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60화>
시작은 천검 이세기의 한마디였다.
‘대환단을 구해라.’
이 한마디가 산 정상에서 굴린 스노우볼이 됐다.
황제의 말에 제후들이 움직이듯. 헌터 군벌 수장들이 움직였고 그 밑에 있는 수많은 조직이 움직였다.
그러나 이미 남중국에서 영약은 씨가 마른 상태.
하물며 대환단 정도 되는 영약은 시장에 나온 적도 없었다.
당연히 대환단을 구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주변국으로 움직였다.
북중국, 동남아시아, 몽골과 러시아…….
그러나 결국 그 시선이 모일 곳은 한 곳이었다.
한국이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헌터업 인프라가 가장 발달했고, 초거대 기업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나라였다.
게다가 무공 각성자 비율이 높고,
헌터 관련 물품 시장 규모가 엄청났다.
이런 한국에서도 서울 광화문은 한국 헌터 업계의 중심이었다.
군벌 수장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수많은 사람이 대환단을 구하기 위해 대한민국 서울, 광화문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선두에 있는 이들은 최설을 찾기 위해진교은을 찔러보다가 아작난 철검장의 정예들이었다.
“…….”
강제로 서울행 비행기에 태워진 왕체는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갑자기 습격당해 두들겨 맞고 강제로 서울행 비행기에 태워졌다.
이를 갈며 당장에라도 복수를 준비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왕체는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습격한 적의 정체를 몰라서가 아니다.
무장하고 습격한 헌터들은 정체를 숨기지도 않았다.
사용한 장갑 SUV 번호판을 그대로 드러냈고, 리더로 보이는 이는 헬멧을 벗고 자신에게 말을 걸기까지 했다.
왕체는 공항으로 오는 차 안에서 겪은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히 떠올랐다.
///
“야, 너 어쩌다가 찍힌 거야?”
“…….”
“표정 보니까, 찍혔다는 것도 모르나 보네? 내가 쥐어 패놓고 이런 말 하는 게 우습긴 한데…… 너 이 정도로 끝난 게 정말 운 좋은 거다. 출국하면 제주도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누구 지시냐?”
왕체가 묻는 순간.
피식 웃은 남자는 최림을 가리켰다.
“저 녀석이 장갑 SUV 번호 외우던데. 뭘 또 물어봐?”
최림이 움찔할 때, 남자는 뺏어간 휴대폰을 던져 줬다.
“저 장갑 SUV 헌터 넷에 등록된 차니까 조회해 봐라.”
왕체는 바로 조회했고 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한라산 길드?”
“그래, 우리 한라산 길드다. 혹시나 엉뚱한 생각 할까 봐 말해 주는 건데. 우리한테 원한 가질 필요 없다. 네 생각대로 우리도 지시받은 거다.”
“……?”
왕체의 시선에 남자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짧게 말했다.
“태성 길드.”
갑자기 튀어나온 거물의 이름에 왕체는 경악했다.
‘태성 길드, 이태성 길드장!?’
1세대 헌터 이태성 길드장은 남중국에도 잘 알려진 헌터였다.
미친놈으로!
서울 수복 작전이 끝나고 몇 년 후 이태성 길드장이 남중국에서 잠시 활동한 적이 있었다.
이태성 길드장과 태성 길드는 헌터 군벌 수장들의 초청을 받아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설치할 대도시의 청소를 도와줬다.
이때 이태성 길드장과 헌터 군벌 수장 몇몇이 안면을 트고 호형호제하게 됐다.
이태성 길드장은 이 인맥을 이용해, 남중국에 있던 보이스 피싱 조직과 온라인 게임 작업장 수백 개를 박살 냈다!
형제가 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관시를 넘어서는 관계를 맺는 것!
헌터 군벌 수장과 호형호제하는 순간 수백억에서 수천억의 이권을 거머쥘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태성 길드장은 보이스 피싱 조직과 온라인 게임 작업장을 박살 내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이태성 길드장이 왜 그랬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니었다.
