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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66화 (56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66화>

옥수수빵, 떡볶이, 삶은 계란, 사이다…….

기차 여행의 별미가 KTX 좌석 테이블에 가득 놓여 있었다.

평소라면 눈을 반짝이며 신나게 먹고 있을 특급 헌터.

그러나 특급 헌터는 테이블에 놓인 별미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으고 휴대폰을 든 천문석을 바라봤다.

이 통화에 특급 헌터의 미래가 걸렸다!

천문석은 장민 대표와 통화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

“벌써 사무실에서 직원 한 명 불렀습니다.”

=……

“네, 전 괜찮습니다. 아뇨 바로 옆에 얌전히 앉아 있습니다.”

=……

천문석의 시선이 닿는 순간 바짝 긴장하는 특급 헌터.

“전화 바꿀까요?”

‘아니아니아니! 그러지 마!’

특급 헌터는 입을 뻐금거리며 고개를 휙휙휙 저었다.

당당히 산에 가겠다고 외치던 꼬맹이는 엄마의 전화 앞에선 한없이 약해졌다!

천문석은 음흉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전화 바꾸겠습니다. 특급 헌터 엄마 전화 받아라.”

“……!”

충격으로 눈을 부릅뜬 특급 헌터에게 건네진 휴대폰!

후, 하-

후, 하-

특급 헌터는 휴대폰을 받는 순간 호흡을 고르더니 말을 쏟아 냈다.

“장민! 내가 잘 설명할 게!”

“나는 산에 꼭 가야 해! 왜냐면 내가 어젯밤에 천공탑 오르는 꿈을 꿨거든!”

“천공탑이 뭐냐고? 천공탑 어제 봤잖아!? 내 집 위에 있는 박스 탑!”

“그 천공탑을 오르면 어디든 갈 수 있거든!”

“그런데 내가 자다가 꿈속에서 번쩍 눈을 떴단 말야! 그런데 갑자기 잃어버린 게 생각이 났어!”

“잃어버린 게 뭐냐고? 꿈에서 깨니까 다시 까먹었어! 카카캌-.”

“앗!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산이 중요한 거야! 내가 산을 엄청 열심히 올라갔단 말야!”

“그런데 이쪽이랑 저쪽에서 냐아아- 냐아아- 했단 말이지! 그래서…….”

……

특급 헌터의 장황하고 엉망진창인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천문석은 편안하게 좌석에 앉아 맥반석 계란을 먹으며 특급 헌터를 구경했다.

탁, 탁-

그러나 맥반석 계란 세 개에 떡볶이 반 상자, 사이다까지 먹었을 때도 특급 헌터의 설명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잔치집에 들어갔단 말야!”

특급 헌터는 장민 대표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이 모습에 예전에 마트에서 봤던 장면이 겹쳤다.

‘엄마! 장난감 사줘!’

‘안 돼!’

‘엄마! 아이스크림 사줘!’

‘안 돼!’

엄마의 연이은 거절에 시무룩해진 아이.

특급 헌터는 시무룩해진 아이에게 달려가 시크하게 어린이 젤리를 내밀고 귓속말했다.

바로 기운을 차린 아이는 엄마에게 묻지 않고 장난감, 아이스크림을 번쩍 들어다가 카트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묻지 않고 저지르기!

특급 헌터는 어린 나이에도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상황도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특급 헌터는 엄마의 ‘안 돼’라는 대답을 두려워한 아이가 아무 말이나 계속하는 것처럼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장민 대표의 입에서 ‘안 돼’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잡혀가게 될 테니까!

그러나 지금 특급 헌터의 노력은 헛수고였다.

천문석은 장민 대표가 뭐라고 말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돌리겠다던 장민 대표.

그러나 특급 헌터가 동물 친구들과 도망치기 시작하면 난장판이 될 게 뻔했다.

그래서 천문석은 계획을 세워 당장 강릉으로 오겠다는 장민 대표를 설득했다.

복잡한 계획은 아니었다.

1. 김철수 사무실에서 직원 한 명을 불러 특급 헌터를 맡긴다.

2. 자신과 특급 헌터, 직원. 셋이서 바닷가를 구경하고 바지락 칼국수와 오징어 물회를 먹는다.

3. 장민 대표의 연락을 받은 의뢰인 한호석 교수와 만난다.

4. 자신과 특급 헌터, 직원, 한호석 교수 넷이서 칠성산의 이상 던전에 들어간다.

5. 던전 진입 시간은 이미 늦은 저녁, 해가 지기 전에 캠프를 만들고 식사를 한다.

