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64화>
언제나처럼 정신없는 아침이 지나가고, 류세연과 장민 대표, 한경석이 현관을 나섰다.
그리고 이제는 익숙해진 인사가 들려왔다.
“삼촌! 의뢰 조심해서 잘 갔다 와!”
“알바씨. 그럼 출장 다녀와서 봐요.”
“친구! 어제 재밌었어! 김철수 사무실은 내가 지킬게!”
‘뭐지? 왠지 주부가 된듯한 이 안정된 기분은!?’
“출장 잘 다녀오세요. 대표님. 경석아 사무실보다 집에 좀 들어가라. 세연이 넌 뛰지 말고 걸어 다니고.”
천문석이 웃으며 인사하는 순간.
특급 헌터가 재빨리 앞으로 나서서 외쳤다!
“세연! 장민! 경석형! 잘 가! 얼른 가! 안녕안녕안녕!”
쿵-
특급 헌터는 재빨리 현관문을 닫고 눈을 반짝였다.
“알바! 기회야! 장민 갔으니까 우리 박스 성 다시 만들 수 있어! 평상에 박스 그대로 있어! 당장 시작할까!?”
“너 박스 성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어?”
“당연하지!”
천문석은 고개를 저으며 소파로 걸어갔다.
“야, 박스 성은 그냥 포기해. 그래도 저기 성탑은 남았잖아?”
“알바! 왜 이리 약해졌어!? 박스 성이라니까! 박스 성은 거실보다 훌륭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거야!”
특급 헌터는 주먹을 흔들며 열렬히 외쳤다.
그러나 천문석에겐 특급 헌터를 순식간에 포기시킬 방법이 있었다.
가볍게 손을 들어 거실 구석에 우뚝 솟은 박스 성탑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저 천공탑도 철거당한다.”
“……!”
경악으로 굳어 버린 특급 헌터.
갈등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얼굴만 봐도 그 머릿속 생각이 짐작됐다.
[시한부 박스 성 vs 확실한 천공탑]
결론은 빠르게 나왔다.
“에휴- 천공탑은 엄청 재밌으니까 어쩔 수 없지…….”
천공탑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헌터용 배낭과 짐을 챙기며 물었다.
“천공탑이 재밌다고? 멋있는 게 아니라?”
“응응, 응응응!”
특급 헌터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더니,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설명했다.
“어젯밤에 천공탑 올라가는 꿈 꿨는데! 엄청 재밌었어!”
“얍얍! 계단을 열심히 올라가는데, 갑자기 안개가 쏟아지는 거야!”
“길 잃어버리면 큰일이잖아!? 그래서 내가 퐁퐁검을 막막 휘두르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아!?”
특급 헌터는 질문하는 순간 바로 대답했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야!”
퐁퐁검을 들고 왼쪽을 가리키는 특급 헌터.
“이쪽에선 냐아아-.”
퐁퐁검을 들고 오른쪽을 가리키는 특급 헌터.
“저쪽에선 냐아아-.”
“엄청엄청 놀랐잖아! 알바! 왜 놀랬는지 알겠지!?”
왜 놀랬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키며 흉내 낸, ‘냐아아-’, ‘냐아아-’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반문하는 순간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엉뚱한 방향으로 이어진다.
지금 필요한 건 이해가 아닌, 공감이었다.
천문석은 배낭을 싸며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와! 진짜 그랬어!? 엄청 놀랐겠네!”
“맞아! 역시 알바는 이해할 줄 알았어! 경석이 형이랑 세연은 이걸 이해를 못하더라고! 역시 알바는 특급 알바야!”
탄성을 터트린 특급 헌터는 빠르게 설명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냐아아- 이쪽으로 가야 하잖아!?”
“그런데 냐아아- 라잖아!? 엄청 재밌을 것 같잖아!?
“엄청 재밌을 것 같으면 당연히 구경해야 하잖아!?”
“그래서 냐아아- 쪽으로 따라갔거든!”
“그랬더니 진짜로 커다란 집이 나오는 거야!”
“둥둥, 둥둥둥- 북치고. 깃발이 휘이, 휘이이- 흩날리고! 커다란 마당에서 신나는 잔치가 벌어졌는데! 신기한 게 엄청 많은 거야!”
“멋진 뿔이 있는 아저씨! 복실복실 꼬리가 있는 누나! 보들보들한 황금 털이 난 원숭이……!”
