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51화>
푸젠성(福建省).
이곳으로 남중국의 12개 지방 정부, 군벌 세력이 모두 모였다.
12개 군벌 세력의 실무담당자가 연방 정부 계획에 살을 붙이고 있을 때.
사실상의 지방 정부 수장, 12명의 군벌 수장들도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넓은 회의장, 테이블을 사이 둔 군벌 수장들이 날 선 공방을 쏟아 냈다.
남중국 연방이라는 틀에는 모두 동의했으나, 그 안에 채워 넣을 내용에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가장 큰 견해차를 보이는 것은 각 지방 정부에 배분될 연방 의회 의석수!
각 지방 정부에 할당된 의석수는 새로운 연방에서의 지분을 상징한다.
당연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날 선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이 5, 60대인 군벌 수장 사이사이에 3, 40대로 보이는 이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노화 역전 각성을 한 노회한 각성자가 아니었다.
갑자기 모시던 군벌 수장이 날아가 벼락출세한 장교와 장군들이었다.
이들은 회의는 뒷전인 채 상석에 앉은 남자의 기색을 연신 살폈다.
마치 휴양지 해변에 있는 것처럼 의자에 편안히 기대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남자.
남자는 살기마저 쏟아 내는 군벌 수장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게 맞았다.
수십만의 헌터 부대와 군대를 거느린 군벌 수장들의 살기 어린 외침과 위압감조차 이 남자 앞에서는 빛이 바랬다.
고대의 황제 같은 위엄과 압도적인 카리스마!
이 남자가 각 지방에서 왕과 같은 권력을 휘두르는 군벌 수장 12명을 한자리로 모은 장본인이었다.
5명의 군벌 수장의 목을 날려 버리고, 반항하는 사단급 군대를 홀로 지워 버린 남자.
천검, 이세기!
이 순간 미동도 하지 않던 이세기가 가볍게 손을 들었다.
핏대를 올리며 살기 어린 외침을 쏟아 내던 군벌 수장이 즉시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회의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아찔한 긴장감이 차오르는 순간.
천검 이세기가 입을 열었다.
“각 지방에 할당될 의석수는 연방군에 제공하는 인적, 물적 자원으로 결정한다. 매년 그 성과를 확인하고 3년마다 의석수를 조정하겠다.”
군벌 수장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인적, 물적 자원을 계산하고 의석수를 조정하는 건 천검께서 하시는 겁니까?”
이세기는 테이블에 앉은 12명의 군벌 수장들을 훑어보고 말했다.
“여기서 너희들이 정해라.”
“…….”
“…….”
순간 군벌 수장들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손익을 따졌다.
나쁘지 않다.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최고의 결과다!
총 연방 의석수는 이미 정해진 상황!
서로 간에 담합해 인적, 물적 자원을 내놓을 수준을 맞추면?
손해를 최소화하며 생색을 낼 수 있다!
군벌 수장들은 지난 한 달여를 생각하며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생각했다.
지난 한 달여간 천검을 중심으로 둘로 나뉘어 내전을 벌인 남중국.
천검과의 전투가 평범한 전투였다면 10년이라도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천검은 전투가 벌어지는 순간 병사가 아닌 최고 지휘관을 노렸다.
그것도 전선에는 서지도 않은 최후방 비밀 벙커의 군벌 수장을!
5명의 군벌 수장의 목이 날아가는 순간 이미 잊었다고 생각한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죽음의 공포가!
군벌 수장들은 전투를 멈추고 연방 성립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권력 기반 그 자체인 군대를 연방에 쉽게 내줄 생각은 없었다.
지휘권을 잃은 군대는 더는 자신의 힘이 아니니까!
12명의 군벌 수장들의 시선이 교차하고, 각 파벌 수장이 이해득실을 빠르게 계산했다.
천검이 분노하지 않을 정도로 생색만 내는 수준에서 연방군에 힘을 보탠다!
순식간에 계산을 끝내고 확정하려는 순간. 군벌 수장들은 주저했다.