이태성에게 그럴 힘이 있다는 게 중요했다.
지금도 이태성 길드장은 전화 한 통으로 남중국의 헌터 군벌들을 움직일 힘이 있었다!
왕체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순간.
남자는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제 사정을 알겠지?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움직인 거야. 괜히 우리 원망하지 마라. 엉뚱한 생각 말고 공항에 도착하면 바로 제주도에서 떠라. 어디로 갈 거냐? 바로 뜰 수 있게 표 준비해 줄게.”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자신의 임무는 두 가지다.
최설과 대환단!
최설의 행방을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대환단까지 실패해서는 안 된다.
대환단은 천검과의 관계를 다지는 데 반드시 필요했다!
“서울!”
왕체의 말을 들은 남자는 얼굴이 묘해졌다.
“……어, 이거. 제주도에서 서울로 보내도 되는 건가…… 잠시만!”
남자는 바로 몸을 돌리고 전화 통화를 했다.
“네. 비서님. 다름이 아니라. 이 녀석들 서울로 가겠다는데…… 괜찮을까요? 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남자는 운전석의 부하에게 짧게 지시했다.
“서울행 비행기 표 가장 빠른 거로 준비해라.”
그리고 왕체를 바라보며 충고했다.
“너 서울에서는 더 사리고 다녀라. 태성 길드에 잘 보이고 싶어하는 헌터들, 서울에는 더 많다.”
이렇게 왕체와 최림, 철검장의 정예들은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상해 삼합회 단주 최평의 딸 최설을 찾는 임무를 실패한 채로.
///
하아-
왕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삼합 호텔의 진 선생을 건드리니,
갑자기 이태성 길드장이 나타났다!
최설과 이어진 끈은 진 선생이 유일했다.
그러나 더는 진 선생을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다른 임무라도 제대로 해결해야 했다.
대환단을 찾는 것!
헌터 업계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마찬가지로 인맥과 안면 위주로 돌아간다.
우선 정보상을 찾아 그 인맥으로 라인을 뚫고 온라인, 오프라인 시장을 훑는다.
어차피 영약은 각성 헌터에게 효과가 없는 좀 비싼 영양제 취급이다.
소림 대환단이라는 이름값이 있으나, 이름값 말고 다른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왕체는 상해에서 출발하기 전 받은 헌터 수표의 숫자를 생각했다.
[1,000,000,000위안!]
엄청난 액수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닌 속도와 정확성이다.
이번 일에 걸린 것은 남중국의 절대자가 될 천검의 호의다!
10억 위안이라는 돈조차 천검의 호의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했다.
경쟁자 누구보다 빨리! 진짜 대환단을 확보해서 상해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다른 경쟁자보다 유리한 게 있었다.
정확성!
장주님에게 대환단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받았다!
겉모습을 보면 70%, 직접 눈앞에서 확인하며 99% 진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경쟁자들은 상상도 못할 유리한 점이다.
하지만 서울에 도착하면 대환단을 찾기 전에 꼭 해야 할 게 있었다.
왕체는 제주도의 일을 겪으며 뼈저리게 느꼈다.
현지 정보에 어두웠고, 너무 무방비로 다녔다.
서울에 도착하는 즉시 무장하고, 현지 조력자로 정보상과 헌터들을 구해야 한다!
제주도처럼 어이없게 당해서는 안 된다!
생각을 정리한 왕체가 삐걱거리는 몸을 시트에 눕힐 때.
옆 좌석 최림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장님. 한국 헌터 업계에 정통한 정보상을 하나 수배했습니다. 특히 사람과 물건 찾기가 특기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업체입니다.”
왕체는 문득 고개를 돌려 최림을 봤다.
최림은 진 선생을 찔러보면 최설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최림의 말대로 진 선생을 찔러보자, 생각지도 못한 거물이 튀어나왔다.
‘이 새끼 믿어도 되는 거야?’
불쑥 튀어나오는 의심.
