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58화>
오후 7:15 제주 국제공항.
상해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도착했다.
이 비행기에서 내린 비즈니스 정장에 서류 가방을 든 10여 명의 남자가 입국 게이트를 통과해 공항 청사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겉모습은 회사원이나 이들에게선 사무직이 아닌 거친 현장에서 구른 야성이 느껴졌다.
이들은 주호의 심복 왕체와 최림 그리고 철검장의 정예 헌터들이었다.
왕체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부하들을 보자 가슴이 든든해졌다.
대환단과 최설 수색.
이번 일에 동원된 부하들은 장주님의 비기로 내력을 얻어 무공을 익혔다!
이들은 각성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비각성 헌터이기에, 마수와 몬스터와의 싸움에서는 손색이 있었다.
그러나 적이 같은 사람일 경우, 평범한 헌터들 몇 배의 실력을 발휘한다.
이건 삼합회와 치른 격전에서 몇 번이나 확인한 사실이다.
진 선생에게서 최설의 행방을 알아내기만 하면 신병을 확보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왕체는 뒤따라 걷는 최림을 불렀다.
“진 선생은 어떤 인물인가?”
“오래전 활동한 단주 급 인물입니다. 수십 년 전에 제주도로 넘어가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그 외에는 삼합회에 진 선생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힘들 수도 있겠는데…….’
왕체가 내심 생각한 순간 최림이 바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진 선생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최림은 주위를 훑어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삼합회의 제주도 투자는 수십 년 동안 극비였습니다. 얼마 전 북중국의 일이 아니었으면 저도 알지 못했을 겁니다. 당연히 진 선생 휘하에 있는 직원들도 대부분 평범한 일반인들입니다.”
“그 말은?”
왕체의 반문에 눈을 번뜩이는 최림.
“진 선생의 직원들은 자신들이 삼합회 자금으로 만들어진 회사에서 일한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겁니다. 이걸 이용하면 진 선생을 쉽게 압박할 수 있습니다.”
왕체는 최림의 생각을 바로 알아챘다.
진 선생은 수십 년 동안 삼합회가 제주도에 투자한 재산을 관리했다.
진 선생의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지만, 수십 년 동안 삼합회의 해외 자산을 은밀히 운용했던 만큼 만만치 않은 인물일 거다!
게다가 제주도는 게이트 전쟁이래, 오랜 안전지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많은 유력자의 기반이 있고, 그 유력자 중에는 본토의 유력자, 헌터 군벌들도 있었다.
이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순간 철검장에도 타격이 온다.
하지만 그건 진 선생도 마찬가지!
아니,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곤란해지는 건 진 선생이 더 하다.
기반이 없는 자신은 훌쩍 떠날 수 있지만, 제주도에 기반을 두고 사업체를 운영하는 진 선생은 떠날 수 없다!
진 선생에게 삼합회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사방에서 피 냄새를 맡은 승냥이 때가 달려들 거다!
‘최림의 말대로 이걸 이용한다!’
왕체는 미소를 지었다.
최림의 계획이 나쁘지 않았다.
진 선생의 기업과 삼합회가 관련된 증거는 없다.
하지만, 근거 없는 헛소문이 때때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상해 단주 최평의 딸, 최설의 행방뿐만 아니라. 아주 커다란 부수입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감이 왔다!
이 순간 왕체는 새삼 감탄했다.
‘삼합회의 단주 급 인물을 압박하는 날이 오다니!’
언젠가 각성하기를 바라며, 뒷골목과 전장을 배회하던 몇 달 전 자신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문득 몇 달 전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갑자기 마경에서 튀어나온 거대 괴수로 난장판이 사냥터!
사냥터에서 정신없이 도망치던 중에 우연히 만난 사람이 장주님이다.
단혈철검 주호!
장주님을 트럭에 태우고, 그 심복이 된 게 일평생 최고의 선택이 됐다.
장주님은 야망과 실력, 배짱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뒷골목에 철검장을 세우고,
비각성자를 모아들여 영약과 비기로 무공을 전수했다.
철검장은 순식간에 도시의 암흑가를 집어삼켰고, 중간을 건너뛰고 흑도의 정점, 삼합회를 노렸다.
