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49화>
하아-
김 비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보더니 허탈한 표정으로 웃었다.
“하하, 하하하- 그러게요. 이게 다 뭐 하는 걸까요?”
“…….”
“…….”
천문석과 특급 헌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는 순간.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기 시작하는 김 비서!
“그렇게 고생해서 들어온 길드인데! 이게 뭐야!? 젠장, 젠장! 젠장!”
천문석은 특급 헌터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야, 이거 뭐야? 이 사람 갑자기 왜 이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나도 모르겠는데?”
고개를 휙휙 저은 특급 헌터가 김 비서의 손을 꼭 잡고 위로했다.
“김 비서 누나 힘을 내! 나도 나쁜 로봇이 특급 쌩쌩이 가져갔지만, 열심히 살고 있어! 힘내서 씩씩하게 살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야! 김 비서 누나 힘을 내! 화이팅!”
“…….”
꼬맹이의 진심이 느껴지는 위로에도,
김 비서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이 고통받는 원인의 47%가 이 꼬맹이 때문이었으니까.
“앗! 맞아 이게 있었지! 받아!”
쓱-
얼굴 앞에 나타난 아이스크림.
“쌍쌍바? 이건 왜?”
김 비서가 의아한 듯 묻자,
특급 헌터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쌍쌍바 먹고 힘내!”
김 비서는 잠시 특급 헌터와 쌍쌍바를 번갈아 보다가 짧은 한숨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김 비서가 스틱을 잡는 순간.
특급 헌터는 기합을 지르며 외쳤다.
“이야얍- 난 할 수 있다!”
뚝-
순간 중간이 부러진 쌍쌍바!
김 비서 손에는 1/4 크기의 쌍쌍바가 남았다.
“이게 무슨……?”
김 비서가 당황한 눈으로 볼 때,
특급 헌터는 환호성을 터트리며 사방에 자랑했다.
“내가 해냈어! 알바 봤지? 카카캌- 경석이 형 봤지! 엇? 어디 갔지!?”
“…….”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는 김 비서에게 다가갔다.
“길드장님이 보내서 오신 건가요?”
“…….”
김 비서가 경계하는 시선을 보내자,
천문석은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저장된 번호를 보여 줬다.
낯익은 휴대폰 번호와 저장된 이름.
[이 길드장님]
“방금 광화문에서 길드장님 만나서 점심 먹고 오는 길입니다.”
“오늘 만월관에서 식사를 하신 그분이신가요? 부사장님?”
“네, 천문석 부사장 맞습니다.”
이태성 길드장이 편의를 봐주라고 지시한 그 사람!
이름을 확인한 김 비서의 얼굴이 환해졌다.
“잘됐네요. 물품 수령 부탁드릴게요.”
“물품 수령이요?”
“네, 잠시만…….”
김 비서는 바로 주차장 구석 트럭으로 다가가 화물칸 문을 열었다.
철컹-
잠금장치를 풀고 화물칸 문을 열자, 가로세로높이 1미터 정도로 압착된 정육면체 덩어리들이 나타났다.
“이게 뭔가요?”
김 비서에게 묻는 순간 특급 헌터가 달려와 외쳤다
“깡통! 오늘 드래곤 형이 깡통 보내 주는 날이었어!”
특급 헌터는 단숨에 화물칸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퐁퐁검으로 압착된 정육면체 덩어리를 두들겼다.
통, 통통-
“음, 오늘 깡통은 7점? 아니 7.2점 정도 되네 훌륭해! 김 비서 누나 드래곤 형한테 잘 받았다고 전해 줘!”
특급 헌터가 신나게 외칠 때,
천문석은 화물칸에 실린 압착된 정육면체 덩어리를 살폈다.
5개의 압착된 정육면체 덩어리!
이 덩어리 하나하나가 수백, 수천 개의 알루미늄 깡통을 압착해 만들었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다.
“깡통 준다는 게 이런 거였어?”
깡통을 보내 준다는 이야기에 자루에 담은 깡통을 상상했다.
그러나 역시 이태성 길드장!
이태성 길드장은 포대가 아닌 프레스로 압착한 깡통을 트럭에 실어서 보내 줬다!
“와, 이 형 상상을 초월하네.”
천문석이 감탄하는 순간,
바로 옆에서 맞장구치는 특급 헌터.
“맞아. 이 깡통 드래곤 형이 눌러서 만든 거야! 커다란 방패로 이야압 하니까! 이렇게 되더라니까! 드래곤 형은 완전 깡통 전문가야!”
“그래? 역시 대단하네…….”
고개를 끄덕이던 천문석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이태성 길드장이 깡통 전문가라고 감탄하는 특급 헌터.
“……너 드래곤 형 돈 없다고 걱정했잖아?”
“맞는데? 아까 헤어질 때도, 주머니에 동전 넣어 주고 왔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특급 헌터.
“……이렇게 깡통을 많이 보내 주는 사람이 돈 없다고 걱정했다고?”
“……!?”
