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44화 (54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44화>

“밥? 우리 뭐 먹으러 가는데!?”

특급 헌터가 눈을 반짝이는 순간.

천문석은 꼬맹이가 바로 움직일 미끼를 던졌다.

“고기! 오늘 점심은 삼겹살이다!”

“맛있는 삼겹살!”

특급 헌터는 한달음에 달려와 배낭을 짊어지고 외쳤다.

“출발! 모두 빨리빨리 출발해! 삼겹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피식 웃은 이태성 길드장이 대답하듯 외쳤다.

“좋다! 오늘 점심은 특별 고문된 기념으로 내가 산다!”

“……!”

순간 깜짝 놀라는 특급 헌터!

“드래곤 형!? 그냥 알바가 사주는 삼겹살 먹으면 안 될까?”

“……뭐?”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천문석과 이태성의 의아한 시선이 닿자 어째선지 우물쭈물 대답하는 특급 헌터.

“……아니면 삼겹살 말고 국밥 먹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

특급 헌터가 고기를 거부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뭐지!? 이 녀석이 이럴 리가 없는데!?’

깜짝 놀라 특급 헌터를 살핀 천문석은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태성 길드장을 바라보는 특급 헌터의 시선에 담긴 감정.

‘걱정!’

“야, 너 지금 눈빛이 굉장히 기분 나쁜데…….”

이태성 길드장이 특급 헌터의 눈빛에 고개를 갸웃할 때.

천문석은 특급 헌터의 머릿속이 들여다 보니 는 것만 같았다!

천문석 - 부자 -> 고기 O.

이태성 - 노숙자 -> 고기 X.

이래서 첫인상이 중요하다.

특급 헌터의 머릿속 이태성 길드장은 여전히 국밥 사 먹으라고 동전을 준 불쌍한 형이었다!

자신에게 고기를 사주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그런 형!

이때 이태성 길드장의 갸웃거리던 머리가 멈추고 경악으로 눈이 커졌다.

“너, 설마!?”

이태성은 꼬맹이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깨달았다.

‘나를 걱정한다고!?’

이 꼬맹이 녀석!

내가 한 말을 전부 허풍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와, 이 어이없는 녀석! 야, 나 돈 엄청 많아! 나 진짜 부자라니까! 아까 한 말 전부 진실이야!”

“……드래곤 형 부자인 거 당연히 믿지! 나 되게 믿어! 그래도 오늘은 알바가 사주는 삼겹살 같이 먹자. 형은 나중에 국수 사줘. 내가 아는 할머니가 국수집 하는데 엄청 맛있어! 가격도 되게 싸! 이거면 배부르게 국수 먹을 수 있어!”

500원 동전을 신나게 흔드는 특급 헌터.

“…….”

이태성은 최고등급 오러 능력자다.

오러로 강화된 감각은 거짓말을 기계보다 정확하게 감지한다.

그 감각에 꼬맹이 녀석의 말이 걸렸다.

당연히 믿지. = 거짓.

부자인 거 되게 믿어. = 거짓.

할머니 국수집 엄청 맛있어. = 거짓.

가격이 싸고 배부르게 먹는다. = 진실.

꼬맹이의 의도를 알아차린 순간.

이태성은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허허, 허허허허허-

와, 이 꼬맹이 녀석!

전혀 믿지 않는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마치 월급을 전부 털어 밥을 사주겠다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취업에 번번이 실패한 취준생, PC방 죽돌이 시절에도 받아본 적 없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태성은 돌연 허탈한 웃음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봤다.

어이없어하는 얼굴의 천문석.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느긋하게 자신을 보는 암살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라는 얼굴의 다섯 명의 대리.

그리고 천문석에게 연신 눈짓하는 어이없는 꼬맹이가 보였다.

어째선지 이 순간 꼬맹이의 마음의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알바! 빨리 좀 말려 봐! 이 형 또 거지 될 거 같아!’

“하! 진짜 미치겠네!”

하하하하하-

이태성은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었다.

3년 차 취준생, PC방 죽돌이, 온라인 게임 공대장, 죽고 싶어 환장한 신입 헌터, 서울 수복 작전의 탱커, 1세대 헌터, 태성 길드 길드장, 인간 재해, 움직이는 대기업…….