그리고 밤! 마침내 계획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6. 특급 헌터는 언제나처럼 배터리가 다된 장난감처럼 픽- 쓰러져 잠들 것이다!

한번 잠이든 특급 헌터는 발바닥을 간지럽혀도 절대 깨어나지 않는다!

7. 잠든 특급 헌터를 번쩍 안아 들고 던전 밖으로 나와 대기 중인 황 비서에게 넘긴다!

8.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으아! 재밌게 잤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특급 헌터 앞, 장민 대표가 웃고 있을 것이다!

끝.

모두가 행복해지는 계획이었다.

장민 대표는 걱정하던 특급 헌터를 만나게 되고.

특급 헌터는 맛있는 바지락 칼국수와 오징어 물회를 먹고 원하던 대로 던전에 들어간다.

자신은 특급 헌터를 잡을 때 일어날 난장판을 피하고.

최설, 김철수 사무실에서 부른 직원은 암살검의 친구를 도왔다는 사실에 기뻐할 거다.

천문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여전히 말을 쏟아 내는 특급 헌터를 바라봤다.

“……그래서 구슬치기로 승부하기로 한 거야! 호랑이가 구슬치기 엄청 잘 하는데! 그래도 나한테는 안 돼! 나한테는 앙꼬 대장 구슬이랑 태풍 구슬이 있었거든! 내가 어떻게 이겼냐면…….”

특급 헌터는 어느새 원래 목적은 까맣게 잊은 듯, 상기된 얼굴로 어떻게 구슬치기 승부에서 이겼는지 묘사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웃었다.

역시,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이었다!

‘카캬카카카카카-’

* * *

서울 광화문, 재금 빌딩 맞은편 카페.

진교은은 2층 카페에 앉아 정보상에게 산 정보를 살피고 있었다.

스마트폰에 띄워진 A4지 2장 분량의 정보의 핵심은 갑자기 나타난 중국계 헌터들이 ‘영약’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간략한 인상착의만으로도 이들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왕체와 최림, 철검장의 헌터들!

그리고 남중국에 박아 놓은 정보원에게서도 정보가 들어왔다.

남중국의 최상위층에서 한가지 영약을 찾고 있다는 정보!

이제야 상황이 왜 이렇게 꼬였는지 감이 왔다.

“하필이면…….”

진교은이 맞은편 재금 빌딩을 바라보며 탄식하는 순간.

주위를 확인한 원기륭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다시 확인했는데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원실장님.”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진교은은 시선을 내려 휴대폰을 봤다.

스팸 문자 보내듯 수백 통의 문자를 보냈던 최설!

그런데 새벽부터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최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진교은은 뭔가 일이 터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오며 정보를 수집하고, 광화문에 도착하자마자 최설의 사무실이 있는 재금 빌딩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계속!

하지만 재금 빌딩 주위에 철검장의 조직원 같은 특이사항은 없었다.

인도에는 엄청난 수의 헌터와 일반인들이, 도로에는 줄줄이 게이트를 통과하는 장갑 SUV와 장갑 버스가 가득했다.

게다가 경찰차와 국가 헌병대의 무장 차량이 20분 단위로 도로를 훑었다.

철검장 조직원이 나타나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낮았다!

이성은 말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빌딩 안으로 들어가 최설의 사무실로 찾고 최설을 데리고 제주도로 피하라고.

그러나 진교은은 새벽부터 지금까지 망설일 뿐, 재금 빌딩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삼합 카지노 호텔의 후계자이자, 딜러로 수많은 승부를 치른 갬블러의 직감이 움직였다.

눈앞의 재금 빌딩이 너무나 불길했다!

바닥에 [J][J][J], 손에는 [2][2].

대놓고 [J] 풀 하우스 패를 쥐고 있는데, 바닥에 [4][4] 원 페어인 상대가 계속 레이즈하는 느낌!

블러핑 or 포카드!

이성은 블러핑이라고 말하나, 감성은 콜을 외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진교은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돈을 걸고 승부하는 포커와 달리, 이번 일에 걸린 건 최설, 자신의 친구다.

어떻게 되든 콜을 외치고 패를 확인해야 했다!

진교은은 결심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직접 들어가겠습니다. 원 실장님은 계속 주위를 확인하시다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해 주세요.”

“차라리 제가 들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최설이 원실장님을 보면 크게 경계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지배인님.”

원기륭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진교은은 바로 도로를 건너 바짝 긴장한 얼굴로 재금 빌딩 1층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 긴장한 얼굴은 오래가지 않았다.

“13층 김철수 사무실을 찾아 왔습니다.”

안내 데스크에 말하고 신분 확인이 끝나는 순간 받은 A4용지.