순간 특급 헌터의 눈이 커지고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앗-!
아앗-!
으아앗-!
연신 터져 나오는 탄성!
탄성 끝에 특급 헌터는 외쳤다.
“설마! 드래곤 형! 엄청난 부자였던 거야!?”
특급 헌터는 화물차 문 앞의 김 비서에게 달려갔다!
“김 비서 누나! 이 깡통 전부 드래곤 형 거였어? 드래곤 형 부자야? 진짜로? 정말로!?”
하아-
김 비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야!? 왜 말 안 했어! 아까 헤어질 때도! 국밥 사 먹으라고 주머니에 동전 넣어 줬단 말야!”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길드장님 부자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으앗- 분노한다! 특급 헌터는 마구마구 분노한다!”
분노한 특급 헌터는 퐁퐁검을 뽑아 압착된 깡통을 마구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깡깡, 깡깡깡-
맑은 깡통 소리가 울려 퍼질 때.
김 비서가 서류철을 꺼내 들고 화물칸으로 올라왔다.
“잠시만! 여기 인수증에 사인부터 하고 분노하세요.”
“난 절대 사인 안 해! 사인은 믿을 수가 없거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척 앞으로 나오는 스탬프 잉크.
“그럼, 손도장이라도 찍어 주세요.”
“난 절대 손도장은 안 찍어!”
“…….”
김 비서는 숨이 컥 막히는 표정을 지었다.
사인도 손도장도 안 된다니!?
어쩌란 말인가!?
“……오늘은 진짜 뭐라도 찍어야 한단 말이에요! 대신 사인하다가 그 개새. 걸렸단 말이에요!”
김 비서는 갑자기 버럭 소리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순간 후두둑 떨어지는 물방울!
“어, 어엇! 김 비서 누나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당황한 특급 헌터가 안절부절못할 때,
김 비서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 개새…… 길드장님이 오늘도 사인 못 받아오면. 발령낸다고! 흐흡- 던전 광산으로 발령낸다고 했는데…… 흑-.”
“던전 광산!? 재밌을 것 같은데!?”
김 비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번쩍 들고 분통을 터트렸다.
“……거기 하수구 던전이야! 중범죄자 가는 하수구 던전이랑 똑같은 던전! 오물이 떠다니는 하수 속에서 광석을 깨는 던전……!”
“으아앗! 냄새!”
특급 헌터가 두 손으로 코를 가리는 순간 김 비서는 서류철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사인! 제발 사인해 줘! 안 그럼 당장 내일부터 하수구 던전으로 출근해야 한단 말야!”
특급 헌터는 깊은 고뇌에 빠져들었다.
“손도장 찍으면 큰일 나는데…… 진짜 큰일 나는데. 전에도 손도장 찍었다가 심부름하느라 진짜진짜 힘들었는데…….”
“…….”
“김 비서 누나 내가 드래곤 형한테 잘 말해 주면 안 될까? 하수구 던전은 냄새나니까 냄새 안 나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
김 비서는 미동도 하지 않고 서류철을 내밀었다.
마치 사인을 받기 전에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듯이!
“알바 어떡하지?”
천문석은 이미 돌아가는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김 비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가 사인해도 될까요?”
“길드장님이 반드시 본인에게 사인을 받아오라고 했는데…….”
김 비서는 망설이는 얼굴로 특급 헌터와 천문석을 번갈아 봤다.
천문석은 김 비서의 망설임을 간단히 지워 줬다.
“특급 헌터 내가 대신 사인해도 되냐?”
“그렇지! 알바도 특급 형제니까! 나 대신 사인하면 되겠다!”
특급 헌터가 외친 순간,
김 비서의 얼굴이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인수증 서류 이곳하고 이곳에 사인해 주시면 돼요!”
천문석은 인수증에 사인해서 바로 돌려줬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던전 광산 발령을 면했어요! 저에게는 은인이에요!”
김 비서는 허리를 굽혀 인사하더니,
재빨리 트럭을 몰고 도망치듯이 사라졌다.
부으으응-
건물 앞 주차장에 가로세로높이 1미터로 압착된, 알루미늄 깡통 5덩어리를 놓아두고…….
“……아니, 이걸 그냥 놔두고 가면 어떡해?”
천문석이 특급 헌터에게 물었다.
“이 깡통 어떻게 처리하냐? 들고 가서 팔아야 하는 거야? 아니면 사람이 오는 거야?”
“이거 처리해 주는 할아버지 있어!”
“깡통 처리해 주는 할아버지? 전화해야 하냐?”
“아니, 부르면 와!”
“……부르면 온다고?”
천문석이 의아해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고개를 들고 건물을 향해 외쳤다.
“관장 할아버지!”
“관장 할아버지!”
“장문인 할아버지!”
……
특급 헌터가 계속해서 외치자, 건물 3층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그리고 머리에 검은 관을 쓴 도인이 나타났다.
오랜만이지만 여전히 낯익은 얼굴!
