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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47화 (54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47화>

천문석은 휴대폰 화면과 이태성 길드장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뭐지, 지금 장난치는 건가?’

그러나 이태성은 한없이 진지한 표정이었다.

특급 헌터가 자신의 보물을 보여 줄 때처럼!

천문석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아, 예. 대단하군요. 그런데 이세영 선생님은 왜 찾으시는지.”

흠, 흠-

갑자기 헛기침한 이태성은 주위를 한번 돌아보더니 겸연쩍게 웃었다.

“사실은 내가 약간, 아주 약간 세영이에게 잘못한 게 있거든.”

“……잘못이요?”

“큰 잘못은 아니고 사소한 건데…… 너도 알지? 세영이 성격 불 같은 거? 내가 전화하면 그 녀석 받지도 않을 거야. 아니 어쩌면 전화를 받고 끔찍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가령 행운을 빌어 준다든지…….”

“설마요? 선생님 화내시는 걸 거의 못 봤는데…….”

“야! 걔는 학생들 대하는 거랑 헌터 대하는 게 완전히 달라! 걔한테 싸다구 맞고 조인트 까인 헌터들이 한두 명이 아냐! 그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헌터들…… 아, 이걸 말할 때가 아니지.”

이태성은 휴대폰에 연락처를 띄워 내밀었다.

“이 번호 보이지? 세영이 휴대폰 번호다. 네가 전화해서 만날 수 있게 주선 좀 해 줘. 제주도 유람선 때 보니까 세영이가 네 말은 들어 줄 거다.”

제자인 자신에겐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이세영 선생님의 제자에 대한 믿음을 이용하는 일이다.

천문석이 주저하자, 이태성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만나서 사과하고, 세영이에게 꼭 줄 것도 있어서 그래. 부탁한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 때도 느꼈지만, 이세영 선생님과 이태성 길드장 사이에는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천문석은 바로 이세영 선생님 휴대폰 번호를 저장하고 확인했다.

“지금 바로 전화할까요? 수업 중이실 수도 있으니 문자를 먼저 보내고 약속은 나중으로 잡을까요?”

“세영이 학교 아냐. 걔 지금 저기 게이트 지역에 있다.”

“네? 게이트 지역이요? 광화문 게이트 지역이요?”

“어, 지금 걔네 학교 현장 학습 주간이라 일주일째 학생들 인솔 중이야. 하, 이게 무슨 인력 낭비인지. 이세영이 교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적 낭비다.”

이태성은 광화문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튼 지금쯤이면 현장 학습 끝내고 학생들이랑 점심 먹을 시간일 거다. 혹시 퇴근했으려나…… 잠시만 확인 좀 해 보고.”

이태성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나야. 길드장 형. 너희 선생님 뭐 하냐?”

=……

“짱박힌 애들 잡으러 갔다고? 하, 진짜!”

=……

“아냐, 됐다. 이거면 됐어. 어, 고맙다. 밤에 혈맹에서 보자.”

전화를 끊은 이태성은 밝은 얼굴로 말했다.

“정보원한테 확인했다. 지금 바로 전화 걸면 된다.”

천문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이태성 길드장을 봤다.

이태성 길드장은 이세영 선생님의 행적을 세세히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직접 전화를 거는 건 꺼리고 있었다.

어째선지 전화를 걸면 선생님이 분노하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피식 웃은 천문석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

그리고 송신음이 들리는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번쩍 떠올랐다.

제주도 난장판의 끝 모래사장!

10대 중반으로 노화 역전 각성한 이세영 선생님!

그때 이세영 선생님은 이태성 길드장을 향해 분통을 터트렸었다!

이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천문석은 직감했다.

‘노화 역전 각성한 이세영 선생님과 이태성 길드장이 관련이 있구나!?’

그리고 이태성이 왜 전화 걸기를 주저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10대 중반으로의 노화 역전!

누구나 바랄 일이지만 평생 선생님을 천직으로 여긴 이세영 선생님께는 아니었다!

이때 전화가 연결됐다.

딸깍-

=여보세요. 누구신가요?

전화가 연결되는 순간 천문석은 전화에 집중했다.

“……예 선생님 저 천문석입니다.”

=천문석! 웬일이니! 너 부산 던전 갔다던데! 잘 돌아온 거야?

이세영 선생님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스피커 너머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던전? 위잉쌤 제자분이세요? 설마 헌터!?

-얘들아 꿀벌쌤! 제자분한테 전화 왔어! 헌터인가 봐!?

-선생님! 헌터 제자분 보고 싶어요! 보러 가면 안 돼요!?

……

=잠시만. 문석아 자리 좀 옮길게!

