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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50화 (551/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50화>

동생들!

패배가 확정된 순간 특급 헌터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알바. 우리는 물고기가 됐어.”

“물고기?”

“지식인에서 배웠어. 경석이 형이 어부고 우리는 물고기야.”

천문석은 특급 헌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바로 알아챘다.

어부지리(漁父之利)!

물고기, 천문석과 특급 헌터가 치열하게 대결할 때.

어부, 한경석은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급 헌터는 좌절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이제 나 세계 2등도 안 되나 봐. 막막 지고 있잖아…… 앙꼬 대장 이기려면 이렇게 지면 안 되는데…….”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언제나 씩씩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특급 헌터가 패배의 충격에 휩싸였다!

이래서는 안 될 일!

천문석은 번쩍- 특급 헌터를 들어 올려 옆구리에 끼고 옥상을 가로지르며 말했다.

“야, 원래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게 중요한 거야.”

순간 고개를 번쩍 들고 외치는 특급 헌터!

“맨날맨날 지는 사람이 어떻게 마지막에 승자가 돼?! 최후가 아니라 지금! 오늘! 당장! 맨날맨날 승리해야 하는 거란 말야! 승리도 이불 개기처럼 습관이란 말야! 그래서 내가 맨날맨날 일어나면 항상 이불부터 개는데, 삼촌이 이불에 각을 잡는 법을 가르쳐 줬거든?! 이불에 각을 잡으면 승리의 습관이 2배로 적립된대! 그래서 요즘에는 삼촌이랑 장민 이불도…….”

특급 헌터는 언제나처럼 말을 하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빠졌다.

그러나 그 말에 담긴 내용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면이 있었다.

그렇다.

승리는 이불 개기처럼 습관이다!

싸우지 않고 물러서는 사람이 이길 수 없듯이, 패배감에 익숙해져 도전하지 않으면 승리는 멀어진다!

큰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작은 승리를 쌓아 가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이불 개기, 10분 운동하기, 장난감 정리하기, 책상 치우기를 꾸준히 하는 것처럼!

꼬맹이는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특급 헌터를 봤다.

“……그렇게 냠냠이 찾으러 갔다가 세탁소 할아버지 만났거든! 세탁소 할아버지 글 엄청 멋있게 써! 이렇게, 이렇게 쓰면 와! 글자가 막 꿈틀꿈틀한다니까!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글자 쓰냐고 물어보니까. 할아버지가 자기는 목소리 멋있는 사람이 너무 부러워서 글씨 연습했데!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한테 칠판이랑 분필 가져다줬어! 그랬는데…….”

특급 헌터는 어느새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뭐지, 이 맥락 없는 이야기는…….’

“목소리 멋있는 사람이 부러우면 발성을 연습해야지 왜 글씨를…….”

자신도 모르게 특급 헌터에게 말려들던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야, 우리 지금 승리 이야기하고 있었잖아!”

옆구리에 낀 특급 헌터는 힘없이 팔다리를 축 늘어트린 채로 힘없이 말했다.

“어차피 승부는 끝났잖아. 우리는 경석이 형한테 졌어…… 우리는 물고기야. 패배자야.”

“맞아! 내가 이김! 크크크-.”

한경석이 승자의 미소를 짓는 순간.

천문석은 어느새 도착한 옥탑방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특급 헌터 너 뭐 잊은 거 없냐?”

“승리?”

절묘한 우문현답에 자신도 모르게 터지는 웃음.

하하하하-

천문석은 열린 현관문 앞에 특급 헌터를 내려놓고 물었다.

“방금 우리가 한 경주가 뭐였지?”

“옥탑방에 누가 먼저 도착하냐잖아?”

“……?”

특급 헌터와 한경석의 의아해 하는 시선이 모이는 순간.

천문석은 손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승부는 ‘옥탑방’에 누가 먼저 도착하냐지.”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은 한경석을 가리키는 천문석의 손.

“옥상이 아니라.”

‘옥탑방’ 현관 앞에 선 특급 헌터를 가리키는 천문석의 손.

“옥탑방에 누가 먼저 도착하냐 승부…….”

“앗!”

“으앗!”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깨달음의 탄성이 터졌다!

핏, 핏팟-

한경석의 점멸 이동 소리가 연속해서 울려 퍼지는 동시에.

이야얍!

