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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61화 (56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61화>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자정.

천문석은 조용히 침실에서 나왔다.

휘이이이이-

때마침 반쯤 열린 베란다 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가을바람.

스르르륵, 탁-

천문석은 소리 없이 거실을 가로질러 베란다 창을 닫고 특급 헌터의 천공탑을 봤다.

거실을 가득 채운 거대한 박스 성이 철거되고 남은 것은 천공탑, 박스로 만든 성탑뿐이었다.

그 천공탑 아래, 인디언 천막 안에는 팔다리를 쫙 펼친 특급 헌터와 류세연, 손님 한경석이 잠들어 있었다.

한경석은 특급 헌터와 류세연 두 꼬맹이 아래 깔려 있었다.

밑에 깔린 한경석의 잠꼬대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 혼령 너무 무거워…….”

두 꼬맹이에게 고통받는 암살검이라니!

천문석은 웃으며 다가가 두 꼬맹이의 팔다리를 한경석 위에서 치웠다.

예민한 감각에 류세연과 특급 헌터의 몸이 무거워진 게 느껴졌다.

‘이 녀석 아무래도 키가 큰 거 같은데?’

정신 연령 꼬맹이 류세연은 아직 성장기가 끝나지 않았는지 몸이 더 자랐고.

진짜 꼬맹이 특급 헌터도 부쩍 자랐다.

키와 몸무게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혼령을 무서워하면서도 친구의 몸에 들어간 혼령을 퇴치하겠다고 용감히 나선 모습이라니!

특급 헌터가 퐁퐁검을 얼마나 열심히 휘둘렀는지, 쉴 새 없는 웃음에 지금도 배가 당길 지경이었다!

하, 이 꼬맹이 녀석들!

전생 천마는 원한을 잊지 않는 법!

‘조만간 복수 해 주마!’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현관을 지나 옥상으로 나왔다.

“오셨어요?”

장민 대표에게서 언제나처럼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자정에 만나기로 약속한 상황.

장민 대표는 담요를 두른 채 평상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가볍게 고개 숙인 천문석은 평상으로 다가가 마음에 걸린 일부터 물었다.

“……장철 헌터님은 괜찮으신가요?”

“……장철에게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거든요.”

장민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짐작이 갔다.

긴 시간 딸을 찾아다닌 아빠가 당장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 가속한 기차와 자동차는 멈추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장철 헌터에게는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천문석의 표정을 본 장민은 미소 지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장철은 강한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삼촌을 걱정하는 특급 헌터도 있잖아요?”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열심히 최선을 다해 달리고, 외치고, 노력하는 꼬맹이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온갖 심각한 문제들을 아무것도 아닌 웃음거리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특급 헌터의 삼촌 장철도 곧 기운을 차릴 것이다.

“진짜 그럴 것 같네요.”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장민 옆에 앉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조언을 구하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W. S. 인더스트리에 관한 이야긴데…….”

“W. S. 인더스트리요?”

“네. 제가 정보를 하나 얻은 게 있습니다.”

천문석은 최후식 이사에게 들은 정보를 장민 대표에게 전했다.

W. S. 인더스트리 오너의 실종과 이사회의 움직임.

장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반문했다.

“이 정보에서 저에게 조언을 받고 싶은 부분이 뭔가요?”

예상대로 장민 대표는 초거대기업과 관련된 정보를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장난스러운 눈빛과 장난스러운 목소리.

장민 대표는 어쩐지 학생에게 질문하는 선생님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천문석은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생각을 말했다.

“이 정보로 미국 주식 시장에 투자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투자를 하실 생각이죠?”

“지수 인버스 ETF에 투자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지수 자체가 하락할 거라고 예상하시는군요?”

“네. W. S. 인더스트리가 미국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니까. 오너의 실종은 악재라고 판단했습니다.”

“괜찮은 투자전략이에요. 하지만 그 방법으로 투자하실 거면 여유자금의 1/3 이하만 투자하실 걸 권하고 싶네요.”

“혹시, 제가 아는 정보에서 빠진 부분이 있나요?”