철검장이 한창 기세를 올렸다고 해도 1년도 안 된 신생 길드.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진 삼합회와 싸운다는 건 무모했다.
누가 봐도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계획이었다.
장주님과 처음부터 같이했던 자신도 결국 패배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도시 뒷골목을 전전하며 푼돈을 벌고, 사냥터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살던 비루한 삶!
삶이 비루하다고 가슴속 꿈까지 비루하지는 않았다.
장주님에게 무공이라는 힘을 받는 순간.
왕체는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맹세대로 모든 것을 걸고 삼합회와 싸웠다.
장주님의 엄청난 무위로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졌다.
그러나 저력이 끝이 없는 삼합회와 달리 철검장은 바닥이 빤했다.
결국, 처음 모두의 예상대로 철검장은 말라 죽어 가기 시작했다.
이때 사건이 터졌다!
천검을 노린 폭탄 테러!
그리고 뒤이어 일어난 남중국 내전!
우연한 사건이 겹쳐 철검장이 상해 삼합회를 집어삼켰다!
삼합회 전체가 아닌 상해 지단 한곳 뿐이지만, 상해는 요지 중의 요지였다.
열 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시작한 철검장은 상행의 엄청난 부와 권력, 이권을 손아귀에 움켜잡았다!
그리고 오늘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장주님이 전화 통화 중 은연중 드러낸 뒷배!
아직도 귓가에 장주님의 목소리가 생생했다.
‘……장웨이 사령관! 반드시 대환단을 구하겠습니다.’
‘장웨이 사령관, 대환단!’
왕체는 이 통화를 듣는 순간 철검장, 단혈철검 주호의 뒤에 있는 배후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푸젠 군벌 수장, 장웨이가 다급히 대환단을 구하게 만들 사람은 지금 남중국에 단 한 명뿐이었다!
천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나 상상조차 하지 못한 위업을 이룬 초인이다!
단혈철검!
철검장 뒤에는 천검이 있었다!
남중국의 절대자가 될 천검이!
일생을 건 자신의 도박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이 순간 왕체는 다시금 맹세했다.
최설과 대환단!
둘 다 반드시 찾아낸다!
우선은 최설의 행방을 아는 진 선생부터!
진 선생이 어떤 인물이든 뼛속까지 우려내겠다!
이때 공항 청사가 끝나고 도로가 나타났다.
최림은 도로를 가리켰다.
“밴을 준비했습니다. 밴을 타고 가시면 바로 진 선생과 만날 수 있게 약속을 잡아 뒀습니다.”
“약속 장소가 어디지?”
최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진 선생의 기반. 삼합 카지노 호텔입니다.”
* * *
삼합 카지노 호텔 회의실.
철검장의 왕체.
삼합 카지노 호텔의 총괄 매니저 진교은.
두 사람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대화한 지 30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지금 왕체는 자신도 모르게 진 선생의 대리인에게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진교은은 친절한 미소를 지은 채 정확한 발음으로 다시 한 번 말했다.
“삼합 카지노 호텔이 삼합회와 관련 있다고 밝히세요. 괜찮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대응에 왕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상대가 가장 아파할 곳을 찔렀다.
삼합회의 비밀 사업체란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흘린 것!
삼합회의 비밀 사업체란 게 폭로될 위기인데 이렇게 대응한다고!?
‘허세를 부리는 건가!?’
왕체는 즉시 당겼던 줄을 풀어 주며 간을 봤다.
“오해한 것 같은데. 우리는 진 선생님과 불편한 관계가 되고 싶은 게 아닙니다. 단지 최설의 소재만 알면 됩니다.”
“최설?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최설이 누군가요?”
진교은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왕체 뒤에 선 최림이 어이없는 어조로 내뱉었다.
“삼합회의 최설을 모른다고?”
“삼합회요? 제주 삼합 말씀이신가요?”
최림의 시선이 진교은의 등 뒤에 선 남자에게 향했다.
원기륭!
삼합회에서 제주도에 보낸 현장 책임자를 등 뒤에 세워 놓고 이런 거짓말이라니!
“바로 뒤에 원기륭이 있다! 그런데도 삼합회를 모른다고!?”
진교은은 의아한 듯 고개를 돌려 등 뒤에 선 남자를 힐끗 보고 반문했다.
