임제원 실장은 기겁해서 외쳤다.
“선배! 그럼 지금이라도 의뢰 거절해야죠! 완전무장하고! 그것도 마탄만 빼고 완전무장하고 강릉으로 출발했어요!”
한국에서 사람에게 마탄을 사용하면 국가헌병대가 이세계 끝까지 쫓아간다!
그래서 헌터들은 총기류로 무장한 상대를 보면 오히려 안심했다.
마탄을 제외한 냉병기로 무장한 의뢰인과 그 부하들의 무장 상태는 길드 분쟁 시 표준 장비!
대인전을 염두에 둔 장비 세팅이었다!
유희명 대표와 임제원 실장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의뢰인 눈빛과 상황이…… 힘으로 ‘대환단’을 강탈하려는 겁니다!”
“…….”
임제원 실장은 말없이 앉아 있는 선배를 향해 계속 말을 쏟아 냈다.
“헌터 업계에서는 당하면 절대로 그냥 안 넘어가요! 상대가 1세대 헌터…… 아니, 1세대 헌터 염동력자 마혁진도 밟히는 게 헌터 업계입니다!”
“상대가 이태성, 암살검 같은 언터쳐블이 아닌 이상! 대환단을 강탈당하는 순간!”
“친구, 형, 아는 길드원! 인맥을 타고 줄줄이 헌터들이 쏟아져 나와 난장판이 됩니다! 당연히 불똥이 우리한테도 튈 거고요! 선배도 칠성 길드 고블린 사냥터 사건 아시잖아요!?”
……
“…….”
그러나 유희명 대표는 대답 없이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당장 이 의뢰 캔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임제원 실장의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내 다른 촉도 움직이고 있어.”
“네?”
“의뢰인이 사고를 칠 것 같기는 한데……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닐 거 같아…….”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유희명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밖 안전 호텔 정원을 바라보며 뜬금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한테 평생 선생님을 하는 이모가 한 명 있거든. 그 이모가 평소에는 헛다리를 정말 많이 짚어. 그런데 어쩌다 한 번씩. 진짜 어쩌다 한 번씩. 신들린 점쟁이처럼 모조리찍어서 맞추는 거야?”
“선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끝까지 들어 봐. 그래서 내가 이모한테 어떻게 그렇게 잘 찍냐고 물은 적이 있거든?”
“…….”
“그러니까 이모가 곤란한 얼굴로 대답하더라고.”
“…….”
“느낌이 온 대. ‘아, 이번에는 반대로 찍어야겠구나!’ 이런 느낌이 오는 때가 있대! 즉, 이모는 계속 헛다리를 짚은 거야! 단지 반대로 짚은 거지!”
“……!?”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헛다리를 반대로 짚으면 찍어서 다 맞춘다고!?
아니, 그러면 처음부터 계속 반대로 찍으면 되잖아!?
멍하니 생각에 잠겼던 임제원 실장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지금 중요한 건 선배의 이모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사고를 칠 것 같은 의뢰인이 문제였다!
“아니 선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 의뢰인을 막아야죠!”
유희명 대표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촉 이와. 의뢰인이 치는 사고는 단지 소나기일 뿐이라는 촉이!”
“소나기라도 당연히 막아야죠!”
“아니, 우리는 잠수 탈 준비를 한다.”
“네!?”
순간 유희명 대표는 성큼성큼 테이블로 다가와 노트북을 빙글 돌렸다.
임제원 실장을 향한 노트북 화면에 떠오른 사진.
푸른 바다 위에 펼쳐진 붉고, 푸른 물감이 뒤섞여 흘러내리는 듯한 석양!
[당신의 인생 최고의 석양 - 코타키나발루!]
“선배? 지금 설마…….”
임제원 실장이 멍한 얼굴로 묻는 순간.
유희명 대표는 형형한 눈으로 임제원 실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풍이 오고 있다.”
“소나기에 젖는 건 아무것도 아닌! 나무를 뿌리째 뽑아 던지고, 산을 무너트릴 엄청난 태풍이!”
“우리는 이 태풍이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여기서 잠수 탄다!”
유희명 대표는 노트북을 가리키며 외쳤다.
“현대정보컨설팅 그룹 전 직원! 코타키나발루로 튄다!”
* * *
현대정보컨설팅 그룹이 잠수를 결정한 시간.
끼이이익-
서울역에 헌터용 콜밴이 도착했다.
그리고 헌터용 콜밴에서 뛰어내린 최설과 진교은이 강릉행 KTX 열차 8호차에 탑승했다.
최설은 강화 전투복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앞장섰고. 진교은은 셔츠에 청바지, 모자를 눌러쓰고 멍하니 뒤를 따르고 있었다.
최설은 힐끗 진교은의 표정을 보고 말했다.
“이번 의뢰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진짜 간단한 거야. 던전 들어가서 아이 한 명만 데리고 나오면 되는 일이야. 오늘이 지나기도 전에 의뢰 끝나.”
“…….”
진교은은 말없이 최설을 봤다.
그 간단한 의뢰를 하러 가는 최설의 장비.
강화 전투복, 방검방탄복, 안전 헬멧.
허리의 무장 벨트에 걸린 봉인된 장검 2자루에 단검 3자루.
게다가 잡낭과 히든 포켓마다 머니클립으로 고정된 현금이 있고, 등에는 커다란 헌터용 배낭을 짊어졌다.
최설은 절대 간단한 의뢰를 하러 가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한 달짜리 장기 레이드라도 뛰러 가는 듯 완벽한 준비를 하고도 오는동안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
진교은의 어이없어하는 시선이 쏟아지자.
최설은 피식 웃으며 친구의 팔을 잡아당겼다.
“우선 좌석에 앉아서 이야기하자.”
“…….”
좌석에 앉아 여전히 바라보는 진교은.
‘그냥 넘어가진 못하겠구나…….’
최설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너 오해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이번에는 절대 그럴 일이 없는데, 저번 의뢰에서 약간의 사고가 좀 있었어. 그래서 준비를 좀 과하게 한 거야…….”
“사고……?”
“처음 시작은 간단한 배송의뢰였어…….”
최설이 이세계 쿠팡맨 시즌 2를 이야기할 때 강릉행 KTX가 플랫폼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13시 01분!
서울역에서 강릉행 열차가 출발했다.
김철수 사무실의 최설과 진교은!
철검장의 왕체와 최림, 조직원들!
이들 모두를 태운 KTX-산천 811호 열차는 강릉을 향해 가속했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겹쳐 이들은 한 장소, 같은 무대로 모여들고 있었다.
천문석과 특급 헌터의 목적지 강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