[김철수 사무실 안내도]

“이게 무슨……?”

“그 종이에 적힌 대로 가시면 됩니다. 길을 못 찾으시는 분이 많으셔서요.”

종이에 적힌 대로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에 도착하자, 곳곳에 잡다한 박스가 쌓인 통로가 나타났다.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

진교은이 고개를 갸웃하며 통로를 지나는 순간.

최설이 그토록 자랑하던 김철수 사무실이 나타났다.

“…….”

진교은은 자신도 모르게 휴대폰을 봤다.

최설이 스팸 문자처럼 보낸 수백 통의 문자.

그 문자에서 엄청난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내세우던 김철수 사무실이 눈앞에 있었다.

[김철수 사무실]

A4용지에 매직펜으로 적은 명패를 붙이고!

“하아- 최설. 설마, 다단계에 빠진 건 아니겠지…….”

진교은은 짧은 한숨을 쉬고 마음을 다잡았다.

바로 최설을 찾아서 제주도로 내려간다!

곧 난장판이 될 서울에 최설이 있어선 위험하다!

쿵, 쿵, 쿵-

진교은은 문을 두드리고 바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 하겠습니다. 최설을 찾아왔…….”

진교은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잡다한 비품으로 둘러싸인 비좁은 사무실.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창고에 가까웠다.

이 비좁은 공간에 책상이 줄줄이 있고.

[대리], [대리], [대리], [대리], [부사장], [사장] 명패가 그 위에 놓여 있었다.

전형적인 다단계식 직위 인플레!

텅 빈 사무실에 있는 사람은 후드티를 깊게 눌러쓰고 회전의자에 앉은 사람뿐이었다.

위잉, 위잉, 위이잉-

꼬맹이가 놀듯 회전의자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사람의 책상 위 명패에 적힌 이름은.

[부사장 천문석].

“안녕하세요. 부사장님. 최설을 찾아 왔는데…….”

음성 변조된 대답이 돌아왔다.

[나. 부사장 아님.]

“네……?”

반문하는 순간 책상 앞에 종이 명패가 놓였다.

[특급 사원2 - 암살검 한경석]

꼬맹이가 만든 것처럼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삐뚤빼뚤 그린 명패.

순간 책상에 놓인 다른 종이 명패도 보였다.

[특급 사원1 - 특급 헌터]

[특별 고문 - 이 길드장님]

위잉, 위잉, 위이잉-

연신 회전의자를 돌리는 자칭 암살검 한경석.

‘최설! 진짜로 다단계에 속은 거야!?’

진교은이 어이없어하는 순간 등 뒤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은이! 너 교은이 맞지!?”

‘최설!’

바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얼굴이 새카맣게 탄 완전무장한 헌터가 보였다.

“……최설?”

“맞아! 나야 최설! 교은아 드디어 왔구나! 면접 보러 온 거 맞지? 이런 어떡하지 사장님은 중요한 데이트 가셨고, 부사장님도 의뢰로 자리 비우셨는데…… 우선 이거부터 작성하자…….”

진교은은 정신없이 외치는 최설의 손에 이끌려 책상에 앉아 어느새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력서!?”

이름을 쓰다가 번쩍 정신을 차린 진교은은 펜을 놓고 외쳤다.

“너 전화 왜 안 받았어!”

“아, 전화했구나? 미안! 어제 회식 5차까지 달리느라. 휴대폰이 방전됐어.”

‘회식, 5차?’

새하얀 피부, 냉담한 표정과 말투로, 얼음꽃이라 불리던 최설이 회식을 5차까지 달렸다고!?

“…….”

멍하니 최설을 보는 순간 다시금 손에 쥐어지는 볼펜.

최설은 은근한 목소리로 달래듯이 말했다.

“그보다 얼른 이력서부터 적자. 나 부사장님 호출받아서 바로 강릉 올라가야 해. 걱정할 거 없어. 내가 사장님한테 말은 다 해뒀으니까. 면접은 형식적일 뿐이야. 당장 오늘부터 출근해도 돼. 와! 이럴 때 신입 사원으로 들어오다니! 넌 진짜 운이 좋은 거야! 이제부터 우리 사무실…….”

‘운이 좋다고?’

진교은은 힐끗 사무실을 둘러봤다.

창고 그 자체인 사무실.

말도 안 되는 직급 체계.

부사장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회전하는 자칭 암살검 한경석 특급 사원.

……

진교은은 오랜 친구 최설을 유심히 살폈다.

환한 웃음.

확신에 찬 목소리.

열기마저 느껴지는 눈빛!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다단계에 완전히 빠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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