“아뇨 정보는 정확해요.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는 실종됐고. 이사들은 경영권을 노리고 있죠. 장기적으로는 호재와 악재가 뒤섞여 있어도, 단기적으로는 악재가 맞아요. 지수는 상당 수준으로 빠질 거예요. 하지만…….”

장민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리스크가 너무 커요.”

“……네?”

여기서 리스크라고 할 만한 게 있나?

천문석이 의아해할 때 장민 대표의 설명이 바로 이어졌다.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를 직접 만났던 적이 있어요. 그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에요.”

“…….”

“그라면 일부러 실종됐다고 발표하고, 이사회의 반응을 살필 수도 있어요.”

“그럴 이유가 있나요?”

장민 대표는 짧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재밌잖아요?”

“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어이없어하는 순간.

장민 대표도 비슷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 나이트 아머를 만들어 낸 세기의 천재는 그런 인물이에요.”

“그냥 재미로 사라졌다가 나타날 수 있는 인물.”

“단지 변덕으로 회사를 버리고 새로운 회사를 차릴 수 있는 인물.”

“돈과 권력에는 관심도 없이 무엇인가 찾고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인물.”

……

천문석은 장민 대표가 전하는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오너는 실종된 거지 영원히 사라진 게 아니다!

실종됐다는 오너의 변덕만으로도 주가는 출렁일 테고, 시장의 변동성만으로도 인버스, 하락장에 베팅한 자신은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될 거다.

이때 장민 대표가 결론을 냈다.

“그래도 투자 자체는 나쁘지는 않아요. 돈이 들어가고 자기 일이 되면, 밖에서 그냥 보는 것보다 많은 것을 얻게 되거든요. 그래도 가능하면 이사회가 끝나기 전에 포지션을 정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천문석은 머릿속에서 장민 대표의 조언을 정리했다.

-리스크가 크니 소액으로 투자해라.

-수익보다 시장 움직임을 주시해라.

-포지션 청산 시점은 이사회가 끝나기 전.

짧은 조언이었지만, 처음 투자하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장민 대표님.”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이자 장민 대표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도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네, 무엇이든지. 말씀하세요.”

천문석은 마찬가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혹시 경기도에 이상 던전이 나타났다는 이야기 들으셨나요?”

얼핏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났다.

“네. 뉴스 속보로 스치듯이 본 기억이 납니다. 몬스터가 없는 던전이라 합동 조사팀을 보냈다고…….”

텔레비전에서 본 얽히면 개고생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던전이었다.

‘설마, 그 던전과 관련된 부탁인가?’

바짝 긴장할 때, 장민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알고 계신다면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경기도에 나타나 그 이상 던전과 비슷한 던전이 전국에 몇 개 더 나타났어요.”

“네? 하나가 아니라고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장민.

“그중 하나가 장강 유통 사유지에 나타났어요. 그 던전을 저와 친분이 있는 교수님이 조사하게 되셨는데. 제게 경호 의뢰를 맡기셨습니다.”

“그 던전 듣기로는 마수나 몬스터는 없다던데…… 경호원이 필요할까요?”

“네. 마수도 몬스터도 없고, 던전 안의 환경도 위험과는 거리가 멀어요. 경호 의뢰라고는 해도 트랙킹 하듯 걸으며 대화하다가 돌아오는 게 다일 거예요.”

말이 경호원이지 사실상 동행이란 이야기.

“경호팀 인원 구성은 1명에서 5명까지 자유롭게. 의뢰 기간은 2, 3일을 예상해요.”

이 정도면 장비와 무장에 따라, 헌터 1인당 단가가 50에서 200 정도 나온다.

“그런데 의뢰비가 아주 짜요. 교수님 하루 일당 10만원으로 어떻게 안 되겠냐고 하시네요. 어때요? 알바씨 이 경호 의뢰받아 보시겠어요?”

일당 10만원이면 당장 노가다 일당보다도 낮다.

비각성 헌터 고용 비용으로도 턱도 없는 액수다.

3일 동안 의뢰를 수행하면 1인당 30만원 수익.

강화전투복, 방검방탄복 같은 고가의 장비를 빌리지 않고 마탄도 사용하지 않으면 비용은 확 줄어든다.