학생들의 정신없는 목소리가 멀어지고, 곧 이세영 선생님의 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말하면 돼! 문석아! 제주도에서 헤어지고 몇 달은 된 거 같다. 앗 맞다! 너 광화문에서 창업했다고 했지!? 나 지금 광화문 게이트 지역인데 우리 볼까? 선생님이 맛있는 거 사줄게!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오늘은 다른 일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다른 일?

“네,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을 꼭 만나 뵙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거든요.”

=날 만나려 한다고……?

이세영 선생님의 목소리에 의혹이 서리는 순간.

이태성 길드장은 재빨리 입 모양으로 신호했다.

‘내 이름은 말하면 안 돼!’

“네. 선생님을 꼭 만나서 대화하고 싶다고…….”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깨달음의 탄성이 터지고 분노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앗! 너구나! 야, 너 내 제자 앞세우지 말고! 네가 전화 받아!

“젠장! 들킨 건가!”

이태성이 전화를 받으려 할 때, 천문석은 송화기를 가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

이태성이 의아해할 때, 휴대폰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

=박찬석! 너지! 낙동강 전선 안 간다니까! 너 왜 이리 끈질기니! 너 내가…….

순간 천문석과 이태성의 눈이 마주치고 동시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언제나처럼 이세영 선생님은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천문석은 외침이 잦아드는 순간 재빨리 끼어들었다.

“선생님 만나고 싶다는 분. 박찬석 준장님 아니에요.”

=어…… 촉이 왔는데. 혹시 수류탄 기가 막히게 던지던 찬호?

“아닙니다.”

=박사 과정 밟다가 입대한 서울대 호석이?

“전혀 아니에요.”

=진짜 아냐? 그럼 기수?

……

이후로도 많은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당연히 이태성 길드장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뭐지, 촉이 왔는데!? 누구지!?

이세영 선생님이 의아해할 때.

천문석은 진지하게 말했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한 번만 만나주세요.”

=에휴- 알았어. 나 30분쯤 있으면 퇴근인데 어디서 보면 될까?

천문석이 고개를 돌리자, 이태성이 광화문 게이트를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게이트 너머 신서울, 게이트 광장 1시간 후!’

“광화문 게이트 지역에 계시면 1시간 후 게이트 너머 신서울 게이트 광장 어떠세요?”

=그래, 알았어.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너 학교 한번 찾아와라. 학생 중에 장래 희망이 헌터인 애들이 정말 많거든. 와서 하루만 직업 수업해 줘.

자신은 헌터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초짜 헌터, 이런 일에는 더 어울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바로 앞에.

천문석은 고개를 돌려 더 어울리는 사람을 봤다.

수십 년 동안 헌터 업계 정점을 차지한 태성 길드의 이태성 길드장.

천문석의 생각을 짐작한 이태성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저보다 경력이 오래되신 분이 계시는데 이분 어떠세요?”

=경력이 오래됐다고?

이세영의 솔깃한 대답이 돌아오는 순간.

이태성은 입 모양으로 신호했다.

‘방학 중 인턴 체험!’

“네. 이분 헌터 길드에서 고위직이신데 방학 중 학생 인턴 체험도 가능하다고 하시는데…….”

=잘됐네! 고마워 문석아! 내가 꼭 보답할게!

이세영 선생님이 몇 번이나 감사하며 전화를 끊는 순간 얼굴이 환해진 이태성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정말 고맙다! 그럼 나중에 보자! 언제든 연락해라! 저기 꼬맹이 앉아 있는 데서 기다리면 차 금방 올 거야! 그 차 타고 가라!”

말을 마친 이태성은 특급 헌터에게 외쳤다.

“꼬맹이 다음에 보자!”

“잘 가! 드래곤 형!”

특급 헌터는 번쩍 일어나 손을 흔들 때, 이태성은 마주 손을 흔들며 암살검을 봤다.

“야, 한경석! 너 끝까지 모른 척할래?”

[누구? 친한 척! 매우 곤란!]

“하, 이 뺀질이 녀석! 야, 후식이가 너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머리 빠지고 있어!”

[아님. 후식이. 원래…….]

한경석은 말을 하다가 다급히 멈추고 조심조심 주위를 살폈다.

이 모습을 본 천문석이 실소를 흘린 순간.

이태성은 몸을 돌려 달리며 소리쳤다.

“그럼 다음에 보자! 항상 건강하고!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라! 언제든!”

“잘 가세요! 길드장님!”

이태성은 순식간에 광화문에 가득한 헌터들 사이로 사라졌다.

천문석은 몸을 돌려 굳어 있는 한경석에게 걸어갔다.

[친구! 후식이!]

한경석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주위를 확인하고 고개를 저었다.