왕체는 한참을 고심하다가 고개를 까닥였다.
“말해 봐라.”
얼굴이 환해진 최림이 바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제가 찾은 정보상이 이곳입니다! 도착하는 즉시 만날 수 있게 약속을 잡겠습니다!”
왕체는 스마트폰에 적힌 이름을 읽었다.
“현대 정보 컨설팅 그룹?”
* * *
푸젠성에서 시작한 눈덩이가 상해, 제주도를 거치며 점점 커지고 있을 때.
그 눈덩이가 향하는 목적지.
최설의 상사.
대환단의 주인.
천문석은 한가지 진실을 깨닫고 있었다.
‘등하불명은 개구라다! ’
천문석이 등하불명, 심리의 사각지대 자신의 방 침대에 편하게 누운 지 3분 후.
쓰으으윽-
방문이 소리 없이 조용히 열렸다!
“뭐지, 제대로 안 닫혔나?”
문득 문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문 아래 엎드린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
포복한 특급 헌터!?
분명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걸 확인했는데!?
경악하는 순간 방문이 벌컥 열리고 외침이 터졌다.
“그것 봐! 내가 여기 있다고 했지! 혼령아! 넌 날 속일 수 없다!”
특급 헌터가 버럭 소리치는 순간.
파아아앙-
천문석은 내력을 쏟아 내 용수철처럼 창문으로 뛰어올랐다!
핏-
“창문은 내가 막았어!”
그러나 어느새 점멸로 나타나 창문을 막는 한경석!
“내가 잡았다!”
환호성을 터트리며 목에 매달리는 류세연!
“저도 잡았어요!”
손을 잡아 오는 부드러운 손길 장민!
방문은 특급 헌터,
창문은 한경석으로 막히고!
등에는 류세연이,
팔에는 장민 대표가 매달렸다!
옴짝달싹 못하게 잡힌 상황!
특급 헌터는 퐁퐁검을 번쩍 들고 외쳤다.
“모두 꼭 잡아! 내가 알바한테 들어간 혼령을 퇴치할게!”
퐁퐁검을 들고 외치는 혼령 퇴치!
천문석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직감하고 다급히 외쳤다!
“야, 그만 멈춰! 혼령 없어! 나 완전 정상이야!”
“내 눈은 속이지 못해! 알바! 요즘 어깨가 뻐근하고, 몸이 찌뿌둥하지!?”
“요새 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말하고 아차 할 때, 당당히 외치는 특급 헌터.
“역시 혼령이 들었구나! 알바! 이건 다 알바를 위해서야! 지금 당장 혼령을 몰아내야 해!”
부산 던전에서 빡세게 구르다가 나온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몸이 정상이면 그게 더 이상했다!
“야, 잠깐 설명할 수…….”
그러나 특급 헌터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퐁퐁검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퐁퐁, 퐁퐁퐁-
“이야압! 퇴마검을 받아랏!”
탁탁, 타타탁-
속이 빈 피리 같은 퐁퐁검이라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퐁퐁검이 닿는 순간 참을 수 없는 간지럼이 몰려 왔다!
“야, 히힠키- 그말ㅋ캌-.”
“혼령! 드디어 혼령이 정체를 드러냈다!”
퐁퐁, 퐁퐁퐁퐁퐁-
탁탁, 타타탁타탁-
번개같이 휘둘러지는 퐁퐁검!
“그만! 킿히잏키히킼ㅋ리- 웃겨! 이거! 커크캌- 웃겨서야! 크크크킄-.”
참을 수 없는 간지럼이 전신으로 퍼져 나갈 때, 목과 허리에서 느껴지는 생경한 감각!
“……!?”
천문석은 경악했다.
류세연 이 미친 꼬맹이 녀석이 할짝할짝 목에 침을 바르고!
장민 대표가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갈비뼈를 간지럽히고 있다!
크크킄-
후후훗-
웃음을 터트리며 목과 옆구리를 공격하는 두 사람!