특급 헌터는 벌떡 일어나 뿔과 꼬리, 황금 털을 설명하고 잔치가 얼마나 신났는지 설명했다.
맥락이 이어지지 않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알 수 없는 정신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천문석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랬구나?”
“와, 대단하네!”
“진짜로? 정말 신기하네!”
……
그리고 배낭을 거의 다 쌌을 때쯤, 특급 헌터의 이야기는 하이라이트를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호랑이를 이긴 거야! 신나게 판돈을 챙기는데, 호랑이가 어흥 하고 쫓아와서! 재빨리 보따리 짊어지고 사슴이 타고 도망쳤어! 엄청 두근두근하고 재밌었다니까!”
특급 헌터는 이야기를 끝내고 상기된 표정으로 외쳤다.
“알바 알겠지!?”
천공탑이 재밌다에서 어젯밤 꿈으로 이어진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엉망진창으로 진행되다가 엉뚱하게 끝나 버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게 도대체 뭔 소리야!?’라고 황당해할 이야기다.
하지만 특급 헌터의 이런 엉망진창 화법에 이미 익숙해졌다.
이해가 아닌, 공감!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탄성을 터트렸다.
“와! 진짜 그러네! 엄청 재밌었겠는데!?”
“역시! 알바는 알아줄 줄 알았어!”
카카카캌-
상기된 얼굴로 웃음을 터트리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무장 상자에서 꺼낸 대환단을 잠시 생각하다가 헌터용 배낭에 넣으며 말했다.
“너 얼른 나갈 준비 해라.”
“나갈 준비?”
고개를 갸웃한 순간 특급 헌터는 커다란 배낭을 알아챘다!
“앗! 그 배낭! 알바! 왜 배낭 싸는데!? 혹시 우리 놀러 가는 거야!?”
기대감 어린 목소리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의뢰받아서 강원도 강릉 가거든. 가는 길에 너 키즈카페 데려다줄게.”
“앗! 강원도라고!? 강원도면 산 엄청 많은데 맞지!?”
“어, 맞아. 그런데 넌 키즈카페…….”
순간 경악한 특급 헌터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진짜로!? 정말로!? 산! 산 많은 곳에 가는 거야!?”
‘뭐지, 이 녀석 왜 이렇게 반응이 강렬해?’
특급 헌터의 생각 이상의 반응에 천문석은 스마트폰 예약 화면을 보여 줬다.
[강릉 KTX 10:30, 5호차 5B]
“……!”
예약 화면을 본 순간 돌처럼 굳어 버린 특급 헌터.
“강릉이면 강원도?”
“어, 맞아.”
“강원도면 산 많지?”
“그렇지.”
다음 순간 특급 헌터는 환호성을 질렀다.
“진짜잖아! 정말로 산에 가잖아!? 알바 그런 건 진작 말해 줬어야지! 나 준비 하나도 안 했잖아!”
특급 헌터는 주방으로 달려가 싱크대에서 헌터용 배낭을 꺼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딱지, 구슬, 조개, 예쁜 돌, 태풍 구슬, 따뜻한 화로, 퐁퐁검, 모자, 장화…… 앗! 나뭇가지! 앙꼬 대장 나뭇가지가 있어야지!”
옥상으로 달려 나가며 다급히 외치는 특급 헌터.
“사슴아! 반짝아! 얼른 나와! 우리 산에 가야 해! 엄청엄청 재밌는 일이 일어날 거야! 앗! 탱탱이! 탱탱이 너도 같이 갈래!? 니케!? 니케 어디로 숨은 거야!?”
“…….”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특급 헌터를 봤다.
특급 헌터는 어째선지 자신도 당연히 강릉에 같이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마수와 몬스터가 없는 위험도 0의 던전이라도 꼬맹이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안 된다고 말하면 난리가 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안 된다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신 안 된다고 말해 줄 사람이 이미 건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출장 간 장민 대표가 특급 헌터의 일정을 맡긴 황 비서!
천문석은 헛된 꿈에 빠져 동물 친구들을 부르는 특급 헌터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지금 시각은 아침 8시 30분!
강릉행 KTX를 타기 위해 청량리역으로 출발할 때까지는 1시간쯤 남았다.
즉, 특급 헌터가 꿈과 희망에 빠져 있을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남짓뿐이었다.
