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62화>
“감사합니다! 장민 대표님!”
천문석이 거듭 감사를 표하자,
장민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한 교수님. 청주를 정말 좋아하신다죠? 청주 한 잔이면 대기업 컨설팅에서도 아끼던 말이 줄줄 흘러나와요.”
듣는 순간 알아챘다.
한호석 교수님의 마음을 얻을 팁이다!
가능한 많은 청주 준비!
메모메모!
“한 교수님. 대학원에 다니다가 게이트 전쟁에 참전해 낙동강 전선에서 싸우셨죠. 그 자부심이 엄청나세요.”
낙동강 전선 이야기 복습!
메모메모!
“한 교수님. 추위를 크게 타세요. 따뜻한 잠자리에 감동하실 거예요.”
핫팩과 온열 패드 준비!
메모메모!
……
이후로도 팁은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장민 대표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의뢰서는 전자 문서로 보내드릴게요. 이 번호로 연락하시면 돼요. 지금 교수님 강원도 통신 불가 지역에 계시니. 강릉역에 도착한 후에 연락하시면 돼요.”
“넷!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꼭 알고 가셔야 할 게 있어요.”
장민 대표는 지도 앱이 띄워진 스마트폰을 내밀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조사할 이상 던전이 있는 위치는 강원도 강릉시 칠성산. 이곳이에요.”
갑자기 진지하게 변한 장민 대표 얼굴과 목소리.
천문석은 처음에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도 앱을 보던 중 불현듯 깨달았다.
던전이 생긴 강릉시 칠성산은 강릉대학교를 중심으로 그려진 푸른 원 안에 들어가 있었다.
푸른 원.
게이트 안정화 권역을 표시한 원이다.
던전, 균열, 게이트…….
이세계 침식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게이트 안정화 권역.
칠성산 던전은, 던전이 생길 수 없는 게이트 안정화 권역 안에 있었다!
* * *
게이트 안정화 권역 안에 던전이 생겼다고!?
‘혹시 강릉 게이트에 문제가 생긴 건가!?’
자신이 처음 랩터와 싸웠던 서울 사태!
그 서울 사태는 동대문 게이트 소멸로 일어났다.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난 건가!?
게이트 안정화 권역에 던전이 생겼다는 것보다 차라리 이게 낫다!
천문석은 바로 장민 대표에게 확인했다.
“혹시 강릉 게이트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동대문 게이트 소멸 같은?”
“아뇨. 강릉 게이트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어요.”
장민 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이상 던전 경기도 던전이 처음 발견된 건, 동대문 게이트 소멸 직후예요. 언론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사실은 몇 달 전에 발견됐어요.”
조사가 끝나지 않아 발표를 미뤘다는 뜻.
“경기도 던전은 안정화 권역 밖이었고. 마수와 몬스터가 없는 것 말고는 특별한 점이 없어 민관 협동 조사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어요.”
장민 대표는 스마트폰 화면을 축소에 전국 지도를 화면에 띄웠다.
전국 곳곳에 푸른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설마, 이 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푸른 점을 터치하는 장민 대표.
“세종, 태백산, 울산, 광주…… 게이트 안정화 권역,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십여 개의 던전이 발견됐어요.”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안정화 권역에 하나도 아닌 십여 개 던전이 생겨났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무력화됐을지도 모른다는 뜻!
인류가 게이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건, 게이트 안정화 장치로 ‘안전한 후방’을 만들고 군과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할 전선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설치된 후방에 던전, 균열이 무작위로 생겨나면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당장 자신부터가 안정화 권역의 건물주가 꿈이다.
-안정화 권역의 안전이 위협을 받는다면!?
-이 던전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면!?
-균열이 생기고 균열 침식 현상이 시작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대참사가 일어난다!
“대표님 바로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헌터 부대가 움직이고 있는 건가요!?”
경악한 천문석이 말하는 순간.
훗-
장민 대표의 진지한 얼굴이 무너졌다.
후흐흐흡-
입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장민 대표.
“……?”
장민 대표는 잠시 웃음을 터트리더니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장난을 좀 쳐 봤어요.”
