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65화>
천문석이 120번 버스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가고 있을 때.
황 비서는 태블릿으로 오늘 일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오까지 키즈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점심은 식사 예절 선생님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점심 후 오후 일정으로는 미술 레슨, 닭싸움 훈련…….”
……
황 비서는 특급 헌터의 하루 일정을 모두 말하고 확인 질문을 했다.
“오늘 하루 일정 이렇게 됩니다. 혹시 빼고 싶은 일정 있으신가요?”
“…….”
그러나 아무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뒷좌석을 살폈지만, VIP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황 비서는 당황하지 않았다.
출근 첫날에 당한 장난!
VIP는 앞 좌석 뒤에 찰싹 달라붙어 지렁이를 흔들고 있을 거다!
“하아- 또 좌석 아래 숨었어요!?”
갚은 한숨과 함께 좌석 너머로 몸을 내미는 순간 보였다.
텅 빈 공간!
좌석 사이 공간에 VIP가 없었다!
“……!?”
경악한 황 비서는 재빨리 안전벨트를 풀고 뒷좌석으로 넘어갔다.
“VIP!”
“특급 헌터!?”
“악마 꼬맹이!?”
2열 좌석을 넘어 3열과 후미 공간까지 확인했지만, 특급 헌터는 없었다!
“황 비서님 무슨 일입니까!? 설마 VIP가 사라지셨습니까!?”
운전기사가 묻는 순간 사색이 된 황 비서가 외쳤다.
“당장 멈춰요!”
끼이이이익-
바로 차가 멈추고 운전기사와 황 비서는 차 안을 샅샅이 수색했다.
트렁크, 좌석 사이 공간, 좌석 아래 금고……!
그러나 장갑 SUV 안 어디에도 VIP, 특급 헌터의 흔적은 없었다!
황 비서와 경호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제주도 사건 이후 경호팀과 비서실에 대대적인 인사 개편이 일어났다.
쉬쉬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VIP를 놓친 게 그 인사 개편의 이유라는 사실을!
그런데 제주도 때와 같은 일이 다시금 일어났다!
VIP의 실종!
그것도 달리던 장갑 SUV 안, 밀폐된 공간에서 사라졌다!
이 순간 황 비서는 비서실에서 인수인계를 해 주던 선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VIP한테서 절대로 눈을 떼지 마라. 앗! 하는 순간, 진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그 말대로 태블릿을 살피며 일정을 말하는 짧은 순간 VIP가 사라졌다!
“어디로!? 아니, 어떻게 차에서 나간 거야!?”
황 비서는 엎드려 장갑 SUV 하판을 확인하고, 보닛에 올라 지붕을 살폈다.
이때 지붕에서 보이는 게 있었다.
“설마!?”
황 비서는 바로 장갑 SUV 지붕으로 올라갔다.
활짝 열린 선루프!
그 아래로 장갑 SUV 좌석이 그대로 내려다보였다!
‘달리는 차에서 선루프로 기어 올라와 뛰어내렸다면!?’
어른인 자신도 엄두가 나지 않을 일이다!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VIP에게 가능할 리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밀실이나 다름없는 장갑 SUV에서 빠져나갈 공간은 선루프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배들에게 들은 VIP의 만행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설마…… 설마…… 설마……!”
황 비서는 넋이 나간 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 설마가 맞다는 촉이 왔다!
그렇다면 더 큰 일이다!
달리는 장갑 SUV 지붕에서 뛰어내렸으면 크게 다쳤을 수도 있었다!
바로 VIP를 찾아야 한다!
끼이익-
이때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려오고 장갑 SUV 한 대가 멈춰 섰다.
황 비서는 바로 알아봤다.
원거리 경호 차량!
“무슨 일입니까!?”
경호원이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묻는 순간.
황 비서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VIP가 사라지셨어요!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 거 같아요! 여기서 언덕까지 모두 확인해야 합니다!”
VIP 실종 사건!
경호원들은 긴급 상황이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차를 돌려 거리를 훑으며 비서실에 VIP 실종을 알렸다.
상황을 전달받은 비서실은 바로 장민 대표와 장철 헌터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장민 대표는 전용기를 타고 이륙 중이었고, 장철 헌터는 며칠째 연락 두절 상태였다.
제주도 사태로 칼바람이 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터진 사고였다!
장민 대표와 연결되기 전에 반드시 VIP를 찾아야 했다!
비서실 직원들과 경호팀이 VIP가 사라진 동선에 깔려 거리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그러나 VIP, 특급 헌터는 이미 이 거리에 없었다.
특급 헌터는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요플레를 먹고 있었다.
쓱쓱쓱-
뚜껑에 묻은 요플레를 다시 한 번 핥은 후 운전석을 향해 외치는 특급 헌터.
“검사 할아버지! 요플레 잘 먹었어! 내가 나중에 샐러드 꼭 가져다줄게!”
“와! 이 집요한 녀석! 샐러드 말고 고기 가져오라니까!”