‘혹시나 먼저 입을 열었다가 천검의 분노가 쏟아지면?’
이때 이세기가 대수롭지 않은 듯 툭 말을 던졌다.
“연방 총리 선거도 연방 의회 투표로 결정하지.”
헌터 군벌들의 시선 일제히 이세기에게 모이고 다급한 외침이 쏟아졌다.
“연방 총리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연방 총리는 천검께서 하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
이세기는 가볍게 손을 들어 쏟아지는 질문을 끊었다.
“총리에게 연방 정부의 권한을 위임하겠다. 행정, 인사, 외교…….”
툭툭 던지듯이 쏟아지는 단어에 헌터 군벌들의 얼굴이 점점 상기됐다.
‘대외적 일인자, 실질적 2인자를 만들겠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이 2인자가 연방 정부에서 어느 정도의 실권을 지녔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는 건 간단했다.
한가지 권한을 얼마나 가졌는지 확인하면 된다.
연방군 지휘권!
군벌 수장들은 천검의 입에 집중했다.
이때 천검 이세기의 입에서 기다리던 말이 튀어나왔다.
“연방군 지휘권…….”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올 때.
천검 이세기의 말이 이어졌다.
“전부.”
순간 회의장의 분위기가 끓어 올랐다.
2인자 정도가 아니다!
연방군 지휘권을 얻는 순간 상징적인 총리가 아닌 실질적인 힘을 지닌 총리가 된다!
20년 동안 게이트 전쟁의 난장판을 버티고 살아남아 이 자리까지 올라온 군벌 수장들은 직감했다.
자신의 군대를 떼어 주는 게 아니다!
12명의 군벌이 하나로 모은 막대한 무력, 연방군을 단숨에 집어삼킬 기회다!
3년마다 연방 의석수를 조종하겠다고 말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처음이 가장 중요하다!
기득권을 잡은 권력자는 누구나 자신의 권력부터 강화한다.
한번 잡은 기득권을 부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순간 군벌 수장들의 머릿속에서 담합하겠다는 생각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어떻게든 여기서 치고 나가 최대한 연방 의회 의석을 얻어 내야 했다!
천검이 뒤를 봐주는 연방군이라는 남중국, 아니 중국 최대의 무력 집단의 지휘권을 얻을 기회다!
20대 초반 벼락출세한 군벌 수장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3개 사단! 완전 편제된 3개 사단의 지휘권을 연방군에 넘기겠습니다!”
“보병 사단 둘! 거기에 전차 사단과 포병사단을 같이 넘기겠습니다!”
“레이드 팀 셋과 게이트 안정화 권역 둘을 연방에 넘기겠습니다!”
……
날 선 공방을 벌이던 군벌 수장들은 경쟁하듯 외치기 시작했다.
* * *
군벌 수장들이 충성 경쟁하듯 외칠 때.
이세기는 말없이 이 모습을 바라봤다.
“…….”
죽음의 공포와 압도적인 힘으로 12명의 군벌 수장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린 큰 그림에 동의 하도록 만들었다.
큰 그림, 연방!
군벌 수장들에게 연방 의석을 나눠 주고, 그 연방 의원들이 투표로 연방 총리를 결정한다!
연방군이 군벌 세력권에 걸쳐 있는 마경을 정리하고 게이트 안정화 권역의 크기를 넓이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제도는 합리적이고, 군벌 수장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이득이 돌아간다.
당연히 일반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이세기는 상황을 낙관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기에 일은 합리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모두가 잘살기보다 자신이 내 가족이 더 잘살기를 원하는 건 사람의 당연한 본성이었다.
게다가 남중국은 20년째 전국시대나 마찬가지인 상황!
12명의 군벌 수장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왕과 같은 권력을 누렸다.
한번 머리에 선 사람은 다시 꼬리로 돌아가지 않는 법!
투표로 연방 총리를 뽑자는 말에 지금은 군벌 수장 모두가 동의했다.
그러나 사람 셋이 모이면 정치가 시작되는 게 사람이다.