“너 뒤에 최후식 이사님 없어. 안심해라.”

[휴우-]

한숨을 내쉰 한경석은 특급 헌터 앞에 마주 쪼그려 앉았다.

광화문 광장 남쪽 끝에 마주 앉아 있는 특급 헌터와 한경석.

“너 뭐하냐?”

천문석이 묻는 순간 특급 헌터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친구 만났어!

“친구?”

냐아아, 냐아아-

대답하듯 들려오는 작은 울음소리.

문득 고개를 내리자, 눈에 익은 새하얀 새끼 고양이가 보였다.

옥탑방에 가끔 찾아오는 특급 헌터의 각성 동물 친구다.

“냠냠이?”

“맞아! 냠냠이! 냠냠이 요새 엄청 바빠서 놀러 못 왔는데! 저기서 나 보고 쫓아왔대!”

특급 헌터가 번쩍 손을 들어 주위 빌딩을 가리키자.

냠냠이가 대답하듯이 울며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냐아아-

어느새 은신 망토 지퍼를 내린 한경석이 완전히 녹아내린 표정으로 조심조심 손을 뻗었다.

톡-

손끝이 닿는 순간 작은 혀를 내밀어 손을 핥는 새끼 고양이 냠냠이!

날름, 날름-

손끝에서 전해지는 촉촉한 감각과 미약한 체온!

새끼 고양이가 손끝을 핥는 순간 한경석은 충격으로 굳어 버렸다!

이때 냠냠이가 작게 울며 데굴데굴 굴렀다.

“냠냠아 같이 더 놀자.”

한경석이 재빨리 손을 뻗는 순간.

냐아-

작게 울며 잽싸게 몸을 틀어 손을 피하는 냠냠이.

특급 헌터는 고개를 저었다.

“냠냠이가 무료 서비스 끝났다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천문석이 묻는 순간 길 건너 편의점을 가리키는 특급 헌터.

“더 놀고 싶으면 칼로리바 사 오래. 초콜릿 말고 곡물 들어간 게 좋다는데?”

“알았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경석은 점멸로 사라졌다.

“…….”

천하의 암살검 한경석이 어이없게도 새끼 고양이에게 삥을 뜯기고 있었다.

하지만 낯선 모습은 아니다.

서울 사태 때 자신도 숲에서 만난 저 새끼 고양이, 냠냠이에게 삥을 뜯겼으니까.

그러고 보니 냠냠이의 삥 뜯는 솜씨가 더욱 발전했다.

무료 서비스로 애교를 보여 주고, 유료 서비스로 칼로리바를 얻어 내다니!

피식 웃은 천문석은 특급 헌터 옆에 앉아 냠냠이의 턱과 배를 간지럽혔다.

냐아, 냐아아-

통통한 배와 발의 분홍색 육구를 보여 준 채 데굴데굴 구르는 냠냠이.

“너 삥 뜯는 솜씨가 더 발전했다?”

냐아, 냐아앙-

냠냠이가 마치 대답하듯이 우는 순간 특급 헌터가 바로 설명했다.

“요새 냠냠이 엄마한테 훈련받고 있다는데?”

“훈련?”

특급 헌터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훈련! 도시 생존법? 도시 사냥법? 그거 배우느라. 요새 놀러 올 시간도 없대!”

냐아아-

“훈련 엄청 힘들대! 냠냠이 오늘도 허탕 쳤대!”

“…….”

천문석은 물끄러미 특급 헌터와 냠냠이를 봤다.

새끼 고양이가 냐아아- 울 때마다, 특급 헌터가 마치 통역하듯 말을 옮겼다.

니케의 경우를 생각하면 특급 헌터 이 녀석은 어느 정도 동물 친구들과 말이 통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래도 구라 같았다.

“야, 똑같이 ‘냐아아- 냐아아-’거리는데 어떻게 말이 다 달라!?”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특급 헌터는 깜짝 놀랐다.

“뭐!? 똑같다고!? 완전히 다르잖아! 냠냠아 저거 뭐지?”

퐁퐁검으로 ‘자동차’를 가리키는 순간 터져 나온 울음소리.

냐아아-

“그럼 저거는 뭐지?”

커다란 ‘버스’를 가리키자 들려오는 울음소리.

냐아아-

“저거, 저거, 저거는……!?”

특급 헌터의 손가락이 ‘가로수, 빌딩, 헌터, 광화문’을 가리킬 때마다 냠냠이는 울었다.

냐아아-

냐아아-

냐아아-

냐아아-

항상 똑같은 소리로!

천문석이 어이없는 눈길을 보내는 순간.

특급 헌터는 이제 알겠지라는 표정으로 외쳤다.

“알바!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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