“짧은 행복을 누려라. 꼬맹아. 카캬카카카-.”
그리고 모든 일은 예상한 그대로 진행됐다.
“알바! 빨리빨리 나와!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몰라!?”
특급 헌터가 옥탑방 현관에서 외쳤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챙이 넓은 모자에 두꺼운 장화, 손에는 안전 장갑까지 킨 특급 헌터.
커다란 배낭에는 잎이 생생한 나뭇가지가 꽂혀 있고, 모자챙에는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 배지처럼 앉아 있었다.
특급 헌터는 강원도에 갈 만반의 준비를 하고 20분 전부터 현관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네가 한국에서 제일 성격 급한 꼬맹일 거다.”
피식 웃은 천문석은 특급 헌터와 같이 계단을 내려 와 건물 앞으로 나왔다.
건물 앞에는 이미 장갑 SUV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장갑 SUV 앞 피곤함에 찌든 황 비서가 보였다.
“오셨어요?”
“황 비서 누나! 우리 강원도에 갈 거야!”
특급 헌터는 신나게 외치고 장갑 SUV로 달려가 뒷좌석에 탔다.
“알바! 빨리빨리 타! 얼른 산에 올라가야지!”
“강원도? 산? VIP가 등산하기로 돼 있어요!? 잠시만 확인 좀!”
당황한 황 비서가 조수석에 앉아 태블릿을 확인할 때 특급 헌터는 크게 외쳤다.
“당연하지! 황 비서 누가! 빨리빨리 출발해! 나 산에 올라가서 완전 재밌게 놀 거야! 카카캌-.”
“잠시만요. 비서실에 연락 좀…… 실장님 전화 받으세요. 빨리빨리…….”
황 비서가 태블릿으로 일정을 확인하며 휴대폰으로 비서실에 전화할 때.
천문석은 장갑 SUV로 천천히 걸어가 조수석 문을 닫았다.
“황 비서님.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알바! 빨리빨리 타라니까!”
특급 헌터가 다시 한 번 재촉할 때.
쿵-
이번에는 장갑 SUV 뒷문이 닫혔다.
“어……!?”
창문 너머 당황한 얼굴이 보이는 순간.
천문석은 조수석 문을 두들기며 외쳤다!
“특급 헌터는 키즈카페로 갈 겁니다! 황 비서님 바로 출발하세요!”
“으앗! 안 돼!”
특급 헌터가 다급히 외치는 순간.
부으으으응-
장갑 SUV는 바로 출발했다!
“황 비서 누나! 정지! 멈춰! 그만해! 으앗! 으아앗!”
탁, 탁-
다급히 문을 당기며 외치는 특급 헌터!
“왜 안 열려!?”
당연히 운행 중 차 문은 잠겨 있다!
부으으으응-
멀어지는 장갑 SUV 뒤 창문에 특급 헌터의 경악한 얼굴이 보이고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 안 돼! 혼자 가면 안 돼! 강원도 혼자 가면 큰일 난단 말야! 으아앗! 황 비서 누나! 멈춰! 멈추란 말야! 주머니에 지렁이 넣을 거야! 당장 멈추란 말야!”
천문석은 손을 흔들며 특급 헌터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키즈카페에서 잘 놀아라! 의뢰 끝내고 올 때 선물 사다 줄게!”
“안 돼에에에에-!”
곧 장갑 SUV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특급 헌터의 외침도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계획대로 특급 헌터를 떼어 낸, 천문석은 언덕을 내려가며 휴대폰을 꺼내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
=지금 고객님이 전화를 받으실 수…….
의뢰인 한호석 교수는 여전히 통화권 이탈 상태.
장민 대표에게 들은 대로 한호석 교수는 여전히 안정화 권역 밖, 통신 불가 지역에 있는 것 같았다.
의뢰 당일인데도 의뢰인과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예정대로라면 청량리역에서 강릉행 KTX를 타고 강릉역에 도착했을 때면 한호석 교수와 연락이 될 테니까.
휘이이, 휘휘-
천문석은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언덕길을 내려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렇게 정류장에 도착하는 순간.
때마침 청량리행 120번 버스가 도착했다!
무림인과 헌터 모두 사소한 행운으로 미래의 운세를 점치는 사람들!
이번 일 시작이 아주 좋았다!
천문석은 환해진 얼굴로 120번 버스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출발하며 말했다.
“운이 좋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