자신의 파벌이 미는 후보가 선거에서 지는 순간 지금까지 이상의 난장판이 벌어질 거다.
그걸 막기 위해 연방군을 구성했지만, 지방 군벌의 무력을 완전히 흡수하지 않는 이상 분쟁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자신의 큰 그림은 남중국을 12개 나라로 쪼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사탕을 뺏긴 아이는 울지만, 돈을 뺏긴 어른은 분노한다.
그 어른이 수십만 군데를 거느린 군벌 수장이라면 다시 한번 내전이 터질 수밖에 없다.
5명의 군벌 수장을 날려 버리고, 사단 하나를 지워 버렸지만, 이 또한 고육지책이다.
군벌들이 비틀리고 뒤엉킨 악목(惡木)이라 해도, 사람들이 마수와 몬스터에게서 몸을 지킬 울타리였다.
군벌과 끝장을 볼 수는 없었다.
결국, 이세기가 생각한 최선은 무림맹과 비슷한 연방 정부였다.
무림맹이 주적, 마도 18문의 존재 덕분에 유지됐다면.
남중국 연방은 사방에 널린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의 위협으로 유지 될 거다.
느슨한 12개 나라로 이뤄진 남중국 연방.
이것이 자신의 능력의 한계였다.
‘여기까지인가?’
내심 한숨 쉬는 순간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머리에 떠올랐다.
언제나 장난스럽게 웃던 오랜 친우, 돌멩이.
어린 시절 창천문에 입문하며 헤어지게 된 친우, 돌멩이를 철검장 주 대협과의 비무 장소 설산에서 만났다.
어렸을 때부터 잔머리가 비상하던 친우, 돌멩이는 초절정 고수 단혈철검 주호를 설산에서 죽기 직전까지 굴리고 있었다.
이세기는 12명의 군벌 수장을 바라보며 친우를 생각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자신이 아닌 돌멩이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다면 일어났을 일들이 머릿속에서 너무나 생생히 펼쳐진다.
자신이 목을 날려 버린 5명의 군벌 수장은 살아 있을 거다.
그리고 지금 열렬히 외치는 다른 군벌 수장들과 함께.
죽는 게 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겹게 구르고 있을 거다!
‘하하하-’
순간 마음속에서 터지는 웃음.
돌멩이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도망, 개싸움, 말싸움. 그리고 난장판 만드는 솜씨만큼은 천하제일이었다.
몇 마디 말만으로 싸움을 붙이고, 뭔가 정리하려 할 때마다 연속해서 사건이 터졌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난장판을 만드는 신기에 가까운 솜씨!
돌멩이 녀석은 요마괴이전에 등장하는 괴선(怪仙)에 그 자체였다!
그 녀석이 여기 있었다면, 군벌 수장들은 정신없이 휘둘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미친 듯이 구르고 있을 거다!
남중국 마경에서!
친우는 선인과 보통 사람만이 아닌 악인마저 품을 수 있는 진정한 강자였다.
‘넌 지금 뭐하고 있냐?’
마음속으로 묻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검대로 향하고 미소가 생겨났다.
검대에 걸린 십자검.
친우가 준 대환단으로 모자란 내력을 돋우고, 친우가 준 검혼이 담긴 이 십자검으로 완전한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섰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지금 돌멩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하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야, 이세기! 무공보다 즐겁게, 잘 사는 게 더 중요한 거야! 넌 무공 연습할 시간을 좀 줄이고 그 얼굴을 활용해 봐! 하늘이 재능을 내려 줬는데 적극적으로 써먹어야지!’
친우의 말이 맞았다.
삶은 언제나 무공보다 중요했다.
무력한 아이에게도, 초절정의 벽을 넘은 무인에게도.
이세기는 문득 고개를 들어 격렬하게 논쟁 중인 12명의 군벌 수장들을 바라봤다.
이들 또한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오래전 친우가 했던 말과 같다.
하늘은 선악을 가려 햇살을 내리지 않고, 땅은 됨됨이에 따라 곡식을 내주지 않는다.