“좀 생각해 보고.”
“뭘 또 생각해 봐? 너 어제 리어카 빌려 주고! 오늘은 차까지 태워 주는데! 진짜 그러기야!?”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은 어이없어하더니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너 그런데 진짜 거기에 보호자 있는 거 맞아? 아는 형이라고?”
“어제 봤잖아? 알바! 리어카에 박스 싣고 끌고 간 우리 형! 앗! 빨리 가야 해 알바랑 10시 30분 강릉행 KTX 타기로 했어!”
대시 박스의 시계는 10시 10분.
“걱정하지 마라. 5분이면 청량리역 도착해. 엄마는 여전히 통화 안 돼? 한 번 더 전화해 봐라.”
“알았어!”
특급 헌터는 헌터용 시계를 들고 엄마를 불렀다.
“장민! 장민!”
띠리리-
=지금 고객님은 전화를 받을 수…….
그러나 장민 대표와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고,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청량리역]
“저기 청량리역 보이네. 저기서 강릉행 KTX 탄다고?”
특급 헌터는 창밖으로 보이는 청량리역을 보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강릉행 10시 30분 차 타야 해! 거기에서 엄청엄청 재밌는 일이 생길 거거든!”
“재밌는 일? 강릉에 무슨 놀이동산 같은 게 있었나? 너 혹시 열차 번호는 알고 있냐?”
특급 헌터는 배낭에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꺼내 기억 속 내용을 그려 내밀었다.
“여기야! 여기서 알바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강릉 KTX 10:30, 5호차 5B]
* * *
천문석이 청량리역에 도착한 시간은 10:05분이었다.
아직 강릉행 KTX 출발까지 시간이 남은 상황.
천문석은 청량리역 복합 역사 상점가를 돌며 옥수수빵과 어묵, 음료수를 한 아름 산 다음 출발 5분 전 KTX 강릉행 객차에 탔다.
객차 안 좌석은 등산객 복장의 사람 몇 명뿐 대부분 비어 있었다.
강릉 게이트로 연결된 이세계 거점 도시 신강릉 지역은 희귀 약초와 식물이 즐비한 고산 지대였다.
마수와 몬스터 그리고 공기마저 희박한 5천에서 1만 미터급 산이 줄줄이 이어진 신강릉.
신강릉은 헌터들에게 인기 있는 사냥터가 아니었다.
객차에 있는 등산객 복장의 사람들은 희귀 약초와 식물을 찾는 심마니 헌터들과 고산을 오르려는 진짜 등산객들이었다.
통로와 좌석 사이사이에 고산 등반에 필요한 장비가 쌓여 있었다.
“잠시만 지나가겠습니다.”
천문석은 능숙하게 좁은 통로를 지나 예약한 좌석이 있는 5호차로 이동했다.
“5호차. 5B 좌석. 아, 저기네.”
그리고 좌석을 찾아 다가가는 순간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왔어? 빨리빨리 다니라니까!”
“……?”
천문석이 눈을 비비자, 웃음을 터트리는 특급 헌터.
“내가 눈 자주 비벼봐서 아는 데 안 없어져! 나 진짜로 여기 있어! 카캬캌-.”
커다란 배낭을 좌석 앞에 턱 하니 놓고 그 위에 짧은 다리를 뻗고 웃는 꼬맹이.
특급 헌터!
분명 황 비서에게 넘긴 특급 헌터가 예약한 좌석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있었다!
“야, 너 어떻게 여기……?”
부르르르-
이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시선을 내리는 순간 보이는 이름.
[황 비서]
“설마!?”
재빨리 휴대폰을 받자 울음기 어린 목소리가 쏟아졌다.
=저 황 비서입니다! VIP가 사라지셨어요! 지금 거리를 수색 중인데 어디서도 보이지 않아요! 선루프에서 뛰어내린 것 같은데…… 크게 다치셨을지도 몰라요! 혹시 짐작 가시는…….
“황 비서 누나! 나 여기 있어!”
=방금 그 목소리!? 설마 지금 VIP가!?
“네. VIP 지금 제 앞에 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모두 멈춰요! VIP 위치 확인됐어요! 바로 이동해야 해요! 거기가 어디죠!? 지금 당장 갈게요!
“청량리역 강릉행 KTX 열차 안에 있습니다.”
=네, 청량리역이요!? 어떻게!? 아니, 지금 당장 역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10분. 아니, 7분이면 도착할 것 같아요!
“하아- 아니요. 이미 늦었습니다.”
탄식하며 고개를 젓는 천문석.
=네? 그게 무슨 말이세요? 지금 가고 있어요!
천문석은 좌석에 앉은 특급 헌터를 봤다.
특급 헌터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손에는 퐁퐁검을 들고 있었다.
황 비서와 경호원들이 왔을 때는 강릉행 KTX 열차는 이미 출발한 후다.
하지만 이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특급 헌터를 데리고 열차에서 내려, 황 비서에게 넘기고 다음 열차를 타면 되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너 여기서 내리라고 하면 내릴 거냐?”