“야, 이 미친! 키킼크크킄- 그맠! 그카캌! 혼령! 사라졌어! 으아아악- 혼령이 사라지고 제정신이 들었어!”
간신히 외친 순간 퐁퐁검이 멈췄다!
‘드디어 끝난 건가?’
그러나 특급 헌터는 철저한 아이였다.
“혼령이 사라졌다고!? 혹시 모르니까. 구구단 거꾸로 외워봐!”
“야, 혼령이랑 구구단이랑 무슨 상관인데!”
퐁퐁-
대답 없이 다시 날아오는 퐁퐁검!
“그만! 그만 멈춰! 외울게! 몇 단?”
“17단! 빨리빨리 17단 외워봐!”
“……몇 단이라고?”
“17단!”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다시 봤다.
한없이 진지한 얼굴.
“야, 구구단이라며! 구구단의 구가 숫자 ‘9’야! 세상에 누가 17단을 외워!”
천문석이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앞과 뒤 양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17단을 거꾸로 외는 소리가!
“17, 17은 289!”
-특급 헌터.
“17, 16은 272!”
-류세연.
“17, 15는 255!”
-특급 헌터.
……
천문석은 멍하니 주위를 돌아봤다.
특급 헌터와 류세연은 17단을 거꾸로 외우고, 고개를 돌린 한경석과 장민 대표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
천문석은 마침내 깨달았다.
류세연과 특급 헌터!
두 꼬맹이가 정교하게 계획한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17, 1은 17!”
“17, 1은 17!”
류세연과 특급 헌터가 17단의 마지막을 동시에 외치는 순간.
네 사람의 시선이 모이고,
특급 헌터의 당당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혼령아! 못하겠지!? 못할 줄 알았어! 내 눈은 속일 수 없거든!”
“야, 잠깐만 할게! 17, 17은…….”
“아냐! 방금 들었잖아! 17단 말고 121단 해 봐!”
“뭐? 너 지금 뭐라고?”
순간 등 뒤에서 류세연의 121단을 거꾸로 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121, 121는 14,641.”
……
121단이 한동안 이어지고,
류세연과 특급 헌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고로 난 9999단까지 외우고 있어.”
“에휴- 난 세연한테 비하면 한참 멀었어. 바빠서 999단까지밖에 못 외웠거든.”
“……야, 도대체 그걸 왜 외워? 계산하면 되는데!?”
“하- 삼촌은 암기의 멋짐을 모른다니까?”
“맞아! 147 곱하기 147은!”
특급 헌터가 돌연 외치는 순간.
동시에 대답하는 두 사람!
“이만천육백구!”
“이만천육백구!”
짝-
“카카캌- 엄청 멋져 세연!”
“크크킄- 나이스 특급 헌터!”
손을 마주치며 동시에 탄성을 터트린 두 사람.
“알바는 이 시크한 멋짐을 모른다니까!”
“…….”
특급 헌터의 말대로 시크한 멋짐을 모르는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멋짐을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여튼 혼령 사라졌어. 빨리 물어보고 얼른 풀어 줘. 몇 단 외우면 될까?”
“이미 늦었어! 난 혼령이 그대로 있다는 걸 알아!”
“야, 그게 무슨 억지…….”
퐁퐁, 퐁퐁퐁-
말이 끝나기도 전에 퐁퐁검이 다시금 휘둘러지고.
한경석까지 가세한 네 사람의 집중 공격이 쏟아졌다!
“크킼하캌, 크마캌카킄-.”
천문석은 쉴 새 없이 웃어야 했다.
특급 헌터가 픽- 쓰러져 잠들 때까지!
진짜 꼬맹이 특급 헌터와 꼬맹이나 다름없는 세 사람 류세연, 한경석, 장민 대표의 간지럼 공격을 당했다!
천문석은 배가 당길 정도로 웃으며 직감했다.
‘가짜 혼령! 가짜 부적! 그 업보를 지금 받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