건물 3층 창문에서 나타난 도인은 정통 대한 무당파의 장문인 겸 관장!
빵야빵야 통천 도사였다!
특급 헌터는 통천 도사를 향해 바로 외쳤다.
“할아버지! 깡통 왔어! 오늘은 다섯 개야!”
“어허허- 중생아 내 도움이 필요하냐?”
“필요합니다!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그럼 번개같이 내려가마! 허허허-.”
잠시 후 통천 도사와 사범들이 내려 와 지게에 깡통을 짊어지고 사라졌다.
그리고 특급 헌터의 텅 빈 동전 지갑은 500원 동전으로 가득 채워졌다!
“다시 부자가 됐어! 알바! 나 특급 쌩쌩이 금방 살 수 있을 것 같아!”
특급 헌터의 언제나 빵빵한 동전 지갑의 비밀이 여기에 있었다!
특급 헌터는 한층 진화했다.
이제는 직접 깡통을 주워 팔지 않는다.
중간에서 중개만 하고 수수료를 받아 챙긴다!
천문석은 지게에 깡통을 짊어지고 언덕을 내려가는 통천 도사와 사범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와, 너 진짜 대단한데?”
……
그러나 평소와 달리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특급 헌터?”
문득 주위를 살피는 순간.
3층 계단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특급 헌터.
“너 거기서 뭐하냐?”
특급 헌터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경주는 끝나지 않았어!”
아차!
“알바 먼저 갈게!”
“야 반칙이야! 같이 출발해야지!”
“승부는 냉혹한 거야! 카카카캌-.”
특급 헌터의 신나는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
천문석은 단숨에 현관을 통과해 계단을 뛰어올랐다.
타다다다닥-
다급힌 계단을 달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천문석은 4층 계단에서 특급 헌터를 따라잡았다!
“따라잡았다! 꼬맹이 녀석!”
힐끗-
뒤를 돌아보더니 퐁퐁검을 든 팔을 활짝 펼쳐 계단을 막고 달리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지지 않는다!”
퐁퐁, 퐁퐁퐁-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물방울이 쏟아졌다!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 물방울!
톡, 토톡톡-
물방울이 몸에 닿아 터져 나가는 순간.
깃털로 간지럽히는 듯한 감각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흐헤, 흐헤헷-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기괴한 탄성을 터트릴 때.
특급 헌터는 외쳤다.
“나는 할 수 있다! 내가 승리한다!”
이 순간 천문석은 내력을 폭발시켰다.
단숨에 물방울을 돌파해 난간을 밟고 벽으로 뛴다!
탁, 탁, 탁-
난간, 벽, 다시 벽!
세 번 도약해 추월하려는 순간.
터져 나오는 기합성!
이야얍-!
퐁퐁, 퐁퐁퐁-
특급 헌터가 퐁퐁검을 휘두르며 몸을 던졌다!
눌린 용수철이 펴지듯 엄청난 기세로 날아온 특급 헌터!
꽈악-
천문석의 바지를 움켜잡고.
파바바밧-
번개같이 몸을 타고 기어 올랐다!
그리고 어깨너머로 몸을 던지려는 순간!
계단이 끝나고!
활짝 열린 옥상 문이 보였다!
목적지!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동시에 몸을 날렸다.
으아악!
이야압!
옥상 문을 통과해 데굴데굴 바닥을 굴러 일어서는 순간.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서로를 향해 외쳤다.
“내가 먼저 땅에 닿았다! 내가 이겼다!”
“퐁퐁검! 내가 퐁퐁검 이렇게 내밀었어! 퐁퐁검이 먼저 통과했어! 내가 이겼어!”
“야, 그런 게 어디 있어!? 퐁퐁검 내밀면 반칙이지!”
“알바 쇼트트랙 안 봤어! 이렇게! 쑥-! 쑥쑥! 발 내밀면 이긴단 말야!
“이건 육상이잖아! 육상에서 손 내밀었다고 인정 안 해 주잖아!”
“아닌데? 육상 아닌데! 이건 쇼트트랙이랑 비슷한 거야!”
“뭐!? 야, 그게 무슨 억지야!?”
“나 지식인 영웅이야! 내 말이 완전 맞아!”
“와, 이 어이없는 녀석! 기다려 봐 그럼 지식인에 물어보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열띤 논쟁의 승패가 지식인으로 가려지려는 순간.
천문석과 특급 헌터 둘이 까맣게 잊고 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어? 친구들?”
“어?”
“앗!?”
문득 고개를 돌리자 평상에 느긋하게 앉아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였다.
어느새 후드를 벗고 웃음기 어린 새하얀 얼굴을 드러낸, 사람.
암살검, 한경석!
한경석은 손을 들어 특급 헌터와 천문석을 가리키며 부드럽게 말했다.
“2등. 3등.”
그리고 스스로를 가리키는 손.
“1등.”
“…….”
“…….”
천문석과 특급 헌터가 멍하니 넋을 놓고 있을 때.
한경석은 웃으며 선언했다.
“내가 승리했어. 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