수많은 이름으로 불렸지만 지금 이 꼬맹이가 부르는 이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드래곤 형!

이 꼬맹이는 자신을 친한 동네 형처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이태성은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들고 외쳤다.

“꼬맹이! 오늘 똑똑히 봐라! 여기 있는 전부! 지금부터 최고급 한우 박살 내러 갈 거다! 문석아! 사무실 직원 전체 회식 괜찮냐!?”

천문석은 최설을 봤다.

척하면 척.

최설은 바로 다이어리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사장님은 협력업체 미팅 후…… 바로 집으로 가실 예정입니다. 핸들링 업무도 끝났고, 급하게 연락 올 곳도 없습니다. 회사 전화는 제 휴대폰으로 바로 돌려놓겠습니다. 전체 회식 괜찮습니다.”

탁-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고 다이어리를 닫는 최설!

과연 거대 조직 비서 출신다운 깔끔한 일 처리다.

천문석은 바로 이태성 길드장에게 대답했다.

“네. 길드장님 전체 회식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한우 회식 출발이다! 야, 꼬맹이 빨리 따라와라! 오늘 한우 질리도록 먹여 주마!”

이태성은 한도 무제한의 V 카드를 깃발처럼 흔들며 앞장섰다.

“모두 가자!”

대리들과 한경석이 그 뒤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특급 헌터는 문을 나서기 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알바. 드래곤 형 진짜 괜찮을까? 고기 엄청 비싸잖아? 에휴- 드래곤 형은 자존심이 너무 강하다니까. 알바처럼 부자 아닐 수도 있는 건데. 그렇지?”

“…….”

천문석은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태성 길드장이 회식비 쏘는 걸 걱정하는 꼬맹이와 그 이야길 듣고 있는 자신.

이태성은 개인 재산이 조 단위고, 특급 헌터도 재벌 2세다!

부자라고 말하는 자신과 두 사람은 재산 규모가 100배, 아니 1만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이 녀석 지금 멕이는 건가!?’

어이없었지만, 이래야 특급 헌터였다.

피식 웃은 천문석은 특급 헌터의 배낭을 대신 짊어지며 대답했다.

“야, 걱정할 것 없어. 드래곤 형. 다시 노숙자 되면 네가 국밥 사주면 되잖아? 아니면 고용해도 되고.”

“내가 드래곤 형을 고용하라고!? 난 알바처럼 부사장도 아닌데!?”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특급 헌터.

“너 깡통 주우러 다닌다며? 같이 다니면 되잖아?”

“서울에서는 깡통 못 주워. 서울 깡통은 다 주인이 있거든.”

“뭐? 깡통이 무슨 주인이…… 아! 그거 하면 되겠다. 수박 토마토!? 그거 같이 기르면 되잖아!”

“앗! 맞아! 그러면 되겠네! 화분 금방 자랄 테니까! 그때 드래곤 형 고용하면 되겠다!”

특급 헌터의 얼굴이 환해질 때, 천문석은 문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한우 먹으러 갈까?”

“난 오늘 엄청엄청 먹을 거야! 출동! 카카캌-.”

쿵-

특급 헌터의 신나는 웃음소리와 함께 김철수 사무실 문이 잠겼다.

* * *

그리고 20분 후 잠긴 김철수 사무실 문이 돌아갔다.

탁, 탁-

“어, 뭐야? 문이 잠겨 있어? 전부 점심 먹으러 갔냐?”

철컥-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온 김철수는 텅 빈 사무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좁은 사무실 한가운데 비품 상자와 신문지가 테이블과 방석처럼 놓여 있었다.

“이건 뭐야? 박스랑 신문지를 왜 여기에 놨지?”

김철수는 비품 상자와 신문지를 치우고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이때 부사장 책상에서 못 보던 명패가 보였다.

[특급 사원1 - 특급 헌터]

스케치북을 접어서 만든 종이 명패!

명패를 보는 순간 누가 왔는지 감이 왔다!

천문석과 특급 헌터!

두 사람이 사무실에 놀러 왔구나!

“뭐야, 이 녀석 휴가 중인데, 꼬맹이까지 데리고 사무실 온 거야?”

피식 웃으며 불꽃이 그려진 종이 명패를 집어 드는데 다른 종이 명패들이 보였다.