특급 헌터는 기합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데굴데굴-

단숨에 현관을 뛰어넘은 특급 헌터가 거실을 구르는 순간.

핏, 핏핏핏-

한경석이 뒤늦게 현관문을 통과했다!

“이겼다! 내가 승리했어! 카카카카카카-!”

한발 먼저 옥탑방에 들어간 특급 헌터가 환호하고.

“친구!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으으윽-!”

한발 늦게 점멸로 들어간 한경석이 좌절했다.

하하, 하하하-

천문석은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특급 헌터 어때? 알겠지?”

뜬금없는 질문에 바로 대답하는 특급 헌터.

“당연하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계약서! 설명서! 뭐든지 항상 정확히 읽어야 한다!”

카카카-

하하하-

특급 헌터와 천문석의 통쾌한 웃음소리가 넓게 퍼져 나갔다.

그사이에 슬그머니 들어온 한경석의 웃음소리가 섞여들었다.

크크큭-

이렇게 광화문 나들이, 혼령 사건이 끝나고 모두는 집에 돌아왔다.

천문석은 욕실을 가리키며 외쳤다.

“아직 시간 이르니까. 우선 씻고 좀 쉬다가 저녁 먹자. 경석아 먼저 씻을래?”

천문석이 말하는 순간.

특급 헌터가 다급히 외쳤다.

“앗! 잠깐 기다려! 그러면 안 돼!”

“왜?”

“……?”

의아해 하는 시선이 닿는 순간 한없이 진지하게 대답하는 특급 헌터.

“이제 내가 첫째! 두목이잖아! 그런 건 내가 명령해야지!”

“아, 그렇지! 특급 헌터 우리 뭐 해야 할까?”

“……!”

특급 헌터는 한참 동안 고심한 후 번쩍 고개를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우선 씻어야 해! 그리고 좀 쉬다가 저녁 먹어야겠어! 경석이 형 먼저 씻을래?”

모두는 특급 삼형제의 첫째, 두목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한경석은 욕실로 씻으러 들어가고, 특급 헌터는 화분에 물 주러 달려 나갔다.

천문석은 한경석이 갈아입을 옷을 챙겼다.

한경석이 씻으러 들어간 욕실 앞.

똑, 똑-

천문석은 욕실 문을 두들기고 외쳤다.

“경석아. 갈아입을 옷 문 앞에 놓을게! 내 트레이닝복이라 좀 클 거야. 이따 세연이 오면 바꿔 입으면 될 거야!”

“고마워!”

운동복을 놓은 천문석은 블라인드를 걷고 거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따뜻한 햇볕이 쏟아지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간은 오후 2시.

혼령을 퇴치하고, 전체 회식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아직 밝은 대낮이다.

하루가 끝나려면 아직도 긴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이 어쩐지 너무나 즐거웠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휴일 아침!

8시도 안 된 시계를 발견한 직장인과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사실 그보다 좋다!

오늘은 휴가 1일 차!

내일도 모레도 늘어지게 쉴 수 있었으니까!

천문석은 창밖에 펼쳐진 시가지를 바라보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으아아- 너무 좋다! 최소 2주! 아니, 잠수타는 김에 한 달은 놀아야지!”

마음 편한 백수라니!

이 얼마나 훌륭한 직업이란 말인가!?

카캬카-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 특급 헌터의 배낭 옆 하루 종일 메고 다녔으면서도 까맣게 잊고 있던 게 세워져 있었다.

무장 상자!

천문석은 재빨리 무장 상자의 잠금을 풀고 열었다.

무장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나무 곽을 열자 튀어나오는 단약!

대환단!

혼령 퇴치 사건.

김철수 사무실 신입 직원.

이태성 길드장이 쏜 전체 회식.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정작 광화문 나들이의 원래 목적, 대환단을 경매에 올리는 걸 까먹었다!

“와, 이걸 어떻게 까먹냐?”

어이없어하는 순간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대환단이 썩는 것도 아니고, 경매에 올리는 건 천천히 올려도 된다.

천문석은 무장 상자에 대환단을 넣고 텔레비전 옆에 잘 보이도록 세워뒀다.

이때 옥상에서 신나는 외침이 들려왔다.

“으앗! 수박토마토 싹이 이만큼이나 자랐잖아! 카카캌-.”

창문 밖을 보니 화분 앞에 쪼그려 앉은 특급 헌터가 신나게 외치고 있었다.