“네? 그게 무슨…… 설마, 이게 모두 거짓말인가요!?”
“아뇨. 던전이 생긴 건 맞아요. 그런데 조사 결과 위험도는 지극히 낮다고, 거의 0이라고 판명 났어요.”
‘던전의 위험도가 0이라고!?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의문을 품는 순간 장민 대표가 설명을 이었다.
“이번에 나타난 던전에 들어가면 하나같이 같은 장소로 이동해요.”
“……같은 장소요?”
장민 대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개의 바다 위에 펼쳐진 끝이 보이지 않는 봉우리. 봉우리 사이사이에 펼쳐진 숲과 벌판에는 동물들이. 굽이굽이 흐르는 강과 호수에는 물고기가. 하늘에는 새들이 날고 있어요.”
“…….”
“산 전체에 사람이 만든 게 분명한 돌계단이 가득 한데. 계단을 아무리 계단을 올라도 사람의 흔적도 마수와 몬스터도 전혀 없어요.”
“……!”
“이번에 발견된 이상 던전에 들어가면 이곳으로 이동해요. 사람이 없다는 걸 제외하면, 생각나는 이름 있으시죠?”
장민 대표의 말대로였다.
설명을 듣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다른 던전 입구로 들어갔는데,
모두 같은 산봉우리로 이동한다.
닫힌 세계, 포켓 차원 던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즉, 던전 너머 산봉우리는 닫힌 세계가 아닌 이세계다.
또 다른 이세계로 이어지는 던전!
자신은 이미 이런 던전에 한 번 들어갔었다.
그 던전에서 오랜 친우를 만나 검혼이 담긴 롱소드를 선물하고, 얍삽한 도둑놈에게서 대환단을 받아 냈다.
무림 던전!
이번에 생긴 던전들은 ‘무림 던전’과 같은 이세계로 뚫린 입구다!
* * *
“무림 던전!?”
천문석이 번쩍 고개를 들며 외치는 순간,
장민 대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장철에게 각성 스팟의 비밀은 들으셨죠?”
무림 던전의 보스 주호가 어이없게도 패배를 인정하고 던전이 클리어됐을 때.
자신을 찾아온 장철 헌터에게서 무림 던전의 비밀에 대해 들었다.
무림 던전이 인위적으로 뚫은 입구, 만들어진 각성 스팟이란 것을!
“네. 무림 던전에서 나왔을 때 들었습니다. 그럼 이 던전들도?”
“그렇게 추측은 하는데…… 직접 조사한 저곳에서도 확신은 못하고 있어요.”
장민 대표의 손가락이 밤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별을 가리켰다.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섬, 전능 옥좌.
재금 연구소에서 조사했는데도 확신을 못하고 있다는 말!
“무림 던전 입구를 하나 뚫을 때도 엄청난 자원과 인력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수십 개의 입구를. 그것도 마력압이 엄청난 안정화 권역 안에도 뚫을 정도라면…….”
장민 대표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재금 연구소에서는 1세대 마력 각성자 10명이 모여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결론 내렸어요. 게다가 이 안에서는 마력장 통제가 거의 불가능해요.”
“마력장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건?”
“절대 영역, 몸 안을 제외한 외부로 마력, 초능력, 마탄 같은 각성력 투사가 안 돼요. 이 던전 안에서 마수와 몬스터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으로 보고 있어요.”
“…….”
“이 모든 것을 사람이 한 거라면 그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하더군요. 믿기진 않지만, 이 모든 게 우연일 확률이 더 높다고 하네요.”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장민 대표.
천문석은 장민 대표가 위험은 없다고 단언한 이유를 깨달았다.
마력장 통제가 불가능해 각성력이 전혀 먹히지 않는 던전.
하지만 마력장 생명체 마수와 몬스터라는 강적 또한 없다.
적이 없으니 위험도 없다!
이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이곳 무림 던전과 같은 세계인 거 아냐!?’
가능성은 있었다!
무림, 전생의 천하는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였다.
‘안개의 바다 위에 펼쳐진 끝없는 산봉우리.’