[특급 사원2 - 암살검 한경석]

[특별 고문 - 이 길드장님]

“……암살검 한경석? 이 길드장님? 진짜 암살검일 리는 없고…… 키즈카페 꼬맹이들이랑 같이 놀러 온 건가?”

김철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마침 시간은 12시 18분!

점심 식사하러 나갔으면 멀리 가지는 안았을 거다.

“올 거면 연락이라도 하지…… 일도 일찍 끝났고, 간만에 삼겹살 먹여서 보내면 되겠네.”

피식 웃은 김철수가 천문석에게 전화를 걸려는 순간.

쿵, 쿵, 쿵, 쿵-

벽을 타고 진동이 울려 퍼졌다.

“……저거 또 저러네.”

몇 주 동안 사라졌던 진동과 소음이 어제 다시 시작됐다.

더 강하고 힘차게!

“이거 진짜 찾아가서 항의라도 해야지. 하아-.”

김철수는 최설의 책상 위에 놓인 고무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비품이 가득 쌓인 통로 사이 벽으로 들어가.

쾅쾅, 쾅쾅쾅-

최설이 했던 것처럼 미친 듯이 벽을 두들기며 외쳤다.

“소리 그대로 넘어옵니다! 주의해 주세요!”

콩, 콩, 콩-

잠시 후 마치 사과하는 듯한 작은 진동이 울려 퍼지고 소음은 사라졌다.

“철수 아저씨랑 연락돼야 옮기던지 방음공사를 할 텐데…… 철수 아저씨는 뭘 하고 계신 거야. 하아-.”

김철수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들었다.

톡톡, 톡톡톡-

이때 톡 수신음이 연속해서 울렸다!

“……!?”

어째선지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짐작이 갔다!

강화영과 허세인!

“화영씨 전시회로 바쁘다고 했는데!? 세인씨도 해외 클라이언트랑 미팅이 있다고 했는데!?”

재빨리 휴대폰 잠금을 푸는 순간 톡들이 보였다.

생각대로 강화영과 허세인, 두 사람이 보낸 톡이었다.

-강화영

[철수씨!]

[잠깐 볼까요?]

[전시회 사이에 시간이 생겼어요!]

[제가 차 가지고 회사로 바로 갈게요!]

……

-허세인

[클라이언트 미팅이 광화문에서 끝났어요. 혹시 괜찮으시면 잠시 볼 수 있을까요?]

……

언제나처럼 약속이라도 한 듯 강화영과 허세인의 톡이 동시에 왔다.

“…….”

김철수는 잠시 휴대폰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제주도에서 만난 맞선 상대 강화영과 천장이 붕괴한 호텔에서 구해 준 허세인.

강화영은 재벌이나 다름없는 임옥분 여사님의 손녀이고, 허세인은 진짜 재벌, 금성 그룹의 로열패밀리 오너 일가다.

김철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이 왜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지!

하지만 이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에는 관성이 있고, 김철수도 이 어이없는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

지금 중요한 제주도 이후 지금까지 두 사람과 만날 때마다 난장판이 됐다는 사실이다!

“……내가 미팅 끝내고 들어온 건 어떻게 안 거야…….”

김철수는 고개를 저으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문석이랑 소주에 삼겹살은 다음에 해야겠구나.”

쿵-

강화 철문이 닫히고 사무실은 다시 한 번 텅 비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텅 빈 사무실 벽에서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무언가로 두들기는 듯한 진동이 한참 동안 김철수 사무실을 울렸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진동은 가벽을 지나 바로 옆 한경석의 공방으로 이동했다.

공방으로 이동한 진동은 벽과 천장을 스피커처럼 울렸다.

쿠으으으으으-

기괴한 비명 같은 울림이 아무도 없는 공방에서 한참 동안 울려 퍼졌다.

공방도 텅 빈 상황, 당연히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공방에 울려 퍼지던 울림이 돌연 뚝 그쳤다.

그리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무것도 없는 정적이 아닌, 누군가 말없이 살피는 듯한 정적이 한참을 흘렀다.

-……

그리고 어느 순간!

푸른 광채가 환풍기 틈에서 번뜩이고.

작은 울음소리가 환풍기 너머로 멀어졌다.

냐아아-

0