“우리 원 실장님을 아시나요?”
“뭐!?”
최림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이를 갈 때.
진교은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세기를 추적하러 왔다가, 카지노 나이트의 난장판에 휘말린 삼합회의 중간 보스 원기륭.
하지만 지금 원기륭은 삼합 카지노 호텔의 보안 실장이었다.
원기륭이 삼합 호텔의 보안 실장이 된 난장판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카지노 나이트의 난장판.
-갑자기 몰아치기 시작한 폭풍.
-남중국을 향해 도망친 제주도의 수호신 거대 거북이.
-거대 거북이 등에 꽂힌 간첩선과 북중국의 스파이들.
-마찬가지로 거대 거북이 등에 실린 자신과 원기륭, 삼합회의 조직원들.
-남중국에서 만난 특이한 권력자와 조건 없는 송환.
-마탄 관리법 위반으로 줄줄이 구속되는 스파이들.
그리고 스파이들의 처절한 외침!
‘저놈들! 삼합회의 조직원들입니다!’
게이트 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의 사법 체계는 범죄자에게 가혹할 정도로 엄격했다.
사람에게 마탄을 발사한 스파이들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당연히 던전 노역장 행이다.
그리고 마탄 관리법만큼은 아니지만, 폭력 조직에 대한 처벌도 강하다.
원기륭과 동료들이 삼합회 소속이란 게 알려지면 국가 헌병대가 움직인다.
국가 헌병대의 표적이 되면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악명 높은 던전 노역장, 마경 개척단에서 몇 년 동안 구를 수도 있었다.
원기륭과 삼합회 조직원들을 구할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자신이 원기륭과 삼합회 조직원 전원의 신원을 보증하는 것!
그리고 가장 간단한 신원 보증 방법은 삼합 카지노 호텔 직원으로 고용하는 거였다.
그 자리의 누구나 급조한 거짓말이란 걸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교은에게는 누구도 이 거짓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만들 방법이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어르신!
진교은은 이 어르신에게 전화했고, 모든 일은 간단하게 해결됐다.
스파이들은 던전 노역장으로, 원기륭과 삼합회 조직원들은 삼합 카지노 호텔의 직원이 됐다.
그리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원기륭과 조직원들이 돌아갔어야 했는데…….
남중국에서 내전이 터지면서 계획이 엉망이 돼버렸다.
이런 원기륭을 철검장과 함께 온 최림이 알아본 것이다!
삼합회, 최설을 모른다는 거짓말이 들통 날 위기의 순간.
하지만 진교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질문했다.
“우리 원 실장님을 아세요? 원 실장님 이 분 아시는 분인가요?”
“철검장 사람 중에 제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원기륭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최림을 노려봤다.
상해 지단의 최림이 철검장과 같이 나타난 것만으로도 원기륭은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했다.
‘최림이 배신자다! 이 녀석이 삼합 카지노 호텔의 정보를 철검장에 흘렸구나!’
그러나 최림은 원기륭은 신경도 쓰지 않고 진교은을 노려봤다.
“네가 내 이름을 듣고도 최설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진교은.
진교은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최림은 더욱 분통이 터졌다.
최림은 진교은이 진 선생의 대리인으로 나타난 순간 바로 알아봤다!
어린 시절부터 사촌 동생 최설과 친하게 지내던 아이다!
이 순간 최림은 베일에 가려진 진 선생의 정체를 깨달았다.
진 선생은 최설의 후견인, 진교은의 아버지다!
모든 것을 깨닫는 순간 한 사람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상해 삼합회 단주, 최평!
큰아버지는 처음부터 자신의 딸 최설을 후계자로 점찍었다!
어린 시절부터 진 선생이란 인맥을 만들어 준 게 그 증거였다!
큰아버지의 눈에 들기위해 평생을 전전긍긍한 자신은 애초에 후계자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거다!
최림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담아 외쳤다.
“내가 바로 최림이다!”
진교은은 고개를 갸웃하며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최림? 저희가 아는 사이인가요?”
쿵-
최림은 테이블을 내려치며 분노를 쏟아 냈다.
“진교은! 네가 나를 모른다고!? 지금 날 모른다고 말 한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