천문석이 묻는 순간.
특급 헌터는 환하게 웃으며 휙휙-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안 내리지! 나 산에 꼭 갈 거거든!”
“내가 강제로 잡으려고 하면!?”
“난 절대 안 잡혀!”
퐁, 퐁-
특급 헌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퐁퐁검을 휘두르는 순간.
구으으-
띠디딛-
모자챙에 장난감 배지처럼 붙어 있던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가 울었다.
“훌륭해! 그래야 내 친구들이지! 알바를 계속 봐야 해! 알바 손 엄청 빨라! 나 잡으려고 하면 신호해 줘! 바로 도망칠게!”
구으으-
띠띧띧-
당당히 도망치겠다고 외치는 특급 헌터.
신호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동물 친구들.
“…….”
특급 헌터의 모자챙에 붙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
사슴이와 반짝이!
이 둘이 문제였다!
사슴이와 반짝이는 신동대문과 신서울 간에 지하터널을 뚫은 존재일 가능성이 높았다!
초진동하는 수십 미터의 톱날 집게로 단단히 다져진 흙과 암반을 모래처럼 바스러트린 초거대 사슴벌레, 사슴이!
황금빛 섬광을 터트리며 엄청난 속도로 마법을 펼치던 황금 풍뎅이, 반짝이!
어떻게 이 둘이 특급 헌터의 친구가 됐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사슴이와 반짝이의 용맹한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거대 괴수도 이 둘한테 걸리면 30초 컷이다!
특급 헌터를 떼어 놓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천문석은 휴대폰 너머 황 비서에게 말했다.
“황 비서님. 특급 헌터 일은, 제가 대표님께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특급 헌터 바꾸겠습니다. 전화 받아라.”
천문석에게 전화기를 건네받은 특급 헌터는 빠르게 외쳤다.
“황 비서 누나! 만나서 반가웠어! 그럼 산에 올라갔다 와서 다시 봐! 내가 선물 사 올게! 안녕!”
딸깍-
특급 헌터는 자기 할 말만 쏟아 내고 바로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건넸다.
“알바 받아! 그리고 창밖에 손 좀 흔들어 줘!”
“창밖?”
문득 창으로 고개를 돌리니 플랫폼에 서 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이 보였다.
“저기 검사 할아버지가 나 태워다 줬거든! 할아버지! 나 알바 만났어!”
콩, 콩-
특급 헌터는 객실 유리창을 작은 손으로 두들기더니 크게 손을 흔들었다.
뒤이어 천문석이 어색하게 손을 흔들자, 검사 할아버지라는 노인의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와 꽂혔다.
분명 각성자는 아닌데 눈빛에 어린 형형한 기운이 보통이 아니었다!
“저기 저 검사 할아버지 왜 나를 노려보시냐?”
“검사 할아버지 눈빛 원래 그래. 그래서 눈빛 때문에 옛날에 많이 싸웠대! 그래서 검사도 했대!”
“검사? 무공 각성자?”
“그 검사가 아니라던데! 잠깐만, 나 할아버지 명함 받았는데!”
배낭을 뒤적여 빛바랜 명함을 꺼내 내미는 특급 헌터.
명함을 보는 순간 천문석은 검사 할아버지의 정체를 깨달았다.
검사 할아버지는 검사(劍士)가 아닌 검사(檢事)였다.
[이지광 검사]
수십 년은 된 듯 빛바랜 명함의 주인, 검사 할아버지는 전직 검사 이지광이었다!
“…….”
천문석은 명함과 손을 흔드는 이지광 전 검사, 특급 헌터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문득 물었다.
“……너 저 검사 할아버지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
특급 헌터는 번쩍 동전 지갑을 들어 흔들었다.
짤랑, 짤랑-
“검사 할아버지! 공원에서 목말라해서! 내가 음료수 뽑아 줬어!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가 전직 검사라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어이없어하는 순간 눈을 반짝이는 특급 헌터.
“그때 만난 이후로 내가 가끔 찾아가서 건강해지는 샐러드 주고 있어!”
‘짬 처리하고 있었던 거냐!?’
천문석이 어이없어할 때 강릉행 KTX가 출발했다.
KTX 열차가 천천히 가속할 때, 플랫폼에 선 전직 검사 이지광이 크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
강화 유리창에 막혀 외침은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특급 헌터는 목소리를 들은 듯 반색해서 대답했다.
“알았어. 검사 할아버지! 갔다 와서 건강해지는 샐러드 가져다줄게!”
“……!”
“걱정 마! 좋아하는 고등어도 잔뜩 가져다줄게!”
카카카카캌-
즐거운 웃음소리와 함께 천문석과 특급 헌터 두 사람을 태운 KTX 열차는 청량리역을 벗어나 강릉을 향해 달렸다.
이렇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천문석의 강원도 강릉, 칠성산 이상 던전 조사 의뢰에 특급 헌터가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