혼자서 의뢰를 수행하면 적자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의뢰로 놓치게 되는 다른 의뢰,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일당 10만원은 적자다.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견적이 섰다.

‘이건 받으면 안 되는 의뢰다!’

그러나 장민 대표가 이런 의뢰를 자신에게 부탁할 리 없었다.

천문석은 오히려 호기심이 솟았다.

“대표님이 보시기에는 이 의뢰 조건이 어떤가요?”

장민 대표는 엉뚱한 질문을 했다.

“알바씨 꿈이 건물주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혹시 ‘한호석 교수님’ 못 들어 보셨나요?”

“한호석 교수님이요?”

어쩐지 귀에 익은 이름이었다.

천문석이 고개를 갸웃하자,

장민 대표는 구몬 선생님 같은 표정으로 다시 질문했다.

“게이트 전문가, 서울대 한호석 교수님. 이번 경호 의뢰인이 이 분이신데. 못 들어 보셨나요?”

“한호석 교수님요? 한호석, 한호석…….”

천문석이 이름을 되뇌자,

슬쩍 힌트를 흘리는 장민 대표.

“사실 이분은 게이트 전문가시지만, 다른 분야에서 더 유명하세요.”

게이트 전문가인데, 다른 분야에서 더 유명한 서울대 한호석 교수?

“……!”

이 순간 머리에서 번뜩이는 게 있었다.

‘한호석 교수!’

가끔 뉴스를 볼 때마다 나오던 패널이다!

게이트 전문가라고 해서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부동산 전문가 한호석 교수님요!?”

후흐흐-

장민은 웃음을 터트렸다.

“한 교수님 이제 완전히 부동산 전문가가 되셨네요. 네 맞아요. 이번 경호 의뢰 의뢰인. 부동산 전문가 한호석 교수님이세요.”

‘부동산 전문가 한호석 교수의 의뢰라고!?’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생각이 복잡하게 얽힐 때 들려오는 목소리.

“한 교수님. 땅값 오를 지역 찍는 데는 한국 최고세요. 정작 본인 땅은 사실 때마다 실패했지만, 여전히 그분 부동산 컨설팅을 받으려는 회사, 기업인, 복부인들이 엄청나죠.”

장민은 천문석을 바라보며 느긋한 어조로 물었다.

“어때요? 알바씨. 이 의뢰가 제 부탁이에요. 부탁 들어 주실 건가요?”

순간 머릿속에서 얽힌 생각이 단숨에 사라지고 명쾌한 결론이 튀어나왔다.

장민 대표의 부탁은 마수와 몬스터가 없는 이상 던전의 경호 의뢰다.

마수와 몬스터가 없다는 건 역으로 마석과 부산물 수입도 없다는 뜻이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의뢰인과 계속 걷고 대화하는 게 다인 지루한 의뢰!

게다가 의뢰비도 인당 일당 10만원으로 말도 안 되게 낮았다.

이건 고민할 것도 없었다!

천문석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감사합니다. 장민 대표님!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이번 의뢰를 수행하겠습니다!”

“짠돌이 의뢰인을 소개해 드린 건데, 왜 이리 좋아하세요? 너무 좋아하시니 다음에도 소개해 드려야겠네요. 후후흣-.”

장난스레 웃으며 말하는 장민 대표에게서 후광이 비추는 듯했다!

한호석 교수!

부동산 전문가로 한국에서 최고인 인물의 경호 의뢰!

이건 말이 의뢰고 부탁이지, 사실 부동산 컨설팅을 받을 기회를 준거나 마찬가지다!

일당 10만원?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사람의 식견을 들을 기회다!

이런 기회라면 오히려 수백, 수천만 원을 써서라도 잡으려는 사람이 널렸을 거다.

이 의뢰는 장민 대표의 호의였다!

건물주를 꿈꾸는 자신이 한국 최고의 부동산 전문가를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호의이자, 선물!

공평함이 망가진 하늘님.

듣고 있는지 아닌지 긴가민가한 땅님.

이 둘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이 넓고 깊은 마음이라니!

천문석은 즉시 허리 숙여 감사를 표했다.

“존경합니다! 장민 대표님! 최선을 다해 의뢰를 수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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