천지는 사람에게 무심하니,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건 같은 사람뿐이다.
마치 도통한 도인처럼 말하던 친우는 씨익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명심해라. 천벌 같은 건 기다리지 말고, 얍삽한 새끼들을 기회 날 때마다 쥐어박고 개같이 굴려 줘야 되는 거야!’
친우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심상에서 들려올 때.
이세기는 참았던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하하-
그렇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은 없었다!
친우의 말대로 얍삽한 놈들은 기회 날 때마다 쥐어박고, 개같이 굴려 주면 된다!
웃음을 터트린 이세기는 군벌 수장들을 어 봤다.
군벌 수장들은 어느새 논쟁을 멈추고 조심스레 이세기를 살치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나, 불과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남중국 연방을 만들어 낸 천검 이세기!
언제나 무표정하던 천검 이세기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군벌 수장들은 그 웃음에서 어쩐지 섬뜩한 한기를 느꼈다.
이 순간 천검을 잡기 위해 마력 폭탄 테러를 일으켰다가 역으로 목이 떨어져 나간 푸젠성 군벌 수장 리웨이 사령관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심한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천검 이세기는 타고난 지배자!
그 머릿속에서 새로운 심모원려 가 세워지고 있을 거다!
군벌 수장들은 어느새 몸을 한껏 움츠리고 천검의 안색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이세기의 마음속에 연방 정부와 의회, 남중국의 일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연방 총리를 뽑는 선거는커녕, 아직 연방 의회도 구성되지 않았다.
앞으로 갈 길이 멀었지만, 아직 제도가 완벽히 정착되지 않은 혼란기인 게 오히려 좋았다.
아이가 애틋하다 하여 평생 업고 다닐 수는 없는 법!
아이는 넘어지고, 쓰러지며 스스로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남중국에서 자신이 할 일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세기는 검대에 걸린 십자검을 보며 웃었다.
연방 의회를 구성하고, 연방 총리 선거를 치르는 그 날이 자신이 떠나갈 날이다.
오랜 친우 돌멩이를 찾아서…….
정점에 올라 수많은 정보를 얻으며 돌멩이가 자신이 아는 그 친우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무림인이 아닌 헌터.
그러나 친구의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였다.
그 웃음과 그 성격!
그리고 그 끝없는 불운과 명치를 한대 세게 때려 주고 싶은 그 얄미운 모습까지!
‘이세기 새끼라고?!’
하하하-
다시 한번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지는 순간.
이세기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성큼 걸어갔다.
창문 밖 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가 보였다.
이 바다 너머, 친우가 있는 나라가 있었다.
한국.
‘곧 다시 보자. 돌멩이 새끼야!’
마음속으로 말하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나무 곽.
이제는 텅 빈 나무 곽에 담겼던 돌멩이의 마음.
대환단.
한겨울에 산속에서 발견한 고아 소년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는 옥수수죽을 나눠 줬던 돌멩이는 다시 만난 자신에게 선뜻 대환단과 검혼이 담긴 이 십자검을 건넸다.
물건보다 중요한 것이 그 안에 담긴 마음이다.
친우를 다시 만난 순간 마땅히 그 마음에 대해 보답을 해야 했다.
“대환단을 구해라.”
천검 이세기가 툭 던지듯이 말한 순간.
눈치를 살피던 헌터 군벌 수장들의 눈이 빛났다.
곧 남중국의 절대자가 될 천검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 자신이 권력의 정점에 섰기에 12명의 군벌 수장들은 권력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았다.
천검의 호감을 사는 순간.
엄청난 유무형의 이득이 돌아온다!
군벌 수장들은 다급히 회의실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
“대환단을 구해야 한다!”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라!”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다! 대환단을 구한다!”
“삼합회! 아니, 철검장에 연락해라! 대환단! 대환단을 구해야 한다!”
……
천문석이 편안히 소파에 누워 잠든 이때.
생각지도 못한 장소,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던진 눈 뭉치가 구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