장민 대표가 말한 장소는 전생에 듣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광활한 천하를 생각하면 그런 장소가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무림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던전!
이 가능성을 떠올린 순간 한 장의 문서가 기억났다.
단혈철검 주호가 수결한 은자 100만냥짜리 지급 문서!
그 지급 문서를 무림 던전, 장가장의 장일 총관에게 남겨 두고 왔다!
그리고 던전을 나온 후에야 은자 1냥이 300만 원에 거래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금액!
아직 이곳이 무림 던전과 같은 세계인지, 같은 세계여도 장가장까지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가능성만으로도 이번 의뢰는 반드시 해야 한다!
-한국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와의 대화!
-장가장에 남겨 둔 은자 100만냥짜리 지급 문서!
두 가지가 걸린 엄청난 기회였으니까!
게다가 자신은 한동안 놀면서 잠수를 타려는 상태.
은밀히 조사 중인 비밀 던전보다 잠수타기 좋은 장소도 없었다.
이번 의뢰는 반드시 한다!
결심을 다지는 순간.
상념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떠세요. 알바씨? 이번 의뢰를 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으신가요?”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 장민 대표.
천문석은 벌떡 일어나 장민 대표에게 외쳤다.
“이 의뢰 하겠습니다. 아니, 제가 꼭 하게 해 주십시오!”
휴가 2일 차 밤.
이렇게 천문석의 강릉 칠성산, 이상 던전 행이 결정됐다.
* * *
터벅, 터벅-
서울 밤거리를 꼬맹이 한 명이 걷고 있었다.
반팔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머리에는 고글, 입에는 메로나, 손에는 종량제 봉투를 빙글빙글 돌리는 꼬맹이.
한밤중 길거리를 걷고 있는데도, 집 앞 슈퍼에 심부름 온 것처럼 전혀 위화감이 없는 꼬맹이는.
워커 실트였다.
한참 동안 밤거리를 걷던 워커는 한 건물 앞에서 멈춘 후 고개를 번쩍 들었다.
건물 3층 창문에 인쇄된 상호.
[제우스 PC방]
워커는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제우스 PC방. 77번 자리. 확인!]
“이세기! 여기 있었구나!”
워커는 재빨리 장비를 확인했다.
머리에 고글,
종량제 봉투 안에 리클레 가루 최루탄!
긴 상의로 가린 허리에는 공구 벨트가 있다!
이곳은 밀폐된 PC방!
이세기와 싸우다가 강습수송병 뱁새에게 뒤통수를 맞은 탁 트인 절벽 꼭대기와는 다르다!
이 안에서 리클레 가루 최루탄을 터트리면 단숨에 이세기를 제압할 수 있다!
‘이세기! 곧 복수해 주마!’
워커는 계단을 2개씩 뛰어 순식간에 건물 3층 PC방에 도착했다!
후하, 후하-
잠시 숨을 고른 워커는 PC방 문을 열고 들어가 카운터 앞에서 한숨 쉬었다.
“에휴, 엄마는 맨날 나한테 형 찾아오래. 누나 77번 자리가 어디예요?”
PC방 알바가 웃으며 안쪽 좌석을 가리켰다.
“저기 마지막 라인 끝자리야. 늦었으니까. 얼른 형이랑 집에 가렴.”
“네, 감사합니다.”
워커는 꾸벅 인사를 하고 PC방 안을 걸으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집에 가기는 할 거다.
이세기 그놈 이마에 패배자의 표식을 남긴 후에!
쿵쿵, 쿵쿵쿵-
77번 좌석이 가까워지자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었다!
워커는 조용히 고글을 내려 눈을 가리고,
종량제 봉투에 손을 넣어 최루탄을 잡았다.
이세기는 미친 잔머리의 소유자!
시간을 주면 어떤 수를 쓸지 모른다!
얼굴을 확인하는 즉시 최루탄부터 터트린다!
곧 77번 좌석에 앉은 게임에 열중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7, 6, 5, 4, 3미터!
워커는 최루탄의 버튼을 누른 채로 벼락같이 외쳤다.
“이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