그리듯이 평온한 평일 오후였다.

천문석은 텔레비전을 켜고 소파에 앉으며 창밖을 향해 외쳤다.

“특급 헌터. 경석이 나오면 우리도 씻을 거야. 준비해라!”

“알았어! 앗! 아니지 내가 명령한다니까! 알바 준비해! 경석이 형 나오면 우리도 씻을 거야!!”

천문석은 창문 밖에서 보이도록 크게 손을 흔들고 다리를 쭉 뻗었다.

[…… 속보입니다. 남중국 지방 정부들이 마침내 긴 분쟁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12개 남중국 지방 정부가 연방 정부 결성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금융 시장, 부동산 시장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잠시 후 게이트 전문가 서울대 한호석 교수님과 함께 이번 일이 한국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장을 분석하도록 하겠습니다…….]

긴박한 음악이 흐르고 속보 자막이 화면 아래로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남중국 지방 정부, 연방 정부 결성에 합의.]

[상해 헌터 조직 간의 대립 격화! 한낮의 도심 난투극 발생!]

[경기도 비 안정화 권역, 몬스터가 없는 이상 던전 등장! 합동 조사팀 긴급 조사 중.]

[헌터부 낙동강 전선 지하 시설 긴급 폐쇄! 곤충형 거대 괴수 목격담에 헌터부 사실무근 입장 밝혀.]

……

천문석은 화면에 지나가는 속보를 보며 감탄했다.

“세상 참 스펙타클하네…… .”

자신이 부산 던전 배송 의뢰를 받아. 던전, 지하 유적,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정신없이 구를 동안 세상도 아주 바쁘게 움직였다.

속보에 뜬 사건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촉이 왔다.

‘아, 저기에 엮이면 개고생을 하겠구나!’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자신은 쌍쌍바를 크게 자르고, 꼬맹이와 경주에 전력을 다하는 ‘동네 헌터’다.

-남중국 연방.

-상해 헌터 조직 간의 대립.

-몬스터 없는 이상 던전.

-낙동강 전선에 나타난 거대 괴수.

……

‘동네 헌터’인 자신이 이런 커다란 사건들과 엮일 가능성은 없었다.

이 정도 큰 사건은 헌터부와 헌터 업계의 높은 분들이나 촉각을 곤두세울 사건이었다.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속 없이 바빴던 전생 천마보다, 이렇게 편하게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현생 알바가 나았다!

천문석은 옥상 창문 밖을 향해 외쳤다.

“큰 두목! 목이 마른 데?”

“기다려! 내가 명령하겠다!”

“…….”

“주스, 주스를 마셔야 해!”

다다다닥-

재빨리 달려온 특급 헌터가 냉장고에서 꺼낸 주스를 유리컵에 따라서 쟁반에 받쳐 들고 왔다.

“주스를 마셔라! 명령이다!”

천문석은 기꺼이 두목의 명령대로 주스를 마셨다!

“캬- 시원하다!”

“알바! 빨리빨리 컵 줘! 마시면 바로 설거지해야 한단 말야!”

빈 컵을 넘겨받은 특급 헌터는 번개같이 주방으로 달려가 컵을 깨끗이 설거지해 식기 건조대에 올려놓았다.

“음. 훌륭해! 나는 오늘도 승리에 한 걸음 다가갔어!”

특급 헌터는 신나게 외치고 다시 옥상으로 달려 나갔다.

천문석은 이 모든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배는 든든하고, 주스는 시원하고, 편안한 소파에 누워 있다.

게다가 좋은 친구들이 주위에 가득하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하루다.

여기에 한 가지만 더하면 최고일 텐데…….

나의 꿈, 건물주!

“간만에 즐겨찾기 해 둔 부동산 좀 볼까?”

스마트폰을 꺼내려는 순간.

불현듯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통장 잔고!

경매 대금과 의뢰 보수가 입금돼 통장 잔액이 최고가를 갱신했을 텐데, 아직도 확인을 안 했다!

‘지금 확인할까?’

문득 생각하는 순간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휘이이이-

편안한 소파에 누워 시원한 바람을 받으니 세상만사가 귀찮아졌다.

‘어차피 통장에 잘 들어가 있을 돈 나중에 확인하지 뭐.’

“역시 땅님으로 갈아타길 잘했다니까. 아, 편하다…….”

만족스럽게 웃은 천문석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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